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0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4:42:55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사무실 한쪽에서는 도시락 뚜껑 여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그때였다.

“신입, 이거 정리 좀 해 봐.”

툭.

서류 뭉치 하나가 책상 위에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옆 팀 과장이 이미 몸을 돌리고 있었다.

“오늘 지급 나갈 거니까 전산이랑 맞는지만 확인해.”

“네.”

서린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차량 이전비 정산 내역이었다.

아직 정식으로 맡은 업무도 없던 터라 서린은 모니터에 띄워놓았던 자료를 한쪽으로 밀고 서류를 펼쳤다.

차량번호.

매입일.

이전비.

지급처.

전산에 입력된 내역과 하나씩 대조했다.

단순한 일이었다.

몇 장을 넘겼을 때 손이 멈췄다.

같은 차량번호가 두 번 있었다.

[12가 34XX / 차량 이전비 / 1,280,000원]

그리고 몇 줄 아래.

[12가 34XX / 차량 이전비 / 1,320,000원]

첫 번째는 지급 완료.

두 번째는 오늘 오후 지급 예정이었다.

‘중복인가?’

서린은 두 숫자를 다시 보았다.

금액이 달랐다.

단순 중복 입력이라면 금액까지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오전에 보았던 매입 자료가 떠올랐다.

서린은 해당 날짜의 파일을 찾아 열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화면을 훑었다.

그리고—

[12가 84XX / 차량 이전비 / 1,320,000원]

마우스가 멈췄다.

차량번호 한 자리.

3과 8이 바뀌어 있었다.

“과장님.”

“왜?”

“이거 지급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걸어가던 과장이 돌아봤다.

“뭐가?”

“같은 차량번호로 이전비가 두 번 잡혀 있습니다.”

과장이 서류를 흘끗 보았다.

“중복 입력했나 보네. 하나 지워.”

“중복은 아닙니다.”

“뭐?”

“금액이 다르잖아요.”

과장이 그제야 가까이 다가왔다.

서린은 모니터의 두 항목을 차례로 가리켰다.

“두 번째 건 34XX가 아니라 84XX 차량 이전비예요. 차량번호를 잘못 입력한 것 같습니다.”

“잠깐만.”

과장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오늘 지급 건이잖아.”

“네.”

과장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김 대리! 오늘 이전비 송금했어?”

“아직이요. 두 시에 나가는데요?”

“잠깐 보류해!”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원본 서류를 다시 확인한 결과 서린의 말이 맞았다.

차량번호 한 자리의 오기입.

그대로 처리됐다면 이미 정산이 끝난 차량에 이전비가 다시 지급될 뻔했다.

과장이 서린을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찾았어?”

“금액이 달라서요.”

“뭐?”

“정말 중복이면 금액도 같아야 하잖아요.”

잠깐의 정적 뒤로 누군가 피식 웃었다.

“첫날부터 과장님 사고 하나 막아줬네.”

“시끄러워.”

과장이 머쓱한 얼굴로 서류를 낚아챘다.

“아무튼 잘했어.”

서린은 별말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에는 조금 전까지 들여다보던 자료들이 그대로 떠 있었다.

별것 아닌 실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개의 숫자가 다시 눈에 밟혔다.

서린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새 파일 하나를 만들었다.

[확인 필요]

아직은 의심에 불과했다.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

퇴근길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집 앞에 주차했지만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서린은 밤공기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사거리의 대형 전광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당, 차기 총선 기획단 출범… 단장에 강민재 의원 내정.]

화면 가득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강민재.

서린의 발이 굳었다.

5년 전.

그는 공지안의 연인이었고, 누구보다 권력을 원하던 남자였다.

사고 이후 강민재는 슬픔에 잠긴 유족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버지 앞에서는 눈물을 흘렸고,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며 무릎까지 꿇었다.

사람들은 그를 의리 있는 청년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도 그렇게 믿었다.

딸을 잃은 시간을 함께 견뎌낸 사람.

