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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강수 철학관: Chapter 1 - Chapter 10

15 Chapters

1화

강수는 검은 뿔테안경을 옷자락으로 쓱 닦고는 다시 썼다.그러고는 위를 쳐다보았다. ‘강수 철학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전구가 껌뻑거리는 낡은 간판.강수가 태어나자마자 매단 간판이니 벌써 18년이 다 되어간다.강수는 간판만큼이나 낡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강수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동글동글한 하관하고 도톰한 입술이 남자 복이 많은 상이네. 재복도 많고….아버지가 앞에 앉아있는,제법 덩치가 있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여자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어머머머, 그래요? 그럴 줄 알았어. 하긴 예전부터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그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아직도 제가….여자가 갑자기 풀이 죽더니 급기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은커녕 애인도 없으니…. 어머머,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들어 여자에게 손을 달라고 했다.머뭇거리던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여자의 손을 덥석 잡자 여자가 움찔했다.- 손금도 좋은데, 왜 그럴까? 자, 차근차근 내가 봐줄게.아버지가 여자의 손을 이리저리 주무르다가 강수와 눈이 마주쳤다.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강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아버지가 인상을 썼다. 들어가라는 뜻이었다.강수는 아버지와 여자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강수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강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돈은 크게 못 벌었지만,나름 인근에서 소문난 관상쟁이인 아버지 덕에 먹고 사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강수야, 너 그따위 공부실력으로 뭘 하겠니?그냥 나한테 관상이나 배워서 가업을 잇는게 어떻게 생각해?- 됐어요. 아버지나 실컷 남들 얼굴보세요.전요. 사람 얼굴 쳐다보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요.- 하여튼 저 자식은…. 이게 얼마나 스릴 있는 직업인데.아버지는 강수가 철학관을 이어가길 바랐다.하지만 강수는 진짜 사람 얼굴 들여다보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사람 얼굴을 빤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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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것은 덕호와 상호도 마찬가지였다.저 정도 잔챙이들은 여진에게 함부로 말도 못 거는 수준이었다.여진은 두 사람을 한번 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강수를 슬쩍 쳐다봤다.강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여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갔다.여진이 강수를 쳐다본 것은 진짜 순식간이었지만 말 그대로 여진은 오래갔다.강수는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순간 잊어버리고 여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여진이가… 나를 구했어. 나를… 쳐다봤어.덕호와 상호도 마찬가지였다.멍청한 얼굴로 여진이 교실 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훑고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괴물이라도 본 듯, 표정이 굳더니, 일동 차렷! 자세를 갖추었다.여진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몸.120kg, 190cm의 거구. 3학년 선배이자 우리 학교 짱! 미스터 빅! 오대산이었다.오대산은 여진을 보자 순간 멈추었다.교실로 올라가는 길이, 여진과 오대산이 마주치자 꽉 차 보였다.여진은 잠시의 주저도 없이, 비키려는 기색도 없이 걸어갔다.오대산마저 여진의 아우라에 어쩔 수 없었는지 길 한쪽을 터주었다.그러더니 여진을 슬쩍 한 번 보고는 길을 내려왔다.오대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 상호와 덕호,그리고 강수를 발견하고는 짐짓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상호와 덕호는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강수는 그저 쭈뼛거릴 뿐이었다.오대산은 아무 대꾸도 없이 세 사람의 옆을 스쳐갔다.그가 걸을 때마다 땅이 쿵쿵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오대산은 학교에서 대적할 자가 없었다.유도 유망주였는데 무제한급에 상대가 없어서 관뒀다느니,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느니, 벌써 조폭 일파의 중간보스라느니 말들이 많았다.하지만 모든 게 그냥 소문일 뿐이었다.보통의 불량학생들처럼 패거리를 지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학교에서도 말이 없는 스타일이었다.확실한 것은, 작년에 전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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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강수의 아버지, 강산은 저녁을 먹고는 책상 옆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원래 밤에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지만,그래도 강수가 집에 오는 시간까지는 문을 닫지 않았다.나름 성실한 아버지의 모습을 강수에게 심어주고 싶었다.그 때, 출입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강산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검은 모자에 선글라스 그리고 검은 마스크까지 쓴 남자였다.이 밤에 선글라스라니. 뭔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강산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서 오세요. 