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애들이 애송이한테 얻어맞아? 너희들이 그러고도 나를 아직 사부님이라 불러?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화를 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성 도관의 관장, 양진성이었다.분노에 찬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은 모두 자줏빛으로 변했고, 계속해서 제자들을 꾸짖고 있었다.홀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무리의 제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바로 몇 시간 전에 윤구주에게 호되게 혼났던 그 남자들이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하지만 그 자식 정말 실력이 엄청난 자라 저희가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원지훈이 땅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아직도 그딴 말을 할 체면이 있는 거야? 풋내기인 애송이가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다고, 이 사부님보다 더 강하단 말이냐?”말을 마치자마자 양진성이 발을 굴렀다. 그러자 앞에 있던 청석판 바닥이 쩍 소리를 내며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원지훈은 이를 보고 재빨리 말했다.“아니, 아니요, 어찌 그 애송이 자식을 사부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그렇다면 어서 가자. 내가 직접 가서 한번 그 개자식을 봐야겠으니까. 감히 내 진성 도관을 모욕하다니, 얼마나 실력 있는 자식인지 한번 봐야겠구나!”양진성은 직접 윤구주를 찾아가 손을 봐주려고 했다.바로 이때였다.한 소리가 갑자기 입구에서 들려왔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왔으니까요!”그러자 진성 도관의 사람들이 전부 어리둥절해졌다.“누구요?”제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렸다.그러고 나서 보니 입구 쪽에 아주 잘생기고 더할 나위 없이 패기 있어 보이는 한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도관에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 때문에 사람들은 전부 멍해지고 말았다.원지훈은 더욱 그러했다. 조금 전 윤구주에게 맞은 그 몇몇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맙소사! 저 사람은!”원지훈은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자세히 가서 보니,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윤구주였다.그는 마치 귀신처럼 갑자기 진성 도관에 나타났다.윤구주를 알지 못하는
윤구주가 제멋대로 진성 도관에 침입한 것을 보고, 30년 동안 형의권을 연마해 온 양진성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는 것 같았다.“얘야, 기회를 주마. 순순히 무릎을 꿇고 내 제자에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너는 서서 나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거다.”뒤이어 그는 앞에 있는 마호가니 탁자 위를 힘껏 눌렀다.그러자 딱딱한 마호가니 탁자에 곧장 깊이 손자국이 찍혔다. ‘음, 이 자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군.’윤구주가 피식 웃었다.“내가 사과하지 않는다면?”양진성은 어두운 기운을 한껏 뽐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럼 너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지.”한 마디 고함이 울리자 양진성의 그림자가 일렁였다.이내 호랑이와 표범처럼 빠른 그림자가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고, 용처럼 휘몰아치는 주먹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양진성의 권법을 바라보며, 윤구주는 두 손을 등에 지고 서서, 발걸음만 살짝 움직이더니, 쉽게 그의 권법을 피했다.한 수 빗나가자 양진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형의권을 선보이려 했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연속 열댓 번을 시도해도 주먹은 그의 옷자락 끝마저 스치지 못했다. 오히려 양진성 본인이 더욱 지쳐갈 뿐.“이 자식, 분명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은데 왜 못 맞추는 거지?”양진성은 어쨌든 많은 제자들을 이끄는 사부이다.게다가 30년 동안 형의권을 연마해 온 그는, 비록 대단한 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은 있었다.하지만 현재 이게 무슨 상황인가? 열 가지가 넘는 권법을 연속 사용해도 옷자락마저 스치지 못하니! 그야말로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인마, 재주가 있으면 꼼짝 마, 정정당당하게 비겨야지 뭐 하는 거야?!”양진성은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요?”윤구주가 피식 웃었다.“허튼소리 작작 해. 할 수나 있고?”“그럼 만족시켜 드리도록 하죠.”뒤이어 윤구주는 정말 뒷짐을 진 채 가만히 서 있었다.그가 움직이지
