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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릴리아
강태혁의 표정을 보자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5년 전, 비가 내리던 어느 밤이었다.

당시 회사를 물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강태혁은,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사진의 의심과 질책을 받고 있었다.

강태혁은 지친 몸을 이끌고 홀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강태혁은 손에 든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반지는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돈을 아껴 가며 강태혁에게 사 준 첫 선물이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조용히 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다정함과 씁쓸함이 뒤섞여 있었다.

“네가 이렇게 비싼 선물을 해 줄 만큼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싶어서. 새별아, 어쩌면 난 회사를 제대로 이끌 능력이 없는 걸지도 몰라.”

나는 강태혁의 뒤로 가서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러 주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넌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잖아.”

“새별아.”

강태혁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봤다. 눈빛에는 불안하고 나약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더 성공하면 더 큰 시련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 그때도 지금처럼 내 곁에서 함께해 줄 거야?”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어디까지 올라가든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때 강태혁은 내 손을 꼭 잡았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 강태혁은 그때의 반지보다 몇 배나 비싼 블루 다이아몬드를 보고도 싸구려 선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임새별?”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심유나가 짜증을 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손에 든 블루 다이아몬드나 당장 내놔!”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내 손에 들린 블루 다이아몬드에 쏠려 있었다.

“내놓으라고? 내가 왜?”

보안팀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블루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비싼 물건인 줄 알아? 여기 계신 부자분들한테야 별것 아닐지 몰라도, 당신 같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야. 어디서 훔쳤어?”

“훔친 거 아니에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 아들 돌 선물이라고요.”

“선물?”

심유나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해 봐. 네 주제에 잘해 봤자 너랑 똑같은 가난뱅이랑 결혼해서 가난한 애들이나 몇 명 낳았겠지.”

“대체 누가 네 아들한테 이렇게 희귀하고 값비싼 블루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겠어?”

아까 그 보안요원이 냉큼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분명히 훔친 겁니다. 저런 가난뱅이가 이런 블루 다이아몬드를 무슨 수로 손에 넣었겠습니까?”

보안팀장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귀중품 절도는 범죄입니다.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훔친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그제야 강태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네 물건이라는 걸 증명해 봐. 증명하지 못하면 비즈니스 서밋 부회장 자격으로 널 경찰에 넘기겠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였다.

띵-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이가 울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엄마! 엄마! 내 다이아몬드는? 아빠가 엄마가 찾아 줄 거라고 했는데!”

내 세 살배기 아들, 안시우였다.

아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시우야!”

나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엄마가 찾았어! 여기 있어!”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입고 있는 옷은 상류층이라면 누구나 아는 천재 디자이너 여름이 직접 만든 맞춤 정장이었다.

올해 초,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재력가가 경매에서 무려 20억 원에 낙찰받은 바로 그 정장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만큼 유명한 옷이었다.

“저... 저 아이는...”

보안팀장이 말을 더듬었다.

그 순간 심유나가 갑자기 달려들더니 내 품에서 시우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딱 봐도 명문 재벌가 후계자인데, 어떻게 임새별의 아들이겠어?”

안시우는 심유나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한테 갈래!”

“이 아이는 납치당한 게 분명해요!”

심유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임새별은 도둑일 뿐만 아니라 재벌가 후계자만 골라 납치해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범이에요!”

로비가 발칵 뒤집혔다.

“재벌가 후계자를 납치했다고?”

“세상에! 역시 빈민가 출신은 버릇을 못 고친다니까. 재벌가 후계자를 납치해서 팔자 한번 고쳐 보려던 거야?”

“그러니까 블루 다이아몬드도 갖고 있었던 거구나! 아이를 납치하면서 보석까지 훔친 게 분명해!”

보안팀장이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여자 제압해! 중범죄자야!”

보안요원 여러 명이 달려들더니 내 두 팔을 등 뒤로 꺾으면서 붙잡았다.

나는 몸부림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건장한 남자들은 힘도 셌고 숫자도 많았다.

“놔! 당장 놓으라고!”

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시우는 내 아들이야!”

“네 아들이라고?”

심유나가 울고 있는 시우를 안은 채 비웃었다.

“어느 재벌가에서 너 같은 가난뱅이 핏줄을 받아 주겠어? 너 같은 여자가 재벌가 후계자를 낳는 걸 허락할 집안이 어디 있냐고. 임새별, 거짓말도 갈수록 가관이네.”

시우는 심유나의 품에서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우리 엄마한테 갈 거야! 나쁜 아줌마! 나쁜 아줌마!”

아들이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보안요원들은 오히려 나를 더 세게 붙잡았다.

“임새별.”

강태혁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강태혁은 나를 내려다보며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욕심 많은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지경까지 타락할 줄은 몰랐어.”

“도둑질에 납치, 거짓말까지... 대체 네가 못 할 짓이 뭐가 있겠어? 그때 널 선택하지 않길 정말 잘했어. 넌 태강그룹 안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

강태혁은 보안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여자 끌고 가서 경찰에 넘기세요.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한테 연락해서 아이를 잃어버린 집안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안 돼!”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소리쳤다.

“시우는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을 데려가면 안 된다고!”

바로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숨 막힐 듯한 위압감을 풍기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188센티의 키에 몸에 꼭 맞게 재단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손짓 하나, 걸음걸이 하나에도 남다른 위엄이 배어 있었다.

강태혁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모든 기업 대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면서 예의를 갖췄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로비에는 낮은 속삭임만 흘렀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그분이 오셨어. 다들 잘 보여야 해. 이따가 투자도 부탁드려야 하잖아...”

남자의 새까만 눈동자가 로비를 천천히 훑었다.

그러다 마침내 내게 시선이 머물렀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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