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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5 07:38:31

뚜루루루—.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마침내 달칵, 전화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낮고 묵직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어. 도윤아

“어? 엄마?”

도윤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서린 역시 놀라 도윤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 아빠 지금 국무회의 생중계 중이시잖니. 폰을 두고 가셔서 엄마가 대신 받았어. 무슨 급한 일이길래 아빠 개인 폰으로 전화를 했어?

어머니, 윤정희 여사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특유의 기품이 서려 있었다.

도윤은 힐끗 서린의 눈치를 보았다.

서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엄마.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누나 일이에요.”

도윤은 그제 카페에서 있었던 강민재와 유정이 누나의 만남부터, 어제 아침부터 강민재가 누나에게 한 짓을 털어놓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듣고 계세요?”

— ……그 새끼가, 감히.

윤 여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친 단어에 도윤은 흠칫 놀랐다.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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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4화.

    5년 전, 공지안에게 맡겼던 첫 번째 USB의 행방을 쫓기 위해 강민재는 지금까지 죽은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어르신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당을 이적하면서까지.— 이번엔 제대로 처리해야 할거야.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강민재는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개새끼들…….”사면초가였다.도대체 누가, 감히 나를 향해 이런 찌라시를 뿌렸단 말인가.그때, 강민재의 뇌리에 한 사람의 이름이 섬광처럼 스쳤다.‘차수혁.’강민재의 입꼬리 한쪽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그렇다면 나는 다르게 가야지.”차수혁이 공격을 시작했다면,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김 비서, 꽃바구니 하나 맞추고 오후 일정 전부 비워.”강민재가 비서에게 소리쳤다.공 상무 오늘 결근했다지?그럼 내가 직접 가봐야겠네.“지안아, 지안아.”강민재가 중얼거렸다.“네 남자친구란 놈이 나를 건드리네?”강민재는 비서가 준비해준 꽃다발을 들고 직접 운전해서 서린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다가,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차수혁.삐딱하게 선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강민재를 노려보고 있는 수혁이었다.마치 그가 올 줄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여긴 웬일입니까, 차 대표님.”강민재가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결근한 내 직원 챙기러 왔지.”수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러는 의원님은 여긴 어쩐 일이실까. 찌라시 막느라 바쁘실 텐데.”“아, 그 삼류 소설이요?”강민재가 피식 웃었다.“차 대표님이 쓰셨습니까? 필력이 부족하던데. 좀 더 쓰시지 그랬어요?”수혁의 입꼬리가 비틀렸다.“아니, 지금 보니까 딱 좋네.”그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얼마나 다급했으면 여기까지 왔겠어?”강민재의 눈썹이 꿈틀했다.“뭐라고?”“찌라시에 뜬 거, 다 네놈 작품이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누가 그래? 증거 있어?”“있지, 증거. 그것도 없이 내가 지를까 봐?”수혁이 비웃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3화.

    뚜루루루—.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마침내 달칵, 전화가 연결되었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낮고 묵직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 도윤아“어? 엄마?”도윤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서린 역시 놀라 도윤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아빠 지금 국무회의 생중계 중이시잖니. 폰을 두고 가셔서 엄마가 대신 받았어. 무슨 급한 일이길래 아빠 개인 폰으로 전화를 했어?어머니, 윤정희 여사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특유의 기품이 서려 있었다.도윤은 힐끗 서린의 눈치를 보았다.서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엄마.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누나 일이에요.”도윤은 그제 카페에서 있었던 강민재와 유정이 누나의 만남부터, 어제 아침부터 강민재가 누나에게 한 짓을 털어놓았다.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엄마? 듣고 계세요?”— ……그 새끼가, 감히.윤 여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친 단어에 도윤은 흠칫 놀랐다.평생 험한 말이라곤 써본 적 없는 어머니였다.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당장 집으로 들어와. 두 사람 다.“엄마, 하지만 누나는…….”서린이 도윤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잡아챘다.“엄마.”— 서린아. 너 괜찮아?“네, 엄마. 아무 일 없어요.”— 들어와, 서린아. 응? 엄마 말 들어.“엄마, 저 안 가요.”내가 지금 관저로 들어가게 되면, 그건 그야말로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꼴밖에 안될 것이다.강민재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지금, 대통령인 아버지 곁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정치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가뜩이나 여소야대인 지금, 저들에게 빌미를 줄 수는 없었다.서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서린아, 엄마는 더 이상 너 다치는거 못 봐.“걱정 마세요.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요.”— 그 때는 그 놈이 모를 때잖아. 상황이 달라졌잖아.“도망치는 건 5년으로 충분해요.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2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수혁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강민재가 건드린 것 같다.”“그 새끼가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쟤가…….”유정이 발끈하고 나섰다.“그 자식이 의도적으로 트라우마를 자극한 것 같다.”수혁의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서린이 옆에 있어야겠어요.”유정이 안방으로 들어갈 때, 두 사람도 함께 따라 들어갔다.세 사람이 안타까운 눈으로 침대 곁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으음.”서린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천천히 눈이 떠졌다.흐릿한 시야 속으로 가장 먼저 수혁의 얼굴이 보였다.그리고 그 옆에 유정, 발치에는 도윤이 서 있었다.“서린아! 깼어?”“누나! 괜찮아?”걱정 가득한 목소리들.서린은 멍하니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어둠 속에서 혼자 떨던 밤이 아니었다.5년 전 차가운 바닷물 속도 아니었다.지금 이 방 안에는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서린의 메마른 입술 위로, 아주 옅고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응……. 나 괜찮아.”쉰 목소리였다.하지만 눈빛은 조금 편안해져 있었다.수혁은 서린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수혁의 손길이 닿자 서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어젯밤에는 그토록 두렵기만 했던 기억이 이제는 조금 멀어진 것 같았다.눈을 뜨면 수혁이 있었고, 손을 뻗으면 유정이 있었고, 발치에는 도윤이 있었다.혼자가 아니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다들 왜 그렇게 봐요. 저 진짜 괜찮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유정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우리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미안해.”서린이 작게 웃었다.“그래도 이제 괜찮아. 진짜로.”그녀가 웃는 것을 보자,그제야 멈춰있던 수혁의 심장도 다시 뛰는 것 같았다.서린은 마주 손을 잡아주며 수혁을 올려다보았다.“대표님.”“어. 왜. 어디 아파?”“아니요. 대표님, 오늘 엄청 바쁜 날이시잖아요. 투자사 미팅도 있고, 한도전자 임원 회의도 있고.”수혁의 눈썹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1화.