윤구주는 양진성의 두 팔을 부러뜨린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또 해보시겠어요?”“아, 아니요!!! 안 하겠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양진성은 심하게 떨면서 대답했다.“패배를 인정했으니,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제자를 감싸고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겼지요, 이제 당신의 죄를 알만합니까?”“아... 알만합니다!”고통스러움에 왈칵 눈물을 쏟을 것처럼 보이는 양진성이었다.“그럼 제가 팔을 부러뜨린 것에 대해, 무슨 원망이라도 있습니까?”윤구주가 다시 물었다.“어... 없습니다! 전혀요!”그러자 윤구주가 한껏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눈치는 있군요. 잘 들어요, 앞으로 만약 제자들이 감히 무력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감히 소씨 가문을 괴롭힌다면, 그 대가는 두 팔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겁니다.”이윽고 그는 휙 돌아섰다.“잠깐만요!”윤구주가 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양진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왜요? 불복하십니까?”윤구주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아니, 아니요! 선배님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불복하는 게 아니라 선배님께 물어보려고 그랬어요. 도대체 어디에서 온 분이십니까? 그리고... 실례긴 하나 혹시 선배님은 대무사이십니까?”그러자 윤구주가 피식 웃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앞을 휘휘 그었다. 그러자 육안으로 볼 수 있듯이 흰 커튼 사이로 웬 도검이 불쑥 튀어나와 진성 도관의 정중앙에 있는 정원의 담벼락에 꽂혔다. 이윽고 우르릉하며 단단한 벽이 순간 윤구주의 도검에 의해 갈라지더니 긴 칼자국이 남았다.이 모습에 양진성은 어리둥절 해지고 말았고, 뒤에 있는 제자들도 마치 귀신을 보듯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기화형으로 검을 다루는 것이야! 하늘이시여! 이분이 전설의 무술 대가님이시구나!”양진성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갈라진 벽을 바라보았고 다리가 나른해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그렇게 윤구주는 성큼성큼 진성 도관을 떠났다.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두 손이 부러진 양진성은 서둘
“좋아! 선택해! 이 엄마, 아빠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 윤씨 자식을 택할 것인지!”소청하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아빠, 엄마, 제발 저를 강요하지 마세요!”그러나 소청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그는 오늘 윤구주를 반드시 쫓아내겠다고 다짐한 듯 보였다.소채은이 이렇게 압박당하는 것을 보고 윤구주는 결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구주야?”그가 들어온 것을 보고 소채은은 조금 놀라 하며 붉고 아름다운 눈동자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덩달아 소청하 부부의 시선도 윤구주에게 향했고, 그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는 안으로 들어온 후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잠시 안쓰러운 얼굴로 소채은을 바라보았다.“채은아, 어머니 아버지 말씀 들어. 나 잠시 이 집 떠나야 할 것 같아. 이미 오래 신세 지기도 했잖아.”소채은은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구주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정말 떠나려고?”그러자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소채은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응!”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떠나면 나는 어떡해? 우리 약속했잖아. 계속 같이 있고 안 떨어지기로.”소채은이 눈시울을 붉히자 윤구주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걱정 마, 잠시 나가 사는 것뿐이니까. 한평생 너를 안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그래도...”그는 고개를 돌려 소청하 부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아버님, 그동안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걱정 마세요, 이제부터 다시는 이 저택에 발을 들이지 않을 테니, 아버님 어머님도 채은이 그만 압박해주셨으면 합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소청하 부부는 못내 기뻐하기 시작했다.“됐어, 이만 가야겠다. 채은아, 안녕!”곧이어 윤구주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가 정말 떠나려 하자, 소채은은 눈물을 흘리며 서둘러 윤구주를 끌어당겼다.“구주야, 어디 가려고?”윤구주가 부드러운 말투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아무 데나 살 수 있는데 찾아보려고!”“하지만
