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차가 가라앉고 있었다.
두려움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지안은 옆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보조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절망이나 놀람이 아니라, 원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철컥.
금속성의 마찰음이 물속에서 둔탁하게 울렸다.
그는 안전벨트를 풀며 차창을 내렸다.
지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또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너 때문이라는 듯.
‘오빠... 뭐라고 하는 거야. 안 들려...’
그리고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차창 밖으로 나갔다.
열린 차창으로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같이… 가… 오빠….”
지안이 손을 뻗었다.
손끝이 그의 재킷 자락을 스쳤으나, 그는 몸을 비틀어서 차창 밖으로 빠져나갔다.
뻗어온 손을 뿌리치듯.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 버리지 마 오빠... 제발...’
수면 위로 향하는 그의 다리가 물결 너머로 흐릿하게 멀어졌다.
그가 빠져나간 창문으로 더 많은 물이, 더 무거운 어둠이 쏟아져 들어왔다.
혼자 남은 지안은 차와 함께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차가운 바다 아래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그 깊은 곳으로.
‘나 무서워. 살려줘 오빠... 살려줘. 오빠-!’
온 몸이 물에 잠기고 짜디 짠 바닷물이 입 속으로 들어왔다.
읍―읍―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한 채,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 없이.
그렇게 지안은 의식을 잃어갔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기계음이 현실을 찢고 들어왔다.
“허윽…!”
서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순간, 환한 불빛이 서린의 눈에 들어왔다.
물이 아니라 공기였다.
건조한 기내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지만 숨통은 여전히 트이지 않았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요동쳤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바닷물에 퉁퉁 부은 손에 덕지덕지 소금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3년 만이었다.
이렇게 생생하게 그 날의 꿈을 꾼 것은.
이탈리아에 머무는 5년 동안 그 악몽은 서서히 잊혀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얼굴을 뜯어고치고 이름을 버리고, 낯선 땅의 언어 속에 숨어 지내는 동안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거울을 봐도 ‘공지안’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한국 땅에 가까워지자마자 기억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그녀를 물속으로 처박았다.
마치 경고처럼.
네가 죽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네가 묻힌 무덤이 바로 저 아래라고.
“저기요, 괜찮으세요?”
옆자리의 중년 여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서린은 창백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죄송합니다. 잠시 악몽을 꿔서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하는 건 이제 본능에 가까웠다.
여자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으며 크게 덜컹거렸다.
타이어가 지면을 긁는 마찰음이 비명처럼 들렸다.
창밖으로 익숙하지만 지독하게 낯선 서울의 회색빛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곳에서 영원히 ‘공서린’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적당히 평온하게 늙어갈 수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과거를 묻고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유예된 죽음일 뿐이었다.
매일 밤 거울 속의 낯선 얼굴을 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되물어야 하는 형벌.
그녀가 돌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바닷물 속에 수장된 ‘공지안’이라는 이름을 건져 올리는 것.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야만 가족의 곁으로, 진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내 가족을 가족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다.
***
입국장은 밝고 소란스러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어, 익숙한 억양,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일상적인 소음이 서린에게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심사대 앞에 섰다.
여권을 내밀었다.
심사관이 여권 사진과 실물을 번갈아 보았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눈, 코, 입을 훑었다.
“공서린 씨?”
“네.”
심사관은 무심하게 도장을 찍어 여권을 돌려주었다.
“입국을 환영합니다.”
환영.
그 말이 묘하게 비릿하게 들렸다.
서린은 짧게 목례하고 심사대를 빠져나왔다.
자동문이 열리고 공항 로비로 나오자 한국의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습하고 무거운 공기.
5년 전 그날 밤의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다.
후우—
서린은 잠시 멈춰 서서 긴 숨을 내뱉었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가는 연인도 있고,
연로하신 할머니를 부축하고 가는 사람.
자신을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나는 가족들조차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왔다고 연락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서린은 그런 사람들 사이를 지나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십니까?”
“……강남으로 가 주세요.”
