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영혼을 건 계약

영혼을 건 계약

By:  차차빛Completed
Language: Korean
goodnovel4goodnovel
24Chapters
57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고요한 저택 안. 진지희는 넓은 거실 소파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밖에서 돌아온 서주훈은 거실에 앉아 있는 진지희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놀란 기색도 잠시, 눈빛은 금세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오늘 하라가 고열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전화를 그렇게 많이 한 거야?”

View More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24 Chapters
제1화
진지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지희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서주훈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잠시 정적이 이어진 끝에 진지희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때 할 말이 있었어요.”“무슨 말? 무슨 일 있었어?”서주훈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이렇게 멀쩡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서주훈은 진지희가 전화했던 이유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리고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하라가 몸이 안 좋아서 오늘은 하루 종일 곁에 있어 줘야 한다고 분명 말했잖아. 그런데도 계속 전화했던 이유가 뭐야?”“지희야, 내가 전에 분명 말했지. 그 잘못된 마음은 인제 그만 접으라고. 나는 네 삼촌이야. 우리는 절대 남녀 사이로 지낼 수 없어.”“다음에 또 이럴 거면 그냥 이 집에서 나가.”말을 마친 서주훈은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아래층에는 진지희만 홀로 남겨졌다.진지희는 계단을 올라가는 서주훈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삼촌, 죄송해요. 앞으로는 그럴 일 없어요. 저는... 이미 죽었거든요.”목소리가 너무 작았기에 이미 위층으로 올라간 서주훈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진지희도 개의치 않았다.다시 소파에 앉은 진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날을 떠올렸다.사실 서주훈은 친삼촌이 아니라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아주 어릴 적부터 진지희는 서주훈만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라고 불렀다.그럴 때마다 서주훈은 언제나 인내심 있게 바로잡아 주었다.“오빠가 아니라 삼촌이지.”정말로 호칭을 바꾸게 된 건 여덟 살 되던 해였다.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진지희는 서주훈의 손에 이끌려 서씨 집안으로 들어갔다.진지희는 서주훈이 정성껏 키운 한 떨기 장미 같은 존재였고, 서주훈은 자신의 모든 사랑을 모두 진지희에게 쏟아부어 길렀다.처음 서씨 집안에 들어왔을 때, 진지희는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라는 생각에 불안해서 밤마다
Read more
제2화
다음날, 진지희는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가장 먼저 향한 곳은 주민등록 말소를 신청하는 곳이었다.너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탓에, 사람이 죽고 나면 처리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어젯밤 늦게야 알게 되었다.하지만 이제 서주훈에게는 새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고, 입양된 딸에 불과한 자신은 서주훈에게 짐이 될 뿐이었다.마지막까지 그런 일로 삼촌을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말소 신청 창구에 도착한 진지희는 접수 직원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직원은 본인이 직접 주민등록 말소를 신청한다는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주민등록 말소는 정말로 신중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순간의 감정으로 결정해서 되는 게 아닌데 정말 신청하시겠어요?”진지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 6일 뒤면 저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요.”그 말을 들은 직원은 진지희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한 직원은 더욱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앳된 학생이었으니까.사실 이런 절차는 사망한 후에나 가능할 줄 알았고, 자신이 직접 처리하기에는 꽤 복잡할 줄 알았다.그런데 직원은 더는 묻지 않고 조용히 말소 절차를 진행해 주었다.말소를 마친 뒤 진지희는 사진관에서 영정사진도 찍었다.자신이 들어갈 유골함도 사고 수의도 직접 준비했다.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동정이 뒤섞인 시선으로 진지희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지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리해 두면, 앞으로는 서주훈이 자신 때문에 더 이상 신경 쓰거나 고생할 일이 없을 거라는 것, 그거면 됐다.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앞치마를 두른 유하라가 집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진지희를 발견한 유하라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지희 왔구나. 오늘은 내가
Read more
제3화
