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송우민은 계획대로 병원에 나타났다.그의 손엔 화려한 장미꽃다발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여유롭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사랑에 푹 빠진 남자처럼 보였다.남설아는 환자복을 입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창백한 얼굴이 기운도 없어 보였고 누가 봐도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송우민이 들어오는 걸 본 남설아는 금세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마치 구세주를 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민아, 드디어 왔네.”남설아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기대가 가득했다.“너무 보고 싶었어. 나 요 며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송우민은 병상 앞으로 다가와 장미꽃을 그녀에게 건넸다.그리고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나도 보고 싶었어, 자기야.”이 장면은 병원 근처 어딘가에서 지켜보던 배서준과 서유라에게 고스란히 목격됐다.배서준의 얼굴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고 주먹은 딱딱하게 쥔 채 떨리고 있었다.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남설아가 정말 송우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게다가 그의 코앞에서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서유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남설아 그 여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드디어 제대로 된 약점을 잡은 것이다.“서준아, 봤지?”서유라는 배서준의 감정을 부추겼다.“내가 뭐랬어? 그 여자 절대 믿을 수 없는 인간이야. 남편 있는 여자가 딴 놈이랑 바람이나 피우고. 정말 뻔뻔하지 않아?”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병실 안의 두 사람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빛은 말 당장이라도 사람을 찔러 죽일 듯했다.“서준아, 이대로 두면 안 돼.”서유라는 계속 불을 지폈다.“우리가 당한 만큼 돌려줘야 해.”“알아.”배서준은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내 손으로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 거야.”그는 그 말을 끝으로 병원을 떠났다. 송우민을 찾아갈 것이다. 자기 여자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줄 것이다.그리고 곧장 송우민의
“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모르겠다고?”송우민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배서준, 네가 저지른 일들이 그렇게 완벽하게 숨겨졌다고 생각했나?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너의 그 더러운 짓들 다 알고 있다는 거 이제는 좀 알아둬. 그러니까 나한테 더 이상 시비 걸 생각하지 마. 안 그러면 그 모든 진실을 세상에 까발릴 거야. 너를 완전히 끝장내버릴 거라고.”배서준의 몸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송우민을 바라보며 눈빛은 점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겉보기엔 가볍고 유쾌한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서운 사람일 줄은 몰랐다.“너...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배서준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간단해.”송우민이 말했다.“남설아한테서 떨어져. 그 여자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언제든지 덤벼.”송우민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심히 말했다.“하지만 그 전에 네가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부터 하는 게 좋을 거야.”배서준은 송우민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우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는 배서준이 절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자신이 남설아에게 다가간 것도 순전히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하나는 배서준에게 철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남설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배서준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기어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남설아를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그래서 그는 먼저 움직여야 했다.그 시각, 강연찬 또한 송우민과 배서준 사이의 갈등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는 남설아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걸 직감했다.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남설아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입찰회 전날 저녁, 남설아의 병실 안엔 은은한 소독약 냄새가 감돌았고 창밖에서는 도심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강연찬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남설아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었고 아직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맑고 단단했다.“설아야, 이게 최종안이야. 다시 한번 봐줘.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줘.”강연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설아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넘겨보았다.“오빠, 이거 이미 몇 번 검토했어. 문제없어.”남설아는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입찰,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돼?”“백 퍼센트야.”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기술적인 면이든, 사업성에서든, 우리 제안은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해. 특히 네가 제안한 개선안들은 완전히 신의 한 수였어.”남설아는 미소를 지었다.“그건 다 배서준의 천 비서님 덕분이야. 배건 그룹 내부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입찰회 당일, 회의장은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각 기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모두 진지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그들의 눈빛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남설아와 강연찬은 나란히 서 있었다.단정한 정장을 갖춰 입은 두 사람은 자신감과 노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설아야, 준비됐지?”강연찬이 조용히 물었다.“응.”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완벽히 준비됐어.”“좋아. 그럼 시작하자.”강연찬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남설아의 발표는 조리 있고 명확했으며 그녀의 전문성과 프로젝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그녀는 자신들의 제안을 세세히 설명했고 배건 그룹 제안서의 여러 문제점을 명확하고 근거 있게 짚어냈다.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고 그녀의 발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그때 서도현이 계획된 행동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남설아를 비난하기