택시는 공항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은 평화로워 보였다.
‘여기서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한국에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그들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찾아야 한다.
분명 길은 있을 것이다.
돌고 돌아 수없이 도망쳤지만 결국 이 길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서로를 향한 서약이 예식장을 울리고 난 뒤, 사회자가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이제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음을,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앞에서 엄숙히 선언합니다.”성혼선언문이 낭독되자 하객석에서 따뜻한 박수가 쏟아졌다.수혁과 지안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마침내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선 기분이었다.“다음은 두 사람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순서입니다.”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수혁과 지안이 몸을 돌렸다.오늘 예식장의 혼주석은 좌우의 구분이 없었다.가장 앞줄 중앙에 윤정희 여사와 공대현 전 대통령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수혁의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그렇다고 차윤호 같은 일가를 부를 수도 없었다.그래서 윤 여사가 먼저 제안했었다.— 신랑 측, 신부 측 가르는 게 무슨 소용이야. 이제 수혁이도 우리 가족인데. 혼주석은 구분 없이 우리 부부가 가운데 앉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수혁은 그 배려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두 사람이 부모님 앞에 다가섰다.지안이 고개를 숙이려던 찰나, 수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턱시도를 입은 채 무릎을 꿇었다.바닥에 머리가 닿을 만큼 깊은 큰절이었다.“……!”하객석이 술렁였고 윤 여사의 눈시울이 단번에 붉어졌다.공대현 역시 벅찬 눈으로 수혁을 내려다보았다.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에게, 그리고 이제 자신의 가족이 되어준 분들에게 바치는 진실한 감사였다.수혁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숙이자 공대현 부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윤 여사가 눈물을 훔치며 수혁을 와락 끌어안았다.“수혁아. 내 사위…… 잘 살아.”윤 여사가 수혁의 넓은 등을 토닥이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내 아들은 하지 마. 난 사위가 좋아.”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그저 지안을 사랑해 준 완벽한 사위로서 그를 존중하고 아끼겠다는 장모의 진심이었다.수혁은 윤 여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낮고 부드
햇살이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와 침대 위를 부드럽게 비추었다.수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자신의 가슴팍에 폭 파묻힌 채 곤히 잠든 지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살짝 벌어진 입술.“으음…….”지안이 작게 뒤척이며 수혁의 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수혁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번졌다.“지안아.”수혁이 낮게 잠긴 목소리로 부르며 지안의 맨어깨를 쓸어내렸다.“일어나야지. 우리 오늘 결혼해.”“네...”지안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수혁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수혁이 지안의 허리를 끌어안자 지안이 눈을 번쩍 떴다.“아, 맞다. 엄마가 오신다고 했는데. 얼른 일어나요, 수혁 씨.”지안이 수혁의 품을 빠져나오자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이 내려갔다.알몸이 드러난 지안이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겼다.“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볼 거 다 봤는데. 편하게 가서 씻어.”지안은 수혁을 째려보고는 가운을 걸치고 욕실로 달려갔다.“저렇게 예쁘면 반칙 아닌가.”띠리리리―그때 초인종이 울렸다.수혁이 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윤정희 여사였다.“어, 차서방. 아직 준비도 안 하면 어째? 벌써 6시가 되었는데.”“괜찮습니다, 장모님. 저야 얼굴에 로션만 바르면 되는데요.”“안 돼. 오늘 같은 날 신랑도 가장 멋져야지.”수혁의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모두 구속되어 오늘 결혼식에 참석할 가족도, 신랑을 챙겨줄 가까운 친지도 없었다.윤 여사는 그게 안타까웠다.“신랑이 멋져야 신부가 살지. 어서 준비해. 샵 예약도 같이 해 뒀다고 했는데 못 들었어?”“들었어요. 지안이 나오면 저도 준비할게요.”“그리고 이건 꼬마 주먹밥이야. 오늘은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거야.”“이런 것도 준비해 오셨어요?”“그럼, 내 딸이고 내 사위인데 내가 챙겨야지.”그때 씻고 나온 지안이 윤 여사를 보고 인사했다.“엄마 벌써 오셨어요?”“벌써가 뭐야. 늦었어. 지안아, 지금 가야 해.”엄마의 손에 이끌려 현관문을