조용한 롤스로이스 안에서. 주세호는 마치 하인처럼 윤구주의 곁에 공손히 앉아 입을 열지 못했다.하지만 윤구주는 그저 시커먼 눈동자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얼마 안 지나, 차는 주세호의 윈워터힐스에 도착했다.“저하! 오늘 밤은 부디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내일이 지나면 제가 저하가 지내실 더 좋은 곳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주세호는 차에서 내려 윤구주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윤구주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윈워터힐스는 호화롭기 그지없다. 이곳은 주세호의 개인 저택으로 무려 1000억 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윤구주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 지내든지 큰 차이가 없었다.윈워터힐스에 들어선 후, 주세호는 윤구주에게 이곳에서 가장 호화로운 산경룸을 배정했다.이 방은 비할 데 없이 큰데, 안에는 수영장뿐만 아니라 온천, 보드게임 시설 등이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저하, 이 방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안 드신다면 제가 곧 다른 방으로 바꿔드릴까요?”주세호가 공손히 물었다.“그냥 이 방으로 하죠!”“네, 그럼 소인 저하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을 끝내고 주세호는 물러났다.그런 다음 윤구주는 조용히 방안 창문 앞에 서서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 산 풍경을 바라보았고 점점 소채은의 얼굴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잠시 그녀에 대해 생각한 후에야 윤구주는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려 했다.바로 이때.마세라티 한 대가 윈워터힐스 주차장에 들어섰다.그러고는 차 문이 열리더니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톱스타 같은 미모를 뽐내는 주안나가 차 안에서 내려왔다.주안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었다.“네, 양 사장님, 오퍼 보내신 거 확인했습니다. 내일 답장 드리도록 할게요. 네, 그럼 이렇게 하는 거로 해요. 이만 끊을게요.”통화를 끝낸 후에야 주안나는 비로소 별장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오늘. 주안나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회의를 진행한 탓인지 삭신이 쑤셔났다.별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에르메스 가방을 버리고 하이힐을
서로 알몸인 상태로!눈이 마주쳤다!그러자 주안나를 비명을 지른 후 방문을 쾅 닫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샤워실에서 나왔다!삼초 후 주안나는 놀란 마음을 달래며 소리를 질렀다.“누구야? 왜 우리 집에서 샤워해?”그러자 안에 있던 윤구주도 어이가 없었다!‘이게 뭐지?’‘아까 어떤 벌거벗은 미녀가 샤워실로 들어왔지?’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주안나는 여자로서 지금까지 이렇게 창피한 적이 없었다! 벌거벗은 남자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기도 방금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헐!다 보였다!지금의 주안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안에 있던 윤구주는 재빨리 몸을 닦고 옷을 입고 걸어 나왔다.그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이다.분명히 주세호의 안내에 따라 여기에 묵도록 배정받았는데?왜 갑자기 벌거벗은 미녀가 들어왔지?주세호가 윤구주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걸까?이때 밖에 있던 주세호는 인기척을 듣고 급히 뛰어왔다.그는 자기 딸이 벌겋게 된 얼굴로 잔뜩 화가 난 채 방안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안나...??”주안나를 보자 주세호도 당황했다.옷을 다 입은 주안나는 주세호가 걸어 들들어오자 윤구주를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렀다.“아빠! 이 자식 누구예요? 누군데 우리 집에서 샤워해요?”그러자 윤구주도 주세호를 보면서 화를 냈다.“세호 씨, 이건 또 누굽니까? 왜 제가 샤워하는데 막 쳐들어오죠?”주세호는 입이 두 개라도 변명할 방법이 없었다!주안나가 오늘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주세호는 상상도 못 했다!방금 주안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밤 다른 별장에 가라고 말하려했지만... 주안나가 이렇게 일찍 퇴근해서 왔을 줄은 몰랐다.‘안나는 회의 중이었잖아?’“딸!”“저하!”“저...”주세호가 딸이라고 하자 윤구주는 이 여자가 주안나임을 알아챘다!헐!그게 바로 예쁘기로 소문난 주세호의 딸 아닌가?그리고 주안나도 윤구주를 쓱 훑더니 그를 드디어
