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점심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하얀 눈송이들은 잿빛 하늘 아래에서 천천히 흩날리며 지붕과 담장, 마당의 나무들 위에 포근한 겨울빛을 내려놓고 있었다.세린은 두꺼운 겉옷의 깃을 여미고 마구간으로 향했다.며칠 전 청하에서 돌아온 뒤로 마구간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탓에, 오늘은 아침부터 말들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이었다.문을 열자 따뜻한 숨결이 희미한 김이 되어 피어올랐다.마구간 안에는 네 마리의 말이 나란히 서 있었다.세린이 들어오는 기척을 알아챈 듯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말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고,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 앞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잘 있었어?” 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세린은 말의 갈기를 정리해주며 몸 곳곳을 살폈다.다친 곳은 없는지, 발굽은 괜찮은지, 먹이는 제대로 먹었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 듯 작게 웃었다.“다들 괜찮네.” 네 마리의 말 가운데에는 세린이평 소 타고 다니는 말도 있었고, 청하에 맡겨두었다가 얼마 전 데려온 말도 있었다.특히 청하에 맡겼던 말은 한동안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서 있었고 걸음에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세린은 말의 앞다리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뒤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괜찮은 것 같아.”말은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세린은 웃으며 먹이를 챙겨주었다.그러다 문득 청하에서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넓은 시장에 늘어서 있던 가게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거리, 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찻집과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작은 물길까지.짧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았다.무엇보다 오랜만에 혼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세린은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그때였다. 마구
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마당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처마 끝에는 투명한 고드름이 길게 매달려 있었고, 지붕 위에 내려앉은 눈은 아침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바람이 한 번 불어올 때마다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가볍게 흩어졌다.세린은 이른 시간부터 마구간에 나와 있었다.어제 먼 길을 함께 달려온 두 마리의 말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준 뒤, 말들의 몸을 차례로 살폈다.청하에서 데려온 말은 며칠 전까지 다리를 제대로 딛지 못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도 불편한 기색이 거의 없었다.세린은 말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이제 정말 괜찮아졌네.”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며칠은 푹 쉬자. 먼 길 다녀왔으니까.”옆에 있던 다른 말도 세린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너도.” 세린은 두 마리의 말에게 번갈아 손을 내밀었다.청하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두 마리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냈지만, 막상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그 시간이 꽤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청하의 넓은 거리와 사람들.겨울 아침마다 피어오르던 가게의 따뜻한 김.시장 안쪽에서 들려오던 상인들의 목소리.그리고 작은 다리 아래로 조용히 흐르던 물소리.생각할수록 다시 가보고 싶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을 떠올리면 마지막에는 늘 같은 사람이 생각났다.진안. 세린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어제 집에 돌아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떠올랐다.청하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이야기하자 진안은 별다른 표정도 짓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가끔 질문을 던졌고, 가끔은 세린이 예상하지 못한 말로 받아치기도 했다.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와 대화하는 일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오히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세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다음에는 정말 같이 가면 좋을 텐데.”“어디를 말하는 거요?”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31화 — 돌아온 자리해가 산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 세린은 익숙한 길목에 들어섰다.겨울의 저녁은 낮보다 훨씬 빠르게 어두워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남아 있던 붉은 빛도 어느새 옅어지고, 들판에는 푸른빛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세린은 말의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청하를 떠날 때만 해도 아직 햇빛이 남아 있었는데, 어느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저녁의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앞서 가던 말의 갈기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세린은 한 손으로 고삐를 잡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말 한 마리가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청하의 마구간에서 회복을 마친 말이었다.며칠 동안 돌보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막상 데리고 돌아오려 하니 생각보다 건강한 모습이라 다행이었다.세린은 작게 웃었다.“이제 집에 가면 편하게 쉴 수 있겠네.”말은 대답 대신 낮게 숨을 내쉬었다.그 소리를 들으며 세린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이상하게도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청하는 넓고 활기찬 곳이었다.사람도 많았고, 가게도 많았으며, 처음 보는 풍경도 끊이지 않았다.하지만 그곳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나니 오히려 익숙한 집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그리고문득 진안의 얼굴이 떠올랐다.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청하에서 보았던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시장에 있던 가게들.작은 다리 아래로 흐르던 물.따뜻한 차를 내어주던 찻집.그리고 마구간에서 다시 만난 말까지.‘진안도 한번 가 보면 좋을 텐데.’그 생각을 하다가 세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가 그런 번잡한 곳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분명 금세 피곤한 표정을 지을 것 같았다.그래도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면, 의외로 조용히 들어줄지도 몰랐다.세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삐를 가볍게 당겼다.멀리서 작은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었다.세린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 왔다.”말발굽
