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서희와 장 시녀장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마차 안에 앉아 밖의 소란을 듣고 있던 채아는,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전생에 그녀가 돌아왔을 때도, 문지기에게 가로막혔었다. 그때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지유가 이미 그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 임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저 문지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일부러 트집을 잡는 줄로만 알았다.
말다툼은 점점 거칠어졌고, 급기야 그녀는 집안의 하인에게 손까지 댔고, 결국 소란을 들은 부모는 이웃의 눈을 의식해, 마지못해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가 들은 설명은 이랬다. 먼 지방에서 온 가난한 친척이 염치없이 도움을 구하러 왔다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봐야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채아는 그들이 정중하게 자신을 맞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큰아가씨는 변방에서 막 돌아오셨고, 장군의 유품까지 가지고 계십니다. 어찌 오늘 아침에 이미 도착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서희가 반문했다.
장 시녀장도 나섰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임 장군과 차 부인께서 직접 보시면 될 일 아니더냐?”
문지기는 장 시녀장을 한 번, 그녀들 뒤의 마차를 한 번 훑어보았다.
윤 공주의 마차는 일부러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표식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수레에 불과했다.
“어르신은 바쁘시다. 아무나 다 만날 수는 없지.”
문지기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업신여김이 묻어 있었다.
“이 무례한 종이! 예법도 모르는구나!”
장 시녀장의 얼굴에는 노기가 떠올랐다.
수십 년간 윤 공주를 모셔온 그녀였다. 어디를 가든 대접받던 사람이,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채아가 휘장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얼마 전 사람을 변방으로 보내 나를 데려오게 하셨다. 오라버니의 유품을 함께. 다만 길에서 수행 인원과 흩어져,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집사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문지기는 비웃듯 말했다.
“우리 큰아가씨는 늘 별장에서 지내셨고, 장군님과 부인께서는 변방에 사람을 보낸 적도 없다. 어디서 굴러온 가짜가 감히 큰아가씨를 사칭해?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관아에 넘겨버릴 테다!”
윤 공주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채아를 바라보았다.
“신분을 증명할 물건은 없느냐?”
“없습니다… 수행 인원들과 흩어지며 재물도 거의 잃었습니다.”
채아는 일부러 얼굴빛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난 10년을 남자의 신분으로 살았다. 여인으로서의 신표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윤 공주의 눈에 의심이 스쳤다.
그때,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소란이냐? 오늘 장군과 부인께서 귀한 손님을 맞이하시는 걸 모르느냐?”
“청 집사님! 잘 오셨습니다. 밖에 어떤 여자가 자기가 큰아가씨라 우깁니다.”
은비녀를 꽂고, 다소 팔자걸음으로 걷는 청 집사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매서운 치켜올린 눈썹, 사람을 쏘아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그녀였다.
그녀는 채아의 어머니가 혼수로 데려온 시녀로, 임씨 가문 저택에서 막강한 권한을 쥔 실세 관리인이었다.
채아가 휘장을 들자, 청 집사의 눈이 그녀에게 닿았다.
순간, 그 매서운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청 집사는 채아가 14세가 될 때까지 지켜본 사람이었다. 아무리 세월의 풍상을 겪었다 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멈칫 했을 뿐, 이내 헛기침을 했다.
“또 사기꾼이야? 얼마 전엔 도련님의 유복자를 가졌다며 배를 불리고 찾아온 것도 있었지.”
그리고 문지기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큰 도련님이 전사하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것들이 신분을 꾸며 이득을 보려 드느냐! 어서 쫓아내지 않고 뭘 하느냐!”
문지기는 기세를 얻었다.
“들었느냐! 이분은 부인 곁을 맡아보는 관리 집사다. 이분이 아니라고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꺼져!”
그 말에, 윤 공주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채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더 이상 온기가 없었다.
“나는 여기까지 데려다 준 것으로 할 일은 다 했다. 이후의 일은 임 장군과 직접 해결하도록 하거라.”
윤 공주는 차갑게 말했다.
채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차분히 일어나 예를 갖췄다.
“분명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오늘 마마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훗날 반드시 샘이 넘치도록 갚겠습니다.”
윤 공주의 표정은 냉담했고,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채아는 시큰거리는 무릎을 짚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눈빛은 담담했지만, 몸은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날이 흐린 탓에, 청 집사는 그제야 채아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손을 움켜쥐었다.
정말이다. 큰아가씨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버렸다!
채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기백 있는 얼굴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청 집사, 설마 나를 못 알아보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께 전해주게. 내가 돌아왔다고.”
청 집사는 고개를 돌렸다.
