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약혼자가 살해당했다.그의 시신 옆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날 이후 내 시간은 결혼식 열흘 전, 그 밤에 멈춰 있었다.◇“설주야, 나 오늘 늦어.”오후 9시 17분. 이태광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낮았다.“또 야근이야? 내일 웨딩홀 같이 가기로 했잖아.”“알아. 오늘 중요한 사람만 만나고 갈게.”“누군데?”“만나고 나서 설명할게.”수화기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이어 낯선 남자가 말했다.“이태광 씨, 준비됐습니다.”태광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다.오후 11시 42분,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다.태광이 도시 외곽의 폐관한 미술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었다.미술관 앞에는 경찰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출입 통제선을 붙잡고 외쳤다.“이태광 약혼녀예요! 어디 있어요?”형사는 태광이 2층 비공개 전시실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얼굴만이라도 보여 달라고 매달리던 순간, 전시실 문이 열렸다.경찰관 사이로 키 큰 남자가 걸어 나왔다.하늘색 셔츠에 검은 슬랙스. 걷어 올린 오른쪽 소매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저 사람 누구예요?”“현장에 함께 있던 분입니다. 조사 중이고요.”나는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이 태광이 죽였어요?”남자는 피 묻은 팔을 내려다보더니 나와 눈을 맞췄다.“죽이지 않았습니다.”“그럼 그 피는 뭔데요?”“살리려고 했습니다.”“그런데 왜 죽었는데!”경찰이 나를 말렸다. 남자는 끝내 변명하지 않았다.“이름이 뭐예요?”“강무겸입니다.”나는 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겼다.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아내겠다고 다짐했다.수사 과정에서 미술관의 CCTV가 20분간 꺼졌고, 전시실의 그림 한 점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무겸을 범인으로 단정할 증거는 없었다. 그는 풀려났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정확히 1년 뒤, 발신인 없는 봉투가 내 사무실로 도착했다.
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