“음~ 냄새 좋다.”그때, 현관 쪽에서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새 수혁이 주방으로 다가와 지안의 등 뒤에서 그녀를 살포시 껴안았다.수혁의 넓은 가슴이 지안의 등에 빈틈없이 밀착되었다.그의 단단한 팔이 지안의 허리를 감싸 안고, 턱이 그녀의 어깨 위에 편안하게 안착했다.“왔어요?”지안이 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웃었다.언제나 이랬다.지안이 주방에 있으면 수혁은 등 뒤에서 안아주며 인사를 했다.지안은 이럴 때가 참 좋았다.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수혁은 지안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오늘은 갈치조림이야?”“네. 어제 할머니가 갈치를 보내주셨어요.”“그래?”“좀... 그런가요? 다른 걸 했어야 했어요?”“아니야. 네가 하는 건 뭐든지 맛있어. 내일이 결혼식이라고 칼질만 하란 법 있어? 우리 식대로 하는 거지.”지안이 몸을 돌려 수혁을 올려다보았다.가스레인지 위에서 갈치조림이 보글보글 끓으며 내는 따뜻한 소리와, 집 안을 가득 채운 맛있는 냄새.그리고 내 눈앞에서 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이 남자.지안은 까치발을 들어 수혁의 입술에 가볍게 촉, 하고 입을 맞췄다.수혁의 눈동자가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커졌다가, 이내 세상 다 가진 자의 미소로 휘어졌다.그는 지안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그녀의 입술을 깊고 달콤하게 머금었다.지안의 숨소리가 흐트러졌다.수혁이 지안의 몸을 더 바짝 당겨 안았다.입술이 더욱 깊게 맞물리고, 거실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치이이익—! 푸흐흡!가스레인지 위에서 갈치조림 양념이 끓어 넘쳐 인덕션렌지 위로 사방팔방 튀고 있었다.“어머! 어떡해!”수혁이 재빨리 레인지의 전원을 껐다.붉은 양념이 눌어붙은 상판과 토끼 눈을 하고 서 있는 지안.그리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수혁.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거 봐요, 제가 얼른 씻고 오라고 했잖아요.”“갈치조림이 눈치가 없네. 쯧
한도전자 본사 25층. 결혼식을 단 하루 앞둔 금요일 오후, 전략기획실 주변은 하루 종일 붕 뜬 공기로 가득했다.“상무님, 아니, 지안 상무님! 내일 진짜 세상에서 제일 예쁘실 거예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신혼여행 다녀오시면 저희 부서 회식 한 번 쏴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결재판을 들고 들어온 팀장들부터 복도에서 마주치는 직원들까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지안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이제 회사 내에서 그녀를 ‘공서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대국민 폭로 영상과 이어지는 재판을 통해 그녀의 진짜 이름과 그간의 사연이 세상에 낱낱이 밝혀진 이후, 직원들은 진심 어린 존경과 애정을 담아 그녀를 ‘공지안 상무’라 불렀다.“감사합니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제가 크게 한턱낼 테니까 기대하세요.”지안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피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퇴근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던 지안의 시선이 책상 위 달력에 머물렀다.빨간색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내일의 날짜. 마침내, 수혁과 완전한 가족을 이루는 날이었다.지안은 조용히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간 기적 같은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불과 며칠 전,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는 공대현 대통령의 퇴임식이 열렸다.‘공지안’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지 3개월 하고도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공대현 대통령의 퇴임식은 온 국민들의 따뜻한 응원과 아쉬움속에 치러졌다.— 그동안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평범한 아버지로 돌아가려 합니다.단상 위에서 마지막 연설을 마친 아버지는, 온화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재임 기간 내내 굵직한 개혁을 이뤄냈고, 특히 임기 막바지에 터진 전대미문의 ‘국가 기술 유출 게이트’를 성역 없이 단죄하며 썩은 환부를 도려낸 결단력 덕분에 국민들의 지지율은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압도적이었다.온 국민이 공대현