“완전히 뻔뻔한 사기꾼이군. 사람들 불러라. 묶어서 관아로 보내라!”
그 순간, 저택 안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뛰쳐나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문은 넘어도, 넘지 않아도, 이미 되돌아갈 길은 없다는 것을.
전생에서도, 바로 이때였다. 그녀는 문지기들과 몸을 섞으며 소란을 일으켰다.
그때는 청 집사가 늙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줄 알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청 집사는 이미 어머니의 지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막대한 권세와 부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비책을 세워 두었다. 설령 그녀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순순히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묶어서 관아로 보내라.’는 말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정말로 끌려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럼에도 채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다만 놀란 듯 외쳤다.
“무슨 짓인가? 청 집사! 나라고!”
서희가 앞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감쌌다.
“아가씨를 해치지 마세요!”
그러나 둘은 함께 밀려 넘어졌고, 짐 보따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풀어졌다.
그 안에서, 피로 얼룩진 남자 옷 한 벌과 창 끝에 달려 있던 붉은 술이 굴러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장 시녀장이 나서려는 순간, 마차 안에서 윤 공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 시녀장, 이제 가야겠구나.”
장 시녀장은 더 말하지 못하고, 마차로 돌아갔다.
“어서 묶어라. 임씨 가문 저택 앞을 더럽히지 말고.”
청 집사의 말투는 더욱 단호해졌고, 생사여탈권을 쥔 듯했다.
그때였다.
윤 공주의 마차가 아직 골목을 벗어나기도 전에, 멀리서 천둥처럼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눈보라를 가르며, 갑옷을 입은 위풍당당 한 사내 하나가 네 명의 병사를 이끌고 달려왔다.
쉼 없이 달려온 듯, 그의 갑옷 위에는 눈과 서리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그가 채아가 병사들에게 눌려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눈빛이 찢어질 듯 일그러졌다.
말이 멈추기도 전에, 그는 이미 땅으로 뛰어내렸다.
“이 망할 것들이! 당장 큰아가씨를 놓아라!”
호랑이 울음과 같은 고함과 함께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몇몇 병사들의 얼굴이 터지고 살이 찢어졌다.
장 시녀장은 숨을 들이켜며 윤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 마마… 저 자는… 신계대장군 곁을 지키던 부장, 한표입니다.”
서희가 마당 안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몇 명의 노파가 문 앞을 가로막고 거칠게 밀쳤다. 그 바람에 서희는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질 뻔했다.“감히 누가 아가씨의 마당에 손을 대는 거야!”노파들은 흉악한 얼굴로 윽박질렀다.서희는 몰골이 엉망이 된 채 뒤돌아 채아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채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굳고 차가운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서희는 이를 악물었다.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녀는 화단 옆의 돌을 집어 들고, 노파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이 집에 아가씨는 단 한 분뿐이야! 우리 큰아가씨 말이야!”서희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고, 노파들은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그녀는 그대로 안으로 뛰어들어 부수고, 던지고, 휘둘렀다.그 모습을 보며 채아의 눈에 짧은 인정의 빛이 스쳤다.여기는 그녀의 집이 아니었다. 그녀가 돌아온 곳은 용이 사는 연못이자, 사람을 잡아먹고 뼈도 남기지 않는 곳이었다.서희가 모든 일을 그녀에게만 의지하고 스스로 서지 못한다면, 결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녀의 전우가 될 자격도 없었다.……안채에서는, 차 부인과 지유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어머니, 오늘 제가 일부러 기절한 척하지 않았다면, 다시는 부모님을 뵙지 못했을지도 몰라요.”“착한 것… 너는 너무 큰 억울함을 당했어. 아무 말 말고, 그냥 누워서 쉬거라.”“하지만… 언니는 저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부모님께 폐를 끼치느니, 차라리 저를 다른 곳으로 보내 주세요.”“안 된다!”차 부인은 감정이 격해졌다.“여기가 네 집이야.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엄마 가슴이 다 찢어져.”지유는 차 부인의 품에 파묻혀 다시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곁에 서 있던 임 장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에 서늘한 기색을 띠었다.“채아가 이렇게까지 규율이 없을 줄은 몰랐다. 감히 변방에서 죽은 척하고 돌아오다니… 우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구나!”지유는 울음을 그치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보탰다.“그러게요
