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배서준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모르겠다고?”송우민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배서준, 네가 저지른 일들이 그렇게 완벽하게 숨겨졌다고 생각했나?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너의 그 더러운 짓들 다 알고 있다는 거 이제는 좀 알아둬. 그러니까 나한테 더 이상 시비 걸 생각하지 마. 안 그러면 그 모든 진실을 세상에 까발릴 거야. 너를 완전히 끝장내버릴 거라고.”배서준의 몸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송우민을 바라보며 눈빛은 점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겉보기엔 가볍고 유쾌한 놈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서운 사람일 줄은 몰랐다.“너...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배서준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간단해.”송우민이 말했다.“남설아한테서 떨어져. 그 여자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여자가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배서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언제든지 덤벼.”송우민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심히 말했다.“하지만 그 전에 네가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부터 하는 게 좋을 거야.”배서준은 송우민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우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는 배서준이 절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자신이 남설아에게 다가간 것도 순전히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하나는 배서준에게 철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남설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배서준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기어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남설아를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그래서 그는 먼저 움직여야 했다.그 시각, 강연찬 또한 송우민과 배서준 사이의 갈등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는 남설아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걸 직감했다.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남설아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입찰회 전날 저녁, 남설아의 병실 안엔 은은한 소독약 냄새가 감돌았고 창밖에서는 도심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강연찬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였다.남설아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있었고 아직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맑고 단단했다.“설아야, 이게 최종안이야. 다시 한번 봐줘.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줘.”강연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설아는 서류를 받아 꼼꼼히 넘겨보았다.“오빠, 이거 이미 몇 번 검토했어. 문제없어.”남설아는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입찰,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돼?”“백 퍼센트야.”강연찬은 단호하게 말했다.“기술적인 면이든, 사업성에서든, 우리 제안은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해. 특히 네가 제안한 개선안들은 완전히 신의 한 수였어.”남설아는 미소를 지었다.“그건 다 배서준의 천 비서님 덕분이야. 배건 그룹 내부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입찰회 당일, 회의장은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각 기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모두 진지한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그들의 눈빛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남설아와 강연찬은 나란히 서 있었다.단정한 정장을 갖춰 입은 두 사람은 자신감과 노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설아야, 준비됐지?”강연찬이 조용히 물었다.“응.”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완벽히 준비됐어.”“좋아. 그럼 시작하자.”강연찬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남설아의 발표는 조리 있고 명확했으며 그녀의 전문성과 프로젝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그녀는 자신들의 제안을 세세히 설명했고 배건 그룹 제안서의 여러 문제점을 명확하고 근거 있게 짚어냈다.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고 그녀의 발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그때 서도현이 계획된 행동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남설아를 비난하기
“왜요, 서도현 씨? 증거 공개하는 게 겁나시나요?”남설아는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날카롭게 말했다.“아니면 그 이른바 증거라는 게 애초에 조작된 거라서 그런가요?”“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서도현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내가 무슨 증거를 조작했다는 거예요? 이 자료는 확실한 증거예요. 남설아 씨가 표절한 게 분명하다고요.”“그렇다면 서도현 씨.”남설아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그 자료를 여기 있는 모든 분께 공개해주세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니 진짜와 가짜쯤은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을 거예요.”서도현은 잠시 망설였다.그도 알고 있었다. 그 증거라는 문서는 정밀하게 검토하면 금세 허점이 드러날 허술한 자료였다.하지만 그렇다고 내놓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그때 강연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설아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남 대표님, 제가 입수한 자료입니다. 아마도 서도현 씨의 ‘증거’가 조작된 것임을 입증해줄 수 있을 겁니다.”남설아는 그 서류를 받아들고 빠르게 훑어본 뒤, 고개를 들고 서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도현 씨, 이제 더 하실 말씀이 있는가요?”서도현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제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애초에 그가 들고 온 증거라는 문서는 서유라가 시켜서 조작한 가짜였다.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입찰 현장에서 남설아를 몰락시키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천기준이 뒤에서 몰래 증거를 수집하고 있었고 그걸 강연찬에게 넘겨준 것이다.결국 모든 음모는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다.“나... 나는...”서도현은 말을 더듬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서도현 씨.”남설아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증거를 조작하고 타인을 모함하다니. 그런 비열한 행동이 부끄럽지도 않나요?”“됐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남설아는 그의 말을 잘랐다.“여기 계신 모
