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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에 다시 딸을 꼭 끌어안은 염구준이 아이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아니야. 엄마가 착각한 거야. 아빠 살아있어. 지금 바로 네 앞에 있잖아.”

눈물의 부녀상봉을 마친 염구준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 말이야... 혹시 엄마가 보낸 거야?”

염구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던 염희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니야! 엄마가 날 이딴 곳에 보낼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착한데! 이모, 나쁜 이모가 날 여기 보낸 거야. 이모가 엄마랑 날 집에서 내쫓은 거라고...”

‘이모?!’

생각지 못한 단어에 염구준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손혜린 그 여자를 이모라고 부른다고? 그럼... 이 아이 엄마는 도대체 누구지? 나랑... 손혜린이 낳은 딸... 아니었나?’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염구준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빠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이모 이름이 뭐야?”

“이모 이름은 손혜린. 우리 엄마 사촌언니랬어. 그런데... 나쁜 이모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래. 이모가 내 엄마래!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그러니까 아저씨도 우리 아빠 아니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던 염희주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반짝였다.

“엄마가 그랬어. 아빠를 구하려다 성대를 다친 거라고.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라고. 그래도 이건 가르쳐줬다?”

염희주은 작은 손가락으로 염구준의 큰 손바닥에 삐뚤삐뚤하게 “염구준” 세 글 자를 적어보였다.

“엄마가 가르쳐 준 거야. 아빠 이름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나 제대로 쓴 거 맞지?”

한편, 염희주의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염구준은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날 구하려다 성대를 다쳤다고? 그날 날 구한 게 손혜린 그 여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손혜린 그 여자는 분명 말을 할 줄 알았었지... 그럼 그날 밤, 나랑 첫날밤을 보냈던 그 여잔 도대체 누구야?’

“희주야.”

전장에서 온갖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아남은 염구준이었지만 이 순간, 떨리는 목소리만큼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

“엄마 이름이 뭐야?”

그러자 염희주는 눈앞의 남자가 아빠가 아님을 확신한 듯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것 봐. 우리 엄마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아빠일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 이름은 손가을이잖아!”

염구준은 혼란스러웠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신혼 첫날밤!

손가의 친인척들은 의도한 것인지 그날 쉴 새 없이 그에게 술을 권했다. 결국 그는 만취 상태로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신혼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그는 잊지 못할 첫날밤을 치르고 진짜 남자가 되었다. 그는 아직도 여인을 처음 품던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그들은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었지만 여인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부인 손혜린이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성대가 손상돼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였다.

그 여자는 손혜린이 아닌 손가을이었으니까!

“이게 어디서 감히!”

분노에 찬 고함이 잠시 추억에 잠겼던 염구준을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관중석을 올려다보니 거의 모두가 우리 안에 갇힌 염구준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경비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저마다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우리를 포위했다.

선두에 선 경비대장이 음침한 얼굴로 염구준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어디서 온 놈인데 감히 광풍 투견장에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누구 소유인지 알아? 당장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안 그러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참한 비명소리가 현장에 울려퍼졌다.

염구준이 날렵하게 몸을 날려 경비대원들 틈으로 파고들자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경비대원들은 하나같이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투견장에 소란스러운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퍽, 퍽퍽!

기함할 정도로 무서운 속도였다!

그는 딸을 안고 터벅터벅 출입문으로 향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너무 늦게 와서 너랑 네 엄마가 이 고생을 했구나! 이제 아빠가 돌아왔으니까 아무도 너희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 너희가 당한 만큼 아빠가 되갚아 줄게!”

한편, 손가네 별장 2층 침실.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온 손혜린은 침대머리에 앉아 있는 서재원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재원 오빠, 그래서 우리 언제 결혼해?”

“급할 건 없어!”

서재원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뽀얀 연기를 토하고는 손을 뻗어 손혜린을 품에 안았다.

“알잖아. 우리 가문은 고모 말이 곧 진리라는 거. 네가 이혼절차만 제대로 밟으면….”

말끝을 흐리던 그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짜증스럽게 침을 뱉었다.

“염구준 그 멍청이랑 염희주 그 계집애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을 텐데! 투견장에 전화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 봐. 그 계집애 죽어도 곤란해져.”

“손혜린!”

이때, 무시무시한 고함소리가 별장을 진동했다!

서재원은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꺼지지 않은 담뱃불에 맨살을 덴 그는 당황하며 옷도 안 입은 상태로 창가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망할, 어떤 자식이 시끄럽게 하는 거야! 젠장….”

하지만 바깥 상황을 확인한 그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대문밖에 염희주를 안은 염구준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염구준은 냉기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 딸한테 네 그 더러운 몸뚱아리 보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옷 입고 튀어나와!”

한참을 멍하니 있던 서재원이 갑자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난 또 누구라고! 손가의 멍청한 데릴사위 염구준이잖아?’

손혜린은 끈나시 슬립만 입은 채로 창밖을 살폈다.

염구준을 본 그녀는 움찔하더니 이내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저 계집애도 같이 왔네?’

개들한테 물어뜯기고 있어야 할 염희주가 염구준과 같이 별장으로 돌아오다니!

부녀가 서로를 알아본 건가?

“안 그래도 저 멍청한 놈이랑 어떻게 이혼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잘됐네!”

잠시 당황한 듯하던 손혜린은 이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서재원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재원 오빠, 저 무능한 자식이 또 찾아왔어. 이제 이혼 절차를 진행하면 난 오빠 여자가 되는 거야!”

서재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혜린아, 옷 갈아입고 나랑 같이 나가자. 내 저놈이랑 오늘 끝장을 볼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손혜린과 같이 옷을 갈아입고 기세등등하게 문밖으로 나갔다.

한편, 염구준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다가오는 두 사람을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보았다.

손혜린은 서재원의 팔짱을 끼고 골반을 좌우로 흔들며 염구준에게 다가가더니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온 것도 놀라운데 저 계집애까지 찾아냈네? 대단해!”

“강용수는? 내 강아지들은 어딨지? 그애들….”

“닥쳐!”

염구준은 차갑게 으르렁거리며 주먹을 힘주어 틀어쥐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주먹을 저 악랄한 여자의 면상에 꽂으면 당장 즉사할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없었다!

도자기 같은 피부와 화려한 이목구비… 이 여자는 이런 예쁜 얼굴로 5년 전, 그와 함께 백년가약을 맺었던 그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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