차 부인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울기만 했다.임 장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유… 그럼, 무릎을 꿇어라.”채아는 서희에게 지시해, 피 묻은 군복과 붉은 술 장식을 문 앞에 놓게 했다.그리고 자신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오라버니, 집에 도착했습니다...”몸을 일으키려다 휘청거리자, 서희가 급히 부축했다.“아가씨, 돌아오는 오는 내내 절을 하셨잖아요. 이제 더는 무릎 꿇으시면 안 됩니다.”윤 공주가 말했다.“어서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그제야 임 장군은 정신을 차린 듯, 서둘러 채아를 안으로 들였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채아를 달래 윤 공주 앞에서 불리한 말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한편, 조 부인은 더는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해도 윤 공주를 노하게 할 뻔했으니, 속이 잔뜩 상해 있었다.그녀는 임씨 일가를 ‘예의 없는 집안’이라 여기며 급히 자리를 떴다. 떠나기 전에는, 지유에게 주었던 염주도 잊지 않고 다시 받아갔다.윤 공주는 장 시녀장에게 명해, 지유가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고, 한표 역시 추모의 명목으로 들어와 신계대장군의 위패에 향을 올렸다.……사당 안.신계대장군의 위패는 이미 선조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채아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희미한 향 연기 속에서, ‘임정한’이라는 이름은 아득하게 흔들렸다.임씨 가문은 원래 두드러진 인물이 없었다. 채아가 아버지를 대신해 군에 나가기 전까지, 임 장군의 관직은 고작 3품 순방 무장이었을 뿐이었다.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 조상의 은덕이 아니었다면 진작 밀려났을 것이다.채아가 변방에서 피로 일군 10년이, 가문을 9대 세습의 위국공 자리까지 끌어올렸다.그런 부귀영화를 생각하면, 그들이 그녀가 살아 돌아오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버리길 바랐던 이유도 이해가 갔다.윤 공주도 향 하나를 올린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채아는 본래 효성이 지극했다.그렇지 않았다면 14세가 되던 해, 아버지를 대신해 군에 나가겠다고 감히 나설 리 없었다. 여자로서의 신분을 숨기고 남장을 한 채, 집안의 기둥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던 아이였다.임 장군은 확신했다. 자신의 말이라면 채아는 반드시 들을 것이라고.채아는 창백한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차 부인을 바라보았다.그제야 차 부인은 서서히 일어나 눈물을 닦고, 채아에게 다가왔다.“채아, 너는 우리 집안의 장녀다. 우리가 지유를 거두어들인 이상, 그 아이는 네 동생이야. 그러니 지유는…”차 부인은 채아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끝에 닿은 것은, 거칠게 박힌 굳은살이었다.그 순간 차 부인의 목소리가 굳어버렸고, 손이 전기에 닿은 듯 홱 물러났다.채아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모를 리 없었다. 전생에서도 어머니는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를 볼 때마다 늘 고개를 돌렸다.그때의 채아는, 그게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라 믿었다.하지만 훗날 어머니가 청 집사에게 이렇게 말하던 것을 들었다.“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고 성정이 강해. 지유처럼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아.”채아는 변방에서 보낸 10년 동안, 이름 없는 병사에서 병마를 통솔하는 신계대장군이 되었다.그 자리는 피와 땀으로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그녀에게는 지유처럼 고운 피부도, 파릇파릇한 백옥 같은 손도 없었다.채아는 윤 공주를 향해 몸을 숙였다.“공주 마마, 부디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바닥에 쓰러져 있던 지유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윤 공주가 물었다.“저 아이를 위해 탄원을 하겠다는 것이냐?”채아는 피 묻은 군복과 붉은 술 장식을 꼭 끌어안았다.“지유는 이미 부모님께 입양되었으니, 제 둘째 여동생이 맞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장녀인 제가 나서서 동생을 위해 청하는 것이 맞습니다.”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다만 이번에 돌아오며, 저는 오라버니의 혼을 집
장 시녀장이 이어서 차갑게 꾸짖었다.“황제께서 천하에 명하시어 신계대장군을 위해 석 달 동안 상을 치르게 하셨다. 온 도성이 소복에 흰 비단을 두르는데, 어찌 누군가가 이렇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붉고 푸른 옷을 입을 수 있단 말이냐!”지유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진 표정이었다.그녀는 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공주 마마, 용서해 주세요…”목소리는 새소리처럼 가늘고 떨렸으며,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소녀는 몸이 차가워 추위를 많이 타서 집 안에서만 입었을 뿐, 감히 밖에 나가 자랑할 생각은 없었습니다.”윤 공주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몸이 차다고? 큰아가씨는 유품을 안고 한 걸음마다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먼 변방에서 도성까지 돌아와 신계대장군의 영혼을 여기까지 인도했다.”“두 다리는 꽁꽁 얼어 보랏빛이 되었고, 손에는 온통 동상투성이였다. 그런데 너는 이 대저택에서 따뜻함만 탐했구나. 묻겠다! 네가 감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윤 공주는 아까부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임씨 가문의 간악한 종들 때문에 채아를 오해할 뻔했으니, 이제 그 분노가 임 장군 일가에게 향한 것이다.