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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0화

Author: 서린화
서 황후는 억울한 척하는 연기를 더없이 그럴듯하게 해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린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사이로 희미한 실망이 배어 있었다.

황제가 입을 다물자 서봉전 전체가 순식간에 숨 막힐 듯 고요해졌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황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전각 안을 짓누르는 듯했다.

황제의 바로 곁에 앉아 있던 금영마저 그 기세에 압도될 정도였다.

황제가 정말로 화가 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일까.

반마디조차 하지 않는데도 사람의 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율이 일어나는 듯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예전에 황제가 자신에게 화를 냈을 때는 그래도 성정을 많이 누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위명과 손복안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함께 끌려온 손 태의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오는 길에도 그는 몇 차례 눈치를 보며 어째서 위 총령과 손복안이 직접 자신을 부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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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63화

    태자는 서 황후의 모습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렸다.“아바마마! 부디 어마마마를 믿어 주시옵소서!”태후도 황제를 바라보았다. 몹시 화가 난 듯 목소리까지 가늘게 떨렸다.“황제, 이런 것들도 증거라 할 수 있습니까?”“저 안태환이 구 년 전의 것이라고 여비가 말하면 그대로 구 년 전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마지막 서신 또한 얼마든지 필체를 흉내 내 꾸며 낼 수 있습니다!”황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마마마, 황후가 정말 떳떳하다면 어찌 사람까지 불러 아기 원혼을 쫓게 했겠습니까?”태후는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그 일은 내 잘못입니다.”“나는 황제를 낳은 뒤에도 아이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복이 짧아 끝내 무사히 태어나지 못했지요……”거기까지 말한 태후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곁에 있던 손 상궁이 곧 말을 이어받았다.“태후마마께서는 냉궁에서 폐하를 낳으신 뒤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사옵니다. 그 뒤로도 회임은 하셨으나, 다시는 아이를 무사히 낳지 못하셨사옵니다……”손 상궁은 눈시울을 붉힌 채 황제를 바라보았다.“요즘 들어 태후마마께서 자꾸 악몽에 시달리시어 황후마마께 그 일을 털어놓으셨사옵니다.”태후는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어머니만이 품을 수 있는 따스한 자애가 가득했다.“황후가 마음을 써 준 것입니다. 황제가 귀신이나 원혼 따위의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을 불러 법단을 차리고 의식을 치르게 한 것이지요.”금영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법단까지 차렸다면 원혼을 쫓아낼 것이 아니라 천도재를 지내야 하는 것 아닌가.금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비를 힐끗 바라보았다.이 일이 또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만큼은 원치 않았다.되도록 몸을 사리고 싶었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폐하……”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비가 잘라 버렸다.여비는 금영을 바라보며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62화

    황제는 그 말을 듣고 금영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묘한 뜻이 어려 있었다.금영은 순간 가슴이 살짝 조여들었다.‘내가 너무 티를 냈나? 설마 폐하께서 이 일에 내가 손을 썼다는 걸 눈치채신 건 아니겠지?’금영은 얼른 눈을 내리깔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그때 바로 곁에 있던 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엄 있고 서늘하기만 하던 황제였지만, 그 한숨에는 어쩐지 난감함과 체념이 조금 섞여 있었다.그러나 곧 황제의 차가운 호통이 떨어졌다.“황후! 금영은 그저 짐을 대신해 저 도사에게 몇 마디 물었을 뿐인데, 그게 어찌 자네를 모함한 것이란 말인가?”“오늘 이 일을 철저히 밝히겠다 한 이는 짐일세. 설마 지금 짐이 자네를 모함하고 있다는 말인가?”서 황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가 옳고 그름조차 따져 보지 않은 채 금영을 감싸며 자신을 꾸짖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서 황후가 억울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폐하……”“그만하게! 황후, 이렇게 많은 증거가 자네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아직 변명할 셈인가?”황제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지금까지 나온 증거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두약해가 남긴 마지막 서신이었다.하지만 그 서신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사소해 보이던 수많은 정황과 증거가 하나같이 이 일이 서 황후의 소행임을 가리키고 있었다.서 황후가 정말 떳떳하다면, 어찌 사람까지 불러 아기 원혼을 쫓으려 했겠는가?물론 이 일이 정말 서 황후가 벌인 일이든 아니든, 금영이 지금 그녀를 황후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데에는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전생에 금영은 이미 한 번 서 황후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이번 생에서도 금영과 아기 황자가 운이 조금만 나빴더라면 오늘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서 황후는 입술을 달싹였다.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말을 꺼냈다.“폐하께서 끝내 구 년 전의 일이 신첩의 잘못이라 여기신다면, 신첩도 더는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61화