말을 마친 서주훈은 진지희의 손목을 잡아 다시 식탁으로 데려갔고 의자에 앉힌 뒤에야 유하라의 곁으로 돌아가 앉았다.진지희는 고개를 들어 서주훈을 바라봤지만 진지희는 안중에도 없이 유하라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그러다 진지희의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보며 차갑게 한 번 더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진지희는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씁쓸함을 애써 삼키고 그저 그릇을 들고 한 숟갈씩 천천히 입에 넣었다.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마다 타오르는 불길 같은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고 눈물이 그릇 안으로 뚝뚝 떨어졌다.반찬 한 점을 입에 넣을 때마다 목구멍부터 위까지 불이 붙은 듯 쓰라렸다.짠 눈물이 음식과 뒤섞여 입으로 넘어갔는데 그 순간 어느 쪽이 더 아픈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위가 더 아픈 건지 아니면 마음이 더 아픈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그렇게 식사는 끝났다.진지희의 침묵과 서주훈, 유하라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만이 식탁을 채웠다.진지희가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밖에서 자동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때 유하라가 반갑게 웃었다.“내 짐이 도착했나 봐.”말을 마치자마자 현관으로 달려갔고 서주훈은 진지희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늘부터 하라도 이 집에서 같이 살 거야.”말하면서도 서주훈의 시선은 진지희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하지만 이미 한참을 울고 난 뒤라 진지희는 감정을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그래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예상 밖의 반응에 서주훈은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마음 한구석을 스쳐 지나갔다.그때 유하라가 돌아와 자연스럽게 서주훈의 팔짱을 꼈다.“주훈아, 나는 어느 방 쓰면 돼?”서주훈은 금세 표정을 풀고는 유하라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었다.“같이 올라가 보자. 마음에 드는 방 아무 데나 골라도 돼.”세 사람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유하라는 방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그러다 서주훈의 방이 어디냐고 묻더니,
Read more
제4화
다음날, 진지희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아래로 내려가자 주방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앞치마를 두른 채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서주훈과 그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유하라였다.서주훈은 유하라를 밀어내기는커녕, 틈날 때마다 뒤를 돌아 유하라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었다.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진지희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지희는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그때는 집에 도우미가 많았다.그리고 서주훈은 늘 일이 바빠 밤을 꼬박 새우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흔했다.도우미들은 진지희가 어린아이라고 만만하게 여겨 일도 대충 했고, 서주훈 모르게 밥을 챙겨 주지 않는 일도 잦았다.그 사실을 알게 된 서주훈은 모든 도우미를 내보냈고 직접 진지희를 챙기기 위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아침, 점심, 저녁, 사소한 것 하나까지 빠짐없이 손수 챙겼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서주훈을 좋아해서는 안 됐다.유하라가 정말 서주훈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라면 진지희는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생각이었다.진지희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고 어느새 또 달력이 걸린 벽 앞에 서 있었다.언제 나왔는지 유하라가 다가와 달력을 바라보더니 문득 물었다.“이 달력은 대체 뭐야? 왜 몇 장밖에 없어?”유하라의 말을 들은 서주훈도 무심코 시선을 돌리고는 그 달력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시선이 모두 달력에 쏠리자 진지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둘러댔다.“며칠 전에 친구들이랑 나갔다가 우연히 봤는데, 재밌어 보여서 하나 샀어요.”변명은 허술했지만 서주훈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오늘은 하라랑 데이트하러 나갈 거야.”한치의 숨김도 없는 말이었다.서주훈은 진지희가 분명 불만을 터뜨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지희는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잘 다녀오세요.”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원하던 모습이었으니 기뻐해야 맞지만 이상하게도 진지희를 바라보는 서주훈의 마음은 답답하게 가라앉았다.순간 집안이 조용해졌고,
Read more
제5화
바닥에 놓인 물건들을 보는 순간, 진지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분명 숨겨 두었는데 어떻게 찾아낸 거지?’진지희는 한동안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내일이 제 부모님 기일이잖아요. 이거 부모님께 태워 드리려고 준비한 거예요.”그 말을 들은 서주훈은 그제야 마음속에 맴돌던 묘한 감정을 가라앉혔다.그리고 잠시 침묵하던 서주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내일은 나도 같이 갈게.”“괜찮아요, 삼촌. 하라 언니랑 시간 보내시고 볼일 보세요. 그동안 제가 삼촌한테 폐를 많이 끼치고 짐이었잖아요. 이제는 안 그럴게요.”서주훈은 진지희가 분명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이었다.뜻밖의 반응에 서주훈의 눈에는 당혹감이 스쳤지만, 진지희는 이미 먼저 자리를 떠난 뒤였다.진지희는 달력 앞으로 걸어가 조용히 한 장을 뜯어 잘게 찢은 뒤 쓰레기통에 버렸다.이제 남은 시간은 4일이었다.멀어져 가는 진지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주훈은 문득 조금 전 진지희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너는 나한테 한 번도 짐이었던 적 없었어.”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이미 방으로 돌아간 진지희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4일 남은 날, 진지희는 홀로 부모님의 묘지를 찾았다.천천히 걸어 부모님의 묘 앞에 다다른 진지희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묘비에 붙어 있는 부모님의 사진을 바라봤다.기억 속 그대로, 다정하게 웃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진지희는 두 무덤 사이에 조용히 앉았다.어릴 적 부모님 사이에 앉아 있던 것처럼 말이다.“아빠, 엄마. 지금쯤이면 환생하셨을까요? 제가 너무 멋대로였다고 야단치지는 말아 주세요.”“영혼이 완전히 사라지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전 7일을 선택했으니까요.”“예전에는 늘 부러웠어요.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는데 저만 없는 걸까 하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더 이상 부럽지 않았어요. 삼촌이 계셨으니까요.”“삼촌은 저
Read more
제6화
