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선생. 이제야 오셨군요. 한참이나 기다렸습니다.”송 가주가 예의를 갖춘 행동과 말투로 대하자 송대용은 부끄럽고 어이가 없었다.어디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정말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염 선생? 설마 염구준?”다들 반응하고 염구준을 쳐다봤다.그제야 이 사람이 일전에 가문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모신 고수라는 걸 알아챘다.고씨 가문 고위층은 무술에만 집중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 몰랐다.그러니 염구준을 알지 못했다.이유는 그가 용하에 있는 청목 조직을 제거한 공로를 모두 송청연에게 넘겼기 때문이다.그래서 가족들은 염구준이 별로 도움을 주지 않고 거액의 사례금을 받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가주님, 이런 환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염구준도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다고, 방금 화가 나서 답답했는데 웃는 얼굴을 보니 순식간에 화가 수그러들었다.“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가문을 위해서 강적을 물리쳤는데 당연히 환대를 해야죠.”송 가주가 자세를 낮추고 상대방을 띄어 올렸다.염구준의 정체를 파악했으니 친분을 맺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이런 처사가 마음에 안 들었다.“내가 왔으니 준비한 두 물건…”옥패와 고씨 가문의 선조가 남긴 검법이 아니라면 지금쯤 청해로 돌아갔다.“급하지 않아요. 일단 식사를 하고 약속한 물건은 무조건 드릴게요.”송 가주는 말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그가 도망칠까 봐 긴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알았습니다. 그럼 일단 밥이나 먹죠.”염구준은 슬쩍 손을 빼며 대답했다.여기까지 온 이상 이틀 머물고 생신 연회가 끝나면 다시 말할 생각이었다.“안으로 드세요.”염구준이 흔쾌히 대답하자 송 가주는 기뻐하며 뒤로 물러섰다.이젠 공손한 태도가 아니라 염구준을 공경하고 매일 절을 올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그럼 갑시다.”염구준은 더는 사양하지 않고 레드카펫을 밟고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송 가주는 뒤를 따르며 계속 말을 걸었다.남
“그럼요. 지금 안내해 드릴게요.”송 가주가 바로 일어섰다.어떤 일은 미루면 미룰수록 상대방의 반감을 사기 쉽기 때문이다.아직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가족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이제 반찬 두 점을 집었고 아직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가주가 일어난 마당에 그들도 수저를 놓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그때 누군가 물에 홀딱 젖은 채로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아버지. 집안에 도둑놈이 들어왔어요.”그 사람은 바로 경호대장이자 송 가주의 셋째 아들 송윤석이었다.송 가주가 소리를 낮추면서 타일렀다.“아들아, 지금 귀한 손님을 대접하고 있어. 이렇게 큰소리로 무슨 망신이야?”귀한 손님이라는 말에 송윤석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염구준의 면상을 보니 화가 슬슬 치밀어 올랐다.“도둑놈아!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어!”비록 염구준을 이길 수 없지만 여기 가족들이 많고 아버지까지 있어 담이 커졌는지 주먹을 들고 덤벼들었다.촤아악!“이놈아, 지금 반항하는 거냐?”송윤석은 주먹이 염구준에게 닿기 전에 송 가주에게 뺨을 맞고 욕을 먹었다.어렵게 모셔온 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걸 용서할 수 없었다.“아버지. 저는…”송윤석은 일어서며 설명하려 했지만 송 가주가 버럭 화를 냈다.“꺼져. 내가 창피해서 못살겠다.”“에휴.”송윤석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꼬리를 내리고 물러났다.어려서부터 얻어맞고 자라서 아버지 말은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염 선생, 참 부끄럽습니다. 가시죠.”송 가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환하게 웃으면서 길을 안내했다.그 장면을 본 가족들은 하마터면 턱이 떨어질 뻔했다.외부인의 편을 들어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손찌검하는 걸 보니 염구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고 추측했다.그 와중에 송대용은 너무 괴로워 얼굴이 시퍼렇게 되었다.가주가 염구준을 감싼 탓에 본인이 당한 수모를 갚을 기회가 없어서 답답했다.송씨 가문 저택의 관검산.모두 송 가주의 안내에 따라 비교적 번화한 곳에 도착했다.“염 선생, 전방은
이 검술과 매화검보는 같은 사람이 창조한 것이라 한두 개라도 깨달으면 앞으로 무술을 연마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어느새 일행이 관검산 아래에 도착했다.절벽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청석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몇몇 사람은 검술을 연습하고 있었다.초식마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검술은 정말 형편없었다.그 외에 광장춤을 추는 사람, 데이트하는 커플 등등 이곳에서 여유를 즐겼다.천물을 망가트리는 짓에 염구준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만약 고씨 가문이라면 이곳을 보물처럼 여기고 모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을 것이다.이렇게 강력한 검술에서 몇 초식만 배워도 바로 종사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저 사람들 다 물리칠 테니까 편히 감상하세요.”“괜찮습니다. 전혀 영향받지 않습니다.”염구준은 마다하고 앞으로 다가가 새겨진 글자를 자세히 관찰했다.그러다 큰 공터를 찾아가 오른손에 검결을 잡고 글자 획을 따라 긋기 시작했다.