컥!옥씨 일가 신급 절정 실력의 조상이 피를 토했다. 그는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났다.이때 그는 온몸의 경맥이 거의 다 망가진 상태였고 호흡도 불안정했으며 얼굴이 피투성이였다.그는 칼을 들고 울부짖었다.“윤신우... 오늘 날 죽일 생각이라면 내가 죽어서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해줘!”“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지? 좋아, 알려주겠어. 첫 번째, 당신은 내 아들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해. 둘째, 옥씨 일가도 이제 한 번 처리해야 해. 그리고 이번이 바로 그 기회지.”윤신우의 말을 들은 옥현사는 입을 뻐끔거리면서 뭔가 더 말하려고 했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들고 있던 적염검을 휘둘렀고 혈기로 둘린 검이 옥현사의 목을 베었다.옥현사는 눈을 부릅뜨고 피가 흘러나오는 곳을 누른 채 피바다 위에 쓰러져서 죽었다.옥현사는 죽을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말이다.옥현사의 마지막 신급 절정 강자까지 죽인 뒤 윤신우는 그제야 적염검을 다시 검집 안에 넣었다.“왔구나!”그는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보았다.그가 말하자마자 윤구주가 천천히 다가왔다.윤구주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널브러진 옥씨 일가 조상들의 시체 세 구를 본 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싸늘한 시선으로 윤신우를 바라보았다.부자가 다시 한번 상봉했다.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두꺼운 벽이 있었다.“왜 절 도운 거죠?”윤구주가 드디어 물었다.그러나 그의 말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네 문벌은 죽어 마땅하니까.”윤신우가 대답했다.“당신도 알다시피 전 당신과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십여 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죠.”윤구주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냉담하게 말했다.“알아!”윤신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안다면 제 앞에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되죠, 예전에 말했을 텐데요. 다시 당신과 만날 때 난 당신을 죽일 거라고.”윤구주는 갑자기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아버지 윤신우를 바라보았다.윤신우는 그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엄청나게 흉포한 기운이 윤구주의 공격으로 인해 순식간에 음산한 기검으로 되었다.기검은 남달랐다.윤구주는 윤신우를 향해 기검을 휘둘렀다.마치 정말로 친아버지를 죽이려는 듯 말이다.윤신우는 꼼짝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비록 마음이 아프고 많은 고충도 있었지만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는 아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다.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엄청난 검망에는 윤구주의 십 년 넘는 원한이 담겨 있었다. 윤구주는 정말로 윤신우를 찔렀다.죽었는가?죽지 않았다.윤구주의 무시무시한 검끝이 윤신우의 목에 닿는 순간, 윤구주는 방향을 살짝 비틀었다. 곧 쾅 소리와 함께 기검은 윤신우의 뒤에 있던 산봉우리에 꽂혔다.쿵쿵 소리와 함께 산봉우리가 윤구주의 일격으로 평평해졌다.지난 십여 년간 쌓아온 원망을 전부 발산하는 것 같았다.그러나 윤구주는 결국 손을 쓰지 못했다.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친아버지인데 말이다.사방으로 날리는 먼지에는 돌가루 섞여 있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두 부자는 그렇게 서로 마주하고 서 있었다.그러나 윤구주의 두 눈동자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지금부터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저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당신은 당신이고 저는 저예요.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사이 아니에요.”윤구주는 윤신우가 미웠다.윤신우가 그와 어머니를 윤씨 일가에서 내쫓은 것이 미웠다.그러나 윤신우의 말대로 윤구주의 몸에는 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윤구주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신우는 눈가가 촉촉해졌다.“구주야... 내 아들아...”윤구주는 그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윤신우는 그곳에 홀로 서 있었다.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광풍이 불었다.차가운 빗방울이 하늘에서 내려와 윤신우의 몸 위로 떨어졌다.30년 전 서울 최고 절정이라고 불렸던 남자는 그렇게 비바람 속에서 묵묵히 아들이 떠난 방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정양문 방향!전투는 계속됐다.윤구주가 진역 결계로 통제했던 공부, 이부,