관상 보러 오셨나요?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강산은 얼른 TV를 끄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남자에게 앞자리를 권하자,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동작은 슬로우 화면처럼 느렸지만, 고양이처럼 날렵한 느낌이었다.강산은 뭔가 낯익은, 그러면서 온몸이 차가워지는 기운에 갑자기 휩싸였다.그러더니 가슴이 조여 온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하지만 손님이었다. 그리고 영업 끝났다고 우기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저~기. 안경과 마스크를 벗으셔야 관상을 볼 텐데 말입니다.강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남자는 잠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분명히 강산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산은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니면 그냥, 사주나 손금으로….남자는 대답도 없이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선글라스는 그대로였다. 날렵한 하관이 드러났다.강산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때가… 된 것 같은데.강산의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목이 조이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너는….남자가 마침내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강산은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듯 비틀거리더니눈에서 갑자기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강수는 하루 종일 여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그 찰나의 순간,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여진의 눈빛.사람을 얼려버릴 것 같은 차가움.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사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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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 어린 강수를 바라볼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갑자기 파문이 일어나더니 어머니가 사라졌다.그러고는 다른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 시작했다.재욱을 비롯한 친구들의 얼굴, 오대산의 얼굴과 여진의 얼굴까지….이윽고 낯선 얼굴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웃는 얼굴, 일그러진 얼굴,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얼굴, 비명을 지르는 얼굴,피로 범벅이 된 얼굴들….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이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눈은 감고 있었으나 무언가 슬픈 모습이었다.점점 다가온 아버지의 얼굴이 눈을 떴다. 눈이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으아아~!강수가 벌떡 일어났다.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잠시 후 안개가 걷히듯 천천히 시야가 밝아졌다.누군가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였다. 아니, 간호사였다.- 학생 괜찮아? 잠깐만.그러더니 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학생이 깨어났어요.강수는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똑같은 옷을 입은 환자들. 병원이었다.잠시 후, 그 간호사가 의사와 다른 간호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학생, 일어났네. 몸은 어때?- 괜,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그러더니, 의사가 간호사들을 돌아봤다.- 김 간호사, 체크 좀 해봐.간호사들이 체온이며 이것저것 재기 시작했다.강수는 그제야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억을 잃었었다.- 제가 얼마나 여기에?- 응, 꼬박 이틀 되었을 거야.- 이틀이요? 저희… 아버지는 요?그 말에 모두들 동작을 멈추었다. 그들이 대답하지는 않았지만,강수는 그들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사실이었다.강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지러웠다. 그리고 믿기지 않았다.아버지의 붉은 눈과 하얀빛. 무엇보다 믿기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진짜 돌아가셨다는 것.눈물이 저도 모르게 뺨으로 흘러내렸다.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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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박영진 형사는 경찰병원 부검실을 찾았다. 특이한 사건이었다. 오랜 경험을 가진 박 형사도 처음 겪는 케이스였다. 사건현장에서는 별 단서를 찾지 못했다. 골목 CCTV에서도 의심할만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사인도 불분명했다. 흉기도 없었고 질식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로 보기에도 어려웠다. 오늘의 부검 결과가 중요했다. 아니면 또 오리무중으로 빠질 위험이 있었다.요즘 뭔 사건들이 이렇게 다들 꽈배기처럼 꼬여?부검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부검의가 시신을 보며 무엇인가를 메모하고 있었다.- 뭐 나온 게 있어?- 아, 형님. 그게 참…. 나 이 짓 하면서 이런 사체는 처음 봐.박 형사는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뭘 처음 봐?그러면서 시신을 내려다 봤다. 시신은 아무런 외상도 없이 깨끗했다.- 사인 나왔어?- 왜 죽게 되었는지는 알겠는데, 왜 이렇게 된 지는 죽어도 모르겠어요.부검의가 손가락으로 시신의 눈을 벌렸다. 시꺼먼 구멍이 보였다. 눈알이 빠진 것처럼.부검의의 설명에 의하면 눈동자에서부터 뇌까지 짧은 터널이 뚫린 것처럼 비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기로 도려낸 것도 아니었다. 