구자검이 있었더라면 효과가 배로 나타났을 것이다.그때 한 소년이 목검을 들고 와서 물었다.“전에는 못 봤는데 아저씨도 검술을 연습하러 오셨어요?”염구준은 손짓을 멈추고 웃으면서 대답했다.“맞아. 나 오늘 처음 왔어.”염구준과 같은 검술의 길을 걷는 소년이라 방해해도 나무라지 않았다.“그럼 저희와 함께 하실래요? 제가 6살부터 검을 연습했는데 벌써 10년이 되었어요. 어쩌면 제가 가르쳐드릴 수도 있어요.”소년이 진심으로 그를 초대했다.송씨 가문을 통틀어도 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염구준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소년이 검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지만 실력은 정말 볼품없었다.멀리서 송 가주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와 한마디 했다.“현우, 가서 검이나 연습하고 염 선생을 방해하지 마.”송 가주는 아끼는 손주라서 크게 꾸짖지 않았다.소년은 송청연과 송대강의 친동생 송현우였다.“하지만…”송현우는 검치라 검술에 흥미를 갖고 있는 염구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송 가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화내려고 하자 염구준이 나서
비록 염구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반보 천인의 강자가 어린 아이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이때 누군가의 외침소리에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빨리 봐! 송씨 가문의 그 무능한 자식이 곧 죽도록 터지게 생겼어!"시끄러운 주위와는 달리, 경기장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했다.정식으로 비무를 하기 전에 송현우는 상대방을 일깨워주었다. "저 봐주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 나뭇가지를 목검으로 바꿀 필요 없어요?""당연하지. 전력을 다할 테니까 걱정마. 그리고, 손에 들린 것이 그 무엇이든 검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검처럼 쓸 수 있어."염구준의 대답은 매우 심오했다. 그저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도리를 배워주려는 것처럼 말이다.이 심오한 대답에 송현우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알듯, 말듯 했지만 곧 잡념을 버리고 공격을 시작했다.이에 따라 둘의 비무도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팍!염구준은 나뭇가지로 상대방의 목검을 맞힌 후 상대방을 바닥에 쓰러뜨렸고 비무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기... 기수식!"구경꾼들 중, 어느정도 검술에 대해 알고있는 강자들이 눈 앞의 장면을 보고 믿을 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송현우의 무공이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검술 실력은 송씨 가문에서 제일이기 때문이었다."전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사람들이 이대로 끝났을 거라고 생각할 때쯤, 송현우가 목검을 꽉 쥐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상대방이 강할 수록 좋아. 이러면 검술이 쓸모없는 게 아니라는 걸 더 잘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팍!그러나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한번 상대방의 기수식에 맞아 그대로 쓰러졌다. 이것으로 보아 염구준의 실력이 그보다 절대적으로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그러나 송현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공격을 시작했다.이렇게 열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송현우는 완전히 쓰러졌고 합곡이 심하게 찢어져 피가 멈추지 않는 상태였다. "
송현우는 한마디씩 내뱉으며 목검에 온몸을 기댄 채 힘겹게 일어났다.검을 쓰는 사람은 그 어떤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검 끝이 가리키는 상대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붙어야 했다.송현우의 경지는 이렇게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높아졌고, 금세 정진왕자가 되었다. 슉!이미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거였다.무학에서는 흔히 이 상태를 검에 취했다고 불렀다.이 상태에 빠지면 의식이 없어도 십년 동안 연마하며 몸에 새겨진 검식을 그대로 반복해서 쓸 수 있었다. 마치 평소에 연습하는 것처럼 말이다."한계네."상대방의 모습을 본 염구준은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가 두 검식만에 상대방을 쓰러뜨렸고, 이에 따라 이 교육식 비무도 완전히 끝나버렸다. 한 시간도 안 되어 두 번 경지를 돌파한 사례는 들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지금동안 본 게 전부 꿈만 같아 넋이 나간 채로 멍하니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열여섯 살의 정진왕자라니, 너무 무서운 존재 아닌가?"현우야, 괜찮아?" 다른 사람들이 멍하니 있을 무렵, 송청연은 울부짖으며 송현우의 곁으로 달려갔다.그녀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동생의 안전이지 무공의 경지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기력이 다했을 뿐이니 돌아가서 한 잠 자면 괜찮아질 겁니다."슬퍼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염구준이 다급히 설명했다."흥!"그러나 송청연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염구준에게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낸 뒤 송현우를 업고 경기장을 벗어났다.차가운 태도의 그녀와는 달리 송 가주는 급히 걸어가 염구준의 좋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하, 염 선생은 정말 신이시네요."하지만 염구준은 잘난 척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그저 인도했을 뿐입니다. 모든 건 저 아이의 탄탄한 기초에 달려 있었어요."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검술을 연마하는 사람이라서 참지 못하고 도와준