“서유라, 넌 졌어.”남설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서유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널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그래?”남설아가 차갑게 웃었다.“그럼 기다릴게. 하지만 충고 하나 하지. 애초에 넌 내 상대가 안 돼.”“너!”서유라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지만 더는 할 말이 없었다.“서유라, 마지막으로 경고할게. 또 무슨 수를 쓰려한다면 그땐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남설아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걸어 나갔다.서유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노했다.이번엔 정말 완패였다. 철저히 완벽하게 졌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남설아, 두고 봐.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서유라는 이를 갈며 되뇌었다.하지만 서유라가 아무리 분해하고 증오한들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남설아는 이번 프로젝트를 따냈고 이 싸움의 첫 라운드에서 확실히 승리를 거뒀다.남설아는 프로젝트 후에도 승리에 도취하지 않았다.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고 진짜 복수는 이제 막을 올렸을 뿐이었다.그녀는 배서준과 서유라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었다.그리고 나은을 위해 정의를 되찾을 것이다.병실로 돌아온 남설아는 침대에 앉아 나은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그리움과 따스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나은아, 엄마가 이겼어. 드디어 조금이나마 네 억울함을 풀었어.”남설아의 목소리는 울먹이며 떨렸다.“보았지? 엄마가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해냈어.”하지만 곧 그녀의 눈빛이 단호하게 바뀌었다.“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아주 많이 부족해. 배서준과 서유라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그들이 저지른 모든 일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어.”회사로 복귀한 남설아는 곧바로 핵심 팀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회의실 분위기는 팽팽하고 무거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여러분, 프로젝트는 따냈지만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입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정말 시간이 안 나.”배서준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에 바쁠 때만 지나면 너한테 더 신경 쓸게.”“하지만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서유라의 눈에는 아쉬움이 스쳤다.“예전에는 내가 너한테 항상 제일 먼저였는데 요즘은 늘 뒷전이야.”“유라야, 나 좀 이해해줘.”배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은 위기야. 내가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회사를 지킬 수 없어.”“그래도 그렇지. 회사 일 때문에 나한테 소홀히 하면 어떡해.”서유라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널 잃을까 봐 얼마나 두려운지 알아?”“유라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너한테 변한적 없어.”“그럼 증명해 봐.”서유라가 갑자기 소리쳤다.“지금 당장 남설아랑 완전히 인연 끊어. 아예 선을 그어버려.”“유라야, 그만 좀 해.”배서준의 표정이 굳어졌다.“나랑 남설아 사이 일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뭐가 단순하지 않은데?”서유라가 한 발씩 다가섰다.“혹시 아직도 남설아한테 미련 있는 거야? 아직도 마음이 남아 있는 거야?”“그만하자.”배서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제발 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어?”“내가 이성적이지 않다고?”서유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난 그냥 네가 날 조금만 더 챙겨줬으면 했을 뿐이야.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 줬으면 해서 그래.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네 잘못은 없어. 잘못한 건 나야. 됐지?”배서준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근데 나 지금 정말 피곤해. 제발 잠깐만이라도 나 좀 조용히 내버려 두면 안 돼?”서유라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서준은 깊은 혼란에 빠졌다.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그저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고 서유라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서유라가 울면서 떠난 후 배서준은 가슴이 뭔가에 막힌 듯 답답하고 무거웠다.그는 혼자 술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조명, 시끄러운 음악, 그런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만 잠시나마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술을 잇달아 들이켰고 술로 자신을 마비시키려 애썼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남설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웃음, 눈물, 단호했던 눈빛...“젠장.” 배서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잔을 비웠다.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예전에는 남설아에게 혐오밖에 없었는데 왜 요즘은 그녀가 자꾸 생각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그리워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한편, 남설아는 사무실에서 송우민과 함께 다음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배서준은 의심이 많아.”남설아가 말했다.“그 점을 이용해서 배서준과 서유라 사이에 틈을 만들 수 있어.”“어떻게 할 생각이야?”송우민이 물었다.“간단해.”남설아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은 채 송우민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몇 마디를 속삭였다.송우민은 말을 들은 뒤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이건 꽤 독하네.”