하지만 그는 차가운 물속에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남자.

그 비밀을 묻은 채 권력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강민재는 더 이상 수행비서가 아니었다.

권력의 복심.

여당의 젊은 기수.

차기 총선의 핵심 전략가였다.

잘 재단된 슈트.

여유로운 미소.

신뢰감을 연기하는 능숙한 눈빛.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서린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대통령이 강민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고 있었다.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5년 전.

차 안으로 물이 차오르던 순간이 번개처럼 스쳤다.

살려 달라며 뻗었던 손.

열린 창문.

끝내 돌아보지 않았던 남자의 뒷모습.

하지만 전광판 속에는 그런 남자가 없었다.

성공한 정치인만 있을 뿐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저 사람 괜찮지 않나?”

“이번 총선도 잘할 것 같던데.”

그들은 모른다.

당연했다.

공지안은 그날,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라졌으니까.

“살아 있었네.”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확인이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살아 있었구나.

과거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상은 진실보다 보이는 것을 믿는다.

죽은 공지안보다 살아 있는 강민재를 믿을 것이다.

그러니 올라가야 했다.

그가 서 있는 자리까지.

강민재가 맡겼던 USB.

모든 시작이 되었던 작은 저장 장치.

지난 5년 동안 수도 없이 생각했다.

열어보지 않았다면.

모른 척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

결국 나는 열어봤을 것이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게 나였으니까.

서린은 전광판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걸었다.

같은 하늘 아래.

그 역시도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었던 5년.

이제 그 거리를 하나씩 좁혀 갈 차례였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2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수혁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강민재가 건드린 것 같다.”“그 새끼가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쟤가…….”유정이 발끈하고 나섰다.“그 자식이 의도적으로 트라우마를 자극한 것 같다.”수혁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서린이 옆에 있어야겠어요.”유정이 안방으로 들어갈 때, 두 사람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세 사람이 안타까운 눈으로 침대 곁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으음.”서린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천천히 눈이 떠졌다.흐릿한 시야 속으로 가장 먼저 수혁의 얼굴이 보였다.그리고 그 옆에 유정, 발치에는 도윤이 서 있었다.“서린아! 깼어?”“누나! 괜찮아?”걱정 가득한 목소리들.서린은 멍하니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어둠 속에서 혼자 떨던 밤이 아니었다.5년 전 차가운 바닷물 속도 아니었다.지금 이 방 안에는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서린의 메마른 입술 위로, 아주 옅고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응……. 나 괜찮아.”쉰 목소리였다.하지만 눈빛은 조금 편안해져 있었다.수혁은 서린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수혁의 손길이 닿자 서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어젯밤에는 그토록 두렵기만 했던 기억이 이제는 조금 멀어진 것 같았다.눈을 뜨면 수혁이 있었고, 손을 뻗으면 유정이 있었고, 발치에는 도윤이 있었다.혼자가 아니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다들 왜 그렇게 봐요. 저 진짜 괜찮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유정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우리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미안해.”서린이 작게 웃었다.“그래도 이제 괜찮아. 진짜로.”그녀가 웃는 것을 보자,그제야 멈춰있던 수혁의 심장도 다시 뛰는 것 같았다.서린은 마주 손을 잡아주며 수혁을 올려다보았다.“대표님.”“어. 왜. 어디 아파?”“아니요. 대표님, 오늘 엄청 바쁜 날이시잖아요. 투자사 미팅도 있고, 한도전자 임원 회의도 있고.”수혁의 눈썹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1화.