지유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차 부인이 급히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공주 마마,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 일은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오늘 이지환 후작의 부인께서 방문하셔서, 지유를 체면 있게 보이고자 새 옷을 입혔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갑작스레 이름이 언급된 조 부인은 차 부인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리고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공주 마마, 노여움을 푸십시오. 저 또한 신계대장군을 애도하러 온 것뿐입니다.”채아는 차 부인을 바라보며, 봉황 같은 눈에 의문을 띄웠다.“어머니, 저 지유라는 동생은 대체 누구입니까? 아까 하인들은 이미 우리 가문에 큰아가씨가 있다고 했고, 청 집사는 저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신계대장군 휘하에는 두 명의 맹장이 있었다.한표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그의 명성은 이미 천하에 자자했다.지난 십 년 동안 신계대장군은 변방을 지키며 단 한 번도 도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3년마다 무장들이 입경해 군무를 보고해야 할 때면, 늘 한표가 대신 도성으로 돌아와 황제를 알현하고 변방의 군정을 보고했다.그러니 윤 공주가 그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한표가 채아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표가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며 말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 호위가 미흡하여 아가씨를 홀로 도성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채아는 손목을 문지르며 서희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괜찮습니다. 여러분은 병력을 정리해야 했고, 뒤처리도 해야 했잖아요. 더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먼저 떠났을 뿐이에요.”한표는 고개를 들고 채아와 시선을 마주쳤다.그리고 즉시 청 집사를 노려보며 날카롭게 외쳤다.“대장군께서 생전에 가장 아끼신 분이 바로 아가씨였거늘, 감히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하다니!”한표는 키가 장대하고 체격부터 위압적이었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이미 전장에서 수없이 적을 베어온 경험 많고 노련한 장수였다.그가 눈을 부릅뜨자 청 집사는 더는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곧장 채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자기 얼굴을 두 번 세차게 때리며 통곡했다.“아가씨, 이 늙은 것이 눈이 멀어 아가씨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쓸모없는 몸이니 차라리 죽어야 마땅합니다!”윤 공주는 장 시녀장의 손을 붙잡고 급히 마차에서 내려왔다.한표는 그녀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장수 한표, 공주 마마를 뵙습니다.”‘공주’라는 말이 들리자 청 집사의 얼굴은 눈처럼 새하얗게 질렸다.‘끝났다… 끝났어!’‘공주까지 와 계셨다니, 지유 아가씨,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윤 공주는 성큼성큼 채아 앞으로 다가왔다.“이 어리석은 녀석. 임씨 가문에서 사람 하나 보내지 않았는데도 어찌 사실을 말하지
서희와 장 시녀장은 동시에 얼어붙었다.마차 안에 앉아 밖의 소란을 듣고 있던 채아는,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전생에 그녀가 돌아왔을 때도, 문지기에게 가로막혔었다. 그때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지유가 이미 그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 임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그녀는 그저 문지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일부러 트집을 잡는 줄로만 알았다.말다툼은 점점 거칠어졌고, 급기야 그녀는 집안의 하인에게 손까지 댔고, 결국 소란을 들은 부모는 이웃의 눈을 의식해, 마지못해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가 들은 설명은 이랬다. 먼 지방에서 온 가난한 친척이 염치없이 도움을 구하러 왔다고.자기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치를 봐야 했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채아는 그들이 정중하게 자신을 맞이하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큰아가씨는 변방에서 막 돌아오셨고, 장군의 유품까지 가지고 계십니다. 어찌 오늘 아침에 이미 도착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서희가 반문했다.장 시녀장도 나섰다.“진짜인지 아닌지는 임 장군과 차 부인께서 직접 보시면 될 일 아니더냐?”문지기는 장 시녀장을 한 번, 그녀들 뒤의 마차를 한 번 훑어보았다.윤 공주의 마차는 일부러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고, 표식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수레에 불과했다.“어르신은 바쁘시다. 아무나 다 만날 수는 없지.”문지기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업신여김이 묻어 있었다.“이 무례한 종이! 예법도 모르는구나!”장 시녀장의 얼굴에는 노기가 떠올랐다.수십 년간 윤 공주를 모셔온 그녀였다. 어디를 가든 대접받던 사람이,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그때, 채아가 휘장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들렸다.“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얼마 전 사람을 변방으로 보내 나를 데려오게 하셨다. 오라버니의 유품을 함께. 다만 길에서 수행 인원과 흩어져,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집사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그러나 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