“왜요, 서도현 씨? 증거 공개하는 게 겁나시나요?”남설아는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날카롭게 말했다.“아니면 그 이른바 증거라는 게 애초에 조작된 거라서 그런가요?”“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서도현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내가 무슨 증거를 조작했다는 거예요? 이 자료는 확실한 증거예요. 남설아 씨가 표절한 게 분명하다고요.”“그렇다면 서도현 씨.”남설아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그 자료를 여기 있는 모든 분께 공개해주세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니 진짜와 가짜쯤은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을 거예요.”서도현은 잠시 망설였다.그도 알고 있었다. 그 증거라는 문서는 정밀하게 검토하면 금세 허점이 드러날 허술한 자료였다.하지만 그렇다고 내놓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그때 강연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설아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남 대표님, 제가 입수한 자료입니다. 아마도 서도현 씨의 ‘증거’가 조작된 것임을 입증해줄 수 있을 겁니다.”남설아는 그 서류를 받아들고 빠르게 훑어본 뒤, 고개를 들고 서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도현 씨, 이제 더 하실 말씀이 있는가요?”서도현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제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애초에 그가 들고 온 증거라는 문서는 서유라가 시켜서 조작한 가짜였다.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입찰 현장에서 남설아를 몰락시키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천기준이 뒤에서 몰래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고 그걸 강연찬에게 넘겨준 것이다.결국 모든 음모는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나... 나는...”서도현은 말을 더듬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서도현 씨.”남설아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증거를 조작하고 타인을 모함하다니. 그런 비열한 행동이 부끄럽지도 않나요?”“됐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남설아는 그의 말을 잘랐다.“여기 계신 모
“서유라, 넌 졌어.”남설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널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그래?”남설아가 차갑게 웃었다.“그럼 기다릴게. 하지만 충고 하나 하지. 애초에 넌 내 상대가 안 돼.”“너!”서유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지만 더는 할 말이 없었다.“서유라, 마지막으로 경고할게. 또 무슨 수를 쓰려한다면 그땐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남설아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걸어 나갔다.서유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노했다.이번엔 정말 완패였다. 철저히 완벽하게 졌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남설아, 두고 봐.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서유라는 이를 갈며 되뇌었다.하지만 서유라가 아무리 분해하고 증오한들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남설아는 이번 프로젝트를 따냈고 이 싸움의 첫 라운드에서 확실히 승리를 거뒀다.남설아는 프로젝트 후에도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고 진짜 복수는 이제 막을 올렸을 뿐이었다.그녀는 배서준과 서유라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었다.그리고 나은을 위해 정의를 되찾을 것이다.병실로 돌아온 남설아는 침대에 앉아 나은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그리움과 따스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나은아, 엄마가 이겼어. 드디어 조금이나마 네 억울함을 풀었어.”남설아의 목소리는 울먹이며 떨렸다.“보았지? 엄마가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해냈어.”하지만 곧 그녀의 눈빛이 단호하게 바뀌었다.“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아주 많이 부족해. 배서준과 서유라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들이 저지른 모든 일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어.”회사로 복귀한 남설아는 곧바로 핵심 팀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회의실 분위기는 팽팽하고 무거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여러분, 프로젝트는 따냈지만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입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정말 시간이 안 나.”배서준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에 바쁠 때만 지나면 너한테 더 신경 쓸게.”“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서유라의 눈에는 아쉬움이 스쳤다.“예전에는 내가 너한테 항상 제일 먼저였는데 요즘은 늘 뒷전이야.”“유라야, 나 좀 이해해줘.”배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은 위기야. 내가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회사를 지킬 수 없어.”“그래도 그렇지. 회사 일 때문에 나한테 소홀히 하면 어떡해.”서유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널 잃을까 봐 얼마나 두려운지 알아?”“유라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너한테 변한적 없어.”“그럼 증명해 봐.”서유라가 갑자기 소리쳤다.“지금 당장 남설아랑 완전히 인연 끊어. 아예 선을 그어버려.”“유라야, 그만 좀 해.”배서준의 표정이 굳어졌다.“나랑 남설아 사이 일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뭐가 단순하지 않은데?”서유라가 한 발씩 다가섰다.“혹시 아직도 남설아한테 미련 있는 거야? 아직도 마음이 남아 있는 거야?”“그만하자.”배서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제발 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어?”“내가 이성적이지 않다고?”서유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난 그냥 네가 날 조금만 더 챙겨줬으면 했을 뿐이야.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줬으면 해서 그래.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네 잘못은 없어. 잘못한 건 나야. 됐지?”