    — 네 목줄이나 챙겨. 이 개새끼야.“……뭐?”뚝.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여보세요? 야— 이 씨발!”강민재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퍽!액정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튀었다.“제기랄. 차 대표한테 다 일렀다 이거지?”강민재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냉장고를 거칠게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냈다.뚜껑을 비틀어 열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입 밖으로 흘러내린 물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낮게 중얼거렸다.“재밌네.”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비틀렸다.“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빈 생수병을 싱크대에 쾅 내리쳤다.“기다려, 공지안.”강민재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내가 너 반드시 되찾아 온다.”시간은 바로 어제 오후,성유정과 식사를 마쳤던 그 레스토랑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문을 박차고 나가는 성유정의 뒷모습을 보며,강민재는 모든 퍼즐을 맞췄었다.그 분노,그 맹렬한 적개심.피식―강민재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탁. 탁. 두드렸다.“반응이… 너무 과하잖아.”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친구한테 보일 반응은 아니지.날 뭘로 보고.“맞지?”강민재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번졌다.“너 공지안. 살아 있었던 거야.”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을 단숨에 털어 넣으며 그는 환희에 찬 웃음을 터뜨렸었다.“아하하하하.”어깨가 들썩였다.“이야— 이게 뭔 일이야.”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죽었던 내 여자가 살아 돌아왔다.다른 이름,다른 얼굴을 하고서.강민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그래, 이건 하늘이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거야.”그때서야 주변 테이블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숟가락을 멈춘 채 그를 힐끗 거리고 있었다.하지만, 강민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저장된 연락처를 검색했다.‘공지안…… 아니, 아직은 공서린이지.’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손가락으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0화.

    “대…… 표님?”서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부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흐어어엉…… 흑, 아아…….”서린은 수혁의 목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그에게 매달려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마치 생명줄을 붙잡고 놓치 않겠다는 듯.얼마나 세게 잡고 매달렸는지 수혁의 뒷목이 뻐근했다.수혁의 옷이 눈물로 흠뻑 젖어갔다.서린을 안은 수혁의 팔이 점점 더 단단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어젯밤에 그냥 돌아가지 말걸.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수혁이 낮게 말했다.“괜찮아…….”그는 서린을 품에 더 깊이 안고 땀에 젖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아무 일도 안 일어나.”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내가 다 막을 거니까.”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수혁은 서린을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내가 있잖아.”“응...”수혁은 서린의 몸을 살짝 떼어내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수혁은 엄지로 그녀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었다.“왜 항상 혼자 감당하려고 해.”서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대표님...”“무슨 일인지 말 안 해도 돼. 애써서 말하려고 하지 마.”“...네.”“잘한다. 착하네.”“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서린이 울음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오긴. 차 타고 왔지.”픽-서린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말이 아니잖아요.”“아니. 어떻게 왔냐길래 차 타고 왔다 했는데 그게 왜?”“농담하지 말고요. 지금 몇 시예요?”“직원이 무단 결근을 했더라고. 그래서 잡으러 왔지.”“아...”“아아? 그게 다야?”“죄송해요. 미리 연락도 못했네요.”“괜찮아. 괜찮은데 좀 서운하네.”“뭐가요?”“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무슨 일인지는 말할 수 없어도 옆에 있어 달라고는 할 수 있잖아.”수혁이 서린을 가만히 바라봤다.“내가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39화.

    수혁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통화 기록 맨 위에 같은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공서린.다시 한 번 발신 버튼을 눌렀다.전화를 거는 순간, 기계적인 안내음이 흘러나왔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결할 수 없습니다.”수혁의 턱이 미묘하게 굳었다.“…….”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전화기는 꺼져 있었다.조금 전 민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공 상무님? 우동 배달된 거 확인하고는… 먹지도 않고 그냥 가셨어.먹지도 않고.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수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밤공기가 차갑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엔진 소리가 고요한 지하 주차장에 낮게 울렸다.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수혁은 잠시 차 안에 앉은 채 건물을 올려다봤다.불빛이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혹시 몰라 차에서 내렸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 섰다.벨을 눌렀다.…아무 반응이 없었다.수혁의 시선이 문 아래로 내려갔다.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잠시 문 앞에 서 있던 수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손을 들어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가, 결국 멈췄다.약 먹고 쉰다고 했으니 지금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수혁은 한 발 물러섰다.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어두운 방 안에서 휴대폰 화면만 희미하게 빛났다.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고객님의 전화기는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수혁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새벽 공기가 유리창에 흐릿하게 맺혀 있었다.왠지 모르게—가슴 한쪽이 계속 불편했다.마치, 어딘가에서 좋지 않은 일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다음 날 아침 7시.눈을 뜨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수혁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다.오전 9시.수혁은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을 불렀다.“전략기획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38화.

