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시 자신의 검의를 바라보았다. '내껀 이제 겨우 초기 단계에 들어섰는데...'염구준은 지도를 꺼내 다음 목적지를 꺼냈는데, 그가 다음으로 갈 곳은 더러운 못이라는 곳이었다.'얼마나 좋은 이름이야, 어? 딱 봐도 어딘지 알 수 있잖아.'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모습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더러운 못이라는 곳은 마치 감방과도 같았기 때문이다.악취가 나는 못의 중앙에는 무언가 돌출되어 있었고 위에는 조금 손상된 건물들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안으로 통하는 건 파손된 구름다리 하나뿐이었다.그러나 이런 허름한 곳에 주변에 숨어있는 병사들과 앞에서 지키고 있는 병사들까지 합쳐서 무려 수백 명이 있었다.'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네.'“그럼.. 여기겠군."염구준은 중얼 거리며 못 중간에 있는 게 고대영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상황을 좌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렇게 중시를 받을 수 있으니까.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서 쥐도 새도 모르게 다리를 지나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다른 방법이 있어.'못이 더럽기 때문에 물 안에 있은 것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헤엄쳐 갈 수 있었다.그러나 악취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 그는 곧바로 이 생각을 버렸다.이렇게 되면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오셨습니까!"앞을 지키고 있던 간수가 고우혁을 보자마자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음."고우혁으로 변장한 염구준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으나 그가 구름다리 앞에 도착하자마자 병사 두 명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구령을 말해주십시오. 되세요."'그 늙은 여우가 이렇게 단순하게 보초를 세워둘 리가 없지.'손가을이 역용술로 시선을 돌렸는데도 빠르게 대처한 걸 보면 고우혁은 반응이 느린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직접 왔는데도 구령 따위를 말해야겠나?"염구준은 말하면서 구름다리를 지나가려고
그들은 재빨리 줄을 끊어 다리가 못에 떨어지게 만들었다."하하. 이제 네가 어떻게 가는지 보자고.”그러자 총책임자가 큰 소리로 웃었다. 다리를 끊으면 염구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구름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수면에 뜰 수 있어 염구준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씨발, 더럽게!"염구준은 욕설을 퍼붓고는 다리 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해결하고 재빨리 맞은편 기슭으로 달려갔다.최대한 속도를 냈지만 그래도 신발은 다리 위를 넘친 더러운 물에 조금 젖어 악취를 풍겼다.맞은편의 염구준을 보면서 책임자는 조금 멍해졌다.'뭔가 놓친 게 있는데...'"가서 고대영을 죽여!"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비록 같은 고씨 가문의 사람이지만 그는 고우혁의 파벌에 속하기 때문에 동족의 정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못에 남은 몇 사람은 명령을 받고 버려진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정말 여기 있었네!'고대영을 본 염구준은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장소들을 다 한 번씩 둘러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그의 뒤에 쫓아온 사람들은 얼마 쫓지 못하고 염구준한테 맞아서 기절하거나 죽었다.그는 곧바로 건물로 뛰어들어가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이제 모든 수수께끼를 전부 풀어야지.'"보스, 그냥 다같이 가서 죽이죠."맞은편에서 고씨 가문의 사람 중 한 명이 못을 가리키며 아이디어를 냈다.책임자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아이디어를 부정했다."안 돼. 상대방의 실력으로는 우리가 가도 막을 수 없을 것이야. 그리고 기관을 열고 그 물건을 풀어놓은 뒤 전원 철수해."그러자 누군가 안색이 굳어지며 다급하게 말했다."그걸 풀어놓는다면 일이 매우 번거로워질 겁니다.""말 말고 그대로 해."책임자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고대영, 내 목소리가 들려?"건물 안에서 염구준은 큰 소리로 외치며 고대영을 찾아다녔다.이곳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파손된 곳이 적지 않고 환경도 매우 복잡하여 사람을