그의 본래의 검의는 이번 대결을 마친 후 초보적으로 형성되었다."후."수련을 끝마친 염구준은 탁한 기운을 뱉어내며 눈을 번쩍 떴다. 이때 날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였고 주위도 역시 매우 조용했다.이번 수련의 수확은 매우 컸다. 실력이 한 단계 더 늘었으니까 말이다.'검의로 천인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아...""드디어 깨어나셨네요?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이때, 송청연의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그녀는 피곤해서 하품까지 했지만 여기서 지키고 있으라는 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어디도 가지 못하고 줄곧 염구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수고했어요. 이제 돌아가 쉬셔도 돼요."그녀의 모습을 본 염구준은 예의있게 말했다."네."그 후 두 사람은 주택가로 걸어가며 간단히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동생은 어떻게 됐어요?""괜찮아요. 제가 업고 간 후에 얼마 안 되어서 깨어났어요."그윽한 송씨 가문의 산장의 오솔길에서 염구준과 송청연은 유유히 거닐었다."할아버지께서 당신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요."송청연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임무를 말했다.밤이 깊은 탓에 표정을 잘 보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작았다.자신의 할아버지가 염구준을 부른 이유가 뭔가를 노리고 있어서라고 생각했기에 '공범' 인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그럼 그쪽으로 안내해 주세요.""걱정 마요. 당신 할아버지께서 저를 어떻게 할 리가 없으니 너무 마음에 담아둘 필요 없어요."상대방의 약간 떨리는 목소리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 염구준은 송청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대충 짐작이 가서 입을 열었다.이정도 눈치는 그도 가지고 있었다."고마워요."송청연은 정말 고마웠다."참, 송대용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갑작스러운 염구준의 질문에 송청연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대방의 성격대로라면 이런 가십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줬다
"오늘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는 드릴 선물이 있어서예요. 바로 여덟개의 옥패에 관한 정보죠."'드디어 제일 중요한 걸 말하네.'애타게 찾아다닌 비밀이 드디어 조금 밝혀질 기세가 보였기에 염구준은 집어든 젓가락을 다시 내려놓고 바로 대답했다. "듣고 있으니 말씀하세요."송 가주는 상대방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예전에 우연히 저희 할아버지께서 이 여덟 개의 옥패가 열쇠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전부 다 모아 특별한 곳에 놓으면 신기한 것을 열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하지만 그것을 연 후에 기다리고 있는 게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말을 마친 송 가주는 테이블 위의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끝인가요?"염구준은 아쉬워하며 물었다.상대방이 말한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귀한 정보이긴 하지만, 현재의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였다.지금 그의 손에는 오로지 세개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나머지 옥패들은 아무리 찾아도 찾아내지 못했다."휴, 제가 아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송 가주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물건들에 관한 정보들은 비록 얼마 되지 않긴 하지만 전부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전해졌다. 물건에 관해 기록된 서적들은 거의 전부 부패 되었기 때문이다."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염구준은 공수하며 인사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번엔 제가 신세를 진 셈이니 바라는 일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보세요."검식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옥패의 비밀까지 알려준 걸 보아 염구준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이렇게 늙은 사람들은 이익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말이다."하하, 염 선생의 통찰력은 과연 놀랍네요.""별 것 아니고 그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희 송씨 가문은 태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약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송대강, 송청연,
