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핸드폰 진동이 짧게 울렸다.
메일과 같은 내용의 문자였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오전 9시. 본사 2층.]
그게 전부였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도 없고, 출근 준비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서린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문자는 짧았지만 보내는 사람이 성격이 보였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만 본다.
화면이 꺼질 때까지 바라보던 서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보통 회사는 아니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정중하게 모셔오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빈자리를 채우려는 곳이 아니라, 일을 맡길 사람을 찾는 곳.
들어오자마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곳.
“그럴 줄 알았어.”
서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구두굽 소리가 아스팔트 위에 또각, 또각 울렸다.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앞으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서린은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첫 출근이었다.
아침 햇살이 앞 유리를 가득 채웠다.
시동을 건 차가 천천히 도로로 미끄러져 나갔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얼굴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감과 긴장이 적당히 뒤섞인 채 서린은 액셀을 밟았다.
30분 후.
한도오토링크 건물 2층에 들어섰을 때 시계는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열기와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사무실은 이미 전쟁터였다.
전화벨 소리가 쉼 없이 울렸고, 직원들은 서류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야! 인천 단지에 있는 매물 누가 먼저 잡았어! 계약금 쐈어, 안 쐈어!”
“탁송 기사 아직 도착 안 했답니다! 고객 지금 컴플레인 들어오고 난리 났어요!”
고함과 욕설.
커피 냄새.
어딘가에서 묻어 들어온 타이어와 엔진오일 냄새.
온갖 것들이 뒤섞인 공기가 사무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온 서린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환영 인사도 없었고, 자리를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자기 일에 매달려 있었다.
서린은 문가에 잠시 선 채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당황하거나 눈치를 보는 대신, 시선이 빠르게 공간을 훑었다.
가장 안쪽.
블라인드가 내려진 대표실.
그 앞에 자리 잡은 경영지원팀.
그리고 한쪽에 비어 있는 책상 하나.
위치를 파악한 서린은 곧장 그쪽으로 걸어갔다.
의자를 빼고 앉자마자 공용 PC 전원을 눌렀다.
부팅 화면이 떠오를 즈음. 옆자리 대리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누구... 아, 어제 면접 본?”
“공서린입니다. 오늘부터 출근합니다.”
서린은 앉은 채 가볍게 목례했다.
대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아, 네! 김 사장님 말씀하세요!”
그는 급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고, 그것으로 인사는 끝났다.
대리가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고개를 돌린 사이, 사무실 직원 몇몇이 슬쩍 서린을 훑어보았다.
“신입?”
“어.”
“얼굴은 멀쩡하게 생겼네.”
“얼마나 버티려나.”
누군가 피식 웃었다.
서린은 못 들은 척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곳 사람들에게 신입은 동료가 아니었다.
며칠 버티다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고,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린은 아무 말없이 인트라넷 창을 열었다.
어차피 평가받는 건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였으니까.
로그인 창이 열렸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으려던 순간.
모니터 아래 붙어 있는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공용 계정이었다.
서린은 피식 웃었다.
보안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로그인과 동시에 방대한 데이터가 화면에 펼쳐졌다.
매입 리스트.
정산 내역.
딜러별 수수료 현황.
재고 관리 파일.
서린은 엑셀 파일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설명을 듣기 전에 흐름부터 읽어야 했다.
서린의 시선이 모니터와 사무실을 번갈아 오갔다.
전화 한 통이 끝날 때마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사람에게 서류를 넘겼다.
결재선과 조직도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일의 흐름만으로도 누가 실무를 쥐고 있는지 대략 보였다.
반대로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은 다르다.
조직은 언제나 말보다 움직임이 먼저 드러난다.
서린은 모니터 속 숫자와 사람들의 동선을 하나의 그림으로 겹쳐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네.'
하지만 복잡하다는 건, 그만큼 숨길 곳도 많다는 뜻이었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그리고 어디로 새어 나가는지.
숫자들이 천천히 하나의 지도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너머 대표실.
차수혁은 블라인드 틈 사이로 사무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입 사원 한 명쯤 들어왔다고 해서 특별히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선이 자꾸 그 여자에게 갔다.