펑.염구준은 만들어낸 불꽃으로 소독을 해준 뒤 피가 너무 많이 흐르지 않도록 벌어진 곳을 꿰매 주었다.검 몇 번만 휘두르면 되어 콘크리트를 처리한느 것은 간단했다. "고마워, 정말로!"고대영은 콘크리트에서 나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감사인사를 했다."인사는 필요 없으니까 고씨 가문에 온 후에 벌어진 일들이나 말해봐."염구준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고싶었다."후. 가문에 큰 불행이 닥쳤어."고대영은 한숨을 쉬며 생각을 정리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날 청해시에서 떠나 고씨 가문에 돌아온 후 몰래 폐관수련 중이신 가주님을 뵈었었어.""하지만 고대강이 흑풍과 결탁했다고, 이젠 멈춰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가주님께서 날 기습해 중상 입히셨다.""가주님과 흑풍은 한패야. 그들은 고씨 가문과 손씨 그룹이 싸우는 틈을 타서 고씨 가문을 합쳐서 네 손에 있는 옥패를 빼앗으려 하는 거다.""가문의 보물을 되찾겠다는 건 다 허울일 뿐이야!""쿨럭쿨럭. 날 개조 로봇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다."동족의 배신에 그는 말할 수록 더욱 흥분해서 심하게 기침했다.'고우혁이 부가주와 엇나가고 시비를 건 것은 가주의 뜻이었겠군.'여기까지 생각한 염구준은 이제야 모든 것들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개조 로봇은 고씨 가문에서 만들어낸 거야?"염구준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아니. 청목 존주라는 사람이 만든 건데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어."고대영은 고개를 저으며 아는 것을 전부 말했다.'또 다른 세력이 개입한 것 같네.'염구준은 잠시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이제 그쪽을 데리고 나갈 건데, 계속 쓰러진 척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면 안 돼.""왜지?"고대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낚을 놈들이 있어서."염구준이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는 이미 계획이 다 있었다."고수네."말을 마친 후 고대영은 몸을 꼿꼿이 펴고 땅에 쓰러져 기절한 척 했다.이제부
염구준은 눈 앞의 생물을 보고 놀라서 입을 떡하니 벌렸다.모양은 두꺼비지만 발이 세개에 크기가 성인 코끼리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만큼 크고 비늘이 나있는 것도 모자라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있으며 검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희귀종임이 틀림없었다!"좀 불쌍하네."염구준은 고대영을 눕혀놓고 구자검을 뽑은 뒤 눈앞의 이 두꺼비 괴물과 대치했다.못에 쌓인 쓰레기들을 보며 그는 이 괴물이 어떻게 생긴 건지 조금 짐작이 갔다."꽥!"두꺼비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두꺼비의 무거운 무게에 충격까지 더하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속철도와 맞먹기 때문에 맞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질 게 뻔했다.하지만 염구준은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검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신을 지탱한 뒤 검으로 앞을 막았다.그리고는 검기로 온몸을 둘러싼 뒤 내력을 최대까지 끌어올렸다. 기운이 올라감에 따라 불꽃도 더욱 크게 타올랐다.이 두꺼비 괴물은 반보천인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쾅!두꺼비 괴물이 머리로 검을 세게 부딪치자 구자검이 약간 휘었고 검을 쥐고 있던 염구준도 피가 목까지 차올랐다. 충격이 너무나도 강했다. 그가 서 있는 곳에도 충격이 전해져 큰 구덩이가 하나 생겼다.이 일격에 두꺼비 괴물은 힘을 전부 다 썼기 때문에 염구준은 검을 돌려 그것을 손쉽게 뒤로 몰아넣고 검을 가로로 쥔 뒤 죽이려고 달려갔다.싸움에서 전세는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이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꽥꽥!"그러나 두꺼비 괴물은 몸을 번지더니 뱃가죽과 세 다리를 위로 들고는 고통스러운 듯 땅에서 뒹굴었다.'찌르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부터 하는군.'이 모습에 염구준은 서서히 발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두꺼비 괴물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먼저 공격한 건 자기면서!'"야, 안 싸울 거면 나 먼저 간다."상대방이 알아듣든 말든 염구준은 그냥 고대영을