바로 송현우였다."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와서 나를 기다린다고? 왜, 맞고 싶기라도 해?" 염구준은 조롱하듯 말했다."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송현우는 말을 하자마자 '쾅쾅'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박으면서 절을 했다.지금 절을 하고 있는 고집이 센 소년을 보며 염구준은 고개를 저으며 바로 거절했다."제자 들일 생각 없으니까 이만 가 봐."이 말에 송현우는 물론 숨어서 몰래 듣고 있던 사람들도 멍 해졌다.어제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가르치던 염구준이 오늘 갑자기 냉담해진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어서였다.송현우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들어 망연히 물었다."제가 자질이 너무 없어서 당신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건가요?""아니, 넌 검술에 일가견이 있어.""그럼 제가 노력이 부족해서인가요?""아니, 10년 동안 검을 연마한 걸 보면 넌 검을 쓰는 사람이 갖춰야할 근성을 갖추고 있어."염구준은 그의 질문에 하나하나씩 다 대답해주고, 평가도 높이 해줬지만 제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이에 송현우가 다시 망연하게 물었다."절 제자로 받아들이려 하시지 않는 이유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포기를 해도 이유는 알고 포기해야 할 것 아닌가."검술에 소질이 높아서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어."염구준이 얘기한 이유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충 지은 핑계처럼 들렸다.하지만 그는 말을 덧붙였다."비록 석벽을 보며 연습했지만 네가 깨달은 검식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 그게 바로 네 검도지.""내가 만약 하나하나씩 너를 처음부터 가르친다면, 그것은 나의 검도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갈 길을 망칠 수 있어. 너한테 좋지 않다는 말이야.""내가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어제 이미 전부 전수했으니 앞으로의 길은 너 자신만이 갈 수 있어."솔직하게 염구준은 상대방을 좋게 봤다. 그가 어떻게 성장할지도 매우 기대했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많이 이야기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송현우는 또다시 바닥에 '쾅쾅' 소리를 내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
이 독에 중독된 무인은 일시적으로 기운이 흩어지고, 단전이 봉쇄되어, 꼼짝없이 폐인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만약 과다 복용할 경우,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이런 희귀한 독약은 스텔라성 성주가 준 거겠지?”염구준이 흥미롭게 물었다.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진짜 산기봉단을 보았고, 게다가 그 양이 상당했기 때문에 꽤나 관심이 갔다.“맞아. 얼른 저 녀석을 잡아!”노대영은 승리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그는 희귀한 독약인 산기봉단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에휴.”아타 등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염구준마저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이제 구세주가 사라졌으니, 최악의 경우 전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가서 두들겨 패! 나 아까 진짜 쫄아서 오줌 쌀 뻔했단 말이야!”몇몇이 소리치며 달려들었고, 염구준을 한껏 때려서 화풀이를 하려 했다.반보천인급 고수를 때릴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우웅. 그러나 그 순간, 검광이 번쩍이더니 달려들던 사람들 전부가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옅은 혈흔이 있었는데, 상처는 아주 작았지만 모두 목숨을 잃었다.“이 독이 아무리 강해도, 나를 상대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염구준은 조용히 진기를 운용하며, 체내에 남아 있던 독기를 모두 없애버렸다.육신이 이미 반보천인의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탓에 약물 저항성도 엄청나게 강해져 그는 산기봉단 같은 독약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이건 말도 안 돼!”노대영은 절규하듯 외쳤다.희망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자, 정신이 붕괴되기 직전이었다.곧 있으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스텔라성 성주랑 뭘 꾸민 거지?”염구준은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해독제 같은 건 이제 관심 없었다. 상대가 정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난 진작 그분의 문하로 들어갔어. 언젠가는 그분이 내 복수를 도와줄 거다!”“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염구준은 주머니를 집어 들어 곁에 있던 그레이에게 휙 던져주며 분부했다.“먼저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독제를 나눠줘.”“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대영을 흉악하게 노려보았다.반보천인으로서 이런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게 조금 창피해서였다.노대영은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할 말이 있습니다.”“해.”염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만 툭 내뱉었다.그레이와 다른 이들이 힘을 회복하고 나면, 그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곧 죽을 이의 유언쯤은 들어줄 수 있었다.노대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얼른 말을 이었다.“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래.”염구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딱히 다른 변수가 없다면, 이 말을 부정할 이유가 없어서였다.‘어라?’이에 주변 사람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말투로만 보면, 염구준이 노대영의 편을 들어주려는 것 같아서였다.