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집에 도착한 뒤, 서윤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한서윤.”
그녀가 멈췄다.
“왜요?”
도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늘 태하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남자가 그녀를 잘 안다고 말했을 때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그토록 자연스럽게 제 아내라고 말해 버렸는지.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일 아침 회의 잊지 마.”
서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 말 하려고 불렀어요?”
“응.”
"역시 당신은 재수 없어.”
“당신도.”
서윤은 그대로 돌아섰다.
현관문이 닫히고, 도윤은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세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 행사 사진 봤어. 둘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
도윤은 화면을 바라봤다. 곧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런데 당신, 오늘 표정이 재미있던데.]
그는 답장하지 않았다. 세린은 더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했다. 자신은 오늘 하루 종일 한서윤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와 웃는지. 누구의 손을 잡는지. 누구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지.
전부 신경 쓰였다.
문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 생길 리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지나치게 가까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도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차에서 내렸다.
***
그날 밤.
서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 예뻤어.]
서윤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아까도 말했잖아.]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데.]
잠시 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리고 미안해.]
서윤의 손이 멈췄다.
[뭐가?]
[오늘 네 남편 앞에서 조금 짓궂게 굴었어.]
서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태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그리고 서윤의 남편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괜찮아.]
서윤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태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자?
“아니.”
- 아까는 괜찮다고 했지만, 혹시 불편했을까 봐.
서윤은 침대에 기대앉았다.
“괜찮다니까.”
- 다행이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태하가 낮게 웃었다.
- 그런데 서윤아.
“응?”
- 나 오늘 조금 못됐지?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 네 남편한테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어.
“…….”
- 네가 누구와 결혼했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사람 앞에 서니까 아니더라.
태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 내가 너를 얼마나 오래 사랑했는지, 그 사람은 평생 몰랐으면 좋겠더라.
서윤은 눈을 감았다. 태하는 늘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 아래에 얼마나 오래된 욕심이 있는지, 서윤은 가끔 잊곤 했다.
“태하야.”
- 응.
“미안해.”
- 그러지 마.
태하는 곧바로 대답했다.
-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그건 내가 감당할 일이니까.
그 말이 더 아팠다.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한참 뒤, 조용히 말했다.
“…보고 싶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 서윤아.
“응.”
-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태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 나 진짜 기대하게 되니까.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웃었다.
- 그래도 고마워.
그날 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전화를 끊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강도윤은 자신의 서재에서 계약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 두 사람의 서명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면 이혼한다.
도윤은 그 문장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펜을 집어 들었다. 계약서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순간, 그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무슨 조항을 추가할 건데?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할 것?
자신에게만 웃어 줄 것?'
그런 조항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존재한다 해도, 한서윤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도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때 방문 밖에서 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하야, 나도 보고 싶어.”
도윤의 시선이 멈췄다.
짧은 정적. 그리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서윤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윤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두드리면 안 됐다. 그녀의 사생활이었다. 그들의 계약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이 제 멋대로 올라갔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안쪽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서윤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에요?”
도윤은 그녀를 내려다봤다.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을 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저 할 말이 있어 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입을 열자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 남자랑 계속 만날 거야?”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요?”
“윤태하.”
도윤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듯 남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계속 만날 거냐고.”
서윤은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웃었다.
“당신이 그걸 왜 궁금해하는데요?”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윤이 팔짱을 낀 채로 한 걸음 다가왔다.
“우리 계약 기억하죠?”
“기억해.”
“그런데 왜 이래요?”
도윤의 턱이 굳었다. 서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설마 나한테 마음이라도 생겼어요?”
그 말에 도윤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착각하지 마.”
서윤은 웃었다.
“그럼 간섭하지 마요.”
그리고 문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도윤의 손이 문을 붙잡았다.
서윤의 눈이 커졌다.
도윤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한서윤.”
“……왜요.”
“네가 누구를 만나든 상관없어.”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누구를 사랑하든, 누구와 잠을 자든. 내가 간섭할 일 아니지.”
서윤은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도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내 아내가 아닌 척하지 마.”
