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덤비든지."윤중현은 공격이 먹히지 않자 뒤로 후퇴하며 다음 공격을 할 기회를 노렸다.그의 노련한 실력에 윤씨 가문의 방계들은 박수를 치며 한껏 칭찬했다."강호에서 염구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이 돈다길래 기대했건만 오늘 직접 보니 그냥 그런 것 같군.""윤중현은 공부도 잘하고 무술도 잘하네! 가문의 몇 안되는 천재야, 정말. 내 생각에는 윤씨 가문의 미래는 저 아이한테 달린 것 같아.""윤중현이 이제 크면 전 용하국의 제약업계가 다 우리 윤씨 가문의 것이 될 테지."그들의 뜻은 분명했다. 윤중현이 차기 가주로 제일 적합하다는 것.이에 윤성호는 차갑게 웃은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싸움을 지켜봤다.'반보천인 앞에서 저 정도의 실력으로 덤빈다는 거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라 할 수 있지.'"하앗!"윤중현은 소리를 지르며 온몸의 기운을 주먹에 모아 다시 공격했다.'이번에는 분명히 쓰러뜨릴 수 있어!'이에 염구준은 방어할 때 쓰던 기운을 왼손에 거둬들이고 주먹을 세게 날렸다.쾅!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친 순간, 윤중현은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고, 골절된 팔은 한쪽으로 늘어졌다. 만약 오늘 약재를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면 염구준은 참지 않고 상대방을 반정도 죽여놨을 게 분명했다. "이게..."이를 본 방계들은 얼굴이 굳어진 채로 입을 다물었다. 조금 창피했기 때문에.그들은 자신이 조금 전에 윤중현을 너무 많이 칭찬한 것에 대해 조금 후회했다.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윤성호는 아주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중현이가 재능이 있긴 하지만 단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의젓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룹 부대표 자리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죠."지금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능구렁이들이기 때문에 일단 기회만 보이면 상대방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다.이때 염구준이 윤씨 가문 사람들을 둘러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절 공격하면 그땐 정말로 죽일 겁니다."영문도 모른 채 한바탕 싸운 그는
아들의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다른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윤성호는 아들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애써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괜찮..니, 아들아?""아빠, 나 온몸이 너무 아파."자신의 아빠를 보자마자 윤기범은 마취가 채 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입은 큰 부상인데,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건 최대로 얻어야지.'이 말을 들은 윤성호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눈물을 글썽거렸다."우리 가문에서 제일 좋은 특효약을 먹으면 안 아플 테니까 조금만 참아."윤기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약한 어투로 대답했다. “응.. 그리고 아빠... 날 이렇게 만든 염구준한테 꼭 복수해줘야 해?"비록 힘 없는 목소리로 한 말이지만 그가 얼마나 상대방을 증오하는지는 똑똑히 들어낼 수 있었다.그러나 윤성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 "은성아, 얼른 기범이를 데리고 가 쉬게 해라. 다른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하고."반보 천인을 상대하는 것은 큰 일이므로 신중히 고려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었다."네."은성은 앞으로 걸어가 윤기범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향했다."염구준? 기범이를 저렇게 만든 놈이냐?" 윤대약은 담배를 피우며 대충 물었다. 그는 오랫동안 의술만 연구해 온 탓에 바깥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네.""하지만 강한 녀석이라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가문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윤성호는 공손히 대답했으나 그가 한 말의 절반에 거짓말이 섞여있어 진짜 속셈을 알 수 없게 했다. 윤씨 가문 같이 크고 복잡한 가문은 부자지간이라도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힘들었다. 툭툭.윤대약은 담뱃대를 뒤집어 안의 찌꺼기를 두드려 떨군 뒤 천천히 일어났다."주소를 알려주렴. 내가 직접 만나보마."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을만큼 담담했다."제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같이 갈까요?" 윤성호가 다시 한번 공손하게 물었다.겨우 보여주기 식의 가주인 그와는 달리 윤대약은 실질적
윤대약은 담배를 몇 모금 빨면서 천천히 말했다."도대체 얼마나 다쳤길래 백년 산 붉은 영지가 필요한 거지?""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만 그걸 쓰면 더욱 빨리 회복할 수 있어서요."염구준은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오른팔을 드러냈고 윤대약은 그 팔을 보자마자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떻게 이렇게 터무니없이 건장한 오른팔이 있을 수가 있어?"의학을 배우는 사람은 인체 구조에 대해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인간적인 팔을 보면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팔이 이렇게 건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공포스러운 힘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본론부터 얘기하죠. 백년 산 붉은 영지 얼마에 파실래요?" 염구준은 다시 본론에 들어갔다. 상대방이 자신과 얘기나 하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라고 여겼다.그러자 윤대약은 다시 담배를 두 모금 빨면서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것보다 먼저 기범이에 대해 얘기 해보지.""당신은 공정한 사람인가요?"염구준이 먼저 물었다. 아무리 똑똑히 말해도 상대방이 우기면 그만일 테니 그는 딱히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이가 있는만큼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하기는 해."윤대약이 선의의 미소를 지었다.상대방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기에 염구준은 그날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내가 왜 널 믿어야 하지?"어디까지나 일방적인 말이니 윤대약은 말을 끝까지 들은 뒤 바로 물었다. "제가 반보천인이니까요."염구준은 많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믿든 안 믿든 모두 상대방이 결정할테니 아무리 많이 말해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잠시 침묵한 후 윤대약은 담배를 몇 모금 빨고 작은 붉은 영지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그래. 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고 다시 붉은 영지에 대해 얘기해보자."윤기범도 어차피 겉만 다쳤기 때문에 윤대약은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이 약재들은 당신의 백년 산 붉은 영지와 바꿀려고 가져온 것들입니다. 이것 외에도 더
