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이른 아침, 세면대 거울 속을 들여다보던 혜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목덜미부터 쇄골, 그리고 가슴 윗선까지 빈틈없이 번져 있는 붉은 흔적들.마치 짐승이 제 영역을 표시하듯 거칠게 짓이겨놓은 잇자국과 농염한 키스마크였다.지난밤, 지상 200미터 허공 앞에서 유리창 하나를 앞에 두고 온몸으로 받아냈던 남자의 절박한 무게감이 살갗 위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귓가에 내려앉던 낮고 뜨거운 목소리.'울지 마…… 서혜진.'달콤하면서도 강한 집착을 품었던 그 속삭임이 환청처럼 고막을 긁어댔다."우욱……."참을 수 없는 헛구역질과 함께 지독한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평생을 엄격한 원칙과 결벽에 가까운 도덕성으로 살아온 삶이었다.가장 청렴해야 할 보호관찰관이 피감독자의 품에 안겨 신음을 흘리고, 스스로 공범의 족쇄를 차다니.스스로가 끔찍할 만큼 경멸스러웠다.하지만 그 끔찍한 자괴감 뒤편으로, 남자의 품에서 속절없이 터져 나왔던 야릇한 열감이 여전히 아랫배 안쪽을 뻐근하게 조여오고 있었다.뜨거운 물로 몇 번이나 흔적을 문질러 씻어내도, 남자의 짙은 체향은 지워지지 않았다.혜진은 떨리는 손으로 옷장 깊숙한 곳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목선을 턱밑까지 빈틈없이 감싸는 짙은 색 터틀넥에, 구김 하나 없는 단정한 정장 재킷.그리고 한 올의 잔머리도 남기지 않고 단단하게 틀어 올린 머리와 차가운 무테안경.완벽한 보호관찰관의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현관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허벅지 안쪽을 찌르는 뻐근한 통증은 감출 수 없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좁은 틈새를 사정없이 파고들던 남자의 단단한 육체와 귓전을 짓이기던 거친 숨결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법무부 산하 서울중앙보호관찰소 특수관찰팀 사무실.업무의 특성상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돌아가는 곳이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며 혜진은 바닥만을 응시했다.아무도 모르게 타오른 배덕의 낙인이 옷감 안쪽에서 화끈거리며 숨통을 죄어왔다."하아……."간신히 탕비실로 숨어들어
차가운 유리벽에 뺨과 가슴이 속절없이 짓눌렸다.바닥에 내팽개쳐진 공무원증 위로 희미한 서울 도심의 불빛이 스산하게 내려앉아 있었다.등 뒤에서는 태하의 거대한 열기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 혜진의 온몸을 빈틈없이 결박해 왔다.지상 200미터 허공 아래로 펼쳐진 아득한 심연.발밑이 푹 꺼지는 듯한 공포 속에서, 혜진의 귓가로 남자의 거친 숨결이 화상처럼 쏟아져 내렸다."내 결백을 밝힐 수 있게 도와줘. 안 그러면 매일 이렇게 당신을 호출할 테니까."협박의 탈을 쓴 애원에 가까운 울림이었다.등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남자의 심장 박동은 미친 듯이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세상에 홀로 버려진 채 벼랑 끝에 몰린 맹수가,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온기를 갈구하듯 혜진의 목덜미에 젖은 이마를 묻어왔다.이 남자를 밀어내야 한다는 공직자로서의 이성이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살결을 꿰뚫고 들어오는 생생한 절박함에 아랫배가 속절없이 저릿하게 조여들었다.수치심과 배덕감이 뒤엉킨 채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이러지…… 마요, 태하 씨…… 읏!"간신히 내뱉은 거부는 애원조차 되지 못했다.태하는 유리창을 짚고 있는 혜진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거칠게 움켜쥐어 벽면에 고정했다.꼼짝없이 결박당한 자세로, 남자의 단단하고 뜨거운 중심이 이미 흠뻑 젖어 든 좁은 틈새를 가차 없이 비집고 들어왔다.천천히, 그러나 피할 틈도 주지 않는 압도적인 깊이감이었다."하아……! 흡……!"혜진의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오려 하자, 태하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바퀴를 집요하게 빨아들였다.여린 살갗을 짓이기듯 핥아 올리는 농밀한 혀의 감촉에 혜진은 유리창에 이마를 박은 채 잘게 몸을 떨었다.수만 개의 불빛이 일렁이는 창밖 허공에 제 치부가 낱낱이 드러난 기분이었다.밖에서는 결코 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 세상 앞에 발가벗겨진 채 남자를 받아내고 있다는 착각이 뇌수를 찔렀다."참지 말고…… 소리 내."태하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
