Masuk여진은 강의가 끝나자. 학원을 나왔다.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5분 정도 걸어야 했다.한참 걷다가 갑자기 제자리에 섰다.그러고는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찾았다.휴대전화를 찾기 위해서였다.그런데 무엇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뒤를 돌아봤다. 어두운 거리. 가로등 불빛만 희미한 곳이었다.무슨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 같기도 했다.갑자기 서늘함이 밀려왔다.여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나 와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뭔 전화가 이렇게 많이….그때 마침 전화를 울렸다. 강수였다.여보세요? 너 이 밤에 웬 전화를 이렇게 많이…?너 어디야? 왜 전화기가 꺼져있었어?강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그야, 학원 강의 시간에 꺼놓았으니 그렇지, 근데 무슨 일이야?전화기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너 지금 주위에 뭐가 보이니? 위치가 정확히 어디야?여진은 천천히 걸으면서 위치를 대강 설명했다.강수는 커피숍이나 밝은 곳,사람이 많은 곳이 보이면 뛰어 들어가라고 했다.하지만, 주위에 그런 곳이 보이지 않았다.그런 데가 없는데?일단 어디 좀 숨어있어,그리고 대산이 형에게 전화 좀 해. 바로 근처에 있어.여진은 전화를 끊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조용히 해.박 형사가 소리를 질렀지만, 조승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민 박사가 흥분한 박 형사를 제지하고는 끈덕지게 조승재를 바라보았다.갑자기 웃음을 멈춘 조승재는 갑자기 강수를 돌아보았다.어이, 친구. 자네가 한번 맞춰 보지 그래. 다 보인다며? 뭐가 보이나?조승재는 강수에게 놀리듯이 시비를 걸었다.하지만 그만큼 강수에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어린 소년이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과거를 읽듯 정확히 말하니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것이다.강수를 바라보는 조승재의 눈에서 긴장감이 엿보였다.말없이 대화를 듣기만 하던 강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아저씨는…, 그러니까 조승재 씨는 2년 전 자신을 찾아온 교도관을 보고 흥분했습니다.그의 말에서, 교도관 이지락이,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라는 걸 알아봤어요.아마 이지락이 당신을 존경한다고 했을 거고,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했을 거고요.당신의 입장에서는 정말 기념할 만한 날이었겠죠.그 지루하고 답답한 감옥 생활 속에서.그리고 당신을 신봉하는 이지락을 친아들처럼 아꼈고요.그래서 범죄 수법을 알려주고,이지락이 범행을 저지르고 오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그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잖아. 좀 그럴듯한 걸 알아내 봐.그렇게 말하며 조승재가 빙긋이 웃었다.하지만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박 형사는 그런 조승재를 보고 잡아 먹을듯한 표정을 지었다.
짜증이 확 나네, 참.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일이에요.과장님도 빨간 매직 사건 다시 발생한 거 아시잖아요.그 용의자가 과장님 부하인, 조승재 담당 교도관이고,조승재가 그걸 지시했을 게 뻔한데.그렇지만, 조승재를 강제로 끌고 나올 수도 없고.박 형사가 간청하자 과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지락이가 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진짜 조용하고 착한 애입니다.그거 확실한 겁니까? 지락이가 범인이라는 거요.과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확실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러겠습니까?박 형사가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저기, 과장님. 조승재에게 빨간 매직 사건 후계자를 밝혀냈으니,만나자고 한 번만 더 부탁드려요.민 박사가 과장을 간절하게 쳐다봤다.과장은 알았다면서 교도관들을 다시 조승재에게 보냈다.기다리는 동안, 이지락의 신상이 밝혀졌다.미혼인 이지락은 29세로 교도관이 4년 차였다.2년 전 본인이 지원에서 여기 서부교도소로 왔고,또 본인이 적극 요청해서 장기수 담당,그중에서도 조승재 담당이 되었다.조승재는 교도소에서도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조승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식사와 운동, 노동 등을 관리하는 일종의 매니저 역할이었다.평소 조용하고 얌전했으며,친한 교도관도 별로 없는 외톨이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조승재 면회. 갔을 때, 따라 들어온 교도관이요.강수가 급히 민 박사를 돌아보았다.뭐? 조승재 담당 교도관?민 박사는 조승재 면회할 때마다 따라 들어왔다가민 박사의 요청으로 면회실을 나가던 교도관이 떠올랐다.교도관 둘 중에서 더욱 눈길이 간 젊은 남자.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교도관.일반 교도관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그 당시 받았다는 것이 기억났다.마치 조승재의 호위무사 같은 느낌이었다.확실해? 조승재 교도관이 후계자라고?안 팀장이 재차 물었다.그러고 보니 이 비옷, 교도관들이 입는 비옷 같긴 해.그래서 14번 사건 때, 강수. 네가 군인 어쩌고 했었구나.박 형사가 영상을 째려보며 말했다.- 교도관이라…. 조승재와 항상 소통할 수 있는 사람.조승재의 수법을 직접 배울 수 있는 사람.