저녁 일곱 시.양가 식사 자리는 예상보다 화기애애했다. 양가 부모님은 공동 사업의 진행 상황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해야 할 공식 행사에 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서윤은 평소처럼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도윤 역시 빈틈없이 행동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적어도 겉으로는.“요즘 두 사람은 어때?”서윤의 어머니가 물었다. 서윤은 미소를 지었다.“좋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도윤도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서윤이가 잘해 줘서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서윤은 포크를 쥔 손에 힘을 줬다.'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도윤은 태연했다.“그렇지, 여보?”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여보? 방금 여보라고 했어?'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서윤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그럼요. 저희 남편이 워낙 잘해 주셔서요.”이번에는 도윤의 손이 멈췄다. 양가 부모님은 흐뭇하게 웃었다.“아이고, 신혼이라 그런가. 둘이 보기 좋네.”“그러게요. 도윤이가 원래 저렇게 살갑게 구는 애가 아닌데.”서윤은 환하게 웃었다.“집에서는 더 잘해요.”도윤은 물을 마셨다. 서윤은 그가 잔을 내려놓는 순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남편 노릇 잘하시네요.”도윤도 웃는 얼굴로 답했다.“너도 아내 노릇은 잘하네.”“그럼요. 계약은 지켜야 하니까요.”“…그래.”그는 미소를 유지했다.“계약은 지켜야지.”두 사람의 웃음은 완벽했다. 하지만 테이블 아래에서 서윤의 구두 끝이 도윤의 구두를 살짝 건드렸다. 실수인 척.도윤이 그녀를 돌아봤다. 서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을 마셨다.도윤은 낮게 웃었다.이 여자.정말 보통이 아니었다.***식사가 끝난 뒤.두 사람은 나란히 차에 올랐다.문이 닫히자마자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보는 무슨 여보예요?”도윤은 안전벨트를 매며 대답했다.“부부니까.”“평소에는 이름도 제대로 안 부르시면서요.”“부
오후 네 시 삼십 분.강도윤은 예정에 없던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히는, 회사 관계자와의 미팅이 근처에서 끝났다.그는 비서가 준비한 차에 오르려다가 길 건너편을 바라봤다. 그리고 보았다.한서윤. 윤태하.두 사람은 전시관을 나오는 중이었다.태하가 서윤의 코트 깃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서윤은 웃으며 무언가를 말했고, 태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오래된 연인처럼.도윤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대표님?”비서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태하가 서윤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길을 건너려 했다. 그때 서윤이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자 태하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차 대기시켜.”“네?”“저쪽으로.”비서는 도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사모님이 계시네요.”“못 봤나?”“아닙니다.”“그럼 움직여.”비서는 더 묻지 않았다. 검은색 세단이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마침 서윤과 태하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이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뒷좌석 창문이 내려갔다.“한서윤.”서윤은 눈을 크게 떴다.“…강도윤?”도윤은 태하를 한 번 바라본 뒤 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타.”서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뭐라고요?”“집에 가야 하잖아.”“아직 시간 남았는데요?”“양가 식사.”“알아요. 여섯 시 반까지 들어가면 되잖아요.”도윤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지금 네 시 반이야.”“그러니까요.”“차 타.”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강도윤 씨.”“왜.”“저 지금 태하랑 같이 있잖아요.”“보이는데.”“그런데 왜요?”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이 웃었다.“설마 데리러 오신 거예요?”“지나가는 길이야.”“아, 지나가는 길.”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가던 길 가세요. 저희도 알아서 갈게요.”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태하가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괜찮습니다. 제가
토요일 오후 두 시.한서윤은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태하와 보내는 주말이었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전시회를 보고, 시간이 남으면 카페에 들를 생각이었다.평범한 데이트. 그런데 옷을 고르는 데 평소보다 십 분이나 더 걸렸다. 서윤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혔다.“…뭐 하는 거야, 한서윤.”누구를 만나든 평소처럼 입으면 그만이었다.태하를 만나는 데 특별히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어색할 리도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너 오늘 누구 만나?'물어볼 리도 없는 남자였다.'누굴 만나든 내 알 바 아니야.'분명 그렇게 말할 사람이었다. 서윤은 립스틱을 내려놓았다.“아, 몰라.”가방을 집어 들고 방을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어디 가?”거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강도윤이었다.주말인데도 셔츠에 슬랙스 차림이었다. 소파에는 펼쳐 놓은 서류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식어 가는 커피가 있었다.서윤은 시계를 확인했다.“약속 있어요.”“누구랑?”질문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걸 왜 물어보세요?”도윤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주말에 외출한다니까 물어본 거야.”“제 외출 일정까지 보고해야 하나요?”“그런 말 안 했어.”“그럼 왜 궁금한데요?”그제야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윤태하?”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와.”“뭐.”“진짜 신기하다.”“뭐가.”“제가 누구 만나는지 관심 없다고 하시는 분이 이름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시네요.”도윤의 표정이 굳었다.“그쪽이 네 주변에서 제일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니까.”“제가 언제 그렇게 자주 언급했어요?”“됐어. 나갈 거면 나가.”“네. 그러려고요.”서윤은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으려는 순간, 도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한서윤.”“이번엔 또 왜요?”“너