"흐흠!"윤대약은 물건을 확인하고는 목을 가다듬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확실히 귀하긴 하지만, 내 백년 산 붉은 영지와 바꾸기에는 양이 너무 적군.""하."염구준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기는. 방금 전까지도 흥분했으면서.'"그럼 몇 병이 적당할 것 같나요?"염구준은 그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는지 보고싶었다."적어도 열 병은 있어야하지."이에 윤대약은 손으로 숫자 10을 만들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많이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교활하기는.'그러나 성년 쌍두성사의 비늘로는 기껏해서 열 병의 약을 만들 수 있었다. 즉 상대방은 이미 이 점을 계산하고 말한 거라는 것이다. "너무 유감이네요. 저한테는 한 병밖에 없어서요."염구준은 손을 뻗어 받아 병마개를 닫고 도자기병을 치웠다.자기도 써야 하니 이런 진귀한 물건을 전부 줄리가 없었다. "백년 산 붉은 영지가 없으면 오른팔이 낫지 않을 텐데."윤대약은 얼른 상대방의 약점을 찔렀다."휴,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저한테는 한 병만 있는 걸요."염구준은 한숨을 쉬다가 고개를 돌려 손가을을 향해 눈짓을 했다."이제 그만 청해시로 돌아갈까? 왼손으로 검 휘두르는 거 연습해야겠어."부부답게 염구준의 말 뜻을 재빨리 알아차린 손가을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응. 준비할게."손에 다 들어온 걸 놓칠 수는 없으니 윤대약은 나가려는 염구준 부부를 향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여덟 병!""한 병이요.""다섯병!"한 병이요.""두 병, 두 병이 내가 최대로 양보할 수 있는 양이야.""안돼요, 한 병.""그래. 한 병으로 하자."윤대약이 이를 갈며 승낙했다.'젠장, 이렇게 깎는 게 대체 어디 있어?'그는 살짝 언짢았지만 최고의 의사로서 희귀한 약물에 대한 갈망이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컸기 때문에 끝내 타협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서로 바꾸는 걸로 하죠."거래를 마친 후 염구준은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
슉!염구준은 순식간에 검 대신 왼손을 들어 윤대약을 향해 돌진했다.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의 몸 주위에는 작은 불꽃들도 피어올랐다.윤대약은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걸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승패를 막론하고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펑!염구준의 중지와 검지에 맞은 손바닥은 검게 그을려 그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둘의 싸움은 비겼지만 윤대약은 이미 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내가 졌어.""양보해주셔서 감사해요."두 사람은 이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그들은 곧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이튿날의 거래를 준비했다."으흠흠..."윤대약은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윤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이때 윤씨 가문의 대부분의 고위층들이 저택 안에 모여있었는데, 전부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돼서 온 거였다."아버지, 어떻게 됐습니까?" 윤성호가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이야기 다 끝냈어. 그 기분 안 좋은 일은 둘 다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일 청해시에 가서 염구준와 붉은 영지를 거래할 테니까 네가 준비 좀 해둬라."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틈을 타 그는 바로 모든 걸 이야기 했다. 어차피 붉은 영지는 그의 것이으므로 상의할 필요가 딱히 없기도 했다. 윤씨 가문의 암묵적인 실세가 이렇게 말하니 고위층들은 전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전 가주님은 역시 다르시네요. 나서자마자 모든 일을 해결하시다니!""가주님이 있으시니 저희 윤씨 가문은 이제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까요!""하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죠. 굳이 크게 싸울 필요도 없고요."오랫동안 사람들의 아부를 받아온 탓에 어느정도 면역이 생긴 윤대약은 대충 손을 저었다."그럼 이제 모두 흩어져. 가문의 일이 적지 않으니 가서 일이나 해."일이 그냥 이렇게 끝났다는 말을 들은 윤성호는 매우 불쾌했다. "아버지, 염구준은 저희 가문을 무시했습니다! 그냥 이렇
흑풍 존주는 신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남다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믿어야 할까?"윤성호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며 또 술을 한 잔 마시고는 생각에 잠겼다.그렇게 얼마후, 성북공장 안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정말 그 사람에게 대왕산삼이 있는게 맞지?" 윤대약이 무척 기뻐하며 물었다.그는 진귀한 약재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끅, 분명 있다고 했으니 저를 속이지는 않았을 거예요."윤성호가 트림을 하며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고, 아들이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아챈 윤대약은 조용히 한마디 했다."어떤 일들은 큰 그림을 고려하며 처리해야 해. 가문의 이익이 모든 것보다 중요하단다.""저도 알아요, 아버지." 윤성호가 건성건성 대답했다.'누가 있어?'"조심해!"