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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잔영
“예전에 잘나갈 때 나도 잘해준다고 선물도 종종 가져다 주고 그랬는데 저 여자 나한테 시선 한번 안 주더라?”

서석호는 두툼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도도하게 굴어도 어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말을 마친 그는 손가을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거기, 여기 와서 앉아! 오늘은 오빠가 예뻐해 줄게!”

피아노 박자가 다소 빨라지더니 손가을은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으고 휴게실에 있는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는 서석호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짓고는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5년 전 사고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다가 뜨거운 일산화탄소에 성대가 손상되면서 다시는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그녀는 수화를 몸에 익혔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퇴근해야 해서요. 재밌게 놀다 가세요.]

수화로 의사를 전달한 그녀는 다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

그녀가 서석호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그가 그녀의 옷자락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애 보러 가는 거야?”

그는 야비한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아, 넌 아직 모르겠구나? 네 딸 희주 있잖아? 손혜린이 걔를 우리 조카한테 보내주기로 했어!”

“우리 조카 알지? 우리 누나가 애지중지하는 왕자님이잖아. 애가 좀 멍청하기는 해도 예쁜 여자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더라고! 지난번에 걔랑 같이 놀라고 데려온 여자애가 베란다에서 떨어져 즉사했다지?”

손가을은 움찔하며 충격 어린 표정으로 서석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소리 없이 흐느꼈다.

서석호가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손혜린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애였다.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딸 희주는 그녀에게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왜? 마음 아파?”

서석호가 입술을 감빨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딸 살리고 싶어? 간단해! 내가 평소에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 거야! 여기 사람들 보이지? 여기서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면 딸 무사하게 내가 조치해 줄 수 있어!”

손가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짐승 같은 자식!

손가을이 여기 출근한 첫날부터 서석호는 어떻게든 그녀를 구슬려서 잠자리 한번 해보겠다고 갖은 공세를 퍼부었다. 그녀는 끝까지 저항하고 그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런데 비열한 손혜린이 염희주를 서가의 지체장애아한테 보냈을 줄이야!

서석호는 당연히 이때다 싶어 그녀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어때? 고민 다 했어?”

서석호는 그림 같은 그녀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온몸에 열기가 솟구쳤다. 그는 경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고민 다 했으면 이리 오지 않고 뭐 해? 여기 애들 다 내 동생들이야. 쑥스러워할 필요 없어.”

“그래! 석호 형 기분 좋게 해주고 우리도 재미난 구경하고 얼마나 좋아?”

옆에서 음흉한 무리들이 방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가 손가을을 향해 휘파람을 불더니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님, 좋으시겠어요? 형님 놀다가 싫증나면 우리도 맛 좀 보게 해주면 안 돼요?”

“손가을, 석호 형님 모시면 앞으로 이런 곳에서 출근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애까지 낳은 여자가 왜 이렇게 순진한 척해?”

“딸이 인질로 잡혀 있는데 순순히 따라야지.”

비웃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손가을은 온몸을 떨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그들과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녀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서석호를 바라보며 손짓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울긴 왜 울어? 뭐가 그렇게 슬프다고? 웃어!”

서석호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그녀를 압박했다.

“오늘 오빠 기분 나쁘게 하면 너희 모녀 둘 다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손가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치욕스럽고 화도 났지만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더 컸다.

“빨리 좀 움직여! 우리 다 바쁜 사람들이야!”

서석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손가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들 기다리기 싫다잖아. 딸 생각해서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손가을은 고장난 기계인형처럼 다가가서 서석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손가을의 손목을 잡아서 일으켰다.

염구준이었다!

그는 품에 염희주를 안고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갈린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왔어.”

“저건 또 뭐야?”

벙쪄 있던 서석호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감히 내 일을 방해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형님!”

다급한 발소리가 바깥에서 들리더니 경호원들이 안으로 달려와서 서석호의 주변을 호위했다. 그들 중 한 명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상황을 설명했다.

“저 자식이 허락도 없이 쳐들어왔어요. 달리기는 어찌나 빠른지 애들이 다 같이 덤볐는데 결국 놓쳐서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네요.”

서석호와 함께 여가를 즐기던 청년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염구준을 노려보았다.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염구준을 포위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눈앞의 여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와 그녀의 슬픔, 절망, 그리고 반가움이 한눈에 보였다.

그녀 역시 그와 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염구준은 손을 들어 염희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예쁜 딸을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늦게 와서 미안해!”

손가을은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너무 감정이 격해진 탓에 숨소리마저 거칠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치마를 힘껏 잡아당기고는 손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염희주를 가리키고 자신을 가리키더니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통곡했다.

“나 수화 알아.”

염구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가가서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상관하지 말고 희주 데리고 빨리 가라고, 여기 위험하다고 말했지?”

“그러다가 희주 데리고 도망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서 희주도 두고 나 혼자 도망가라고 한 거 맞지?”

“당신은 날 기억하고 있었어. 항상 나를 그리워했고….”

손가을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머금은 그녀의 속눈썹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수화를 어떻게 알지?

게다가 급한 마음에 마구 손짓했는데 그걸 알아들었다.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는 그의 태도 역시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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