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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Author: 서린화
위명은 말을 이었다.

“폐하의 상처를 처치하고… 독혈을 빨아낸 사람은 소인이 아닙니다....”

위명은 어떻게 이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말 끝을 흐렸다. 그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일로 황제가 입막음하기 위해 자신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량은 예법이 매우 엄격한 나라였고 특히 명문가 자제일수록 남녀 간의 규범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 했다.

만약 평범한 가문의 여식이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자연스레 궁으로 들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금영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황제는 그 말을 듣자 관자놀이에 핏줄이 꿈틀거렸다.

금영이 처치를 하고 있었을 때 그는 의식이 흐린 상태이긴 했으나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누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준 것인지 알고 있었다. 더구나 단도를 금영에게 직접 건네준 것도 그였다.

그럼에도 위명에게 물은 건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배금영,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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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8화

    금영이 손님을 맞는 외전에 도착했을 때, 현비는 이미 차 한 잔을 다 마신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금영은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를 애써 떨쳐 내고 현비를 맞았다.“현비마마를 오래 기다리게 했사옵니다. 부디 탓하지 마시옵소서.”현비가 웃으며 말했다.“본궁이 잘못했지. 폐하께서 어젯밤 소녕전에 머무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침부터 찾아왔으니.”“금영 동생이 본궁을 탓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본궁이 어찌 동생을 탓하겠나?”현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황후마마의 금족이 어제 풀렸으니 오늘은 우리 모두 서봉전에 가서 문안을 드려야 하지 않겠나.”“마침 금영 동생과 함께 가면 좋겠다 싶어 미리 기별도 없이 찾아왔네.”“혹 지금 불편하다면 본궁이 먼저 서봉전으로 가겠네.”그 말을 들은 금영이 가볍게 웃었다.경춘궁에서 서봉전으로 가는 길에 굳이 소녕전까지 들러야 할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금영은 현비의 속셈을 굳이 들춰낼 생각이 없었다.“현비마마께서 이미 오셨는데 본궁도 딱히 불편할 것은 없사옵니다.”금영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가시라는 듯 손짓했다.두 사람은 나란히 서봉전으로 향했다.도착해 보니 여비가 이미 와 있었다.금영은 여비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사실 금영은 겉으로 누구에게나 늘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편이었다.하지만 여비는 금영의 호의를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리며 못 본 척했다.금영과 현비는 함께 서 황후에게 문안을 올렸다.“황후마마께 문안드리옵니다.”서 황후가 미소를 지었다.“되었네. 다들 왔으니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도록 하지.”“감사하옵니다, 황후마마.”금영도 미소로 답했다.서 황후는 금영과 현비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러고 보니 아직 두 사람에게 제대로 축하도 건네지 못했군.”그러다 다시 여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다만 여비의 그 아이는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네. 그 아이가 무사했다면 이번 귀비 책봉에도 자네 몫이 있었을 텐데.”그 말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7화