서주훈의 추궁에 진지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자기 손에 들린 편지들을 본 그녀는 황급히 편지를 다시 서랍에 넣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진지희는 순간 멍해졌다.서주훈이 신경 쓰는 것이 하필 편지를 봤는지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서주훈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본 진지희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안 봤어요.”그 대답을 듣고서야 서주훈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진지희를 바라보는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가 담겨 있었다.“일단 나가. 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내 물건에 손대지 마.”“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진지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재를 나왔다.서재를 나온 뒤 진지희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침대에 누웠지만 머릿속에는 아까 서재에서 봤던 연애편지들이 자꾸만 떠올랐다.예전부터 서주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진지희가 기억하는 한, 서주훈의 곁에는 자신과 유하라를 제외한 다른 여자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그 편지들은 대체 누구에게 쓴 걸까?’‘설마...나였을까?’복잡한 생각에 잠긴 사이 진지희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희미하게 옆방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유하라가 돌아온 것이었다.진지희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그곳은 두 사람의 방과 가까웠고, 게다가 방문도 닫혀 있지 않아 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유하라였다.유하라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고 환호하듯 말했다.“출장 이틀밖에 안 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 편지를 이렇게 많이 쓴 거야?”그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서주훈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서주훈의 목소리는 다정하고도 애틋했다.진지희가 고백하기 전, 서주훈이 진지희에게 들려주던 말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유하라는 기쁜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서주훈의 볼에 입을 맞췄다.“좋아. 앞으로 매
Read more
제7화
진지희를 말 없이 바라보다가 건넨 선물을 받아 든 서주훈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약혼식 때 축하해 줘도 늦지 않아.”‘약혼식이라...’하지만 진지희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주훈의 약혼식까지 버틸 수 없었기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무 설명도,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선물을 건넨 뒤, 조용히 자리를 떠나 한쪽 구석에 앉았다.진지희가 비켜난 뒤에도 서주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여전히 유하라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사람들 사이를 오갔고,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다.축하하러 온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유하라에게 소개하며 끝까지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췄다.그리고 진지희도 잠시 홀로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장을 나섰다.확실히 이런 자리는 아무리 여러 번 참석해도 익숙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던 진지희는 예전에도 이런 자리에 오면 언제나 서주훈이 몰래 자신을 데리고 먼저 빠져나가곤 했다.그 습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달라진 것이라면 서주훈이 데리고 나가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파티장 밖은 넓게 꾸며져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온실이 있다는 것이 떠오른 진지희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이미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조금 더 다가가 보니 먼저 자리를 떠났던 서주훈과 유하라였다.“주훈아, 우리 결혼하면 오직 나만을 위한 온실도 하나 만들어 주면 안 돼?”유하라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잠시 후 서주훈의 다정한 대답이 들려왔다.“왜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 원하면 지금 당장 만들어 줄게.”“정말?”유하라의 눈이 반짝이더니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서주훈의 볼에 입을 맞추려 다가갔다.하지만 서주훈이 고개를 살짝 돌리는 바람에 원래 볼에 닿아야 했을 입맞춤은 그대로 남자의 입술에 닿았다.예상치 못
Read more
제8화
진지희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장난치던 두 아이가 수영장 쪽으로 달려온 것이었다.아이들은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고,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미 멈추기에는 늦었다.순식간에 수영장 가장자리에 서 있던 유하라를 수영장 안으로 밀어 버렸다.풍덩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물보라가 수영장 위로 튀어 올랐다.진지희는 순간 멍해졌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말썽을 일으킨 두 아이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려던 순간, 곁으로 한 사람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곧이어 누군가가 거센 힘으로 진지희를 뒤로 밀쳤다.그 힘에 밀린 진지희는 뒤로 몇 걸음 비틀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누었고, 급히 달려온 사람이 서주훈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봤다.서주훈은 망설임 없이 외투를 벗어 던지고 그대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그리고 유하라를 구해 물 밖으로 데리고 나온 뒤에야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희를 바라봤다.“무슨 일이야?”