보통의 신입이라면 멀뚱히 서 있거나, 누군가 자리를 안내해 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는 달랐다.
오자마자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설명도 듣기 전에 시스템부터 열어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람처럼.
차수혁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끝에 머물렀다.
“알려줄 필요가 없네.”
작게 중얼거린 그가 시선을 거두었다.
입꼬리가 아주 잠깐 올라갔다가 사라졌다.
오히려 먼저 설명을 해 주는 순간,
그 사람만의 방식이 흐려질 수도 있었다.
수혁은 그녀가 어떤 순서로 회사를 읽어 나갈지,
그것부터 지켜보기로 했다.
서린은 말없이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도망치지 않겠다는 약속처럼.“혼자가 아니잖아요, 이제.”수혁의 시선이 천천히 풀렸다.민우가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그래. 깔끔하게 끝내자. 더럽게 끌지 말고.”세 사람의 잔이 동시에 부딪쳤다.결전의 밤이, 조용히 깊어갔다.같은 시각.불 꺼진 국회의원 의원실.강민재는 창가에 서서 도심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놈이 이렇게까지 판을 키울 줄은 몰랐어. 이사회 늙은이들이 다 돌아설 줄이야……“회장님. 지금 신세 한탄 듣자고 전화한 거 아닙니다. 정리, 다 됐습니까. 5년 전, 그리고 작년. ‘기술 제휴’ 명목으로 처리했던 자료들 말입니다.”수화기 너머에서 밭은기침 소리가 났다.— 서버는 이미 포맷했고, 백업본도 폐기했어. 관련자들 전부 입단속 끝냈고. 해외 쪽도 덮어씌웠네.강민재의 손가락이 창틀을 두드렸다.일정하던 간격이 점점 빨라졌다.주주총회까지 남은 시간이 자꾸만 머릿속을 긁었다.“확실해야 합니다. 차수혁이 대표가 되면, 가장 먼저 과거 계약서부터 뒤질 겁니다. 횡령이나 배임은 돈으로 정리됩니다. 하지만 그 건은 다릅니다.”그는 낮게 덧붙였다.“밖으로 새는 순간, 우리는 변호사 선임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럴 일 없어. 아무도 모른다니까.“아무도 모른다고 믿는 건, 회장님 같은 분들이나 하는 실수죠. 그리고.”강민재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회장님 거취가 어떻게 되든, 우리 사이 거래는 유지됩니다. 회사가 넘어가도 자금 흐름은 멈추면 안 됩니다. 그게 멈추는 순간, 제가 회장님을 보호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이, 이보게! 강 의원!뚝.강민재는 망설임 없이 통화를 끊었다.어둠이 깔린 의원실 안에서 길게 숨을 뱉었다.“멍청한 늙은이.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짜증과 분노 아래, 다른 감정이 꿈틀거렸다.한도전자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씨발… 어르신한테서 연락 오면 뭐라고 둘러대지.’강민재는 창밖의 어둠을 노려보다가
“동시에, 신임 대표이사 취임안을 상정합니다.”차수혁은 단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높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회의실 공기를 단단히 눌렀다.“뭐, 뭐라고? 네가 지금… 회사를 꿀꺽하겠다는 거냐?”차윤호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그러나 수혁은 그를 보지 않았다.동요하는 이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다들 불안하신 거 압니다. 유통업만 하던 놈이 제조업을 알겠느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회사 기둥까지 뽑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죠.”이사들 사이에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이사님들. 기술은 엔지니어가 만듭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돈으로 바꾸는 건 경영입니다.”그의 손짓에 서린이 화면을 띄웠다.[한도오토링크 경영 성과 분석]가파르게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회의실을 비췄다.“취임 이후 3년. 영업이익 42% 상승. 부채비율 30% 감소. 만년 적자였던 동남아 법인, 1년 만에 흑자 전환.”부정할 수 없는 숫자뿐이었다.“저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계산합니다.”수혁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데이터 없는 투자는 도박이고, 수익 모델 없는 확장은 자살입니다. 저는 이 회사를 도박판에서 끌어내, 계산대 위에 올려놓겠습니다.”“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지금 당장 부도 위기입니다. 현금이 없습니다.”한 상무이사가 조심스럽게 묻자, 수혁이 즉답했다.“현금은 제가 만들겠습니다. 급한 불을 끄고, 썩은 살을 도려내겠습니다.”서린이 다음 화면을 넘겼다.[한도전자 경영 정상화 로드맵]“신소재 사업부는 즉시 정리하고, 고정비 차단해서 2분기 내 현금 흐름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기존 강점 사업에 집중하면 3분기 내 흑자 전환이 가능합니다.”서린의 브리핑까지 더해지자, 이사들의 눈빛이 흔들렸다.잠시 후, 테이블 끝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예전 회장님 생각나는군.”“숫자부터 보셨지. 도박은 싫어하셨고. 계산 안 서는 사업은 절대 허락 안 했고.”차윤호의 얼굴이 굳었다.“저는 오너가 아니라, 책임자가 되겠