배서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근데 나 지금 정말 피곤해. 제발 잠깐만이라도 나 좀 조용히 내버려 두면 안 돼?”서유라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서준은 깊은 혼란에 빠졌다.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그저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고 서유라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서유라가 울면서 떠난 후 배서준은 가슴이 뭔가에 막힌 듯 답답하고 무거웠다.그는 혼자 술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조명, 시끄러운 음악, 그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만 잠시나마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술을 잇달아 들이켰고 술로 자신을 마비시키려 애썼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남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웃음, 눈물, 단호했던 눈빛...“젠장.” 배서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잔을 비웠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예전에는 남설아에게 혐오밖에 없었는데 왜 요즘은 그녀가 자꾸 생각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그리워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한편, 남설아는 사무실에서 송우민과 함께 다음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배서준은 의심이 많아.”남설아가 말했다.“그 점을 이용해서 배서준과 서유라 사이에 틈을 만들 수 있어.”“어떻게 할 생각이야?”송우민이 물었다.“간단해.”남설아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은 채 송우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몇 마디를 속삭였다.송우민은 말을 들은 뒤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이건 꽤 독하네.”“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강하게 나가야 해.”남설아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그들도 배신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봐야지.”그때 강연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는 입찰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남설아에게 식사를 제안했다.“설아야, 지금 어디야? 나랑 밥 먹자. 오늘은 축하해야지.”“좋아, 오빠.”남설아는 흔쾌히 대답했다.“어디 계세요? 제가 갈게요.”“네가 있던 병원 근처 그 레스토랑. 거기서 기다릴게.”“금방 갈게.”전화를 끊은 남설아는 송우민에게 말했다.“나 먼저 나갈게. 계획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해.”“그래. 조심히 다녀와.”송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강연찬은 이미 음식을 주문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설아야, 이 집 스테이크 정말 맛있어. 어서 와서 먹어봐.”강연찬은 웃으며 말했다.“오빠, 고마워.”남
“나...” 배서준은 변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배서준 씨, 분명히 말할게요.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어요.”남설아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결연했다. “다시는 나한테 얽히지 마요. 서준 씨만 보면 역겨워요.”“남설아, 너...” 배서준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남설아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뚝 끊긴 전화 너머의 기계 소리를 들으며 배서준의 가슴은 찢어진 듯 아파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서유라는 배서준이 술에 취한 채 남설아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속에 질투와 원망이 더 짙어졌다.이후 남설아의 회사는 시장에서 빠르게 세를 넓혀갔고 배서준의 회사는 연이어 밀려났다.배서준은 점점 궁지에 몰렸고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천기준을 의심했다. 회사 기밀이 샌 건 틀림없이 천기준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천 비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배서준은 문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왜 우리 고객이 남설아한테 넘어가는 거지? 왜 우리 계획이 남설아한테 미리 알려지는 건데?”“대표님, 저는...” 천기준이 해명하려 했지만, 서유라가 말을 끊었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가 말했다.“아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남설아가 워낙 교활하잖아. 그 여자한테 속았을 수도 있지.”서유라는 싸늘한 눈빛으로 천기준을 쳐다보며 배서준을 끌고 나가려 했다.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 천기준은 배서준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그 말을 남기고 그는 사무실을 떠났다.천기준이 나가자 서유라의 눈에는 잠시 만족스러운 빛이 스쳤다.계획이 제대로 먹혔다. 배서준과 천기준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천기준을 완전히 내칠 수 있었다.한편, 천기준은 결국 남설아 쪽으로 돌아섰다.그는 배건 그룹에 관련된 모든 기밀 정보를 남설아에게 넘기며 그녀가 배서준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탰다.배서준은 남설아를 찾아가 더 이상 배건 그룹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
“서준아, 나 너무 힘들어...”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핏기없는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유라야, 어디 아파?”깜짝 놀란 배서준은 침대로 다가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온몸이 다 불편하고 아파...”서유라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얼른 의사 부를게!”배서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가려 했다.“안 돼...”하지만 서유라가 급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의사 부르지 마. 나 병원 가기 싫어...”“근데 지금 상태가... 그냥 둘 수 없잖아.”배서준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말 괜찮아. 그냥...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돼...”서유라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어, 옆에 있을게.”그렇게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살며시 잡고 말했다.“아무 데도 안 갈게. 여기서 널 지킬 거야.”“응...”서유라는 그의 품에 기대며 살짝 웃었고 그 입가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만족감이 스쳐 지나갔다.배서준은 서유라의 달콤한 말과 애정 어린 행동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의 진짜 속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전히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한편, 남설아의 세심한 간호 아래 강연찬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그는 점차 회사 일에도 다시 참여하기 시작했고 남설아와 함께 나란히 전선에 서며 경영에 힘을 보탰다.