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이가 인터넷에 사진도 있고 춤추는 영상도 있다고 하니 정태웅은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도대체 어떻게 생긴 연예인인데 갓 곤륜 지역에서 올라온 공수이를 이렇게 홀딱 반하게 했는지 궁금했다.“얼른 찾아서 보여줘 봐. 내가 어떤지 봐줄게.”정태웅은 말하며 핸드폰을 꺼내 공수이에게 넘겨줬다.공수이는 핸드폰을 받고 은설아를 검색했다.은설아의 이름을 검색하니 은설아에 대한 소식이 떴다.아주 핫한 탑 연예인으로서 은설아의 모든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실시간 검색을 눌러보니 은설아에 관한 소식이 위에 있어서 공수이는 콘서트 영상을 아무거나 하나 눌렀다.“태웅이 형, 이 사람이에요!”공수이가 말하며 핸드폰을 정태웅에게 주자 정태웅은 흥분하며 핸드폰을 받아들었다.“보자.”“오올, 몸매 죽이는데!”영상을 찍은 사람이 좀 멀리 있어 정태웅은 은설아의 몸은 한눈에 알아봤으나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조금 뒤에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드디어 은설아의 예쁜 얼굴을 보게 됐다.“X발!”정태웅은 갑자기 욕을 했다.“왜 그러세요?”공수이는 정태웅이 심각하게 놀란 모습을 보고 물었다.정태웅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춤을 추고 있는 은설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확신을 한 다음 정태웅이 고개를 돌려 공수이에게 물었다.“수이야, 네가 좋아한다는 연예인이 이 사람이야?”“네! 무슨 문제 있어요?”공수이는 아리송했다.“이거 완전 큰 문제네!”정태웅이 갑자기 펄쩍 뛰었다.“무슨 문제인데요? 태웅 형!”공수이는 자신이 은설아를 좋아하는 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너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알아요! 제가 그저께 구한 예쁜 누나예요! 이름은 은설아예요!”공수이가 말했다.“아니, 틀렸어! 이름이 은설아인 건 나도 알아! 내 뜻은 은설아 씨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냐는 거야!”정태웅이 말했다.누구를 좋아하는지 아냐는 말을 들은 공수이는 흠칫했다.“예쁜 누나요? 전 그저 나쁜 자식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누
윤구주의 방을 십여 초 동안 멍하니 보고 있던 공수이가 정신을 차리고 묻자 정태웅이 큰소리로 웃었다.“그러니까 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나쁜 자식이 바로 우리 형님이라는 거예요?”“빙고.”이 말을 듣자마자 공수이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크게 소리치는 공수이에 정태웅이 웃으며 말했다.“왜 불가능한데? 수이야, 은설아 씨는 널 알기 전에 이미 저하를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는 서남에 있었을 때였는데 누가 봐도 은설아 씨는 저하를 아주 좋아했지만 저하는 형수님이 계셔서 단칼에 거절하셨지.”정태웅의 말을 듣고 공수이는 어리벙벙해 있었다.윤구주는 은설아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윤구주가 떠날 때 은설아가 그렇게 슬퍼했던 것인가?그래서 매번 나쁜 자식이라고 할 때마다 윤구주가 공수이의 딱밤을 때렸던 것인가?그렇게 된 일이었다니.그 공수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 수 있어요? 어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형님의 여자라니요? 아아아아!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요!”윤구주를 좋아하는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수이는 머리를 박고 죽고 싶었다.어쨌거나 공수이와 윤구주는 차이가 매우 컸다.그리고 공수이는 윤구주에게서 여자를 뺏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아니, 그럴 엄두는 당연히 없었기에 그냥 속상하고 아픈 마음에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왜? 왜 그래?”그때 곤륜 지역에서 온 공수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는 것을 본 천현수가 달려와 물었다.“너 왜 수이를 울려?”천현수는 공수이가 우는 것을 보고 정태웅을 욕했다.“뭐라는 거야? 내가 왜 수이를 괴롭혀!”정태웅이 말에 천현수가 다시 물었다.“그럼 수이가 왜 이렇게 서럽게 우는데?”“실연해서 그러는 거야...”정태웅이 뒤돌아 슬프게 울고 있는 공수이를 보며 말했다.“실연?”천현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심지어 우리 저하 때문에 실연한 거라