태하의 거친 손길이 혜진의 손목을 틀어쥔 채 거실 중앙을 가로질렀다.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는 난폭한 이끌림 끝에 닿은 곳은, 아찔한 서울 도심의 야경이 발밑으로 까마득하게 펼쳐진 지상 200미터 높이의 거대한 통유리창 앞이었다. "이거 놔요……! 당장 놓으라고!" 혜진이 필사적으로 몸을 뒤채이며 버텼지만, 태하는 그녀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결박해 차가운 유리벽 위로 가차 없이 밀어붙였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닿은 유리의 서늘한 냉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등뒤에서는 남자의 거대한 체구가 한 치의 틈도 없이 짓눌러왔다. 발밑으로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차량들의 붉은 불빛이 장난감처럼 아득하게 기어지고 있었다. 새까만 허공 한가운데 내던져진 듯한 극단적인 공포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당신이 억울하든 말든, 그건 법정에서 따질 일이에요! 나한테 이러는 건 명백한 범죄라고요!" 혜진은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억누르며 악을 썼다. 조금 전 거실 테이블에서 보았던 조작된 서류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그렇다고 이 남자의 난폭함이 정당화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태하는 혜진의 분노와 상관 없다는 듯 비웃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법정?" 태하의 낮게 긁히는 음성이 혜진의 귀를 파고들었다. 등 뒤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남자의 뜨거운 열기와 거친 호흡이 혜진의 목덜미를 화상이라도 입힐 듯 했다. "그 알량한 법이 날 이 밀실에 처넣었어. 증거를 조작한 내 형의 손을 들어주고, 날 망나니 범죄자로 낙인찍은 게 바로 그 잘난 법이라고." 남자의 억센 손가락이 혜진의 턱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덕분에 강제로 고개가 꺾이며, 태하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안에는 상처 입은 맹수의 처절한 마지막 발악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서류 봤잖아. 똑똑한 공무원 나으리가 보기에, 그게 진짜 내가 저지른 짓 같았나?" "……그건." "말해 봐. 내가 진짜 파렴치
"시간 딱 맞춰 왔네. 착하군."남자의 나직한 음성이 거실의 적막을 갈랐다.여유롭게 술잔을 흔드는 태하의 모습에, 혜진의 안에서 마지막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10분이라는 시간 동안 도로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며 쌓였던 공포와 굴욕감이 한꺼번에 역류했다."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목소리가 거칠게 찢겨 나갔다."나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뭐냐고! 날 협박해서 가지고 노니까 재미있습니까?"가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어깨가 사납게 들썩였다.눈가로 치받쳐 오르는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하지만 태하의 표정에는 당황이나 분노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혜진의 일그러진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태하가 손에 쥐고 있던 유리잔을 대리석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얼음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정적을 깼다.남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잘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근육으로 이뤄진 상체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짙은 체향과 서늘한 위압감이 사방에서 혜진의 숨통을 조여왔다.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태하가 혜진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차가운 벽으로 내리눌렀다."앗!"등 뒤로 단단한 벽면이 부딪치며 짧은 비명이 삼켜졌다.도망칠 틈도 주지 않고 태하가 거대한 몸으로 혜진의 전면을 빈틈없이 가로막았다.압도적인 완력과 피지컬의 차이.남자의 넓은 어깨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가슴팍이 시야를 온통 사로잡았다. 버둥거리며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한 손에 결박당한 팔은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목소리가 너무 커, 서혜진 주무관."귓가에 닿을 듯 내려앉은 태하의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낮고 서늘했다.남자의 시선이 턱 끝까지 차오른 혜진의 거친 호흡을 천천히 훑어내렸다.그리고 그 도톰한 입술이 혜진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거칠게 소리쳤던 이성의 외침과는 다르게 본능적으로 눈이 감겼다. 달콤하고 강렬한