그 사이 남설아는 잇따라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따내며 사업적으로 완전한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성과가 이어졌고 배건 그룹은 연일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이러한 성과를 기념하고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남설아는 대규모의 축하 연회를 열기로 했다.연회는 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고 현장은 화려하게 꾸며졌으며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직원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했고 모두의 얼굴엔 성취와 기쁨이 가득했다.그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축하했고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남설아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한가운데에 서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기준은 조용히 배서준의 현재 상황과 결정을 남설아에게 전했다.“대표님, 이제 배 대표님은 완전히 사방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말투에는 깊은 체념과 실망이 묻어났다.“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 여자 곁에 붙어 있으려 하네요.”“후, 그야말로 자업자득이죠.”남설아는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자기가 아직도 예전처럼 뭐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지금의 배서준은 그냥 여자한테 정신 팔린 멍청이일 뿐이에요.”“대표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천기준이 물었다.“지금처럼 그 사람이 회사에 없는 틈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일 절호의 기회입니다.”“당연히 병들었을 때는 끝장내는 게 기본이죠.”남설아의 눈빛엔 싸늘한 결의가 번뜩였다.“이젠 그 인간도 잃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봐야 해요.”“역시 대표님답습니다.”천기준이 말했다.“지시하신 대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좋아요.”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말했다.“기억해요. 이번엔 반드시 속전속결로, 숨 돌릴 틈도 주지 마요.”“네, 대표님!”남설아와 송우민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배건 그룹의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원래 배건 그룹 쪽에서 따냈던 주요 프로젝트들마저 차지해버렸다.그 결과, 배건 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은 대폭 줄어들었으며 고객사들은 잇따라 이탈했고 사내 분위기는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주주들의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고 배서준에 대한 불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배서준, 진짜 쓸모없네!”“회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지?”“당장 끌어내려야 해!”“그래! 더는 회사 말아먹게 놔두면 안 돼!”분노한 주주들의 외침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천기준은 그 상황을 남설아에게 보고했고 남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계속 감시해요. 그 둘이 무슨 짓을
천기준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소파에 앉은 배서준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고 서유라는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대표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천기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지금 회사 상황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셔서 직접 수습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진짜 배건 그룹이 무너집니다!”“근데 유라가 지금 몸이 안 좋아. 어떻게 이럴 때 내가 유라를 혼자 두고 가겠어.”배서준의 말투에는 깊은 피로와 한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대표님...”천기준이 설득을 이어가려던 순간, 서유라가 조용히 말을 가로막았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의 목소리는 마치 곧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나약했다.“회사 일이 중요한 건 나도 알아. 그냥 돌아가. 난 괜찮아.”“유라야, 무슨 소리야.”배서준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네 건강이야. 내가 어떻게 널 놔두고 가.”“그래도...”서유라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내가 네 일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바보야, 너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배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회사 일은 내가 방법을 찾을게.”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기준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정말 기가 막히네. 내가 본 배 대표님 중에 제일 한심한 버전이야. 예전엔 그렇게 단호하고 냉정했던 사람이 이젠 여자가 곁에만 있으면 정신줄을 놓고 있잖아.’“대표님, 진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천기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주주들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어요. 계속 이렇게 계시면 정말로 해임당합니다!”“알아, 나도 알아.”배서준은 초조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렇지만 유라가...”“서준아, 돌아가.”서유라가 조용히 말했다.“나 혼자서도 괜찮아.”“유라야, 너 지금...”배서준은 놀란 눈으로 서유라를 바라봤다.“정말
“네.”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해요. 이 일은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요. 배서준이 모두의 표적이 되도록 말이에요.”“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천기준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남설아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배서준, 당신이 의리를 저버렸으니 나도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야.’곧이어 배서준이 리조트에서 서유라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배서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무능하다’, ‘책임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배서준, 진짜 너무하네!”“회사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밖에서 여자나 만나고 앉았어?”“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표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안 가.”