그러나 방금 전에는 또 그들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염구준이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노대영은 염구준의 마음을 돌린 줄 알고 속으로 기뻐하며 바로 말을 이었다.“이 도리를 알고 계시니, 그럼 행동에 옮겨도 되겠죠.”노대영은 혹여나 다른 변수가 있을까 두려워 단검을 꽉 쥐고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신기에게 달려들었다.그레이 등이 조금 있다가 어떻게 나올지는 크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복수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말이다.쾅!하지만 달려가자마자 염구준의 발에 얼굴을 맞아서 옆으로 나가떨어졌다.그의 코와 입에서는 순식간에 피가 줄줄 흘렀다.“날 가지고 노는 거냐, 염구준!”“허, 내가 나설지 안 나설지 짐작이 안 됐나봐?”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노대영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몹시 혐오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대놓고 복수하는 건 괜찮지만, 그 아비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방식에,
그러나 몸속에 독이 퍼진 탓에 기운을 끌어올릴 수가 없어 모두 답답하게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노대영이 혓바닥을 자르려고 할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대영 문주님, 염구준인 것 같습니다!”이름을 듣자마자, 노대영의 얼굴에서 희열이 싹 사라지고, 이내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기습에 성공한 후 바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고래를 타고 쫓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염구준 한 사람만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할 수 있었다.“어서 고래잡이 작살이랑 그물 그리고 멀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들을 준비해.”노대영의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급속히 퍼져갔다.허겁지겁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겨우 쇳조각 몇 개로 염구준을 막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휙휙!염구준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작살, 그물, 조명탄 따위를 보며 입꼬리를 비웃듯이 끌어올렸다.아직 사격거리에도 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공격을 했기 때문이었다.‘적지 않게 겁을 먹었나 보네.’그는 생각했다. 역시나 첫 번째 공격은 전부 허탕이었다.염구준은 거대한 향유고래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이윽고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됐다.커다란 작살 하나가 고래의 머리를 향해 곧장 날아들었는데, 맞으면 죽지 않더라고 심각한 부상을 입을 게 뻔했다.우웅!염구준은 검기 한 줄기를 내보내 날아오던 작살을 두 동강 낸 뒤, 작살에 묶인 쇠사슬 위로 몸을 던져, 빠르게 어선으로 돌진했다.풍덩!향유고래는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잠수했다.노대영은 염구준이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소리쳤다.“어서, 어서 배에 못 올라오게 사슬을 끊어!”그도 자신이 염구준과 맞서봤자, 단 한 줌의 승산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구자검법, 검일참공!”염구준은 배 위 인원들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강한 검술을 발동해 검기를 날렸다.제대로 검기를 축적하진 못했기에, 완벽하게 완성된 검일참공은 아니었고, 약간의 반동
파악!곧이어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거대한 향유고래가 염구준과 멀지 않는 곳에 떨어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마치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했다.촤악!염구준은 몸을 날려 향유고래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뒤, 세 척의 어선 쪽으로 진기를 날려 물보라 일게 했다.이에 향유고래는 곧장 방향을 틀고, 어선을 향해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말이 통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밖에 교류할 수 없었지만 별로 큰 문제는 없었다.그 시각, 1호 어선은 다른 어선보다 조금 더 시끌벅적했다.노대영은 배의 지휘권을 장악한 뒤, 끝까지 저항한 소수만을 제거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포로로 붙잡아두었다.물론 그가 자비로워서가 아니었다.그저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복수하는지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였다.“대영 문주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언제든 시작 가능합니다.”노대영에게 붙은 아첨꾼 하나가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이번에 출정한 천기문 문도 중 절반 이상이 이미 노대영 편이었다.쿵!노대영은 부도 갑옷을 입은 채로 웃으면서 팔을 휘둘러 노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악독한 놈.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할 거다.”며칠 전에 대의를 위해서라면 혈연관계는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저 노신기를 안심시키기 위함에 불과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복수심은 한순간도 식지 않았었다.“하아...”노신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의 창백한 얼굴엔 깊은 후회가 서려 있었다.‘그때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그는 생각했다. “모든 일은 내가 벌인 거니까 찢어죽이든, 뭘하든 나한테만 해.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건드리지 말고.”지금 이런 상황에 이른 이상, 그는 더 도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노대영에게 그의 출신을 말해주며 그의 아버지가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변태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나 그는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봤자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스승과 제자의
