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기양은 갑자기 강만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당장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손량언이 황제 일행이 도성 근처에 도착했다며 마중 나가겠냐고 물었으나, 기양은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말만 남기고 급히 왕부로 달려갔다. 그는 바람과 눈을 뚫고 아능로 들어갔다. 병풍을 돌아 회랑을 지나, 꽃무늬 문을 거쳐 후원으로 향했다. 강만여가 머무는 마당에 들어서자,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마당의 배나무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꼭 꽃이 다시 핀 것 같았다. 나무 아래, 그녀가 흰 여우 털이 달린 붉은색 망토를 입고 불룩한 배를 감싼 채 하얀
기망은 하소연이 통하지 않자, 황제 자리로 기양을 유혹했다. “네가 언제 황제 노릇을 해보겠느냐? 이번 기회에 황제 기분 좀 내봐.” 기양은 콧방귀를 뀌며 관심 없다고 했다. 결국 기망은 최후의 수단으로 눈물 작전을 펼쳤다. 콧물 눈물 다 짜며 울어대자, 기양은 어쩔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기양은 기망을 위한 여행 경로까지 친절히 짜주며, 강만여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준비를 마친 기망은 조회에서 황후와 함께 전국을 시찰하며 민심을 살피러 갈 것이니, 국정은 당분간 소요왕에게 맡기겠다
서청잔은 지금의 충족한 삶이 만족스러웠고, 억지로 감정의 공백을 메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인연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정안 태비는 제일 늦게 나가며 기양에게 단호하게 일렀다. “첫 석 달이 가장 중요하니 조심해야 한다. 피 끓는 청년처럼 탐욕스럽게 굴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기양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태비는 강만여에게도 당부했다. “이번엔 꼭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저 녀석이 고집부리게 두지 말고, 말을 안 들으면 내게 말해라. 내가 혼내줄 테니.” 강만여
“그거면 됐다.” 기양은 안심했다. “회임해서 속이 울렁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을 시켜 식단을 조절해 주마. 집안에 늘 상큼한 과일과 채소, 간식을 준비해 두라 일러둘 테니, 생각날 때면 먹거라. 너도 조심해야 한다. 이제 함부로 돌아다니거나 술을 마셔선 안 돼.” 말을 마친 그는 곁에 서 있는 서청잔과 심장안을 돌아보았다. “너희 둘, 다시는 이 아이를 데리고 술 마시러 가면 안 된다, 알겠느냐?”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점에 도착하자마자 왕비 마마께서 술 냄새를 맡
기양이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손량언이 복도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형제에게 절을 올렸다. “황제 폐하, 소요왕 전하, 경하드립니다. 왕부에 곧 어린 주인님이 생기겠군요. 나중에 성모 황태후 마마께 향을 올리러 가겠습니다. 태후 마마께서도 하늘에서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손량언은 성모 황태후의 부탁을 잊지 않았다. 기양 또한 좋은 일이 생기면 성모 황태후부터 떠올리는 그의 행동에 익숙했다. 게다가 오늘의 일은 천지개벽의 큰 경사였고, 기양도 반대할 리 없었다. 그는 미소를
“내가 그랬었나?” 기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언제 그랬지? 난 기억이 안 나는데.” 기망은 즉시 발끈했다. “어디서 수작이야, 분명 약속했다. 모르는 체할 생각 마라.” 기양은 모른 척 안 넘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달래듯 말했다. “사실 바깥을 돌아다녀 봤는데 별 게 없더구나. 종일 배 타고 말 타느라 고생만 하지, 집에서 쉬는 게 최고인 것 같았다. 정말이니, 한 번 믿어봐.”기망이 대꾸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긴. 재미없는데 이제서야 와? 당장 약속이나 지
건청궁 앞마당도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마침, 오늘은 휴일이라 기양은 조회를 나가지 않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소복자는 밖에 눈이 오니 옷을 더 챙겨 입으라고 기양에게 권했고, 문을 나서기 전에는 남색 곤룡포 위에 여우 털 도포를 한 겹 더 걸쳐 주었다. 대전을 나서자 눈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설영은 몇 명의 궁녀들을 이끌고 문밖에서 침전을 정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설영은 기양을 마주하자, 무릎을 꿇었다. “폐하.”기양은 걸음을 멈추고, 뒷짐을 진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설영이 말했다. “쇤네 내일이면
세 사람은 침묵했고, 한참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직 바람이 눈송이를 휘몰아치며 울어댈 뿐이다. 기양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매 속에 감춘 손을 계속해서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너무나도 평온한 그녀의 시선 때문에 기양은 더욱 불안했다. 그가 아무리 언관 못지않은 입담을 가졌다 해도, 이 침묵을 깰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결국 소복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마마, 어찌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강만여의 시선이 소복자에게 향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모자에 달린 하얀 여우 털에 둘러싸여 더욱
사람들은 그제야 모든 것을 눈치챘다. 방금 쏘아 올린 화살은 심장안이 쏜 것으로, 세 사람은 합동 작전을 펼쳤다. ‘서로 어떤 합의도 없이 이렇게 정확하고 빈틈없이 협력할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호흡인가?’‘그리고 정비 본인은, 마주 날아오는 두 개의 날카로운 화살을 보고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만큼, 그들을 신뢰했던 것인가?’만약 그녀가 놀라서 피하려고 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였다면, 두 개의 화살 중 하나가 그녀에게 맞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승건궁은 혼란에 빠졌다. 궁녀와 내관들이 분주히 오가며 뜨거운 물, 수건, 인삼차와 산달을 재촉하는 탕약을 날랐다. 산실에서는 강만여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간헐적으로 새어 나왔고, 태의는 병풍 너머에서 산파와 의녀들에게 그녀의 출산을 돕도록 지휘하고 있었다.서청잔은 오늘 외부 업무를 보러 나갔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궁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조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그는 기양이 마당 한가운데에 뒷짐을 진 채 심각 표정으로 침전의 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눈송이가 온몸에 소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