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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1 14:42:51

핸드폰 진동이 짧게 울렸다.

메일과 같은 내용의 문자였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오전 9시. 본사 2층.]

그게 전부였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도 없고, 출근 준비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서린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문자는 짧았지만 보내는 사람이 성격이 보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만 본다.

화면이 꺼질 때까지 바라보던 서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보통 회사는 아니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정중하게 모셔오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빈자리를 채우려는 곳이 아니라, 일을 맡길 사람을 찾는 곳.

들어오자마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곳.

“그럴 줄 알았어.”

서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구두굽 소리가 아스팔트 위에 또각, 또각 울렸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앞으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서린은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첫 출근이었다.

아침 햇살이 앞 유리를 가득 채웠다.

시동을 건 차가 천천히 도로로 미끄러져 나갔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얼굴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감과 긴장이 적당히 뒤섞인 채 서린은 액셀을 밟았다.

30분 후.

한도오토링크 건물 2층에 들어섰을 때 시계는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열기와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무실은 이미 전쟁터였다.

전화벨 소리가 쉼 없이 울렸고, 직원들은 서류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야! 인천 단지에 있는 매물 누가 먼저 잡았어! 계약금 쐈어, 안 쐈어!”

“탁송 기사 아직 도착 안 했답니다! 고객 지금 컴플레인 들어오고 난리 났어요!”

고함과 욕설.

커피 냄새.

어딘가에서 묻어 들어온 타이어와 엔진오일 냄새.

온갖 것들이 뒤섞인 공기가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온 서린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환영 인사도 없었고, 자리를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자기 일에 매달려 있었다.

서린은 문가에 잠시 선 채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당황하거나 눈치를 보는 대신, 시선이 빠르게 공간을 훑었다.

가장 안쪽.

블라인드가 내려진 대표실.

그 앞에 자리 잡은 경영지원팀.

그리고 한쪽에 비어 있는 책상 하나.

위치를 파악한 서린은 곧장 그쪽으로 걸어갔다.

의자를 빼고 앉자마자 공용 PC 전원을 눌렀다.

부팅 화면이 떠오를 즈음. 옆자리 대리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누구... 아, 어제 면접 본?”

“공서린입니다. 오늘부터 출근합니다.”

서린은 앉은 채 가볍게 목례했다.

대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아, 네! 김 사장님 말씀하세요!”

그는 급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고, 그것으로 인사는 끝났다.

대리가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고개를 돌린 사이, 사무실 직원 몇몇이 슬쩍 서린을 훑어보았다.

“신입?”

“어.”

“얼굴은 멀쩡하게 생겼네.”

“얼마나 버티려나.”

누군가 피식 웃었다.

서린은 못 들은 척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곳 사람들에게 신입은 동료가 아니었다.

며칠 버티다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고,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린은 아무 말없이 인트라넷 창을 열었다.

어차피 평가받는 건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였으니까.

로그인 창이 열렸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으려던 순간.

모니터 아래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용 계정이었다.

서린은 피식 웃었다.

보안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로그인과 동시에 방대한 데이터가 화면에 펼쳐졌다.

매입 리스트.

정산 내역.

딜러별 수수료 현황.

재고 관리 파일.

서린은 엑셀 파일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설명을 듣기 전에 흐름부터 읽어야 했다.

서린의 시선이 모니터와 사무실을 번갈아 오갔다.

전화 한 통이 끝날 때마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사람에게 서류를 넘겼다.

결재선과 조직도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일의 흐름만으로도 누가 실무를 쥐고 있는지 대략 보였다.

반대로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은 다르다.

조직은 언제나 말보다 움직임이 먼저 드러난다.

서린은 모니터 속 숫자와 사람들의 동선을 하나의 그림으로 겹쳐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네.'

하지만 복잡하다는 건, 그만큼 숨길 곳도 많다는 뜻이었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새어 나가는지.

숫자들이 천천히 하나의 지도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너머 대표실.

차수혁은 블라인드 틈 사이로 사무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입 사원 한 명쯤 들어왔다고 해서 특별히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선이 자꾸 그 여자에게 갔다.

보통의 신입이라면 멀뚱히 서 있거나, 누군가 자리를 안내해 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는 달랐다.

오자마자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설명도 듣기 전에 시스템부터 열어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람처럼.

차수혁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끝에 머물렀다.

“알려줄 필요가 없네.”

작게 중얼거린 그가 시선을 거두었다.

입꼬리가 아주 잠깐 올라갔다가 사라졌다.

오히려 먼저 설명을 해 주는 순간,

그 사람만의 방식이 흐려질 수도 있었다.

수혁은 그녀가 어떤 순서로 회사를 읽어 나갈지,

그것부터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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