염구준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금강 방망이 한 개 뿐이었다. 기운의 량으로 보아 세 명의 힘이 전부 들어있는 게 분명했다.이건 베르 일행이 전력을 건 최후의 일격이었다.쾅!한 자루의 검과 한 개의 방망이가 충돌하며 눈부신 불꽃을 일으켰다.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변에 퍼져나가며 양측은 잠시 균형을 이루었다.세 사람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막았다! 얼른 보트 준비해, 후퇴한다!”베르의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루카와 슈카 역시 서로 부축하며 일어섰다.이미 힘이 고갈된 지라 그들의 얼굴엔 혈색도 없었고, 기운조차 미약했다.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하압!”염구준은 팔에 힘을 주어 금강 방망이를 밀어내려 했지만, 방망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발견했다. 이 전법은 오묘했다. 상대방이 시전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타겟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홀로 움직였으니까 말이다.이대로라면, 몸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었다.베르는 떠나기 전에 염구준을 보며 독한 말을 남겼다.“염구준, 자만하지 마라. 스텔라성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돌아가서 강자들을 전부 불러와 널 죽여주지.”“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얼음처럼 차가운 염구준의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살짝 떨었다.이미 흑풍의 사태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에 염구준은 적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흥, 말은 누구나 하지. 하지만 나중에 지키지 못하면, 네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걸?”베르는 비웃으며 염구준의 말을 맘 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의 필살기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염구준은 검을 쥔 양손을 살짝 옆으로 움직이며, 손을 놓았다.우웅!그러자 구자검은 더 이상 금강 방망이와 대치하지 않고, 잔상을 남기며 쏜살같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같은 시각에 금강 방망이 역시 미친 듯한 속도로 염구준의 왼쪽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이건 자신의 목숨으로 적의 목숨을 바꾸는 방식이었다.꽈악!염구준
“염 선생님, 저희가 가서 막을까요?”노신기는 갈등하며 조심스레 물었다.비록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염구준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기에 돕고 싶어서였다.“아니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염구준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대형 방패를 계속 내리쳤다.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노신기 일행의 실력으로는 개입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염구준은 잘 알고 있었다. 가봤자 죽을 게 분명하다는 것도 말이다.한편, 전장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자신들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있으며, 살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덤벼!”쾅!베르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손에 쥔 대형 방패는 마침내 한계에 도달하며 산산이 부서졌다.그의 피로 물든 두 손에는 어느새 짧은 단검이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으로 염구준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얕은 두 줄의 상처뿐, 역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일반적인 공격은 염구준에게 통하지 않았다. 과거, 염구준이 육체의 한계를 돌파한 리아성전의 전주를 쓰러뜨린 것도 필살기와 정제된 진기 덕분이었었다. 심지어 한 번에 쓰러뜨린 것도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싸웠었다.육체가 극한으로 강해진 상대를 쉽게 이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염구준은 베르를 걷어차 밀어낸 뒤, 곧바로 루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세 명을 상대할 때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이었다.“젠장!”염구준이 갑자기 타겟을 바꿀 줄 몰랐던 루카는 급히 막아섰지만 한 칼에 밀려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강자들의 승부는 한 수, 한 수가 치명상이라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베르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하고 이를 악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삼절진을 쓰자!”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베르 뒤로 이동한 뒤,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이 필살기에 승패가