윤대약은 반보천인이었기에 감지력이 약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윤성호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슉슉슉.이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나타났다. "일찍 왔네요."희미한 달빛에 비친 얼굴을 본 순간, 윤대약은 표정을 굳히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흑풍 존주, 네가 뭐라고 감히 여기에 나타나! 이씨 가문에서 현상금을 걸고 널 찾고있는데 말이야."전에 흑풍이 자신에게 속한 세력 한개를 전부 몰살한 것 때문에 이씨 가문에서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그럼 뭐 어때요. 그들은 어차피 절 잡지도 못할 텐데요."흑풍 존주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가자. 이 거래는 이제 없는 것이다."윤대약이 아들을 끌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상대방에게 정말 대왕산삼이 있더라도 그는 흑풍 존주와는 거래를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참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바로 그때, 흑풍 존주의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다른 두 사람이 순식간에 앞으로 돌진하며 윤대약을 공격했다. 그러자 윤대약은 단번에 그들으의 경지가 모두 반보천인이라는 걸 눈치챘다.'준비하고 왔다는 건가?'"내가 막고
그들의 싸움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더 싸해졌다. "아빠, 엄마 왜 그래요?" 손가을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하는 기색을 보였다.몇 년 전 집안 살림이 궁할 때에도 둘이 이렇게 싸운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희주야, 시아 집 가서 좀 놀고있을래? 내가 이따가 데리러 갈게."염구준은 포장해 온 음식중 일부를 딸에게 건네주며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졌다.'많이 샀으니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주지도 못할 뻔 했네.'"알겠어요!"염희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몇 걸음 걸어간 후 고개를 돌려 초롱초롱한 눈을 깜박였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서는 괜찮나요?"그녀 역시 조금 성장했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알고 있었다. "응, 괜찮아. 아빠가 들어가서 조금 말리면 돼."염구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그는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집 앞에 도착해 닫기지 않은 문틈 사이로 전쟁터가 된 집안을 바라보았다. 망가진 티비, 바닥에 엎어진 테이블, 바닥에 널려 있는 과일들, 그리고 깨진 유리 조각들까지. 다행히 집에서 개를 키우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키웠더라면 이것이 개가 한 짓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였다. "구준아, 넌 내 편이지?"진숙영은 문 앞에 선 사람을 보고 급히 달려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장모님, 가족끼리 좋게 얘기해야죠.""장인어르신도 화 풀고 여기에 앉으세요. 차분히 얘기를 나눠야 빨리 해결하죠."가족 싸움이 이미 일어난 뒤였으니 염구준은 그저 이를 악물고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장인, 장모님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편을 들 수조차 없었다. 오해로 인해 싸움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차라리 반보천인이랑 싸우는 게 낫겠어.'염구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았고, 두 사람도 그의 체면을 봐서 소파에 앉긴 했지만 서로 얼굴도 보기 싫은 듯 전부 고개를 돌렸다.'아, 머리 아파.'결국 염구준은 손가을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이것까지는 생각 못한 염구준과 손가을이 모두 놀랐다.이는 단시간 내에 두 사람이 화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뜻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염구준이 생모의 유골을 되찾은 후 염진과 한설의 관계는 적지 않게 완화되었지만 이젠 손가을의 부모님 사이가 틀어졌다니. "구준 씨, 엄마 괜찮겠지..?" 손가을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해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기껏해야 사기 당하신 걸거야. 큰 일은 아닐 테니까 너무 걱정마. 내가 사람들을 보내 조사하게 할게."염구준은 진작에 진숙영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봤지만 그녀에게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죽겠다고 협박까지 했는데 어떡하겠나. 그저 잠깐 내버려둬야지.우웅...집안일은 처리하자마자 염구준의 휴대폰이 울렸다."염 선생님, 윤대약이 죽었습니다. 내일 추모회를 연다고 하더군요."상대방은 그가 천약산시에 남긴 사람이므로 잘못된 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었다."왜 죽었는데?" 염구준이 재빨리 물었다."아직 모릅니다. 방금 전해진 소식이라서요. 제가 알아낸 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상대방은 말을 마치자마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윤대약이 죽으면 거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년 산 붉은 영지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염구준은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윤성호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그는 그의 성격으로는 절대 붉은 영지를 내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더 오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건데, 내 오른팔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구준 씨, 걱정마. 방법이 있을 거야."손가을이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했다."응."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으로는 대책을 찾기 위해 생각을 반복했다."아니면, 그냥 가서 그걸 빼앗으면 안돼?" 손가을이 그녀답지 않은 생각을 얘기했다.남편이 건강하기만 한다면 다른 것은 개의치 않은 그녀였다. "하하, 여기는 용하국이고 나는 전신전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럴 수 없어."염구준이 아내를 껴안고 웃었다.그는 모든 일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