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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작가: 서린화
그녀는 본래 예의와 교양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좀처럼 사람과 척을 지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체면도 교양도 잊게 만들며 싸우게 만든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유진설이었다.

유진설은 유난히도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며 트집을 잡는 데 능했다. 그렇다고 딱히 이득을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가 죽으면 누구보다 기뻐하며 폭죽을 터뜨릴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니, 끝끝내 금영의 억울함을 외쳐준 이가 유진설이었다.

때는 그녀가 막 영혼 상태가 되었던 참이었다.

배명월과 태자의 혼약이 정해지며 영안후부에 축하 연회가 열리던 자리였다. 사람들이 금영의 뒷담화를 하며 불결한 여자라 욕하던 것을 유진설이 듣게 되었다. 그러자 유진설은 크게 분노하며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면서까지 그들을 꾸짖었다.

“남들은 몰라도 내가 어찌 모를까! 배금영이 몸을 함부로 굴린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배금영은 절대로 그런 부끄러운 짓을 저지를 인물이 못돼! 순결을 잃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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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6화

    태자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현비마마께서는 이황자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지금, 어찌하여 현청전 밖을 지키고 계시는 것이옵니까? 이황자가 조금도 걱정되지 않으시옵니까?”현비의 눈빛이 잠시 흐려졌다.이내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이황자는 폐하께서 지키고 계시니 무사할 것이옵니다.”현비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폐하께서는 본궁을 믿고 중궁의 일을 대신 맡기셨사옵니다. 더구나 지금은 본궁을 위하여 직접 이황자를 찾으러 나서기까지 하셨지요.”“그러니 본궁에게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끝까지 버텨 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폐하를 대신하여 원비와 황실의 후사를 지키고, 털끝만 한 탈도 생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폐하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현비의 말은 명분만 놓고 보면 더없이 번듯했다.제 아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판국에도 애써 마음을 다잡고, 황제가 총애하는 다른 궁비와 그 뱃속의 아이를 지키겠다고 나선 것이다.누가 이 모습을 본다 해도 현비가 비할 데 없이 어질고 현숙하다며 칭송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그러나 태자에게는 현청전 안의 기척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금영은 낮은 신음조차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있었다.현청전 문 앞에 선 태자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갈수록 짙어졌다.결국 참지 못한 태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그러자 손탁이 곧바로 앞을 막아섰다.“태자 전하, 잠시 멈추시옵소서.”손탁이 공손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아뢰었다.“원비마마께서 오늘은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 분부하셨사옵니다. 더구나 지금은 전하를 뵙기 어려운 때이옵니다.”태자가 곁에 있던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배명월은 얼른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안으로 한 번만 전해 주게. 본궁이 언니를 걱정하여 문안하러 왔다고 말일세.”손탁은 태자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배명월에게 시선을 옮겼다.차마 그 자리에서 단번에 거절할 수는 없었던지, 결국 안으로 들어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5화

    아이를 낳는 일이 어디 한두 시진 만에 끝나는 일이던가.진통이 더디게 진행되면 오늘 밤이 지나도록 아이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러니 무엇보다 기운을 충분히 남겨 두어야 했다.해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이를 낳는 도중에도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하지만 복령이 그리 하라 했으니, 해수는 곧바로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금영은 꿀물을 마시고 나자 확실히 전보다 기운이 덜 빠지는 듯했다.얼마쯤 더 시간이 흐르자 복령이 다급히 외쳤다.“이제 다 되었사옵니다. 곧 아이가 나오겠사옵니다.”복령은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마마, 전에 노비가 알려 드린 대로 어떻게 힘을 주셔야 하는지 기억하고 계시옵니까?”창백해진 금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복령은 입궁한 뒤 남몰래 금영에게 해산할 때 힘을 주는 법과 숨을 고르는 법을 가르쳐 두었다.복령의 표정이 한층 엄숙해졌다.“그러면 마마, 노비가 말씀드리는 때에 맞추어 힘을 주시옵소서.”전각 안에서 복령은 차분히 금영의 해산을 이끌었다.곁에는 난산에 대비한 여러 도구도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혹여 이번 해산이 난산으로 이어진다 해도, 어떻게든 어미와 아이를 모두 지켜 내야 했다.*그 시각 전각 밖.태자를 이전 따위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태자는 이미 현청전 앞까지 곧장 달려와 있었다.얼마나 급히 왔는지 이마에는 땀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다.현비는 태자를 본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태자 전하께서 어찌 이곳에 오셨사옵니까?”배명월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신첩은 궁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이어 언니에게 산기가 돌았다는 말까지 듣고 몹시 걱정되었사옵니다. 그래서 태자 전하께 청을 드려 함께 입궁하였사옵니다.”배명월이 다시 물었다.“언니는 지금 어떠하옵니까?”거기까지 말한 배명월은 뒤늦게 호칭을 바로잡았다.“신첩이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만 호칭을 잘못 썼사옵니다. 원비마마께서는 지금 어떠하시옵니까?”배명월의 말과 표정만 보아서는 금영을 진심으로 걱정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4화