“육도진 우상! 우리 네 문벌이 멸문당한다면 천하의 문벌 모두 단체 폭동을 일으킬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한 나라의 우상으로 당신이 앞으로 어떤 고초를 겪을지 지켜보겠습니다!”겨우 버티고 있던 신씨 일가의 절정 강자가 말했다육도진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못 들은 척했다.“그게 저랑 뭔 상관이죠? 당신들은 이미 구주왕에게 밉보였어요... 오늘 같은 결과를 예상했어야죠!”육도진은 눈앞의 국면을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다섯 명의 절정 강자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바로 이때 비바람은 점점 더 심하게 몰아쳤다.더욱 무시무시한 건 엄청난 혈기와 살기가 앞쪽에서부터 이쪽으로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점이었다.엄청난 살기였다.민규현의 기세보다 몇십 배는 더 강력했다.들끓는 살기 때문에 쏟아지던 큰비조차 그 살기를 느끼고 변형되었다.“엄청난 살기야!”“누구지?”육도진은 살을 에는 듯한 살기가 느껴지자 곧바로 안색이 창백해져서 몰아치는 비바람을 바라보았다.남궁서준, 정태웅, 천현수 모두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지자 바짝 긴장했다.살기가 너무 강한 탓에 만약 적이라면 골치가 아팠다.폭풍우 속에서 한 사람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형님?”“저하?”살기 가득한 그가 가까워지자 남궁서준과 정태웅은 곧바로 윤구주를 알아보았다.그러나 지금의 윤구주는 과거의 그와 완전히 달랐다.온몸에서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표정까지 무자비해졌다.갑자기 변한 윤구주의 모습에 정태웅, 천현수 모두 의아해했다.“저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온몸에서 이렇게 강렬한 살기를 내뿜는 거지?”심지어 꼬맹이 남궁서준마저 답답한 표정이었다.윤구주는 잠깐 10분 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그런데 돌아오고 나서 왜 이렇게 살기가 심해진 걸까?살기등등한 윤구주는 정태웅과 천현수 등 사람들의 부름을 무시하고 민규현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전장으로 향했다.윤구주는 마치 사신처럼 전장에 가까워졌다. 이때 모든 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구주를 바라보
절정 실력인 그는 그렇게 윤구주에게 순식간에 죽임당했다.그 광경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상 육도진까지 완전히 넋이 나갔다.“저하, 이건...”육도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살기등등한 윤구주를 바라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민규현과 격투를 벌이던 네 명의 절정 강자는 전부 넋이 나갔다.아무도 윤구주가 단 한 방으로 사람을 죽일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가 죽인 건 절정 실력의 강자였다.“둘째야!”신씨 일가의 노인이 화련금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린 모습을 바라본 신씨 일가의 다른 절정 강자는 비통하게 외쳤다.“감히 내 형제를 죽여? 가만두지 않겠어!”사실 두 명은 쌍둥이 형제였다.형제가 윤구주의 화련금안에 당해서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자 노인은 미친 사람처럼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었다.그의 손에는 장검이 들려 있었다.장검을 휘두른 순간, 검이 순식간에 윤구주를 덮쳐들었다.절정의 위력은 절대 일반 신급 강자와 비교할 수 없었다.눈앞의 신시 일가 절정 강자가 선보인 공격은 몹시 난폭했다.검은색의 검이 허공을 벴고 무시무시한 힘이 위압을 지닌 채 윤구루를 향해 다가왔다.온몸에서 살기를 내뿜던 윤구주는 그 공격을 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난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그의 표정은 한없이 차갑고 매정했다.그 말을 하는 순간 매섭게 날뛰던 살기가 순식간에 허공에 떠 있는 신씨 일가의 절정 강자를 감쌌다.신씨 일가 절정 강자가 휘두른 검이 윤구주의 몸에 닿기도 전에, 윤구주에게서 뿜어져 나온 살을 에는 듯한 살기가 노인의 몸을 휘감았다. 윤구주는 팔을 들면서 주먹을 움켜쥐었고 쿵 소리와 함께 살기가 검은색 손이 되어 신씨 일가 절정 강자를 잡았다.“죽어!”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신씨 일가 절정 강자는 그대로 고깃덩이가 되었다.또 한 명이 죽었다.그 광경에 육도진은 식겁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아직 살아있는 제씨 일가의 절정 강자와 공씨 일가의 절정 강자 두 명도