“시끄럿! 변명하지 마세요! 당신 딸이 다 봤다고. 제 정신이에요?”응?구주왕인 윤구주의 알몸을 주안나가 다 봤다고 하자 주세호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저하, 그러면 어떡하죠?”한참 뒤에야 주세호는 울먹거리며 물었다.“어떡하긴! 꺼져!”그렇게 주세호는 윤구주에게 욕을 먹고 방에서 나갔다. 방을 나온 후에도 주세호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하지만 윤구주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주세호는 갑자기 흥분되었다.“세상에!”“안나가 아까 저하가 자기 몸을 다 봤다고 했잖아!”“그리고 안나도 저하가 벗을 것을 다 봤고! 그러면 두 사람은 서로 다 본 거네?”“하하하하!”“우리 주씨 가문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이런 행운도 있고!”주세호는 생각할수록 감격에 벅차올랐다.만약 주씨 가문의 딸이 저하를 모시게 된다면 이건 얼마나 큰 영광인 건가?그날 밤!윤구주는 잠을 설쳤다.눈을 감으면 저도 모르게 주안나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백옥 같은 피부.풍만한 가슴.그리고 늘씬한 다리까지.윤구주는 잊혀지지가 않았다.주안나도 역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는 눈을 감으면 윤구주의 남성미 넘치는 몸매와 그의 등 뒤에 새겨진 용 문신이 생각났다.“짜증 나!”“여자애가 왜 이런 생각만 해? 정말 부끄러워 죽겠네.”주안나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이불 속으로 숨으면서 자신을 욕했다.온 밤을 뒤척이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다음 날, 아침.주안나는 잠을 못잔 탓에 얼굴에 다크써클이 생겼다.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주세호를 찾으러 갔다. 그에게 자세히 묻고 싶었다.주세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아빠! 어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윤씨 그 자식 왜 우리 집에 있었던 거죠?”주안나가 화를 내면서 걸어 들어왔다.주세호는 주안나를 보자 방긋 웃었다.“안나야, 먼저 화내지 마! 사실 어제 일은 우리 주씨 가문에게 어쩌면 큰 행운이 될지도 몰라!”뭐?행운?“아빠, 미쳤어요? 어제 어떤 자식이 아빠 딸 벌거벗은
주세호가 그렇게 말하자 주안나는 미칠 것 같았다.주안나는DH 그룹의 딸이자 몇십조 재산을 가진 재벌 집 아가씨인데 말이다!미모도 지혜도 그리고 지위와 몸값도 모두 다 가졌다!하지만 주세호는 그런 주안나더러 윤구주의 여자 친구가 될 기회를 노려라고 했다.주안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나더러 윤씨 그 자식의 여자 친구가 되라고? 걔가 뭔데요? 그럴 자격이 있어요?”주세호는 입을 삐죽 내밀고 주안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바보야! 저하의 여인이 될 수만 있다면 그건 너의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지. 오히려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하지만 주세호는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아빠, 전 몰라요! 절대 그 자식을 우리 집에 있게 할 수는 없어요!”주안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때 윤구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누가 너희 집에 있고 싶대?”윤구주가 방으로 걸들어오자 주세호는 웃 웃으면서 마중 나갔다. 하지만 주안나는 마치 원수를 본 것처럼 화가 잔뜩 난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봤다.그러자 윤구주가 말했다.“세호 씨, 이제부터 여기서 살지 않을 거예요!”“네?”“제...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주세호는 울 것만 같았다.“세호 씨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저는 단지 쟤를 보기 싫을 뿐입니다!”그리고 윤구주는 주안나를 째려봤다!주안나는 화를 못 이겨 발을 동동 굴렀다!‘이 자식이 누군데?’‘공짜로 먹고 자는 주제에?’‘이렇게 싸가지가 없어?’“누가 당신 같은 자식더러 우리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아빠, 빨리 저 자식을 돌려보내요!”주안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주세호는 두 사람 사이에서 너무 난감했다.하지만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한쪽은 자기 친딸이고!한쪽은 자기가 모시는 구주왕이고!주세호는 어떻게 해야 할까?“크흠! 딸, 그만 말해! 네가 그렇게 싫다면... 내가 구주 씨를 다른 곳으로 안배할게!”그리고 주세호는 윤구주에게 허리를 굽혀 공손히 사과했다.주세호가 윤구주를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