반천인 경지에 달한 괴물을 고씨 가문의 수많은 강자들이 모여서 제압했는데 한 사람한테 죽임을 당하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그럼 바로 죽일까요?”상황 파악을 못하는 한 사람이 물었다.“미쳤어? 우리는 종사 3명밖에 없는데 덤벼도 바로 죽어.”현장 담당자가 꾸짖으며 발로 세게 걷어찼다.상대방의 실력이 이렇게 공포스럽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냥 눈을 감아주면 끝날 일이니까..담당자는 휴대폰을 꺼내 고우혁에게 연락했다.상황을 통제하기에 이미 그의 능력 범위를 벗어났다.고배율 망원경으로 봤더니 염구준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숲으로 사라졌다.저 숲을 지나면 바로 고씨 가문이다.탁!이때 염구준은 주변이 수상한 것을 감지하고 발걸음을 멈추고 경계했다.방금 고대영을 구하자마자 누군가 추격한 모양이다.“나와. 쥐새끼처럼 숨어만 있지 말고.”스스슥!숲에서 열 개가 넘는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염구준을 포위했다.모두가 복면 고수들이었다. 실력이 가장 약한 고수마저도 전신 경지에 이르렀다.“그자를 남겨. 아니면 공격하겠다.”우두머리가 경고했다.“고우혁!”염구준은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상대방이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아무리 천으로 얼굴을 가려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사람을 내놓든지 아니면 죽어.”복면을 쓴 고우혁이 싸늘하게 말했다.“진짜 죽일 것처럼 말하네?”하지만 염구준은 절대로 협박이 먹히는 사람이 아니다.그는 고대영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변 고수들을 둘러봤다.일대 몇 싸움은 적지 않게 경험했었다.“쳐라! 사정을 봐주지 말고 전력으로 공격한다!”고우혁이 명령을 내리자 모두 염구준에게 달려들었다.그들의 위치는 오묘해서 움직이자마자 모든 출구를 차단해 버렸다.염구준은 3미터짜리 청봉을 들고 달려드는 고수들을 관찰하면서 단번에 약점을 하나씩 찾아냈다.다들 어찌나 호흡이 잘 맞는지 전혀 공격할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곧 눈앞으로 공격해 오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름 모를 본원검의를 융합하자 구자검의 위력이 또 세졌다.“죽여라!”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자 몇몇 고수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고우혁이 이미 패배한 이상 그 누구도 염구준을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염구준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몸을 돌려 놈들을 공격했는데, 단 세 번 베어서 모두를 죽여버렸다.그가 사용한 힘은 고우혁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약했다.그 장면을 본 고우혁은 이러다 다 죽임을 당할 것 같다고 생각해 냅다 소리쳤다. “저놈을 상관하지 말고 고대영을 죽여!”목표 제거가 성사되지 않으면 다른 목표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고수들은 명령을 듣고 갑자기 방향을 고대영 쪽으로 틀었다.“습격이라니 정말 죽고 싶은 거냐?”염구준은 재빨리 후퇴하여 고대영 앞에 서서 여러 차례 공격을 막아냈다.같은 가문이지만 고수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무참하게 공격했다.수 차례 검을 휘두른 후 또 고수 한 명을 제거했다.염구준은 여러 사람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면서 반격할 기회를 노렸다.그러다 또 두 명을 죽였다.격전이 계속되면서 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점점 늘어났다.한순간에 염구준은 네 명을 더 죽였다 .촤아악!이때 검광이 번쩍이며 또 한 명이 쓰러졌다.고우혁도 공격에 합류했지만 부하를 보호할 수도 고대영을 감히 죽일 수도 없었다.마음은 몹시 초조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놈들이 죽어 나가자 그의 압력은 다시 줄어들었지만 염구준의 검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기세가 거세졌다.살아남은 사람들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철수한다!”고우혁은 상황이 심상치 않아지자 이를 꽉 물고 결국 철수 명령을 내렸다.싸움을 계속하다가는 여기서 다 죽어버릴 것 같았다.부하들은 명령을 받고 염구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후 신속하게 후퇴했다.‘어딜 튀어?’염구준은 마지막 기회도 놓치지 않고 일검으로 한 사람의 목을 베었다.또 하나의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고우혁 무리가 고씨 가문 쪽으로 도망가자 염구준은 검을 들고 뒤쫓았다.전부 살해할 작정이었다.자신을 가