“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강하게 나가야 해.”남설아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그들도 배신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봐야지.”그때 강연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는 입찰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남설아에게 식사를 제안했다.“설아야, 지금 어디야? 나랑 밥 먹자. 오늘은 축하해야지.”“좋아, 오빠.”남설아는 흔쾌히 대답했다.“어디 계세요? 제가 갈게요.”“네가 있던 병원 근처 그 레스토랑. 거기서 기다릴게.”“금방 갈게.”전화를 끊은 남설아는 송우민에게 말했다.“나 먼저 나갈게. 계획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해.”“그래. 조심히 다녀와.”송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강연찬은 이미 음식을 주문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설아야, 이 집 스테이크 정말 맛있어. 어서 와서 먹어봐.”강연찬은 웃으며 말했다.“오빠, 고마워.”남
“나...” 배서준은 변명하려 했지만,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배서준 씨, 분명히 말할게요.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어요.”남설아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결연했다. “다시는 나한테 얽히지 마요. 서준 씨만 보면 역겨워요.”“남설아, 너...” 배서준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남설아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뚝 끊긴 전화 너머의 기계 소리를 들으며 배서준의 가슴은 찢어진 듯 아파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서유라는 배서준이 술에 취한 채 남설아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속에 질투와 원망이 더 짙어졌다.이후 남설아의 회사는 시장에서 빠르게 세를 넓혀갔고 배서준의 회사는 연이어 밀려났다.배서준은 점점 궁지에 몰렸고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천기준을 의심했다. 회사 기밀이 샌 건 틀림없이 천기준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천 비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배서준은 문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왜 우리 고객이 남설아한테 넘어가는 거지? 왜 우리 계획이 남설아한테 미리 알려지는 건데?”“대표님, 저는...” 천기준이 해명하려 했지만, 서유라가 말을 끊었다.“서준아, 천 비서님 탓하지 마.”서유라가 말했다.“아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남설아가 워낙 교활하잖아. 그 여자한테 속았을 수도 있지.”서유라는 싸늘한 눈빛으로 천기준을 쳐다보며 배서준을 끌고 나가려 했다.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 천기준은 배서준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그 말을 남기고 그는 사무실을 떠났다.천기준이 나가자 서유라의 눈에는 잠시 만족스러운 빛이 스쳤다.계획이 제대로 먹혔다. 배서준과 천기준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천기준을 완전히 내칠 수 있었다.한편, 천기준은 결국 남설아 쪽으로 돌아섰다.그는 배건 그룹에 관련된 모든 기밀 정보를 남설아에게 넘기며 그녀가 배서준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탰다.배서준은 남설아를 찾아가 더 이상 배건 그룹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배서준이 떠난 뒤, 남설아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배건 그룹 관련 자료를 바라보고 있었고 눈빛이 복잡했다.지금까지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천기준이 제공한 정보와 송우민의 보이지 않는 지원 덕분에 배건 그룹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하지만 남설아의 마음에는 복수의 통쾌함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깊은 피로와 혼란만이 남아 있었다.갑작스레 울린 전화벨 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남설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발신자 표시에는 송우민의 이름이 떠 있었다.“여보세요.” 남설아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나야.” 송우민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오늘 저녁 시간 돼? 같이 저녁 먹자.”“무슨 일 있어?” 남설아가 물었다. 지금은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배서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있어. 직접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송우민의 말투가 꽤 진지했다.남설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승낙했다.“알겠어. 주소 보내줘.”그날 저녁, 남설아는 송우민이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그곳은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되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인테리어는 우아하고 분위기는 조용했다.송우민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왔어?” 송우민은 남설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사적으로 의자를 빼주었다.“응.”남설아는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그 새로운 정보라는 게 뭐야?”송우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남설아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예전에 배서준이 우리 부모님을 파산시킨 것과 관련된 증거를 찾았어.”남설아의 시선이 진지해지며 송우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무슨 증거?”“몇몇 재무제표와 계좌 이체 명세.”송우민은 가방에서 한 묶음의 서류를 꺼내 남설아에게 건넸다.“이 문서들로 배서준이 부당한 방법으로 우리 집안을 악의적으로 인수하려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 그로 인해 우