하늘에서 큰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윤구주는 그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왜 갑자기 이렇게 공포스러운 살기를 내뿜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게다가 그는 단번에 공씨, 설씨, 옥씨, 신씨 일가의 절정 강자 다섯 명을 전부 죽여버렸다.“저하, 괜찮으십니까?”민규현은 윤구주의 수상함을 눈치채고 다가가서 걱정스럽게 물었다.윤구주는 손을 저었다.“괜찮아. 너희는 일단 돌아가.”윤구주가 먼저 가보라고 하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떴다.“육도진 우상은 여기 남도록.”윤구주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육도진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윤구주가 왜 자신에게 남으라고 한 건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정중하게 말했다.“네, 저하!”그렇게 모두가 떠났고 육도진도 흑기 금위군에게 철수하라고 분부했다.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정양문 쪽, 윤구주와 육도진은 비바람 속에 우뚝 서 있었다.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전전긍긍하면서 바짝 긴장한 채 윤구주의 앞에 서 있었다.그는 구주왕을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침묵이 이어졌다.윤구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육도진도 감히 입을 뻥긋할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났고 윤구주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육도진 우상, 황성 중 상당수가 내가 살아있지 않기를 바라지?”육도진은 그의 말을 듣자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서둘러 말했다.“저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오늘 난 그저 친구라는 신분으로 이 화제에 관해 얘기하는 거니까.”윤구주는 천천히 말했다.육도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시선을 들어 윤구주의 우뚝 선 모습을 바라보았다.“10개국 간의 전쟁이 끝난 뒤 화진은 평화로워졌고 국운이 창성했으며 무도가 대통합을 이루었지. 하지만 내가 정상에 섰을 때 누군가 날 해치려고 했지.”윤구주는 그 말을 하면서 살벌한 눈빛을 해 보였다.“육도진 우상도 누가 날 해쳤는지 짐작
“국주님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나 윤구주가 관리해야지!”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윤구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육도진 우상, 나 대신 국주님께 말을 전해줘. 문벌, 세가, 종문이 감히 우리 화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내가 전부 처단할 거라고 해. 사람이 몇 명이든, 배후에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 있든 상관없어. 난 한 말은 꼭 지켜.”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육도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저하의 말씀은 꼭 그대로 전하겠습니다!”“하지만 저하...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육도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말해.”윤구주가 말했다.“문벌, 세가, 종문, 3대 서열 말입니다. 현재 형세를 보면 오직 문벌만이 대부분 문씨 일가 편에 섰습니다. 제가 보기엔 꼭 필요하지 않다면 당분간 세가, 종문과는 척을 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2대 서열이 흔들린다면 우리 화진의 평화가 깨질 테니 말입니다.”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당연히 화지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다.그의 말대로 천하 무도는 3대 서열 문벌, 세가, 종문으로 나뉘었다.현재 상황을 보면 윤구주가 상대한 문벌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문벌들뿐이었다. 세가와 종문 쪽은 문벌과는 급이 달랐다.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화진에서 세가는 어떤 존재인가?세가는 가장 일찍 출현한 제자백가, 공맹이 선대였다.제자백가는 거의 2천 년 가까이 유구하게 전승되었다. 그러니 세가의 저력이 얼마나 방대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세가를 제외하고 천하 무학의 절정인 종문도 있었다.예를 들면 서요산, 소림 등 천 년 가까이 종적을 감춘 고대 대형 종문이 그에 속했다.만약 서요산과 소림 모두 출동한다면 화진은 아마도 큰 혼란에 빠졌다.그래서 육도진은 두려웠다.“육도진 우상, 걱정하지 말아. 나 윤구주는 아무나 죽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세가, 종문에서 죽음을 자초하지 않는 이상 난 그들을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들이 죽음을