    분명 현 귀비가 위 첩여에게 입을 열라고 은근히 신호를 준 것이면서도, 막상 이럴 때가 되자 한마디 꾸짖으며 선한 척까지 했다.하지만 현 귀비와 위 첩여조차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위 첩여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더라도 황제가 떠올리지 못할 리 없었다.마침 이전도 바로 곁에 있었다.황제의 시선이 이전에게로 향했다.이전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뭐라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그때 금영은 여전히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도사를 한번 바라보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정운 도사, 아직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셈인가?”“오늘 서봉전에는 무슨 일로 왔는지 사실대로 말해 보게. 자네가 그 속사정까지는 몰랐던 듯하니,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본궁이 폐하께 잘 말씀드려 궁 밖으로 내보내 주겠네.”이들 가운데 손 태의든 이전이든, 제 살길이 걸려 있는 이상 순순히 자백할 리가 없었다.하지만 정운 도사는 달랐다.그는 서 황후가 궁 밖에서 따로 불러들인 사람이었다.그만큼 입을 열게 하기도 가장 쉬웠다.설마 서 황후가 오늘 귀신을 쫓을 날을 대비해 오래전부터 도사 하나를 곁에 두고 있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금영의 말이 떨어지자 정운 도사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변한 것은 그의 얼굴뿐만이 아니었다.서 황후의 안색마저 순간 굳어졌다.서 황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금영을 바라보았다.‘배금영이 어떻게 이 도사의 도호까지 알고 있지? 고작 새파랗게 어린 계집애가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다 한들, 대체 무슨 수로 내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한단 말인가?’그 생각에 이르자 서 황후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금영은 일부러 정운 도사의 도호를 입에 올린 것이었다.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정운 도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속셈이었다.그렇다고 금영이 정운 도사의 도호를 알게 된 것이 우심의 보고 덕분인 것은 아니었다.사실 정운 도사가 궁에 들어온 뒤로도 누구 하나 그의 도호를 입에 올린 적이 없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60화

    서 황후는 억울한 척하는 연기를 더없이 그럴듯하게 해냈다.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황제의 얼굴에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린 기색이 없었다.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사이로 희미한 실망이 배어 있었다.황제가 입을 다물자 서봉전 전체가 순식간에 숨 막힐 듯 고요해졌다.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황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전각 안을 짓누르는 듯했다.황제의 바로 곁에 앉아 있던 금영마저 그 기세에 압도될 정도였다.황제가 정말로 화가 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일까.반마디조차 하지 않는데도 사람의 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율이 일어나는 듯했다.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예전에 황제가 자신에게 화를 냈을 때는 그래도 성정을 많이 누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위명과 손복안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함께 끌려온 손 태의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오는 길에도 그는 몇 차례 눈치를 보며 어째서 위 총령과 손복안이 직접 자신을 부르러 왔는지 떠보듯 물었다.서 황후의 몸이 편찮은 것이라 해도 굳이 두 사람까지 직접 움직일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복안은 능숙하게 말을 돌려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손 태의는 서봉전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 황후를 보고 깜짝 놀랐다.아직 정신을 추스를 틈도 없었다.황제의 싸늘한 목소리가 먼저 떨어졌다.“손 태의, 자네는 죄를 아는가?”손 태의는 화들짝 놀라 본능적으로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무, 무슨 죄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그 모습을 본 금영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저렇게 놀라는 꼴을 보니 서 황후를 위해 저지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었다.그러니 황제가 대체 어느 일을 묻는 것인지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자네가 여비의 안태환에 손을 댄 적이 있는가?”손 태의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안색을 바로잡고 곧장 억울함을 호소했다.“폐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59화