”쯧쯧, 누가 저런 괴물을 만들어 낸거야?!”염구준이 혀를 차며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갔다.“철수한다.”그때 멀리서 고우혁이 소리를 치자 개조 로봇이 일어서서 돌아갔다.염구준은 그 모습을 보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검기를 휘둘렀지만 철이 부딪치는 소리만 날 뿐 로봇은 끄떡없었다.고대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그도 염구준이 유인 작전에 말려들까 걱정되어 추격을 멈추었다.“저기 봐, 염구준이야!”“업고 있는 사람이 고대영 장로야!”“염구준이 왔어. 빨리 도망쳐!”가면 유효 기간이 다 되어 염구준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난 것이다.그렇게 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에휴.”염구준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호텔로 향했다.바로 그때, 앞에 4, 5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앞을 가로막았다.두 손에 막대기 사탕을 들고 혀로 핥으며 맛있게 먹었다.순진한 남자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염구준을 빤히 쳐다봤다.“와우!”염구준은 괴물 표정을 지으며 놀렸다.그런데 남자아이는 무서워하기는커녕 막대기사탕을 입에 넣고 두 손으로 볼을 만지며 똑같이 괴물 표정을 지어 보였다.어린 것이 화를 내는 모습도 아주 귀여웠다.“재미있네.”다 큰 어른들은 자신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데 어린아이는 두려워하지 않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리 와. 아저씨가 사탕 줄게.”그는 자신의 딸이 자주 먹는 사탕을 건넸다.남자아이는 그것을 받고 해맑게 웃었다.“고마워요. 아저씨.”“착하지.”염구준은 남자아이를 지나치고 계속 앞으로 갔다.“할아버지.. 아파요?”남자아이가 고대영을 가리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고대영의 손자구나.’염구준은 돌아서서 다정하게 말했다.“할아버지는 괜찮아. 잠시 잠들었을 뿐 곧 깨어나실 거야.”“네! 그럼 아빠 불러올게요.”남자아이는 안심하고 깡충깡충 뛰어갔다.염구준의 등에 업힌 고대영은 손자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웅덩이에 있을
염구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한 사람을 업고 온 것을 보면 분명 계획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고씨 가문의 가주가 출관하면 모든게 해결될 거야.”염구준은 구체적인 절차는 말하지 않았다.옆에서 사과를 먹던 용필이는 궁금해져 고대영을 물끄러미 쳐다봤지만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다.그는 머리를 굴리기 딱 귀찮았다.그냥 염구준이 무엇을 지시하면 따라하면 되니 생각이 없는 것도 나름 장점이기도 했다. 다다닥!룸 밖의 복도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룸으로 들어왔다.방이 커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 많은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아버지.”그 무리에 고대영의 아들 세 명도 있었고, 그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곁에 다가와 고대영을 불렀다.하지만 아무리 흔들고 불러도 고대영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아직 숨이 붙어 있어. 죽지 않았어.”큰아들이 손가락을 고대영의 코에 가져가서 확인하더니 기뻐하며 소리쳤다.“어서. 병원으로 가자!”둘째 아들이 고대영을 부축하려고 했다.아버지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으셨다니 정말 기뻤다.“여기 두는 게 좋을 거야.”염구준이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왜? 우리를 막는 거야?”고대영의 큰아들이 염구준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러자 나머지 두 아들도 언제든지 공격할 태세로 노려 보았다.“한 명은 단진 무성이고 두 명은 정진 왕자이고 정말 훌륭한 자식들을 뒀구나.”염구준은 탄복했다.무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가족은 참 드물었다.“계속 막고 있을 거야”큰아들이 또박또박 말했다.“아버지가 죽기를 원하면 지금 병원에 모셔가도 돼.”염구준은 문을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강경한 태도로 나오면 가끔은 역효과를 낳을 때가 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행동해야 예상치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그게 무슨 말이야?”큰아들은 무서운 효자라 그 말을 듣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고대영을 노리는 자들이 있어. 반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