서윤의 손이 멈췄다.“…그건 왜 궁금하세요?”세린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저는 도윤 씨를 오래 봐 왔으니까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아요. 그런데 결혼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갑작스러웠거든요.”“그랬겠네요.”“혹시 두 분, 정말 서로 좋아해서 결혼한 건 아니죠?”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린은 그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했다.“그럼 다행이에요.”서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뭐가 다행이라는 거죠?”“도윤 씨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저를 떠난 건 아니라는 뜻이니까요.”세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저는 도윤 씨와의 관계를 쉽게 정리할 생각이 없어요. 물론 결혼하셨으니 예전처럼 만날 수는 없겠죠.”그녀는 서윤을 똑바로 바라봤다.“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저도 확인해 보고 싶어요.”서윤은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이해는 됐다. 세린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과 도윤의 결혼이 사업적 합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서윤은 그 감정을 굳이 분석하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정세린 씨.”“네.”“도윤 씨가 뭘 원하는지는 도윤 씨에게 물어보세요.”세린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저는 그 사람의 마음을 대신 설명해 드릴 수 없거든요.”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한 가지 더요.”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저희 결혼이 어떤 결혼이든, 지금 저는 그 사람의 아내예요. 그러니까 저한테 허락을 구하실 필요도 없지만, 저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실 필요도 없어요.”세린은 한동안 서윤을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미소 지었다.“생각보다 단단한 분이시네요.”“그런 말 자주 들어요.”“그럼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네. 들어가세요.”서윤은 라운지를 나섰다.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월요일 아침.한서윤은 식탁에 놓인 토스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이거 뭐예요?”“토스트.”“그건 저도 알아요.”맞은편에서 신문을 읽던 강도윤이 시선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럼 뭘 물어본 거지?”“제가 좋아하는 잼이 발라져 있어서요.”“주방장이 준비한 거겠지.”서윤은 토스트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 딸기잼. 그녀가 아침에 입맛이 없을 때 유일하게 먹는 잼이었다.이 집에 들어온 뒤 몇 번 말한 적은 있지만, 일부러 기억해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주방장님이 제 취향을 이렇게 잘 아셨나?”“그걸 왜 나한테 묻지?”“아니, 그냥요.”서윤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도윤을 바라봤다.“혹시 강도윤 씨가 말해 준 거 아니에요?”신문을 넘기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내가 왜?”“그러니까요. 왜 그랬을까 싶어서.”“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먹어. 출근 시간 다 됐어.”“네에.”서윤은 길게 대답하며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저 인간, 가끔 보면 이상하다니까.'물론 도윤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물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착각하지 마.''관심 없어.''네가 알아서 해.'그 세 가지 중 하나겠지. 서윤은 커피를 마시며 피식 웃었다.도윤은 신문 너머로 그 모습을 봤다.“뭐가 웃겨?”“아무것도 아니에요.”“혼자 웃는 버릇 좀 고쳐.”“제 버릇까지 관리하세요?”“아침부터 시끄러우니까.”“네, 네. 조용히 먹겠습니다.”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정확히 삼십 초 뒤, 휴대전화가 울리자 웃음을 터뜨렸다.도윤은 신문을 접었다.“한서윤.”“네?”“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아침부터 시끄럽다고 하셨죠.”“기억은 하네.”“그럼요. 제가 기억력이 좀 좋아요.”서윤은 씩 웃었다. 도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먼저 간다.”“네. 조심히 가세요.”그는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서윤은 여전히 휴대전화를 보며 웃고 있었다.누
서윤은 식사를 마치고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아까… 도윤 씨 봤지?”태하의 질문에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응.”“많이 신경 쓰여?”서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태하야, 나는….”“괜찮아.”태하가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웃음이 조금 슬퍼 보였다.“서윤아. 내가 네 옆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네 마음까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서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런 뜻이 아니야.”“알아.”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코트를 챙겼다.“그래도 하나만 약속해 줘.”“…뭔데?”그는 코트를 건네며 서윤을 바라봤다.“네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한테 미안해서 숨기지는 마.”서윤은 코트를 받아 들지 못했다.“태하야.”“나는 네가 나를 선택해 주면 좋겠어.”태하의 목소리는 조용했다.“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그는 잠시 멈췄다.“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데도 나를 선택하는 척하는 건 싫어.”서윤의 눈가가 뜨거워졌다.“…너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태하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러게.”그는 서윤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 주었다.“나도 가끔은 내가 좀 싫어.”서윤은 그를 바라봤다. 태하는 다시 평소의 미소를 지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알아.”태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그래도 데려다주고 싶어.”서윤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레스토랑을 나섰다.태하는 끝까지 서윤을 배려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다정함이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다.***밤 열 시.서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도윤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읽다 만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서윤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왔어?”“네.”서윤은 구두를 벗었다.“안 주무셨어요?”“잠이 안 와서.”“그러세요.”서윤은 가방을 내려놓고 계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