    같은 적과 같은 원한은 이해득실보다 사람의 마음을 훨씬 더 단단히 묶어 주는 법이었다.이익은 때에 따라 저울질하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원한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가슴속에 타오르는 원한의 불길은 밤낮없이 사람을 괴롭혔다.여비처럼 아홉 해라는 세월이 흘러도, 금영처럼 죽음을 겪고 다시 살아나도 쉽게 꺼지지 않는 불길이었다.현 귀비는 앞으로 걸어와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신첩, 폐하를 뵙사옵니다.”이어 서 황후를 바라보며 다시 예를 갖췄다.“황후마마를 뵙사옵니다.”현 귀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폐하, 황후마마께서는 어찌하여 이리하고 계시옵니까?”마치 진심으로 서 황후를 염려하는 사람처럼 보였다.황제는 현 귀비를 힐끗 바라보았다.목소리는 아직 그리 차갑지 않았다.“자네는 어찌 이곳까지 왔는가?”현 귀비가 공손히 대답했다.“오늘 날씨가 좋아 잠시 바람이나 쐴까 하여 나왔사옵니다. 그러다 궁비에게서 폐하와 원 귀비가 서봉전으로 오셨다는 말을 들었기에, 신첩도 황후마마께 문안을 드리러 왔사옵니다.”말을 하면서도 현 귀비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 황후를 슬쩍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그 모든 모습이 금영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금영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현 귀비의 말만 들으면 정말 우연히 이곳에 들른 것처럼 들렸다.하지만 아마 서봉전에서 벌어진 일은 진작 현 귀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다만 현 귀비의 신분으로 먼저 나서 궁 안에 법단을 차리고 법사를 벌인 일을 문제 삼아 봐야 서 황후를 완전히 끌어내리기는 어려웠다.괜히 황제의 의심만 살 수도 있었다.현 귀비는 제 아들을 태자의 자리에 올리고 싶어 했지만, 그 야심만큼은 결코 황제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현 귀비와 서 황후는 겉으로는 줄곧 무난하게 지내 왔다.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가 정말 화목했던 것은 아니었다.그저 서로 쉽게 먼저 손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하지만 어느 한쪽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상대의 숨통을 끊을 각오로 움직이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1058화

    금영은 서 황후가 순순히 인정할 리 없다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여비의 말만 듣고 서 황후에게 죄를 씌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서 황후가 부인한다고 해서 곧바로 결백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었다.과연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는 결국 밝혀내야 했다.그 생각에 금영은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라면 제대로 조사해 주겠지.사실 여비가 오늘 갑자기 일을 벌인 것은 다소 성급하기는 했지만, 시기만큼은 절묘했다.예전 같았으면 누군가 서 황후의 죄를 고발한다 해도 황제는 평소 그토록 현숙하고 덕이 깊던 황후가 그럴 리 없다며, 누군가 서 황후에게 누명을 씌운다고 여겼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금영이 입궁한 뒤 서 황후는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선 후 계속해서 실수를 저질렀다.그 탓에 황제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현숙하고 어진 황후의 모습은 이미 크게 흔들린 지 오래였다.심지어 황제를 크게 노하게 만들어,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품게 했다.황제에게 이미 서 황후를 폐위할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바로 이런 때 여비가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춰냈으니, 황제가 대충 넘길 리 없었다.이번만큼은 반드시 제대로 조사할 터였다.서 황후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 억울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여비, 본궁과 자네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러는가? 자네가 평소 후궁에서 제멋대로 굴기는 했어도, 본궁은 단 한 번도 중궁의 권세를 내세워 자네를 억누른 적이 없네. 그런데 어찌하여 본궁에게 이런 누명을 씌우는가?”여비는 그 말을 듣자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흘렸다.“원한이 없으시다니요? 제 아이를 죽인 원한조차 황후마마께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이시옵니까?”여비가 싸늘하게 비웃었다.“황후마마께서 인정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사옵니다. 신첩은 폐하를 믿사옵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진상을 낱낱이 밝혀 주실 것이옵니다!”황제가 차갑게 명했다.“손 태의를 잡아 오너라. 짐이 직접 심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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