구멍의 표면으로 보아 상상할 수 없는 고열로 순식간에 타버린 것 같았다. 어떤 형태의 기계를 사용했다 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그냥 깨끗이 뚫렸는데 도저히 사람의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박 형사가 뚫어져라 시신을 쳐다보았다. 속이 울렁거렸다.장례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아버지의 시신은 조그마한 항아리에 담겨져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장례를 지켜본 사람도 몇 없었다. 가까운 친척이라곤 고모가 하나 있는데 해외에 계셨다. 말 그대로 강수는 천애고아가 된 것이다.아버지의 친구들이라는 낯선 사람 셋이 장례를 지켜봤다. 두 남자와 한 여자였다. 예전에 한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수는 그 사람들이 관상을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셋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단지 아버지가 죽어서 그런 것은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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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강수의 홀로서기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아버지와 살던,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공간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첫째, 안경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경 없이도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둘째, 사람들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다. 눈이 좋아져서 잘 보인다는 것과는 좀 달랐다. 거리를 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말을 걸었다. 자꾸 사연을 이야기하려 했다. 강수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 사람들 중 일부의 얼굴에서 살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인…? 아니면 곧 죽음을 맞이할 듯한 기운…. 그런 죽음의 기운이 찬바람처럼 강수의 몸을 휘감았다. 강수는 경찰서로 향했다. 박영진 형사의 호출이었다. 형사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법 넓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형사들과 취조를 받는 용의자들, 증인들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다.그런데… 그 문제가 또 발생했다. 조사를 받고 있는 용의자들….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몇몇은 악랄한 범행을 저지른 자들. 그리고 몇몇은 억울하게 끌려온 자들. 그들의 얼굴에서 그것이 보였다. 혼란스러웠다.그 때 저 멀리서 누가 손짓을 했다. 박 형사였다. 강수는 박 형사 앞에 앉았다.- 아버지 사인은… 정확하지가 않아.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까지 단서가 없어.박 형사는 강수에게 비교적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버지의 눈에 대한 자세한 묘사만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강수에게 아버지를 발견한 순간에 대해 물었다.- 혹시… 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의 눈을 봤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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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2주일 만이었다. 학교에는 강수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수가 학교에 들어서자 모두들 쭈뼛거리며 강수를 쳐다봤다. 몇몇은 위로의 말도 직접 전했다.교실로 들어서기 직전, 상호와 덕호와 마주쳤다. 둘도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냥 쭈뼛거리기만 하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 강수가 말없이 교실로 들어가려하자. 너 안경은 어쨌어? 상호였다. 그러고 보니 강수의 눈에 안경이 없었다. 강수가 둘을 돌아봤다. 상호와 덕호가 움칫했다. 응, 그럴 일이 있었어.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려다가 다시 상호와 덕호를 쳐다봤다. 둘은 뭔 일이냐는 듯 의식적으로 턱을 쳐들었다. 너희 둘, 그냥 장난은 좋은데, 애들 돈 뺏거나, 길고양이들에게 장난치는 짓은 하지 마라. 강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상호와 덕호는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무슨 짓을 하다가 들킨 유치원생 같은 표정이었다. 이 자식이… 무슨 말을…. 하지만 덕호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기에 눌린 표정이었다.강수는 자신이 왜 애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스스로 의아했다. 하지만 둘의 얼굴에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자칫하면 점점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교실에 들어서자,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의 위로가 이어졌다. 강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너 되게 카리스마 넘쳐 보인다. 안경을 벗어서 그런가. 점심시간, 교내식당에서 재욱이 강수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뭔 카리스마?아니, 뭔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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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점심시간이 지나고 교실이 난리가 났다. 미주가 무선 이어폰이 없어졌다고 담임에게 이른 것이다. 담임이 즉각 반 친구들을 집합시켰다. 나, 이런 거 진짜 싫은데. 너희들 의심하고 그런 거 싫은데. 혹시 누가 실수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친구가 있으면 빨리 얘기해주면 좋겠어. 