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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작가: 서린화
금영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린 궁녀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고개를 조아렸다.

금영은 차가운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곁에 선 해수에게 나직이 물었다.

"해수야, 감히 아랫것들이 상전을 입에 올린 죄는 어찌 다스린다 하였느냐?"

금영이 태자비가 되기 위해 궁중 의규를 익힐 때 해수 역시 곁에서 배운 터라, 답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경하게는 태형 서른 대요, 중하게는 참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는 대죄로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비수로 꽂히자, 궁녀들은 사시나무 떨듯 하며 바닥에 납작 엎어졌다.

"요,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마!"

"저희가 잘못했사옵니다!"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매일 마마의 안녕을 빌겠나이다!"

눈앞에서 애걸복걸하는 세 궁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금영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청아한 웃음소리에 궁녀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후궁의 여인들이 겉으로는 온화해 보일지언정, 속에는 얼마나 매서운 칼날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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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6화

    서 황후는 태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오늘 용빈이 갑자기 나타나 태자를 지목했을 때.서 황후는 그 일이 그저 용빈이 아무 이유 없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분명 태자를 모함하기 위해 누군가가 꾸민 일이리라.다만 배금영이라는 저 천한 계집이 조금 영리해서 현비의 계략을 피한 것뿐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배금영 같은 계집은 죽어도 마땅한데.그 일로 자신의 태자까지 연루되었다면 어찌할 뻔했겠는가.비록 배명월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서 황후는 태자가 여전히 결백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그래도 겉으로는 태자를 꾸짖는 모습을 보였다.“너도 참으로 그렇구나! 이렇게 중요한 황실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다니. 어찌 아바마마께 죄를 청하지 않느냐!”태자는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눈썹과 눈매는 차갑고 엄숙했으며, 온몸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태자는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소자가 죄를 청하옵니다. 아바마마와 원 귀비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말을 마친 태자는 다시 바닥에 꿇어 있는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배명월은 고개를 들어 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전하……”배명월은 그렇게 말하며 태자의 곁으로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그리고 손을 뻗어 태자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전하, 제가 정말 잘못 보았사옵니다. 결코 일부러 귀비마마를 해하려는 마음은 없었사옵니다. 부디 전하께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사정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배명월은 흐느끼며 말했다.태자는 힘주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옷자락을 빼낸 뒤, 배명월을 뒤로한 채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꾸짖었다.“명월!”“너는 정말 사람을 실망시키는구나!”“전하, 제가 잘못했사옵니다. 정말 잘못했사옵니다.”배명월은 태자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지푸라기를 바라보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5화

    배경천은 여전히 금영을 부르는 호칭을 바꾸지 않았다.“금영아……”그러자 손탁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무엄하다! 감히 평민의 신분으로 귀비마마를 이토록 함부로 부르다니! 마땅히 곤장 서른 대를 받아야 할 것이다!”금영은 담담하게 말했다.“되었다.”“오늘은 본궁이 너를 벌하지 않겠다.”다른 이유는 없었다.그저 금영은 조금 지쳤다.이제는 이 한바탕 소동도 하루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었다.그런데 배경천이 오히려 입을 열었다.“귀비마마께서는 소인을 용서하실 필요 없사옵니다.”“소인은 기꺼이 벌을 받겠사옵니다.”말을 마친 배경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손탁의 앞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번거로우시겠지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금영은 멀어지는 배경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스스로 벌을 받겠다는데.그렇다면 받으면 될 일이었다.배경천은 곧 의자 위에 엎드렸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가 그의 몸 위로 떨어졌다.배경천은 낮게 신음했다.몸이 아파지자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죄책감도 조금은 흐려지는 듯했다.하지만 이번 죄책감은 배명월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자신이 금영에게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황제의 노여움을 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배명월을 위해 사정한 것으로.그는 이미 배명월에게 품었던 미안함을 갚았다.오늘 이후.그는 배명월에게 조금도 빚진 것이 없었다.오히려 금영이었다.이 일로 인해 너무 많은 억울함과 상처를 받은 사람은 금영이었다.배경천이 벌을 받고 있는 그때.거의 두 시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태자가 마침내 전각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그가 배경천의 곁을 지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그러고는 입을 열었다.“신귀안!”신귀안은 급히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손탁은 신귀안을 한번 바라본 뒤, 사건의 전말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태자가 전각 입구에 도착했을 때.그는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배명월과, 금영의 손을 잡은 채 침착한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4화