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육도진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내가 알기론 16년 전 육도진 우상은 윤씨 일가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 그리고 그때 윤씨 일가는 화진의 최고 문벌이었어. 심지어 국주님마저도 직접 윤씨 일가를 위해 천하제일이라는 글을 써줬지.”윤구주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 육도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그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면서 헛기침을 했다.“저하... 16년 전, 저는 윤씨 일가와 사이가 꽤 좋았습니다. 당시 윤씨 일가는 우리 서울의 제일가는 가문이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4대 고대 무술 세가 모두 윤씨 일가에게 예의를 차려야 했어요.”“윤씨 일가를 그렇게 잘 안다면 윤신우가 죽어 마땅한지 아닌지 얘기해줄 수 있나?”그 말에 육도진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뭐?’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앞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저하, 그건 뭐 때문입니까...?”윤구주는 육도진을 바라보지 않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윤신우가 죽어 마땅한지 아닌지를 물었어.”“그... 그... 제가 어떻게 그 질문에 대답하겠습니까? 윤신우 씨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30년 전 이미 서울 최강이라고 불렸었죠. 게다가 그동안 그는 나쁜 짓을 한 적도 없습니다...”육도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 하지만 나한테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어.”윤구주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내 기억이 맞다면 육도진 우상은 나와 윤신우의 관계를 알겠지?”윤구주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난감해졌다.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척해야 했다.16년 전 그 사건에 대해서 감히 언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윤구주가 물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육도진 우상, 난처해하지 않아도 돼. 난 오늘 이미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윤구주의 말뜻은 명확했다. 오늘 육도진이 무슨 얘기를 하든 절대 그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하지
16년 전 그날 밤, 윤구주의 말대로 육도진은 흑기 금위군을 이끌고 윤씨 일가를 찾아갔었다.그리고 그날 이후로 윤신우는 윤구주 모자를 윤씨 일가에서 쫓아냈다.오늘 윤구주는 제대로 알아볼 생각이었다.16년 전 일에 대해 질문하자 육도진은 몸서리를 쳤다. 그는 두려웠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육도진 우상, 얘기해 봐.”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육도진을 바라보았다.그는 비록 평온한 어조로 말했지만 육도진은 보이지 않는 살기가 자신을 감싸는 걸 느꼈다.“저하!”육도진은 윤구주의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육도진 우상, 이게 무슨 뜻이지?”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자 윤구주는 입을 열었다.“용서해 주십시오, 저하! 16년 전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꼭 진실을 알아야겠다면 차라리 절 죽여주십시오!”육도진은 퍽 소리 나게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진짜로 죽여달라는 듯이 말이다.육도진이 무릎을 꿇자 윤구주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죽음도 두렵지 않은 거야?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육도진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얘기할 수 없었다.절대 할 수 없었다.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일이 알려진다면 화진 전체에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얘기할 수 없었다.“저하! 16년 전 일은 저하와 저하의 어머님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저하의 아버님인 윤신우 씨께 저하와 저하의 어머니를 서울에서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멍청했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사람은 접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육도진은 다시 한번 죽여달라면서 윤구주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그러나 윤구주는 손을 쓰지 않았다.그는 그저 싸늘한 눈빛으로 빗속에서 무릎을 꿇은 육도진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말은 16년 전 윤신우 씨가 핍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리 모자를 쫓아냈다는 거야?”“네, 제가 강요했습니다. 이 일은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육도진이 말했다.“하하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