    풍등의 다른 쪽 면에는 또 다른 글귀가 적혀 있었다.다시는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기를.하지만 금영은 그 글귀를 보지 못했다.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풍등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는 위명이 눈에 들어왔다.위명은 워낙 손이 크고 거친 데다 풍등을 다루는 동작까지 요란했다.누가 봐도 일부러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금영은 무심코 풍등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그 위에는 시커먼 글씨 몇 덩이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금영이 굳이 글씨를 두고 덩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위명이 얼마나 힘을 주어 썼는지 획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굵었고, 먹물까지 번져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그야말로 못생긴 글씨 덩어리 몇 개였다.금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간신히 글자를 알아보았다.봉급을 깎지 않기를.간신들을 쓸어버리기를.금영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위명의 소원은 지나치게 소박했다.하지만 소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오늘 풍등을 살 돈조차 해수에게 빌려 온 사람이었다.남들은 주머니가 비면 동전 구르는 소리라도 난다지만, 지금 위명의 주머니에는 그 소리조차 낼 것이 없었다.금영은 몸을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위 총령은 폐하께 충심을 다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제 그만 봉급을 깎으시지요. 보고 있자니 너무 딱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위명은 금영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글썽일 듯한 얼굴이 되었다.‘그렇지! 바로 그거다! 그렇게 폐하께 대신 말씀드려 주십시오!’황제는 위명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훤칠한 키에 덩치까지 유난히 큰 위명이 두 눈 가득 기대를 품은 채 금영만 바라보고 있었다.황제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금영아, 지금 다른 사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이냐?”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영이 대신 사정을 해 주면 황제가 마음을 돌려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던 위명이었다.하지만 그 한마디에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았다.차라리 칼을 들어 스스로 태감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사내는 무슨 사내란 말인가!’‘사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6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영은 황제를 이끌고 등불을 파는 노점 앞에 멈춰 섰다.높다란 시렁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온갖 빛깔의 등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수많은 등이 한꺼번에 빛을 내뿜으니 노점 주변이 대낮처럼 환했다.금영은 곁에 선 황제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기왕 정월 대보름이니 저희도 사람들 틈에 섞여 등불 두 개쯤 사 보는 게 어떠하시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금영은 신이 나서 등을 고르기 시작했다.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선녀가 꽃을 뿌리는 모습부터 재물신이 복을 내리는 모습, 달빛 아래 선 미인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산수와 새, 짐승을 그려 넣은 것도 있었다.형형색색의 등이 눈앞에 가득하니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도리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금영이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곁에 있던 황제가 손을 뻗어 높은 곳에 걸린 등 하나를 내려 금영에게 건넸다.“이걸로 하자.”금영은 등불을 받아 들고 한번 살펴보았다.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둥그런 등 위에 몇 번의 단순한 붓질로 통통한 토끼 한 마리가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주변의 화려하고 곱게 꾸민 등들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금영은 순간 황제의 안목을 의심했다.그런 금영의 표정을 본 황제가 굳이 한마디 덧붙였다.“이 토끼를 보거라. 꼭 너를 닮지 않았느냐.”금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저 통통한 토끼가 자신을 닮았다고?마침 손복안이 값을 치르러 다가오자 금영이 발끈해 물었다.“대체 어디가 닮았사옵니까?”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아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처음 너를 만났을 때 짐은 네가 토끼 귀신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짐이 붙잡으려 할 때마다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었겠느냐?”예전 일을 들먹이니 금영은 은근히 뜨끔했다.그때 금영은 황제라는 큰 고기를 낚기 위해 일부러 밀고 당기는 수를 조금 썼었다.만약 황제가 처음부터 그 모든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치밀하게 꾸민 일이었다는 것을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5화

    금영은 말을 마치고 나자 조금 후회가 밀려왔다.혹시 황제가 자신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의심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황제가 자신을 총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그래서 오늘 일부러 먼저 충심 깊었던 선대 영안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금영아, 그저 짐의 총애를 받으며 지내는 것은 싫으냐?”금영은 속으로 생각했다.‘좋기야 더없이 좋지. 하지만 그다음은?’‘그저 소녕전이라는 황금 새장 안에서 황제의 총애만 받는 새로 살아야 하는 걸까?’금영은 황제의 가슴에 얼굴을 살며시 기대고 나직이 말했다.“폐하, 신첩도 조부처럼 폐하를 지켜 드리고 싶사옵니다.”황제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네 마음은 짐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 일은 당분간 더 꺼내지 말거라.”금영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얌전히 대답했다.“신첩은 모두 폐하의 뜻을 따르겠사옵니다!”주작거리에 도착한 뒤, 황제와 금영은 눈에 띄지 않도록 차림을 조금 바꾸고 마차에서 내렸다.이날은 밤 통행을 금하지 않는 날이었다.주작거리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적였다.금영은 자신이 황제와 함께 이 주작거리에 나와 사람 사는 활기를 느껴 본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활기 넘치는 거리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속에 남아 있던 근심도 말끔히 사라졌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단단히 잡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마침 앞쪽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구경꾼들의 열기가 대단했다.금영도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다.하지만 키가 큰 사람 몇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안에서 대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까치발을 들고 몇 번이나 몸을 들썩여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만 연달아 들려왔다.위명은 변복한 호위 몇을 이끌고 황제와 금영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위명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4화