    서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아니야.”입술 사이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손이 떨렸다.젓가락으로 면을 조금 들어 올렸다.국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그리고—기억이 번쩍 떠올랐다.늦은 밤.대학생이었던 시절.서류 더미 사이에서 고개를 들던 강민재.“배고프지?”포장마차 봉투를 내려놓던 손.“야식.”그날도 우동이었다.서린은 늘 유부를 젓가락으로 먼저 빼냈다.“이거 기름져.”대신 김치를 국물에 조금 넣고, 쑥갓을 더 올려 먹었다.그 모습을 보던 강민재가 웃었었다.“너는 우동 먹는 것도 특이하다.”“……이게 더 맛있어요.”그 기억이—지금 눈앞의 우동과 완벽하게 겹쳐졌다.서린의 손에서 젓가락이 툭 떨어졌다.탁.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아침.7시. 전화벨.— 이 오빠가 매일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 줄게. 어때?점심.12시 정각.“점심 맛있게 먹어요.”— 그러면 저는 오빠한테 점심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할게요.그리고 지금—이 우동.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졌다.강민재.그가 지금 말하고 있었다.‘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순간 속이 뒤틀렸다.“윽—”서린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그가.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서린의 시선이 사무실 문을 향했다.익숙했던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왜 그래요? 이 우동 뭐 이상해요?”입을 틀어막고 신음을 내는 서린을 보고 민우가 물었다.“아, 아니에요. 맛있어요. 드세요, 변호사님.”“아니… 지금 공 상무 안색이 창백해요.”숨을 고르며 억지로 웃었다.“아까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안 됐나 봐요.”“정말 괜찮겠어요?”민우가 걱정스레 서린의 얼굴을 살폈다.“네. 변호사님 죄송하지만… 저 이만 가 봐야겠어요. 소화제라도 사서 먹고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대표님께는… 그냥 일찍 갔다고만 해 주세요.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요.”“알았어요.”서린은 사무실을 나왔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37화.

    유정은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며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강민재가 자신을 떠봤다. 그것도 서린과 도윤을 미끼로.당장 전화하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시선이 마음에 걸렸다.유정은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 놓으며 전화를 해야 할지 망설였다.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마침내 연결되었다.“어, 유정아.”— 서린아, 지금 어디야?“집 앞. 막 들어가려던 참이야.”— 그래? 오늘 별 일 없었어?“있었지.”순간, 전화기 너머로 유정이 숨을 삼키는 기척이 느껴졌다.“긴장 하지마. 좋은 일이야, 좀 있다 말해줄게. 너는?”— 나도 뭐, 그냥 그랬지. 일단 집에 들어가. 밤공기 차다.“갑자기 웬 걱정이야?”— 들어가면 얘기해.유정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서린은 걸음을 조금 재촉하다 뒤를 돌아보았다.수혁은 아직 차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서린은 작게 웃어 보이고는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들어왔어. 그런데 왜 그래?”잠깐의 침묵 끝에 유정이 낮게 말했다.— 서린아, 오늘 나 강민재 만났어.서린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강민재를?”— 응. 나 떠보려고 부른 거였어.“무슨 말 했는데?”유정은 강민재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서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새끼, 눈치챈 것 같아. 조심해.“…응. 알았어. 유정아, 고마워.”전화를 끊은 뒤에도 서린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강민재가 눈치챈 것 같다.내가 공지안이라는 걸.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한기가 밀려왔다.하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건 없으니까.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이었다.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지이잉—서린은 잠결에 눈을 떴다.창밖으로 희미한 아침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더듬어 집어 들었다.화면에는 오전 7:00이 떠 있었다.“누구지….”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