“이건 서해 클럽의 여자야! 그리고 이 여자! 이 중에서 안 예쁜 여자가 어디 있어? 수이야, 내가 지금 널 데리고 체험하러 갈게! 뭐? 톱스타? 예쁜 누나? 그냥 돈만 있으면 네가 시키는 건 다 할 거야!”정태웅이 가슴팍을 치며 말하자 공수이는 듣자마자 눈을 반짝였다.“진짜예요? 태웅이 형?”“당연하지!”“좋아요! 태웅이 형, 지금 당장 체험하러 가요!”공수이가 정태웅에게 말했다.“지금? 이렇게 급하게?”“당연하죠! 제발요! 동생이 지금 슬퍼하고 있잖아요!”“그래, 가자! 나랑 같이 제대로 체험하러 가자고!”공수이의 말에 정태웅은 당장 공수이를 데리고 여자들의 따뜻한 품을 느끼러 갔다.이 두 사람이 떠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방에서 나온 윤구주는 사라진 공수이와 정태웅에 천현수를 향해 물었다.“현수야, 태웅이 하고 수이는?”“저하, 태웅이가 수이를 데리고 클럽에 갔어요!”“뭐? 클럽?”윤구주가 이맛살을 찌푸렸다.“네! 수이가 실연 때문에 너무 슬퍼해서 위로해 주겠다고 하면서 태웅이가 데리고 나갔어요!”“하, 둘이 무슨 클럽이야!”...늦은 밤, 한 택시가 윤구주가 사는 곳 문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차가 멈추고 정태웅은 술에 취한 공수이를 데리고 내렸다.두 사람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심하게 났고 얼굴, 목 할 것 없이 보이는 곳에는 키스 마크가 가득했다.“태웅이 형, 술... 저 술 더 마실래요...”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고 있는 공수이는 완전히 취했지만 계속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수이야, 더 마시면 안 돼! 집에 도착했어! 저하께서 보시기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야!”정태웅은 공수이를 부축하며 휘청휘청 정원 안으로 들어왔다.정태웅은 얼른 공수이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혀 놓고 나서야 안심하고 방에서 나갔다.방 안에서는 몸이 술 냄새로 찌든 공수이가 알코올 향을 풍기며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이때 방안의 기운에 자그마한 파동이 일어나더니 한 노인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나타났다.자세히 보니 바로 공수이를 따라다니
말을 마친 장풍혁은 다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작은 별장 안방에서는 윤구주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문 씨 세가의 기린 화독을 없애고 내가 다시 절정으로 회복한 뒤로 윤구주가 매일 밤 제일 많이 하는 것이 명상이다.그런데 윤구주가 명상하고 있을 때 공기 중에 갑자기 미묘한 파동이 일어났다.그에 윤구주는 눈을 뜨지도 않고 말했다.“오셨으면 나오세요.”말이 끝나자마자 요동치던 기운 사이에서 갑자기 흐릿한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바로 공씨 가문의 집사였다.“어떻게 날 느낀 거죠?”모습을 드러낸 장풍혁은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봤다.장풍혁의 은신술은 오악, 육도인 최정상의 절전도 느껴내기 어려운데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바로 느낀 윤구주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작 사상 절정밖에 안 되시면서 제 앞에서 기운을 숨기려 하시다니요? 절 너무 우습게 보신 거 아닌가요?”윤구주가 갑자기 눈을 뜨며 장풍혁을 쳐다보자 공씨 가문 절정 집사인 그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났다.그 압박감은 장풍혁은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공기는 점차 탁해졌고 장풍혁의 발아래에 있던 지면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당신... 뭘 하려는 겁니까?”장풍혁은 무서워 나기 시작했다.장풍혁의 말에 윤구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당신은 제자백가, 공씨 가문의 사람인가요?”윤구주가 물으니 장풍혁이 대답했다.“네...”“수이를 보호하러 오신 건가요?”윤구주가 또 물었다.“네...”“수이를 봐서 오늘은 그저 보내드릴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만약 다음에도 저를 건드리신다면 그땐 그냥 보내드리지 않을 겁니다.”윤구주는 이 말을 하고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큰 산에 눌리고 있는 것 같았던 압박감이 윤구주가 눈을 감는 순간 사라지며 장풍혁의 몸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장풍혁은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윤구주를 봤다. 만약 윤구주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저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에 장풍혁은 바로 주제 파악을 하며