    그렇다 해도 금영은 황제의 속뜻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감히 황제가 이 모든 일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했다고 자만할 수도 없었다.황제는 그 말을 듣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짐의 마음을 알아주니 말이다.”금영은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밝게 빛나는 두 눈에는 감동한 기색이 가득했다.“폐하, 신첩에게 정말 잘해 주시옵니다!”황제가 자신에게 잘해 준다면 금영은 기꺼이 그 마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굳이 이런 순간에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황제가 다시 말했다.“너도 너무 마음에 짐을 지지는 마라. 짐이 이 일을 한 데에는 너를 위한 뜻도 있지만, 두 세력의 균형을 맞추려는 뜻도 있었으니.”황제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서가는 요즘 들어 갈수록 제 분수를 잊고 있구나.”황제가 이토록 거리낌 없이 서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보며 금영은 알 수 있었다.황제가 자신을 전보다 더 깊이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금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조부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이 일을 걱정하셨사옵니다.”“그때 조부께서 신첩과 태자 전하의 혼약을 정하신 까닭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사온데, 첫째는 신첩에게 좋은 앞날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고, 둘째는……”황제는 금영이 먼저 태자와의 혼약을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하지만 오늘 금영이 직접 태자부에 여인들을 보내자고 한 일은 황제의 마음을 제법 흡족하게 해 주었다.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불쾌해하지 않았다.오히려 웃으며 물었다.“둘째는 무엇이었느냐?”금영이 나직이 대답했다.“조부께서는 대량에 세 번째 서 황후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하셨사옵니다.”“황자의 비빈은 더더욱 세력이 큰 집안에서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사옵니다. 영안후부는 줄곧 황실에 충성을 다해 왔고, 조부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병권마저 남지 않았으니 태자 전하에게도 손색이 없으면서 폐하의 근심까지 덜어 드릴 수 있다고 하셨사옵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73화

    현비도 운이 따른 셈이 아니겠는가.본래 황제는 서 황후에게 냉담했지만, 태자만큼은 무척 중히 여겼다.현비와 서 황후는 이 궁 안에서 여러 해 맞서 왔다.하지만 현비는 늘 서 황후에게 반걸음 밀린 채,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해 왔다.그런데 금영이 입궁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이황자는 현비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모비마마, 그러니까 아바마마께서 원비마마를 위해 품계를 올리시면서 모비마마까지 함께 귀비로 승품시키신 것이옵니까?”말을 하는 이황자의 얼굴에는 어느새 언짢은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현비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타이르듯 말했다.“되었다. 그리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거라.”“폐하께서 무슨 뜻으로 그러셨든, 이제 우리도 이미 얻을 것은 얻었다. 그러니 더는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폐하께서는 원비를 각별히 여기신다. 그런데 황후가 자꾸 일을 일으킨다면, 폐하께서 어찌 마음 놓고 이 나라를 황후 모자에게 맡기시겠느냐?”말끝에는 짙은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이럴 때일수록 너는 원비를 더욱 공경해야 한다. 본궁 또한 더욱 대국을 살피며 처신해야 하고.”현비는 진지한 목소리로 거듭 당부했다.이황자가 물었다.“만약 황후마마께서 생각을 바꾸셔서 원비마마와 더는 맞서지 않으시고 아무 일도 벌이지 않으시면 어찌합니까?”현비가 가볍게 웃었다.“그럴 게다. 설령 정말 영리해져 더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해도, 본궁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현비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둘 다 영리한 사람이었다.굳이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 무렵 금영도 방매정에 도착했다.황제는 과연 그곳에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금영은 다가가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인적도 드문 데다 사방이 휑하기까지 했다.황제가 굳이 자신을 이런 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금영이 미처 묻기도 전에 황제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입가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가자.”“어디로 가시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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