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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장례식에 찾아온 남자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5 09:35:01

“이 사람…… 저 만난 적 있어요.”

강무겸이 내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언제입니까?”

“태광이 장례식장에서요.”

나는 사진 속 남자의 왼손을 확대했다.

손등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왔었다.

그는 영정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조문을 마친 뒤 내게 악수를 청했는데, 그때 손등의 흉터를 보았다.

“태광 씨와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했던 말이었다.

“이름은 기억하십니까?”

“잠깐만요.”

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보관해 둔 조문객 명단이 있었다.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찾았어요.”

박연호.

미술품 운송업체를 운영한다는 남자였다.

무겸이 복원 공방에서 받은 인수증을 꺼냈다.

수령인 역시 박연호였다.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군요.”

“가능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에요. 직접 만나서 확인할 거예요.”

나는 곧바로 인수증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

다음 날 오전.

박연호의 사무실은 작은 물류창고 옆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박연호 씨 맞으시죠?”

“네. 누구신데요?”

“채설주입니다. 이태광 약혼녀요.”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아…… 장례식장에서 뵀죠.”

그는 강무겸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두 분이 같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무겸이 명함을 건넸다.

“서원미술관 작품 운송 건으로 확인할 사항이 있습니다.”

박연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은 경찰한테도 다 말했습니다.”

나는 준비한 사진을 책상에 올렸다.

“이 그림을 운송하셨죠?”

“네. 제가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왜 태광이 시계를 차고 있었어요?”

남자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려다봤다.

지금은 다른 시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건…….”

“제가 선물한 시계예요. 뒷면에 이니셜까지 새겨져 있어요.”

박연호는 잠시 망설였다.

“태광 씨가 저한테 준 겁니다.”

“왜요?”

“운송비 대신 받았습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태광이가 돈이 없어서 시계로 운송비를 냈다고요?”

“그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그림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일이요.”

무겸이 바로 물었다.

“어디로 운송했습니까?”

“서원미술관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태광이가 죽은 그곳이요?”

박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는 당시 운송 기록을 확인했다.

2025년 8월 21일.

복원 공방에서 작품을 인수한 박연호는 그날 오후 서원미술관에 그림을 전달했다.

“직접 태광이를 만났어요?”

“아니요. 미술관 관리 담당자에게 넘겼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요?”

“기록에 있을 겁니다.”

박연호가 서류철을 뒤적이는 동안 나는 무겸에게 작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어떤 부분이요?”

“폐관한 미술관에 굳이 그림을 다시 가져다 놓은 거요.”

“그림의 소유권이나 보관 계약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박연호가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있네요.”

운송 확인서였다.

수령인 서명과 함께 작품의 수량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수량이 이상했다.

“2점이네요?”

내 말에 무겸도 서류를 살폈다.

“복원 공방에서 가져온 건 한 점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왜 두 점으로 기록됐죠?”

박연호가 설명했다.

“중간에 태광 씨가 다른 그림을 하나 더 맡겼습니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어떤 그림이요?”

“작은 풍경화였어요. 액자도 없이 천으로만 감싸져 있었습니다.”

무겸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진이 남아 있습니까?”

“운송할 때마다 찍어 두니까 있을 겁니다.”

박연호는 컴퓨터를 켰다.

나는 무겸과 함께 화면을 확인했다.

잠시 후 사진이 나타났다.

푸른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풍경화.

중개인이 보여줬던 '푸른 정원'과 구도가 같았다.

“이게 원래 그림이에요?”

무겸이 화면을 확대했다.

“확인하려면 실물 감정이 필요하지만 동일 작품으로 보입니다.”

나는 박연호를 돌아봤다.

“그럼 복원 공방에서 가져온 액자에는 뭐가 들어 있었어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포장된 상태였으니까요.”

두 작품이 같은 날 미술관에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붉은 드레스의 초상화로 경매에 나왔다.

다른 하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

사무실을 나왔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아 서류를 정리했다.

무겸이 옆에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차가운 거예요?”

“아이스라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지난번 북카페에서 주문하셨잖습니까.”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걸 기억해요?”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닙니다.”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기억하겠네요.”

“대부분은요.”

“당신 못 믿겠다고 한 것도요?”

무겸이 웃었다.

“그건 특히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아직 마음이 복잡했다.

“강무겸 씨.”

“네.”

“태광이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했어요?”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도망가지 않았네요.”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처음 만났던 날에는 피 묻은 셔츠만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날의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게 됐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강무겸 역시 누군가가 저지른 범죄에 휘말린 사람이었다.

“아직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고마웠어요.”

그가 나를 돌아봤다.

“그 말이면 충분합니다.”

◇

오후 3시.

우리는 경찰서에 들러 새로 확보한 운송 기록을 제출했다.

담당 형사는 자료를 비교하더니 말했다.

“운송된 작품이 2점이었다는 건 처음 확인된 사실이네요.”

나는 물었다.

“미술관에 들어간 다른 그림도 찾을 수 있을까요?”

“반입 기록과 압수물 목록부터 대조해 보겠습니다.”

무겸이 운송 확인서를 가리켰다.

“수령인 서명이 있습니다. 당시 관리 담당자의 신원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형사는 서류를 복사했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더 요청했다.

“박연호 씨가 태광이에게 시계를 받았다는 진술도 확인해 주세요. 실제로 언제 건네받았는지 중요할 것 같아요.”

“그 부분도 조사하겠습니다.”

경찰서를 나서는데 무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연호였다.

“강 감정사님, 아까 찾지 못했던 자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겸이 스피커폰을 켰다.

“어떤 자료입니까?”

“작품을 전달할 때 받은 보관 확인서입니다. 자세히 보니까 두 그림의 보관 장소가 달라요.”

나는 곧바로 물었다.

“어디에 보관했는데요?”

“하나는 204호 전시실이고요.”

“다른 하나는요?”

“지하 수장고입니다.”

무겸이 나를 바라봤다.

“수장고 번호도 있습니까?”

“B-17입니다.”

나는 메모장에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박연호가 덧붙인 말을 듣고 손을 멈췄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지하 수장고에 들어간 그림은 반출 기록이 없습니다.”

“무슨 뜻이죠?”

“서류상으로는 아직 미술관 안에 있다는 겁니다.”

나는 무겸을 바라봤다.

1년 동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림.

그 그림이 아직 미술관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강무겸 씨.”

“네.”

“서원미술관에 다시 가봐야겠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식 출입 허가부터 받겠습니다.”

나는 손에 쥔 운송 확인서를 내려다봤다.

이태광가 죽은 미술관.

그리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지하 수장고.

그곳에 우리가 찾던 그림의 진실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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