“만약 사실이라면 저하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마가에서 이미 사람을 서울에 보냈다고 합니다. 마가의 사람만 온 게 아니고 제자백가의 예가, 배씨 가문, 그리고 다른 가문에서도 사람을 보내온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하를 찾아와 복수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장풍혁은 드디어 상황을 다 말했다.하지만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날 찾아 복수를 한다고요? 그래요, 오라고 하세요.”윤구주는 이미 화진 3대 서열의 문벌을 정돈했는데 지금 또 다른 세가가 나왔다 한들 다 함께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었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곤륜에서 왕위에 오를 때 윤구주가 한 맹세는 그냥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이기에 윤구주는 어차피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눈앞에 있는 장풍혁은 윤구주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그럼 전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장풍혁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장풍혁이 사라지고 난 후 윤구주는 다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윤구주가 문벌, 세가를 두려워할 사람인가?당시, 윤구주가 천하의 무술을 통치하고 화진의 3대 무술의 서열을 거의 붕괴시켜 화진 무술의 대일통을 성공시켰다.근데 지금 제자백가 따위가?윤구주는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다음날 윤구주가 방에서 나가자 정원 안에서는 남궁서준이 칼을 안은 자세로 검심을 단련하고 있었고 용민, 철영, 재이 등 사람은 정원 밖을 지키고 있었다.정원을 한번 쳐다본 윤구주는 이내 공수이의 방으로 갔다.어제 술을 많이 마신 공수이는 아직도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술 냄새가 심했고 얼굴에는 키스 마크로 가득했으며 전혀 스님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공수이를 쳐다보던 윤구주가 손가락을 들어 기운을 조금 움직여 공수이의 미간에 넣었다.“누구야?”그에 공수이가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형님? 왜 여기 계세요?”공수이는 윤구주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비비며 물었다.“어젯밤에는 재밌게 놀았어?”윤구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공수이는
공수이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듣고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난 그저 은스타님을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그럼 지금 형님의 말대로라면 예쁜 누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란 말입니까?”공수이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윤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제자백가의 공씨 가문 세자인 공수이가 총명하다는 사실은 더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다. 윤구주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본 공수이는 곧바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공수이는 손을 내밀어 윤구주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역시 우리 형님! 대단하십니다!”“미친 스님이 말하길 이 시대에 형님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났다는 건 그야말로 천하의 재수 없는 일이라고 했죠!”꼬마 스님은 입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윤구주는 하하 큰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웃었다.이 말은 애초에 곤륜 구역에서 미친 스님 한 사람만이 한 말이 아니었다.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아무리 재주가 빼어난 하늘의 총애를 받은 이들이 오더라도 윤구주의 앞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어지기 때문이다.이것은 그들의 비애인 동시에 공수이의 비애이기도 했다.하지만 공수이는 진짜로 화를 내진 않았다.다만 그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였다.“예쁜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이 형님이라면 저 공수이는 진심으로 탄복합니다!”“그런데 예쁜 누나는 몸매며 얼굴이며 인품까지 모두 완벽한데 형님은 왜 받아들이지 못하십니까? 만약 저라면 당장 예쁜 누나를 제 사람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겁니다!”공수이는 잔뜩 옹졸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네가 알긴 뭘 알아!”“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윤구주의 머릿속에는 소채은의 아름다운 자태가 떠올랐다.“부인이 생긴 겁니까? 누굽니까? 누군데 이렇게 행운인 겁니까?”공수이는 얼른 물었다.“그 사람은 소채은이라고 해.”윤구주가 대답했다.“소채은? 듣기에는 아주 평범한 이름 같습니다. 하지만 형님의 눈에 들었다면 절대 흔치 않은 절세미인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헤헤, 형님,