청하를 떠난 세린은 두 마리의 말과 함께 익숙한 길을 따라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한 마리는 세린이 직접 올라탄 말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곁에서 나란히 걸으며 고삐를 잡아 이끌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청하의 마구간에서 치료를 받던 말은 이제 제법 편안한 걸음을 되찾았고, 세린이 청하로 올 때 타고 왔던 말 역시 충분히 쉬어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왔다.세린은 두 말의 상태를 번갈아 살폈다.“조금만 더 가면 쉬게 해줄게.”말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세린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었다.청하에서 보낸 며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처음에는 다친 말의 상태만 확인하고 곧장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둘러본 청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골목마다 작은 가게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가득했다.낡은 기와지붕 위에는 겨울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고, 시장에서는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작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차가운 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흘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작은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다.세린은 그 모습을 떠올리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돌아가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청하가 얼마나 넓었는지.시장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마구간에서 오랜만에 만난 말이 자신을 알아본 듯 고개를 내밀었던 일도.그리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았던 작은 다리와 겨울빛으로 물든 골목의 모습도.세린은 무심코 앞을 바라보았다.“진안도 그런 곳을 좋아하려나…….”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뒤 세린은 조금 멋쩍은 듯 입을 다물었다.왜 하필 진안이 먼저 떠올랐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그저 집에 돌아가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세린은 고삐를 살짝 움직였다.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타박. 타박.말발굽이 겨울의 마른 길을 밟을 때마다 낮고 규칙적인 소리가 울렸다.주변은 한낮보다 조용해져 있었다.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고, 나뭇가지에 남아 있던 희미한 눈가루가 바
청하의 아침은 느리게 밝아오고 있었다.겨울의 해는 늦게 떠올랐고, 아직 골목 곳곳에는 새벽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기와지붕 위에 내려앉은 서리는 희미한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고,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차가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맑은 소리를 흘려보냈다.세린은 숙소의 문을 나서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오늘은 돌아가는 날이었다.청하에 온 목적은 마구간에 맡겨 두었던 말을 데려오는 것이었다.처음 청하에 올 때 타고 왔던 말도 며칠 동안 마구간에서 쉬게 해 두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이곳에 맡겨 두었던 말은 다리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조금 더 오래 쉬게 했다.이제 두 말 모두 데려갈 때가 되었다.세린은 옷깃을 여미고 마구간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침의 청하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어제는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수레가 지나가는 소리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하나둘 문을 여는 가게들 사이로 조용한 기척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 상인이 가게 앞의 눈을 쓸어내고 있었고, 길모퉁이에서는 따뜻한 죽을 파는 노점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세린은 그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어제 하루 종일 걸었던 거리였다.어쩐지 벌써 익숙해진 것 같았다.하지만 오늘은 다시 떠나야 했다.마구간에 가까워질수록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히이잉.ㅈ세린은 그 소리에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마구간 문을 열자 따뜻한 건초 냄새와 함께 여러 마리 말의 움직임이 느껴졌다.“어서 오시오.”마구간 주인이 세린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오늘 말을 데려가려는 게요?”“네. 이제 돌아가려고요.”“그럼 두 마리 모두 준비해 두겠소.세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청하까지 타고 왔던 말이었다.며칠 동안 제대로 쉬었기 때문인지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다. 세린이 다가가자 말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잘 있었어?”세린이 목을 쓰다듬자 말이
청하의 오후는 햇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아침부터 차갑게 내려앉아 있던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하늘 높이 떠오른 햇살이 지붕과 돌길을 비추면서 거리는 한결 따뜻해 보였다.세린은 천천히 시장을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어제와 오늘 사이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오갔고, 가게 앞에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수레를 끌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품에 장을 본 물건을 안은 채 집으로 향했다.그 평범한 모습이 세린에게는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한동안 주변에 신경 쓸 일이 많았던 탓인지, 이렇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좋았다.세린은 골목 끝에 있는 작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나무로 만든 작은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새 모양의 장식도 있었고, 꽃잎을 닮은 조각도 있었다. 솜씨 좋은 사람이 하나하나 깎아 만든 듯한 것들이었다.세린은 그중 작은 나무 토끼를 집어 들었다.“귀엽네.”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생각보다 정교했다.귀 끝에는 작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가게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드나?”“네. 잘 만드셨어요.”“직접 만든 거라네.”세린은 다시 토끼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다음에 하나 사야겠어요.”“다음에 오면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먼.”세린은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그렇게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조금 물어나 있었다.건물 사이로 작은 물길이 보였다.청하를 가로지르는 물길이었다.겨울이라 물의 흐름은 여름보다 느려 보였지만, 햇빛을 받은 물결은 반짝이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세린은 다리 위에 올라섰다.난간에 손을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물 위에는 작은 나뭇잎 하나가 떠 있었다.바람이 불 때마다 천천히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다시 물살을 따라 흘러갔다. 세린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참 조용하네.”혼잣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집에 있을 때는 조용함이 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