진지희가 막 설명하려던 순간, 서주훈의 외투를 걸친 유하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지희를 화나게 했는지 지희가 날 수영장으로 밀쳤어. 다행히 별일 없으니까 지희를 탓하지 말아 줘.”유하라의 목소리에는 애처로운 기색이 가득했고, 떨리는 모습까지 더해져 보는 사람 모두의 동정을 샀다.그리고 서주훈은 변명하는 척하면서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유하라의 말을 듣자마자 진지희를 책망하는 시선을 보냈다.“제가 민 게 아니에요.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그때는...”진지희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해명하려 했다.말썽을 부린 두 아이를 찾으려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순간 진지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 잠깐의 침묵 때문에 진지희는 더 이상 해명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네가 아니면 누가 그랬는데? 내가 했다는 거야? 아니면 하라가 혼자 실수로 빠졌다고 말하려는 거야?”“지희야, 난 네가 제멋대로인 줄은 알았는데, 지금 보니
Read more
제9화
마지막 날.진지희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서주훈은 유하라와 함께 막 외출하려던 참이었다.현관까지 걸어간 진지희는 서주훈을 불러 세웠다.“삼촌, 바쁘신 건 알지만 오늘만은 돌아와서 저랑 식사 한 끼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딱 한 끼만요. 삼촌과 둘만 먹고 싶어요."'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거든요.'진지희의 눈에는 아쉬움과 기대가 가득했다.하지만 서주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또다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는 것으로 생각했고, 본능적으로 거절하려 했다.그때 유하라가 서주훈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난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으니까 다녀올게. 마침 오랜만에 만나는 거기도 하고. 어른이 어린애랑 계속 기싸움할 필요는 없잖아.”유하라의 권유에 서주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원하던 대답을 들었지만 진지희의 마음속에서는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진지희는 두 사람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자동차가 출발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진지희는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씁쓸함을 억누른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사람은 죽으면 남은 물건도 함께 태워야 한다고 했다.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서주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진지희는 자신의 물건을 모두 꺼내 한데 모아 불태웠다.진지희의 방에는 서주훈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았다.세면도구부터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서주훈이 하나하나 준비해 준 것들이었다.사실 처음부터 서주훈이 이렇게 세심하게 챙긴 것은 아니었다.처음에는 집안일이나 진지희의 생활은 대부분 도우미와 비서에게 맡겼다.하지만 도우미가 진지희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일이 있었고, 비서는 회사와 별장을 오가느라 바빠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그러던 어느 날 진지희가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났는데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그날 마침 시간이 나 집에 들른 서주훈이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진지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의사가 말한 것처럼 정말 머리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랐다.그날 이후부터 서주훈
Read more
제10화
닷새 뒤, S국에서 돌아온 서주훈은 별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평소처럼 문이 열리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자신을 맞이하는 진지희는 보이지 않았고, 신발을 갈아 신고 거실로 들어선 서주훈은 딱 한 가지만 느꼈다.‘집이 너무 조용해.’문득 지난 닷새 동안 진지희 역시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전화도 메시지도 한 통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지희 어디 있어? 아직도 그날 약속을 안 지켰다고 화난 건가? 그래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속을 못 지킨 거잖아.”“확실히 어린애라 그런지... 조금 있다가 잘 달래 줘.”등 뒤에서 들려온 유하라의 한마디에 서주훈의 분노가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어린애? 이제 대학도 들어간 나인데 무슨 어린애 행세야. 이번에는 제대로 버릇을 고쳐 놔야겠어. 그냥 계속 무시해. 언제 스스로 나오는지 어디 두고 보자고.”분노가 가득 담긴 서주훈의 말을 들은 유하라는 눈 속에 스쳐 지나가는 통쾌함을 감춘 채 몇 마디 위로하는 척하다가 방으로 돌아갔다.실컷 삐쳐 있으라지, 두 사람이 냉전을 벌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하라는 더없이 기뻤다.서주훈은 침실로도, 서재로도 가지 않고 먼저 식당으로 향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미간을 찌푸린 서주훈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파리와 날벌레가 들끓는 쓰레기통에 시선을 멈췄다.잠시 생각한 끝에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지만 곧바로 화가 치밀었다.‘고작 식사 한 끼 때문에 이렇게까지 화풀이하며 쓰레기를 일부러 계속 여기 쌓아 둔 이유가 뭘까?’서주훈은 본능적으로 위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무심코 밖을 흘끗 바라봤다.의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발견하고 집어 들어 화면을 켰는데, 잠금화면 속 진지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하지만 사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일하고 있는 서주훈의 뒷모습이었다.몰래 찍은 구도의 사진이었고, 서주훈은 진지희가 그 사진을 찍은 날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그런데 진지희는 그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바꿔 지금까지 계속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