방 안을 채우는 것은 오직 벽시계의 초침 소리뿐이었다.째깍, 째깍.신경을 긁어대는 규칙적인 소음에 혜진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방 안의 불은 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액정을 밝히고 있는 협탁 위의 검은색 단말기.마치 살아서 숨을 쉬는 시한폭탄이라도 되는 양, 그 작은 기계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왔다.'설마 진짜로 또 그럴까.'혜진은 자신을 떠보려고 던진 헛소리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수십 번도 넘게 부정과 의심이 날카롭게 부딪쳤다.그 남자는 상식과 법의 테두리를 아득히 벗어난 위험한 인물이었다.하지만 아무리 안하무인인 재벌가 후계자라 해도, 이틀 연속으로 고의적인 센서 이탈을 일으킬 만큼 미친놈일까.만약 알람이 울려도 그냥 무시해 버린다면?야간 당직팀이 출동할 것이고, 혜진은 모르는 척 내일 출근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그 남자가 점검을 나온 다른 관찰관 앞에서 어젯밤의 일을 발설한다면?낮에 마 계장의 도장을 받아낸 그 '허위 보고서'가 거짓이란걸 발각된다면?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이었다.결국 도망칠 구멍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시간은 혜진의 초조함을 비웃듯 잔인하게 흘러갔다.스마트폰 액정의 숫자가 바뀌는 순간, 혜진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정적이 방 안의 산소를 남김없이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그리고 정확히 1분이 흐른 순간.삐이이익—!어둠을 찢고 터져 나온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찔렀다.단말기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23:00 - 대상자 강태하: 피부 감응 센서 이탈 경보]진짜였다.그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약속된 시간에 센서를 비틀어 버렸다. 심장이 쿵, 하고 끝 모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관제센터에서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확인 전화가 걸려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2, 3분.혜진이 떨리는 손으로 단말기를 집어 들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협탁
"둘이 그 집에서…… 뭐 다른 얘기 한 건 없지?"마 계장의 의심 섞인 눈빛이 서혜진의 숨통을 조여왔다.심장이 바닥 끝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지만, 혜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 계장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가는 그대로 뜯어먹힐 터였다."피감독자의 반발이 거셌을 뿐입니다."혜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분했다."센서 오작동이란 사실을 알리자 그걸 핑계로 야간 방문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담당관의 권위를 시험하려는 전형적인 도발이었습니다.""그래서?""그, 그래서... 공무집행방해 및 보석 조건 위반에 따른 즉시 구인 규정을 명확히 고지했습니다. 그 후 단말기 결착 상태만 확인하고 지체 없이 철수했습니다."한 치의 빈틈도 없는 공문서 같은 대답이었다.마 계장은 혜진의 표정을 집요하게 뜯어보다가 결재 도장을 찍었다.빨간 인주 자국이 찍힌 서류가 혜진 앞으로 밀려났다."조심해. 한동그룹 관련 건은 언론에서도 엄청 주목하고 있어.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우리 팀 전체가 날아가는 거야.""명심하겠습니다."결재판을 받아 들고 팀장실을 빠져나오자, 팽팽하게 당겨졌던 다리에 맥이 풀릴 뻔했다.혜진은 휘청거리는 걸음을 다잡으며 곧장 탕비실로 향했다.문을 닫자마자 정수기 앞으로 가 찬물을 연거푸 들이켰다.터틀넥 안쪽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목덜미의 붉은 멍 자국을 쓰라리게 적셨다.달칵.그때 탕비실 문이 열리며 송주아가 유명 카페 브랜드 로고가 박힌 머그잔을 들고 들어왔다."혜진아! 너 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아니, 난 괜찮아."혜진은 황급히 컵을 내려놓으며 뒤돌아섰다."어제 강태하 집에 너 혼자 야간 점검 들어갔다며? 어땠어?"주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진짜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잘생겼지? 키도 엄청 크고, 몸도 엄청 좋아보이던데."순간 어젯밤 마주했던 남자의 튼튼하고 거대한 나신과, 귓가를 짓이기던 거친 숨결이 뇌리를 스쳤다.귀 밑이 순식간에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