말은 부드러웠지만, 범인이 나올 때까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나가고 잠시 침묵하던 교실이 시끌시끌해졌다. 뭐 이런 일로 의심하느냐는 불만부터, 공부할 시간에 뭐 하느냐는 투덜거림에, 누군지 빨리 불고 끝내자는 원성까지 뒤섞였다.교실 분위기는 결국 두 사람을 겨냥했다. 바로 상호와 덕호였다. 걔들이 무서워 직접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둘은 전적이 있었다. 상호와 덕호도 반 애들의 분위기를 눈치 못 챌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둘 중 좀 더 다혈질인 덕호가 벌떡 일어났다. 아 씨, 우린 아니야. 뭔 일만 있으면 지랄이야. 덕호가 고함을 질렀다. 덕호의 흥분이 쉽게 식질 않았다. 오히려 상호까지 가세했다. 교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조금 전부터 교실문 밖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던 학생주임 선생님이 흥분을 가라앉히겠다면서 덕호와 상호를 데리고 나갔다. 교실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미주는 일이 너무 커지자, 놀라서인지 엎드려 울고 있었다.강수는 난리 통 속에서 한 여자애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우등생 혜리였다. 혼란 속에서도 끝까지 조용하게 앉아 있었지만 강수는 그녀의 표정을 읽었다.사실, 처음 난리가 터졌을 때, 강수도 덕호와 상호를 먼저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혐의가 전혀 읽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혜리에게서 시선을 딱 멈추었다.강수는 고민했다. 범인이 혜리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명확하게 느껴지지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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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너… 너… 도대체 어떻게? 강수는 뭐라고 설명해주기 힘들었다. 너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니? 아니면 이 사건과 관계가 있어? 아니면 이 사람들 아는 사람이야? 도대체 어떻게…. 박 형사의 말이 쓸데없이 많아졌다. 그, 그래 이 사건이 그래, 무슨 사건인지는 아니? 어디서 일어난 건지는? 사건 발생지역은?그건 모르는데요.그런데 어떻게 아냐고? 박 형사의 목소리가 취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강수는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박 형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뛰어나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른 서류철을 몇 개 들고 들어왔다.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한 서류철에서 사진을 몇 장 꺼내 책상위에 펼쳐놓았다. 모두 5장의 사진이었다. 여, 여기는 범인이 있어? 있으면 맞춰봐. 박 형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수가 사진들을 훑어보더니 그 중 1장을 가리켰다. 박 형사가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았다.이 녀석 뭐야? 어떻게 안 거야.박 형사가 가져온 서류철은 이미 1년 전에 범인이 검거된 살인사건 서류철이었다. 강수는 정확하게, 지금은 교도소에 복역 중인 범인의 사진을 지목했다. 그것도 10초도 안 되어서.무슨 말을 하려던 박 형사가 다른 서류철을 골랐다. 그러더니 사진 4장을 빼서 책상에 늘어놓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 그러면 여긴? 여긴 어느 놈이 범인이야? 강수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박 형사를 쳐다봤다. 그만하면 안 될까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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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집에 돌아온 강수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피로가 몰려왔다.강수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박 형사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혼자만의 고민이었다. 어디 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때로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자신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의 얼굴을 보기가 겁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의 의미는 많이 달랐다.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한숨을 쉬던 강수는 아버지가 항상 앉아있던 책상 앞 낡은 회전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어있던 아버지의 의자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천천히 뒤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강수야, 내가 왜 관상을 시작했는지 얘기한 적 있니?…….물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관상쟁이에게 끌려가서 매 맞으며 배운 거지만. 나는 말이야. 이게 천직이라고 생각해. 사람을 본다는 것은 말이야. 사람의 마음을 보고 인생을 본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인 거야. 거의 슈퍼맨, 배트맨이 되는 거지. 아니 그 이상이지. 흥분되지 않니?…….사람의 마음을 보고, 사람의 과거를 보고, 사람의 미래에 대해 조언해 주고, 바른길로 안내해주는 거지. 못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고 고쳐나가게 설득하는 것. 얼마나 멋있는 일이냐? 그래서 난… 그 뭐냐… 나를 성직자라고 생각해. 신부, 스님, 목사 같은 성직자. 참 보람된 일이지. 아버지가 생전에 가끔 하던 말들이었다. 그때 강수는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지만, 오늘따라 생생하게 그 말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생각과 철학과 고민과 보람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못한 게 너무 가슴 아팠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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