서유라는 싸움에서 진 사람처럼 기가 죽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배서준의 이미지도 사람들 눈에 한순간에 추락했고 그는 무척이나 난처하고 부끄러웠다.그는 점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만약 그때 남설아와 이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초라해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연회가 끝난 뒤 배서준과 서유라는 함께 차에 올랐다.“서준아, 미안해.”서유라는 고개를 숙인 채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오늘 내가 괜히 설아 씨한테 차를 우리라고 제안했어. 설아 씨가 그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너 잘못 아니야.”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피곤한 어조로 말했다.“남설아가 괜히 잘난 척을 한 거지.”그는 서유라가 마음 아파하는 게 안쓰러워 모든 잘못을 남설아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그래도 난 아직도 미안해.”서유라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내가 너를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게 했잖아.”“바보야, 네 탓이라고 한 적 없어.”배서준은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배서준의 품에 안겼다.하지만 배서준의 마음은 딴 데로 향하고 있었다.그는 과거의 남설아를 떠올리고 있었다.한때 그녀는 단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매일 자신과 아이만 바라보며 살아가던 그녀가 도대체 언제 다도를 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다도 실력이 이 정도라니, 서 회장 부부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지금 저 여자가 내가 알던 남설아가 맞는 건가?’그는 마음속 깊이 혼란스러웠다.남설아는 분명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이 쉽게 이해하거나 조종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서유라는 배서준의 시선이 자꾸만 허공으로 향하는 걸 느끼고는 그가 또다시 남설아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그녀의 마음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그녀는 반드시 이 둘의 접촉을 막아야만 했다.‘남설아, 가만 안 둬. 네가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서유라는 속으로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그녀의
“서 회장님, 사모님, 과찬이세요.”남설아가 겸손하게 말했다.“그냥 가볍게 내린 것뿐이에요.”“남 대표 너무 겸손하시네.”서기찬이 말했다.“이건 아무렇게나 내려서 나올 맛이 아니야. 확실히 기본기와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그러게요, 설아 씨.”차혜미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차 내리는 솜씨가 정말 대단해요. 제가 제자로 들어가고 싶어질 지경이에요.”“사모님, 또 농담하시네요.”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이런 사소한 재주가 어찌 사모님의 눈에 찰 수 있겠어요?”“설아 씨가 너무 겸손하신 거예요.”차혜미는 찻잔을 바라보며 더욱 남설아에게 호감을 드러냈다.“차를 이렇게 잘 내리시는 걸 보니 정말 감탄밖에 안 나와요.”“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남설아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유라는 마음속에 질투심이 더욱 불타올랐다.남설아가 이렇게까지 다도에 능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자신이 의도한 모욕은커녕 오히려 남설아는 그 자리에서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칭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서유라는 쉽게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설아 씨의 다도 실력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듣기로 다도도 여러 유파가 있다고 하던데 설아 씨는 어느 쪽이야?”그녀는 남설아의 다도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체계 없는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암시하고자 했다.“특정 유파를 따로 배우진 않았어.”남설아는 침착하게 말했다.“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내 느낌에 따라 우려내는 것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시 비웃듯 말했다.“그럼 설아 씨만의 파가 생긴 거네? 대단해.”그녀는 남설아만의 파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남설아의 다도가 비전문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유라 씨, 또 농담하네.”남설아는 작게 웃으며 조롱이 섞인 말투로 답했다.“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일 뿐이야. 감히 한 유파라니.”“남 대표님 너무 겸손하세요.”차혜미가 곧장 나섰다. 그녀는 서유라의 말에 담긴 악의를 알아차리고
“고마워.”남설아가 말했다.“설아 씨, 예전에 서준이 곁에 있을 때도 이렇게 늘 꾸미고 다녔어?”서유라가 불쑥 물었다. 말투에는 살짝 떠보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남설아가 한때 배서준의 곁에 있었던 시절을 언급하며 남설아의 과거를 상기하려 했다.남설아는 서유라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농담이 지나치네. 그때의 나는 그저 서준 씨의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했을 뿐이야.”“그래?”서유라는 다소 우쭐한 말투로 말했다.“나는 설아 씨가 차를 따라주고 시중드는 데 능한 줄 알았어. 내조를 하는 데는 정성이 필요하잖아?”그녀는 차를 따라주고 시중든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해서 말하며 남설아를 모욕하려 했다.“유라 씨 말이 맞아. 내조를 하는 데는 정말 정성이 필요해.”남설아는 차분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사업을 하는 데 더 능한 편이야.”“그래?”서유라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럼 오늘 설아 씨가 잘해야겠네. 여기 모인 분들 다 업계 내로라하는 분들이니까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겠어.”“걱정해줘서 고마워, 유라 씨.”남설아는 작게 미소 지으며 빈정거림이 담긴 말투로 답했다.“하지만 나는 유라 씨를 실망하게 할 일은 없을 거야.”“그래야지.”서유라는 속으로 비웃으며 남설아가 뭘 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는 듯 말했다.“설아 씨, 차 따르는 데 능하다니까 오늘 여기서 차 한 번 내려보지?”서유라가 제안했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묻어 있었다.“여기 좋은 차도 있고 멋진 다기 세트도 있어. 설아 씨의 손재주로는 딱 어울릴 것 같네.”그녀는 손재주라는 말을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며 남설아를 하찮은 시중 드는 사람으로 몰아가려 했다.하지만 남설아는 그런 의도를 바로 눈치챘음에도 전혀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도전을 받아들였다.“좋아, 유라 씨가 이렇게 운치 있는 제안을 하니 한 번 해볼게.”남설아는 여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다만 한 가