조승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말이 되네….하지만 어떻게 현직 교도관이 그런 짓을…. 참!혼자 중얼거리던 민 박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그러고는 자기의 가방을 뒤지면서 말했다.가만, 강수야, 우리, 조승재 면회. 갔을 때 영상 찍었잖아,그 영상에 교도관이 나올 거야.참, 그렇겠네요.민 박사가 가방 속에서 외장하드를 찾아서 모니터에 연결했다.CCTV 영상과는 차원이 다른 선명한 화면이었다.화면 속에 면회실을 걸어 들어오는 조승재가 보이고그 뒤로 교도관 두 명이 보였다.민 박사가 화면을 정지시켰다.강수가 화면 속 한 교도관을 가리켰다.모자를 눌러쓴 젊은 남자가 보였다.강수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이 사람이네요. 이 교도관이 확실합니다. 조승재 후계자.사람들이 화면 앞으로 몰려들었다.그때 제가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알았을 건데.강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냐.너 아니었으면 아무도 몰랐을 거야.민 박사가 강수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안 팀장이 확실하냐고 다시 물었고,강수는 그가 범인이 맞다고 다시 확인해줬다.자, 비상! 비상
예상대로 사건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언론은 ‘다시 살아난 빨간 매직’,‘빨간 매직 15번째, 얼마나 더 희생될 것인가?’ 등등자극적인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내놨다.경찰청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언론인터뷰에 임해야 했다.특수수사팀을 포함한 경찰들이 대거 수사에 동원되었다.그리고 민 박사와 강수에게는 경찰 경호팀이 배정되었다.박 형사 집 주위에도 경찰이 배치되었다.‘너희들’이 강수와 민 박사, 박 형사일 것 같다는 의견에 따른 결정이었다.CCTV 영상은 즉각 확보되었다.강수는 동부경찰서 내에 설치된 임시 수사본부로 불려 갔다.강수가 도착하니 안 팀장, 민 박사를 비롯한 특수수사팀과박 형사를 비롯한 강력계 형사들이 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강수 군, 어서 와.안 팀장이 과하게 반겼다.여기 영상을 좀 봐봐. 사건 현장 근처 CCTV 3개,그리고 현장과 가까운 주차장에서 구한 블랙박스 영상 2개야.근데 사건 현장이 보이는 건 아니고,그냥 주변 영상뿐이야. 이걸로 뭘 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박 형사가 상황을 설명하면서 일어섰다.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강수에게 양보했다.모든 수사의 키가 강수에게 있다는 것처럼.강수는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한 형사가 모니터를 통해 영상을 플레이했다.피해자는 20대 여성으로, 홀로 운동을 나왔다가 당한 모양이야.운이 더럽게 없는 케이스라고 봐야지.일단, 시신에서 지문은 나오지 않았고,부검 결과 사인은 둔기로 내리친 후, 목을 졸랐어.둔기는 찾았어. 벽돌이었어.거기에도 희생자의 피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고.사건과 관련된 목격자도 아직 못 찾았어.박 형사가 부가 설명을 해줬다.강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상에 집중했다.비 오는 밤 한강 변의 모습이었다.드문드문 사람들과 차량이 지나다녔다.사건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닌,주변 영상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CCTV 3개의 영상이 모두 비슷했다.블랙박스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박 형사는 연락을 받자마자 급하게 차를 몰아 현장에 도착했다.현장에는 벌써 특수수사팀 요원들과 민 박사가 도착해 있었다.박 형사를 발견하고는 민 박사가 손을 흔들었다.아니, 민 박사가 현장에 직접 나오고.보통 사건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 사건이기도 하고.민 박사의 표정이 심하게 어두웠다.박 형사는 민 박사를 따라서 경찰 저지선을 열고 들어갔다.한강 변 산책길 구석에 시신이 누워있었다.사건이 발생한 시간이 밤이었지만,그리 어둡지도, 그리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었다.시신은 여자였다.목 주변에 빨간 매직으로 15라고 선명하게 적혀있었다.빨간 매직 15번 사건이 결국 발생한 것이다.박 형사가 인상을 찡그렸다.개새끼.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질렀네. 내, 이 새끼 반드시 잡고 만다.악마 같은 새끼. 빨간 매직 후계자이든, 아니든 내가 가만히 안 둔다.박 형사가 분개했다.맞아요. 아주 보란 듯이. 이건 지금까지의 사건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충동적인 살인이라기보다는 진짜 우리 보란 듯이 저지른 겁니다.우리요? 우리라는 건 나와 민 박사? 우리 경찰?박 형사가 민 박사를 쳐다봤다. 민 박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거기 상의를 올려보세요.응?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던 박 형사는민 박사의 손짓에 따라 시신의 상의를 위로 올렸다.반쯤 올라간 셔츠 아래, 배 위에 글씨가 보였다.‘이제부터 너희들이다.’박 형사가 헉 소리를 냈다.이, 이게 뭐야?빨간 매직으로 또박또박 쓴 문장.이제부터 너희들이다. 베테랑인 박 형사도 소름이 돋아났다.이제부터 너희들이다? 너희들? 너희들이 누구지?저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같아요.나, 참….인상을 찡그리던 박 형사가 갑자기 생각난 듯 민 박사에게 물었다.숫자 외에 글씨를 남긴 건 처음이잖아요.이 정도면 필체를 조사해 봐야겠는데.네, 우리 팀이 조사 들어갈 거예요.그때, 경찰차가 또 한 대 도착하고,경찰이 한 남자를 데리고 현장으로 다가왔다. 강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