공가는 제자백가 중에서 유명한 제일이다.이른바 유교 천하가 있다면 공가는 바로 제자백가의 하늘이었다.“됐어!”윤구주는 손을 내저었다.“그래봤자 아주 작은 마가일 뿐이야. 애초에 내 안중에도 없었어.”“내가 신경 쓰이는 건 다른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공수이는 냉큼 물었다.“또 누가 형님의 심기를 건드렸습니까? 저한테 말해보십시오!”“그들은 바로 유명전이야!”윤구주는 차갑게 유명전의 이름을 뱉었다.“유명전? 백여 년 전에 우리 곤륜 구역에서 쫓기다가 사라진 지 백 년이 다 돼가는 그 신비 조직 말입니까?”꼬마 스님이 바로 물었다.“맞아!”“유명전은 백 년간 자취를 감췄으니 오늘날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면 반드시 화진 대란을 일으킬 거야!”공수이가 맞장구를 쳤다.“빌어먹을 것들! 그럼 제가 저번에 죽인 사람 몇이 유명전의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응?”“네가 유명전의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는 말이냐?”윤구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렇습니다 형님. 저번에 이 유명전의 사람들이 예쁜 누나를 납치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저 때문에 저승으로 갔습니다!”꼬마 스님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은설아?”유명전이 은설아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은 윤구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형님도 그 누나가 극히 드문 수련한 성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그 인간들도 예쁜 누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꼬마 스님이 말했다.공수이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마침내 깨달았다.윤구주는 그 누구보다도 은설아가 영음성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다만 도법을 함부로 전수해서는 안 되었다.그래서 윤구주는 은설아가 영음성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 은설아가 유명전이 눈독을 들인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들은 윤구주는 자신의 마음속에 늘어난 걱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유명전.아홉 대전의 염라이자 사대 명부이다.그뿐만 아니라 명부에는 고수들이 셀 수 없이 많다.만약 그들이 정말
“술 좀 줘... 술 좀 가져다줘!”취할 대로 취한 은설아는 미친 사람처럼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순식간에 경호원 몇 명이 달려왔고 인사불성으로 취한 은설아를 발견하자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설아 씨 괜찮으십니까?”온몸이 술기운에 사로잡힌 은설아는 술기운 가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술 좀 줘... 나 술 마실 거야!”“설아 씨는 이미 충분히 취했습니다. 더 마시면 안 됩니다. 아직 콘서트가 세 개나 더 남아있단 말입니다!”한 경호원이 걱정했다.“참견하지 마! 술이나 달라고!”지금의 은설아에게 콘서트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은설아는 오로지 술만 마시고 싶어 했다. 더 취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취하고 싶었다.이렇게 해야만 자신이 더는 윤구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경호원들은 자신이 결코 은설아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하는 수 없이 은설아에게 계속 술을 가져다줬다.두 명의 경호원이 막 방을 나섰을 때였다. 돌연 한 줄기 핏발이 번쩍였다. 지익! 두 사람은 반응할 틈도 없이 목에서 선혈을 쏟아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두 경호원이 죽고 난 후에야 피부는 검게 그을리고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가득한 추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입은 툭 튀어나오고 볼은 원숭이 볼 같았다.정말이지 추함의 극치였다.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길 수 없는 아우라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그는 붉은 혓바닥을 내어 손에 들고 있던 피로 흥건한 칼을 핥았다. 사악하고 음침한 그 기운은 결국 방안의 술에 잔뜩 취한 은설아에게로 닿았다.“이 여자가 바로 그 여자야?”“나쁘지 않군! 역시 유일무이한 수련한 성체야!”그는 괴상하게 웃으며 사악한 눈길로 은설아의 굴곡이 선명한 육감적인 몸매를 훑었다.“그 세 멍청한 놈들은 영음지체도 똑바로 못 지키다니, 하찮은 나부랭이들이구나! 오늘 이 영음지체는 바로 내 것이 될 것이다! 킬킬킬!”괴상하게 웃은 추한 노인은 순식간에 은설아의 곁으로 갔다.술에 절어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