강태환은 여병석이 붙여준 변호사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두했다.조사실에서도 그는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모두 제가 한 일입니다.”“여병석 전 의원은 전혀 몰랐습니까?”“네. 제가 독단적으로 처리했습니다.”옆에 앉은 변호사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조사가 잠시 중단되고 변호사가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간 순간이었다.강태환이 맞은편에 앉은 검사를 바라봤다.“검사님.”“말씀하십시오.”강태환은 주머니에서 작은 USB를 꺼내 테이블 아래로 밀었다.“이걸 먼저 확인해 보시죠.”검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뭡니까?”“일단 확인부터 하시죠.”통화 녹취.차명계좌.그리고 여병석이 직접 지시한 일들의 기록.“원하는 게 뭡니까?”강태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강태환은 곧바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을 지웠다.철컥.문이 열리고 여병석이 붙여준 변호사가 들어왔다.“계속하시죠.”강태환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말씀드린 대로 모든 일은 제가 혼자 한 겁니다.”***서린에게는 그 어떤 복수보다 중요하고 벅찬, 또 하나의 소식이 찾아왔다.바로 ‘이름’을 되찾는 날이었다.여론은 완벽하게 그녀의 편이었다.국민들은 당장 그녀의 신분을 원상 복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더해져 법적인 복권 절차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물론, 벌금형으로 처벌을 완전히 면하지는 못했다.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수혁과 서린은 서울의 한 구청 민원실 앞에 서 있었다.“떨려?”수혁이 서린의 손을 꽉 쥐며 다정하게 물었다.서린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요. 실감이 안 나서요.”서린은 무인 발급기 화면을 터치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지문을 인식시켰다.징- 하는 경쾌한 기계음과 함께 빳빳한 종이 한 장이 출력되어 나왔다.[가족관계증명서]서린은 종이를 받아 들고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아버지 공대현. 어머니
다음날 점심 무렵,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지만, 수백 명의 취재진과 성난 시민들의 열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강민재 나왔다!”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폭우처럼 쏟아졌다.수갑이 채워진 채 양옆을 수사관들에게 결박당한 강민재가 모습을 드러냈다.말끔했던 정장은 구겨지고, 오만했던 얼굴에는 피로와 분노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강민재 의원! 국가 기술을 해외로 팔아넘긴 혐의 인정하십니까!”“피해자를 납치한 이유가 뭡니까! 대국민 사과하실 생각 없습니까!”마이크가 창처럼 날아들었지만 강민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오히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비웃듯, 턱을 치켜들고 특유의 오만한 눈빛을 번뜩이려던 찰나였다.“이 매국노 새끼야!!”군중 속에서 찢어질 듯한 고함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퍽! 노란 액체가 강민재의 이마 정중앙에서 터졌다.“악!”강민재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날아온 날계란 수십 개가 그의 얼굴과 정장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계란 껍데기가 깨지며 그의 눈썹과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어떤 것은 코트를 더럽히고, 머리카락에도 엉겨 붙었다.“이 쓰레기 같은 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당장 구속해! 사형시켜라!”시민들의 고함과 쌍욕이 검찰청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늘 깔끔하고 완벽한 정치인 코스프레를 하던 강민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계란물과 오물로 뒤범벅이 된 채, 그는 수사관들에게 떠밀리듯 호송차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그 시각. 한도전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TV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강민재가 계란 세례를 맞고 호송차에 타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와, 속이 다 시원하네! 저런 놈은 아예 광화문 네거리에 묶어놓고 조리돌림을 해야 돼.”“그러게 말입니다. 지가 나라 기술 팔아먹고 살인 미수까지 저질러놓고, 뻔뻔하게 피해자 행세를 해? 벼락 맞을 놈.”“공 상무님 영상 아니었으면 우리 회사가 저놈한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