연회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손님들은 잔을 부딪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수정 샹들리에는 부드러운 빛을 뿜어내며 연회장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남설아와 강연찬이 연회장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춤을 추기 시작했다.강연찬은 부드럽게 남설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를 이끌며 연회장에서 빙그르르 돌았다.남설아의 스텝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마치 나비가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 자락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며 활짝 핀 제비꽃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호흡은 놀라울 만큼 잘 맞았고 모든 동작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그들의 춤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었고 단숨에 연회장의 중심이 되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배서준은 남설아의 모습을 눈을 떼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강연찬의 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띠며 춤을 추는 남설아를 바라보며 설명하기 힘든 질투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오며 배서준은 생각에서 깨어났다.그녀는 배서준의 달라진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함을 느꼈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감추려 애썼다.“서준아, 혹시 아직도 남설아 생각하고 있는 거야?”서유라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말투에는 질투심이 스며 있었다.“아니야.”배서준은 날카롭게 부인했다.“서준아,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서유라는 약간 서운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마음속에 아직 그 여자가 있는 거 알아.”“유라야,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배서준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터무니없는 소리 아니야.”서유라는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며 말했다.“서준아, 혹시 후회하는 거야? 나랑 있는 거 후회해?”“유라야, 그런 거 아니야.”배서준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들며 말했다.“후회하는 건 아니야. 그냥... 머릿속이 좀 복잡해.”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척 심란했다.“서준
“나는 그냥 여자는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유라는 약간 우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결국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여자의 본분이잖아.”“유라 씨 생각은 꽤 보수적이네.”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그래? 그럼 설아 씨는 여자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보는 거야?”서유라는 다소 공격적인 어조로 물었다.“여자는 자립심을 가지고 자기 일과 꿈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남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남자에게 의지하거나 남자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되지.”“설아 씨 생각 참 특이하네.”서유라는 차가운 비웃음을 지었다.“근데 나는 여자가 너무 강한 것도 별로라고 생각하거든.”“강한 게 나쁘고 약한 건 좋은 건가?”남설아가 되물었다.“유라 씨는 자신이 어떤 쪽이라고 생각해?”“나는...”서유라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만해, 유라야. 그만 말해.”배서준이 더는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사람마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 거고 우리는 그걸 존중해야 해.”“서준아, 나는 그냥...”서유라는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배서준이 말을 잘랐다.“됐어, 그만하자.”배서준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우리 저쪽 가보자.”서유라는 배서준이 화가 난 걸 눈치채고 입을 닫았다.그녀는 남설아를 노려보듯 쏘아보더니 배서준을 따라 자리를 떴다.남설아는 그런 서유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음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서 회장 부부와의 대화에 집중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제가 하나 제안해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혹시 들어보실 의향 있으신가요?”남설아가 말했다.“오? 무슨 제안인가요?”서기찬이 흥미롭게 물었다.“저는 두 분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남설아는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그 프로젝트는...”그녀는 자세하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고 서 회장 부부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남 대표님의 아이디
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배서준과 서유라를 한번 훑고 지나갔다.“정말 우연이네.”“배 대표님, 요즘 회사는 잘 돌아가시죠?”강연찬이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럭저럭요.”배서준은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다행이네요.”강연찬은 짧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주변 공기가 어색해졌다.“자, 다 같이 한잔하시죠.”서기찬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앞으로의 좋은 협력을 위해!”“건배!”사람들은 일제히 잔을 들어 마셨다.파티는 계속 이어졌고 남설아와 강연찬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많은 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협력할 기회를 엿보려 했다.배서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서준아, 무슨 생각해?”서유라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깨뜨렸다.“아무것도 아니야.”배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우리 저쪽도 좀 둘러보자.”“응.”서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배서준이 도망가기라도 하는 듯 배서준의 팔을 꼭 끼고 있었다.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지만 끝내 이 열기 속에 어울리지는 못했다.배서준은 이미 마음이 떠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남설아 쪽으로 향했다.반면 서유라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주변의 시선과 부러움을 즐기며 자부심에 젖어 있었다.남설아는 능숙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뛰어난 사교 능력과 비즈니스 감각을 드러냈고 강연찬은 항상 그녀 곁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서유라는 그런 광경을 보며 더욱 만족스러워했다.배서준의 팔을 끼고 있는 자신이 마치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하지만 차혜미가 자신에게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남설아에게는 유난히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불쾌한 기분이 들고 질투심이 일었다.“사모님, 남설아 씨랑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서유라는 조심스레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네, 설아 씨와는 좀 됐죠.”차혜미는 예의를 갖춰 대답했지만 더 이상 깊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설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