베르 세 사람을 포함해 이 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조차 염구준이 쓰는 게 무슨 전술인줄 몰라 어리둥절해졌다.방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행위는 자살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건방지긴!”“내가 막을 테니 너희는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이에 베르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약간의 기쁨이 섞였다. 그는 달려오는 염구준을 보며 포효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해저에서의 전투 경험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특별히 제작한 대형 방패로 염구준의 공격을 최소 서른 번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쾅!그러나 시작에 불과한 염구준의 첫 공격에 베르는 몇 걸음이나 밀려났고, 방패엔 반 치 정도 깊이의 칼자국이 선명히 새겨졌다.이 방패는 염구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베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라 다른 것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꺼웠다.텅텅!루카와 슈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시에 염구준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박아넣었다.손목에 힘을 잔뜩 실은 터라 염구준의 호체진기를 가뿐히 뚫었지만 몸에는 옅은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아무리 힘을 더 실어도, 더 깊숙이 찌를 수가 없었다.“육체의 극한까지 도달했다고?”싸움을 지켜보던 반보천인들은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두 명의 최강 반보천인의 공격을 오직 맨몸으로 버텼다는 것부터 염구준의 육체가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쾅! 쾅!염구준은 루카 형제의 공격을 거의 무시한 채, 계속해서 베르에게 맹공을 퍼부었다.공격이 계속 되면서 방패에는 칼자국이 점점 더 많아졌고, 베르도 연달아 밀려났다. 이 엄청난 충격력에 그의 손바닥은 결국 찢어져 버렸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격 안 해? 밥 안 먹었어?”베르는 체내의 기혈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그제야 그는 그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 했음을 깨달았다.‘방패가 30번의 공격을 버틴다고 해도 내가 버티지 못해.’염구준의 몸이 반보천인의 극한에 다다른 이후, 방어력 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서 전보다 공격이
모두가 향유고래의 위를 보고 눈이 커졌다.기뻐하는 사람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과 고래가 마음을 합쳐 수많은 고난을 뚫고 마침내 위험천만한 해저 심연에서 빠져나온 거다.그 과정의 험난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노신기는 드디어 마음이 놓였다는 듯,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염 선생님,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말을 내뱉은 후, 그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말을 마친 후라 뭐라고 바꿀 수도 없었다. “어... 네, 살아있긴 합니다.”염구준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냈다.솔직히, 좀 웃긴 질문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완전히 멀쩡한 염구준을 본 베르는 숨이 턱 막혔다.“염구준, 너...”깊고 깊은 바다 밑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난 상황에, 잠수 장비도 없다는 건 그냥 죽음을 의미했다.하지만 염구준은 그 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를 몰아 드라마처럼 살아 돌아왔다.베르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진정해, 나이도 있는데 괜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와서 그 자리에서 죽으면 곤란하잖아.”염구준은 베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로 열받아서 죽어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끼리 예의는 사치일 뿐이었다.“흥! 바다 밑에선 겨우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여기선 끝이다.”“루카, 슈카! 저 녀석을 죽여라!”베르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염구준을 가리켰다.휙휙.하지만 그 두 형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보트를 밟고 전함 위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부성주님, 저 녀석은 강하니 부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입에 발린 소리로 한껏 띄워주니 베르도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그의 마음속엔 불안감만이 가득했다.염구준의 강함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염구준은 검을 들고 베르를 향해 겨누었다.“이제 끝을 보자.”이제 거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갚을 원한은 갚고, 끝낼 일은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