    서 황후의 눈가에는 옅은 득의가 스쳤다.마치 모든 일이 제 손안에 들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현청전에는 진작 산기를 재촉하는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현청전뿐만이 아니었다.금영이 머물 가능성이 있는 다른 두 전각에도 똑같은 준비를 해 두었다.설령 금영이 그 차를 마시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오늘 밤 안으로 금영이 아이를 낳게 할 다른 수단도 얼마든지 있었으니까.그 화재는 철옹성처럼 빈틈없던 소녕전에서 금영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굳이 독을 써서 금영을 죽이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금영이 정말 중독된다면 그 일을 감쪽같이 덮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이런 식이라면 저 천한 계집이 아이를 잃게 만들면서도, 그 죄를 현비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었다.가히 일거양득이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서 황후는 줄곧 어질고 현숙한 사람으로 살아왔다.다른 이를 용납하지 못할 만큼 속이 좁은 사람도 아니었다.황제가 후궁의 누구를 총애하든 상관없었다.다만 황제가 다른 여인에게서 자식을 보는 것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그것이 서 황후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선이었다.앞에 서 있던 환옥이 아첨하듯 말했다.“마마의 지혜를 따를 자는 그 어디에도 없사옵니다.”조씨도 곧장 말을 보탰다.“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계집이 어찌 마마의 상대가 되겠사옵니까.”환옥이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원비마마께서는 아직 다른 태의나 산파를 부르실 뜻이 없어 보이옵니다. 설마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산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사옵니까?”“혼자 아이를 낳겠다고?”서 황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한 번도 아이를 낳아 본 적 없는 어린 계집이 무슨 수로 혼자 해산한단 말이냐?”그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정말 혼자 해산하려 들다가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곁에 있는 궁비도 결국 사람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누구든 현청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산파든 태의든 상관없었다.서 황후에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3화

    “현비마마의 호의는 노비가 원비마마께 빠짐없이 전해 올리겠사옵니다.”해수가 공손히 대답했다.“원비가 본궁을 만나고 싶지 않다니 억지로 만나려 들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궁도 이대로 돌아갈 수만은 없구나.”그렇게 말한 현비는 뜻밖에도 현청전 문 앞에 그대로 서서 차분히 기다리기 시작했다.후궁에 불이 난 데 이어 금영이 해산을 앞두었다는 소식까지, 어찌 된 영문인지 날개라도 돋친 듯 순식간에 후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에 잠이 깬 궁비들이 하나둘 현청전 밖으로 몰려들었다.*태자부.이 소식은 곧 태자의 귀에도 들어갔다.태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의복을 갈아입은 뒤 성큼성큼 밖으로 나섰다.막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뒤따라온 배명월이 그를 불러 세웠다.“전하,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태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금영이가 오늘 아이를 낳는다는데, 아바마마께서도 궁에 안 계시니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말을 내뱉고 나서야 태자는 자신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그곳에는 배명월 외에 믿지 못할 만한 자가 없었다.태자는 배명월을 바라보았다.서늘한 눈빛에 입을 다물라는 경고가 역력했다.그 시선을 받은 배명월은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예. 신첩도 언니가 걱정되어 그랬사옵니다.”배명월이 다소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신첩과 언니는 같은 영안후부에서 자란 자매이옵니다. 이제 언니가 해산을 앞두고 있으니, 아우 된 신첩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이내 배명월은 얌전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전하, 신첩과 함께 입궁하시어 언니를 문안해 주시겠사옵니까?”태자는 배명월이 질투하거나 소란을 피우기는커녕 이처럼 분별 있게 나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배명월이 순순히 뜻을 맞춰 주자 태자의 목소리도 한결 누그러졌다.“좋다. 내가 너와 함께 입궁하마.”배명월도 이제는 깨달았다.금영의 일로 태자와 맞서 보아야 자신에게 득이 될 것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2화