강민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도전자 일은 들었겠지.“예. 보고 있습니다.”— 그놈이 회사를 먹으려고 들어왔네.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차윤호의 다급함이 수화기 너머에서도 느껴졌다.한도전자는 강민재에게도 중요했다.차윤호와 여러 가지 일을 해 오는 동안 한도전자는 좋은 먹잇감이었다.돈도, 정보도, 필요할 때마다 빼먹을 것이 많은 곳이었다.그런 곳을 차수혁에게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더구나 놈이 안쪽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곤란해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그리고 두 사람이 물고 뜯는 동안, 다른 곳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그 틈이라면 서린을 다시 제 쪽으로 끌어올 기회도 생길 것이다.강민재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제가 뭘 해드리면 됩니까.”— 시간이 필요하네.“해 보죠.”***오후 2시. 한도전자 본사 20층, 대회의실.긴급 이사회가 열린 회의실은 숨 막히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유리창 너머로는 본사 로비를 점거한 채권단의 고함이 낮게 울려 퍼졌고, 안에서는 이사들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이게 대체 무슨 경영입니까!”“언론에 다 터졌습니다. 더 숨길 것도 없어요!”상석에 앉은 차윤호 회장은 핏발 선 눈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조용히 해! 다들 입 안 다물어?”사외 이사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회장님, 입 다물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당장 내일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하면 법정 관리입니다. 대안이 있으십니까?”차윤호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그, 그건… 금융권과 다시 협의 중이니—”“이미 상환 연장 거부 공문이 왔습니다.”다른 이사가 말을 잘랐다.“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그 순간, 차상우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번 반도체 소재만 납품되면 해결됩니다. 이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이지, 실패가 아닙니다!”회의실 곳곳에서 한숨과 냉소가 터져 나왔다.“납품처 세 곳이 이미 부도났습니다.”“분식 회계 의혹까지 제기됐는데, 이걸 어떻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전 9시.주식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붉은 경고등이 번쩍였다.[속보] 한도전자, 5천억 규모 유동성 위기… 부도설 확산[반도체 소재 사업 실패… 분식 회계 의혹 제기]순식간에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호가창이 붉게 번졌고, 주가 그래프는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차상우 전무가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반도체 소재 사업은 실체보다 기대감이 앞선 도박에 가까웠다.그 손실을 감추기 위해 끌어다 쓴 계열사 자금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그룹 전체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한도오토링크 대표실에서 수혁은 모니터에 떠 있는 한도전자의 주가 그래프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급격히 꺾여 내려가는 파란 선.누군가에겐 파국의 신호였지만,그에겐 계산이 끝난 결과였다.그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타이밍, 정확하네.”낮게 중얼거리며 펜을 내려놓았다.그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두툼한 파일철을 든 서린이 들어왔다.“준비됐습니다, 대표님.”감정이 배제된, 정확한 보고였다.“채권단 매입 작업 완료했습니다.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30%를 넘습니다.현재 한도전자의 실질 최대 채권자는 한도오토링크입니다.”수혁의 시선이 천천히 서린에게 닿았다.“민우는.”“법적 검토 마쳤고, 이사회장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건도 충족됩니다. 절차상 하자는 없습니다.”수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재킷을 걸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저 건물 어딘가에서는 지금 공포가 번지고 있을 것이다.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고함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조급하지 않았다.이 싸움은 오늘 시작된 게 아니었으니까.풍선은 이미 충분히 부풀어 있었다.그는 단지, 터지는 순간을 기다렸을 뿐이었다.수혁이 고개를 돌려 서린을 바라봤다.“가자.”수혁이 먼저 문을 나섰고, 서린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같은 시각, 한도전자 회장실의 문이 거의 부서질 듯