    — 네 목줄이나 챙겨. 이 개새끼야.“……뭐?”뚝.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여보세요? 야— 이 씨발!”강민재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퍽!액정이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튀었다.“제기랄. 차 대표한테 다 일렀다 이거지?”강민재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냉장고를 거칠게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냈다.뚜껑을 비틀어 열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입 밖으로 흘러내린 물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낮게 중얼거렸다.“재밌네.”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비틀렸다.“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빈 생수병을 싱크대에 쾅 내리쳤다.“기다려, 공지안.”강민재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내가 너 반드시 되찾아 온다.”시간은 바로 어제 오후,성유정과 식사를 마쳤던 그 레스토랑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문을 박차고 나가는 성유정의 뒷모습을 보며,강민재는 모든 퍼즐을 맞췄었다.그 분노,그 맹렬한 적개심.피식―강민재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탁. 탁. 두드렸다.“반응이… 너무 과하잖아.”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친구한테 보일 반응은 아니지.날 뭘로 보고.“맞지?”강민재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번졌다.“너 공지안. 살아 있었던 거야.”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을 단숨에 털어 넣으며 그는 환희에 찬 웃음을 터뜨렸었다.“아하하하하.”어깨가 들썩였다.“이야— 이게 뭔 일이야.”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죽었던 내 여자가 살아 돌아왔다.다른 이름,다른 얼굴을 하고서.강민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그래, 이건 하늘이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거야.”그때서야 주변 테이블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숟가락을 멈춘 채 그를 힐끗 거리고 있었다.하지만, 강민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저장된 연락처를 검색했다.‘공지안…… 아니, 아직은 공서린이지.’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손가락으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40화.

    “대…… 표님?”서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부름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흐어어엉…… 흑, 아아…….”서린은 수혁의 목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그에게 매달려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마치 생명줄을 붙잡고 놓치 않겠다는 듯.얼마나 세게 잡고 매달렸는지 수혁의 뒷목이 뻐근했다.수혁의 옷이 눈물로 흠뻑 젖어갔다.서린을 안은 수혁의 팔이 점점 더 단단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어젯밤에 그냥 돌아가지 말걸.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수혁이 낮게 말했다.“괜찮아…….”그는 서린을 품에 더 깊이 안고 땀에 젖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아무 일도 안 일어나.”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였다.“내가 다 막을 거니까.”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수혁은 서린을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내가 있잖아.”“응...”수혁은 서린의 몸을 살짝 떼어내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수혁은 엄지로 그녀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었다.“왜 항상 혼자 감당하려고 해.”서린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대표님...”“무슨 일인지 말 안 해도 돼. 애써서 말하려고 하지 마.”“...네.”“잘한다. 착하네.”“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서린이 울음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오긴. 차 타고 왔지.”픽-서린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말이 아니잖아요.”“아니. 어떻게 왔냐길래 차 타고 왔다 했는데 그게 왜?”“농담하지 말고요. 지금 몇 시예요?”“직원이 무단 결근을 했더라고. 그래서 잡으러 왔지.”“아...”“아아? 그게 다야?”“죄송해요. 미리 연락도 못했네요.”“괜찮아. 괜찮은데 좀 서운하네.”“뭐가요?”“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무슨 일인지는 말할 수 없어도 옆에 있어 달라고는 할 수 있잖아.”수혁이 서린을 가만히 바라봤다.“내가

  • 그날, 나는 죽지 않았다.   139화.

    수혁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통화 기록 맨 위에 같은 이름이 반복되고 있었다.공서린.다시 한 번 발신 버튼을 눌렀다.전화를 거는 순간, 기계적인 안내음이 흘러나왔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결할 수 없습니다.”수혁의 턱이 미묘하게 굳었다.“…….”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전화기는 꺼져 있었다.조금 전 민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공 상무님? 우동 배달된 거 확인하고는… 먹지도 않고 그냥 가셨어.먹지도 않고.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수혁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밤공기가 차갑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엔진 소리가 고요한 지하 주차장에 낮게 울렸다.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수혁은 잠시 차 안에 앉은 채 건물을 올려다봤다.불빛이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혹시 몰라 차에서 내렸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 섰다.벨을 눌렀다.…아무 반응이 없었다.수혁의 시선이 문 아래로 내려갔다.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잠시 문 앞에 서 있던 수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손을 들어 비밀번호를 누르려다가, 결국 멈췄다.약 먹고 쉰다고 했으니 지금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수혁은 한 발 물러섰다.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어두운 방 안에서 휴대폰 화면만 희미하게 빛났다.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고객님의 전화기는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수혁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새벽 공기가 유리창에 흐릿하게 맺혀 있었다.왠지 모르게—가슴 한쪽이 계속 불편했다.마치, 어딘가에서 좋지 않은 일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다음 날 아침 7시.눈을 뜨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수혁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다.오전 9시.수혁은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을 불렀다.“전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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