    한편 현청전 안에서는 금영이 밀려드는 고통을 애써 참아 내며 이따금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복령은 깨끗한 천을 금영의 입에 물려 주며 나직이 말했다.“마마, 정 괴로우시면 이 천을 물고 계시옵소서. 절대로 큰 소리를 내셔서는 아니 되옵니다.”복령이 다시 당부했다.“해산할 때는 너무 일찍 기운을 빼셔서는 안 되옵니다.”곁을 지키던 해수는 애가 타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제자리에서 몇 번이나 빙빙 돌던 해수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럼 마마께서 이렇게 아파하시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해?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방법은 없는 거야?”복령이 막 대답하려던 그때였다.밖에서 내관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현비마마 납시오!”외전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현비의 행차가 워낙 요란했던 탓에 금영의 귀에도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원비마마께 갑작스레 산기가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본궁이 태의와 산파를 데려왔느니라. 어서 길을 비키거라!”현비의 목소리가 전각 밖에서 울려 퍼졌다.해수는 침상에 누운 금영을 돌아보며 망설였다.금영이 입을 열었다.“나가서 살펴보게.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말게.”해수는 곧바로 명을 받들어 밖으로 나갔다.그때 현비는 손탁을 매섭게 꾸짖고 있었다.“당장 비키지 못하겠느냐! 원비마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놈이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그러나 손탁은 물러서지 않았다.“원비마마께서 친히 분부하셨사옵니다. 오늘은 누구도 현청전에 들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현비가 싸늘하게 말했다.“지금 폐하께서는 궁에 계시지 않고, 황후마마께서는 서봉전에서 불공을 드리느라 후궁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계신다. 본궁이 중궁의 권한을 대신 맡고 있으니, 원비와 그 뱃속의 황실 후사를 지키는 것 또한 본궁의 책임이다.”현비가 차갑게 명을 내렸다.“여봐라! 손탁을 당장 잡아라!”전각 안에서 현비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금영은 저도 모르게 의심을 품었다.‘현비가 정말 오늘 나를 해치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1화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돌아온 해수는 복령이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해수는 금영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마마, 저 아이를 정말 믿어도 되겠사옵니까?”금영이 해수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사람을 쓰기로 했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하고, 의심이 든다면 애초에 쓰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그때 복령은 과일정과 한 알을 입에 쏙 집어넣었다. 달콤한 맛을 음미하듯 오물거리던 복령이 이내 활짝 웃었다.“해수야, 아무 걱정 하지 마.”“복령아, 잘 부탁할게.”해수는 진심 어린 눈으로 복령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복령도 얼굴에 어려 있던 천진하고 느긋한 기색을 거두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어머니를 따라 한 달이면 열 명이 넘는 아이를 받아 왔어. 이미 마마의 상태도 살펴봤으니 걱정하지 마. 이번 해산에는 절대 문제가 없을 거야.”그랬다.복령은 영안후부에서 금영을 감시하라며 억지로 붙여 보낸 궁비가 아니었다.오히려 금영이 심연희에게 특별히 부탁해 찾아낸 아이였다.겉으로 드러나게 산파를 아무리 많이 궁에 들여놓는다 한들, 누군가 금영이 해산으로 쇠약해진 틈을 노려 해치려 든다면 완벽히 막아 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그래서 금영은 심연희에게 따로 당부했다.누가 보아도 산파로는 보이지 않을 사람을 찾아 궁으로 들여보내 달라고.그래야만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고작 열여섯이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이 어린 궁비가 아이를 받을 줄 알 뿐만 아니라, 그 솜씨마저 여느 산파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금영이 미리 대비해 둔 덕분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얼마나 모진 고생을 겪어야 했을지 알 수 없었다.금영은 침상에 누운 채 차분히 때를 기다렸다.금영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본 복령이 말했다.“예정보다 며칠 일찍 진통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미 달은 다 찼사옵니다. 지금 해산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옵소서.”복령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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