서린은 잠시 멍하니 수혁을 바라보다가—푸흡-작게 웃음이 터졌다.“웃어?”“대표님, 도윤이 말이에요.”“어, 도윤인지 도분인지.”“제 동생이에요.”수혁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뭐?”“친동생이요. 공도윤.”“동……생?”“네. 강민재가 제게 접근하니까, 남자친구인 척해준 거예요.”“하―”수혁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마를 짚었다.그리고 잠시 후.“푸하하하하!”박장대소를 터뜨렸다.식탁이 들썩거릴 정도로 시원한 웃음이었다.“와- 대박이다 진짜.”눈가를 닦으며 말을 잇는다.“그럼 강민재 그 새끼, 어제 처남한테 질투하고 시비 건 거야?”다시 웃음이 터졌다.“와- 새끼, 완전 물먹었네. 꼴 좋-다.”방금 전까지의 묵직한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연하남이 아니라 처남이라니.세상에 이렇게 반가운 소식이 또 있을까.“그럼 굳이 밝히지 마.”수혁이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한 채 말했다.“그 새끼한테는 계속 오해하게 둬. 너 양다리 걸치는 나쁜 여자라고 욕하면서도 못 놓는 꼴— 상상만 해도 재밌다.”“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당연하지.”수혁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서린을 봤다.“처남이었으면 어제 밥이라도 사 먹여서 보냈을 텐데. 나중에 같이 보자. 제대로 인사해야지.”서린도 따라 웃었다.어제의 피비린내 나는 밤과 카페의 싸움, 경찰서까지 이어진 소란이,이 아침 웃음 속에서 조금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두 사람이 나란히 차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수혁의 차가 한도오토링크 정문 앞에 멈췄다.“먼저 내려. 난 주차장으로 갈게.”“네.”서린은 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었다.엘리베이터 앞에서 김다은 대리가 서린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려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 부장님!”“어, 김 대리. 좋은 아침.”“부장님…… 어제 그 옷 아니에요?”김 대리의 시선이 서린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위아래로 훑었다.“… 집에 안 들어가셨어요?”주변에 있던 직원들의 귀가 쫑긋 세워지는 게 느껴졌다.서린은 침착하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침대 위를 길게 비췄다.수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낯선 천장이었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서린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헝클어진 머리카락,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어깨, 그리고 붉게 부어오른 입술.어젯밤의 격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흔적들이었다.수혁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서린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부드러운 살결이 손끝에 닿았다.쪽.그는 서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으음…….”서린이 작게 뒤척였지만, 깊은 잠에 취해 깨어나지는 못했다.수혁은 시계를 확인했다.오전 7시.출근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좀 더 자게 둬야겠네.’그는 소리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을 줍다가, 문득 어제 일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서로를 탐하느라 정신없었던 밤.그 기억이 온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수혁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민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이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준비해. 나중에 보자.]짧은 문장이었지만, 담긴 의미는 무거웠다.한도전자 인수.강민재가 서린을 노리기 시작했고, 한도오토링크를 흔들며 자신을 공격해 오고 있다.방어만으로는 부족하다.‘지켜야 하니까.’수혁은 방문 너머 잠든 서린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그리고는 부엌으로 향했다.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지난번에 사둔 포장된 국이 냉동실에 있었다.황태국이었다.어제 술도 마셨고, 무엇보다 체력을 많이 썼으니 해장이 필요할 터였다.그는 능숙하게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냄비에 국을 데웠다.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가 집 안을 채웠다.반찬까지 정갈하게 챙겨 식탁에 올린 뒤, 그는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서린은 여전히 이불속에 파묻혀 있었다.수혁은 침대에 걸터앉아 서린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일어나, 공 부장. 지각한다.”“으으…….”“아침 먹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