“저 사람한테 회사를 맡긴 게 큰 실수였지.”“이참에 그냥 물러나게 해야 돼!”결국 회사는 긴급 주주총회를 소집했다.얼마 전, 배서준이 자신의 자금을 담보로 위기를 넘기겠다고 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고,오히려 남설아가 한발 물러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간신히 버텨온 상황이었다.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할 실권자는 자리에 없고 남은 이사들은 완전한 권한도 없는 상태라 회사 운영은 갈수록 마비되어가고 있었다.거기에 이번 스캔들까지 터지자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이게 지금 어느 땐데 여자를 챙겨?! 본인 위치도 잊었나?!”“천 비서님, 배 대표님 떠나기 전에 천 비서님한텐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어요?”천기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사실 함께 일한 지 오래됐지만 배서준이 모든 걸 공유하진 않았다.“지금 당장 리조트로 가서 배 대표님 데려와요!”한 이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든 끌고 와야 해요. 회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네, 이사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천기준은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답했다.‘정신적으로 남 대표님한테 매일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두 사람을 만나러 내가 가야 한다고? 이게 대체 무
“서준아, 제발 이번만은 내 말 들어줘, 응? 그냥 나를 위해서 우리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잠깐이라도 푹 쉬면 안 돼?”서유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배서준을 올려다봤다.그 애처로운 눈빛에 배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렸다.“알겠어, 네 말대로 할게.”결국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라는 곧장 환하게 웃으며 배서준을 꼭 껴안았다.“역시 나를 제일 아껴주는 사람은 서준이 너야.”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지만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회사의 상황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남설아와 송우민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 중이었다.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내부는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대로라면 배건 그룹은 정말 그의 손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서유라의 모습을 보면 차마 그녀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배서준의 가슴속은 끝없는 갈등과 번민으로 뒤엉켰고 도대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그때, 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엔 천기준이었다.배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천기준의 목소리엔 조급함과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지금 회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에요. 주주들도 다 대표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나, 나도 지금...”배서준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서유라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낚아챘다.한편, 천기준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 소리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리찍을 듯 내려놓으며 이를 악물었다.“이 서유라란 여자는 정말 재앙이라니까!”천기준은 이를 갈듯 말했다.“배 대표님도 왜 저 여자 말만 듣는 건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나?”곁에 있던 다른 비서도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천 비서님,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주주들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설명할 방법이 어딨어요...”천기준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
“네, 송 대표님!”모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고 회의실 안은 결의에 찬 열기로 가득 찼다.송우민의 지휘 아래 남설아의 회사는 굶주린 늑대처럼 배건 그룹의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어갔다.배건 그룹의 주가는 연일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크게 줄어들며 내부 분위기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흩어진 조직력에 동요하는 임직원들 사이로 불만이 번졌고 결국 주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서준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배 대표님, 도대체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한 주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회사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에요! 더 늦으면 정말 끝장납니다!”“맞아요, 대표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회복 불가능합니다!”또 다른 주주도 강하게 덧붙였다.“지금 당장 돌아와서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끊임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배서준은 머리를 싸매고 이마를 짚었다.그 역시 당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서유라였다.그녀는 절대 그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서준아, 가지 마...”서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운 채 배서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나 너무 힘들어. 옆에 있어 줘야 버틸 수 있어.”“유라야, 네가 힘든 거 알아. 하지만 회사도 지금...”배서준은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몰라!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곁에 있어 주는 거야! 너 없이 나는 단 하루도 못 버텨!”서유라는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그런 말 하지 마.”배서준은 가슴 아프다는 듯 그녀를 껴안았다.“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지. 하지만 회사 쪽 상황도 정말 더는 미룰 수가 없어.”“결국 날 버릴 거지? 날 두고 가겠다는 거잖아!”서유라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말했다.“내 몸은 누가 챙겨? 나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해... 넌 가면 안 돼!”“유라야, 그러지 마.”결국 배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을게. 회사 일은 전화랑 화상회의로 처리할 테니까 괜찮지?”“진짜지?”서유라는 눈물로 젖은 눈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