    오늘 금영이 굳이 이 모든 일을 사람들 앞에서 꺼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모두에게 똑똑히 알려 주고 싶었다.자신, 배금영은 배명월에게 털끝만큼도 빚진 것이 없다는 것을.영안후부에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더는 있지도 않은 빚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배명월을 용서하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배정후는 금영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금영이 한 말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치였다.하지만 예전의 배정후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아니.어쩌면 알고도 모르는 척했던 것인지도 몰랐다.그는 배명월에게 미안했고, 그 아이에게 보상해 주고 싶었다.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배명월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본디 자신과 송정희 두 사람의 잘못이었던 일을 금영의 몫으로 떠넘기고.금영에게까지 가져서는 안 될 죄책감을 짊어지게 한 것이다.맹운산도 여전히 전각 안에 있었다.그는 금영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했다.눈에는 감출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금영은 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 온 것인가.배정후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얼굴에는 깊은 낙담이 드리워져 있었다.그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것이 신의 잘못이옵니다.”금영은 배정후가 정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그저 담담하게 말했다.“됐네.”“본궁도 이 일에 대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 그만 물러가게.”배정후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그러나 황제가 먼저 차갑게 입을 열었다.“귀비의 말을 듣지 못했느냐?”“아직도 물러가지 않고 무엇 하느냐!”배정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났다.배명월은 자신의 버팀목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그녀는 다급한 눈으로 배경원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배경원은 애초부터 금영의 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어찌 배명월을 위해 사정해 줄 수 있겠는가.배명월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배경원이 먼저 자리에서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3화

    황제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다.아무리 그래도 그는 금영의 부친이었다.금영이 궁을 드나드는 상황에서 자신이 갑자기 영안후의 작위를 빼앗는다면, 사람들이 황제의 속뜻을 멋대로 짐작하고 금영까지 가벼이 여길 수도 있었다.그래서 영안후부의 실권이 이미 배경원의 손에 넘어간 뒤에도 황제는 줄곧 영안후가 그 자리를 지키게 내버려두었다.하지만 영안후는 한 가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그가 지금까지 영안후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배명월 때문이 아니었다.금영 때문이었다.그리고 오늘 황제가 마침내 영안후의 작위를 빼앗기로 마음먹은 것도 바로 그 순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영안후는 그저 배명월의 부친일 뿐.더 이상 금영의 부친이 아니었다.그렇다면 굳이 그에게 체면을 세워 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영안후 역시 자신이 그저 한마디 사정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황제의 노여움을 샀는지 알지 못했다.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각 한가운데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폐하, 부디 신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황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서를 빌기는 해야지.”그러나 이내 차갑게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짐에게 빌 것은 아니다.”영안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뜻은 설마.결국 영안후의 시선이 금영에게 향했다.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원 귀비마마,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엎드렸다.금영은 황제의 곁에 서서 그런 영안후를 내려다보았다.예전에는 그토록 위엄이 넘쳤고.자신으로서는 영원히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부친이었다.그런 사람이 지금은 자신의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고 있었다.금영은 알고 있었다.황제가 자신을 위해 분을 풀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이 겪은 억울함을 대신 갚아 주고 있는 것이었다.예전에 금영이 비가 된 뒤에도 영안후는 그녀를 만나면 예를 갖추어야 했다.하지만 그때의 예는 상대에게 굴욕을 안기는 것이 아니었다.그러나 지금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2화

    금영은 배명월의 머릿속에 이런 논리가 자리 잡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그러니까 배명월은 자신이 밖에서 겪었던 고생을 모두 금영 대신 겪은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애초에 송정희가 잃어버린 아이는 배명월이지 금영이 아니었다.배명월이 길을 잃지 않았다고 해서 금영이 반드시 영안후부 밖으로 쫓겨나 고생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금영은 지금 자신이 말을 보탤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배명월을 몰아붙이는 것도.이 자리에서 그녀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어느 쪽이든 좋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금영은 그저 몹시 상처받은 얼굴로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마치 친동생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짓밟힌 사람처럼.금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명월은 몸을 돌려 영안후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은 배경원과 심연희뿐만이 아니었다.영안후와 배경천도 함께 와 있었다.금영의 귀비 책봉을 축하하는 황실 연회였으니, 이미 외지로 떠난 배경연을 제외하면 영안후부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참석해야 했다.배명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영안후를 바라보았다.“부친!”“제발…… 제발 언니께 한 말씀만 해 주시옵소서.”“부친께서 말씀해 주시면 언니도 분명 아바마마와 황후마마께 신첩을 용서해 달라고 청해 주실 것이옵니다!”영안후는 금영을 바라보았다.본능적으로 배명월을 위해 한마디 해 주려 입을 열었다.“금영아……”겨우 이름을 부른 순간.손탁이 곧바로 꾸짖었다.“무엄하시오!”“눈앞에 계신 분은 원 귀비마마이시오!”금영은 손탁을 제지하지 않았다.오히려 손탁이 저렇게 나선 것도 금영이 먼저 그에게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었다.주인의 곁을 오래 지킨 내관들은 본래 눈치가 빨랐다.어느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금영의 뜻이 없었다면 손탁이 어찌 감히 영안후를 면전에서 꾸짖었겠는가.영안후는 손탁의 목소리에 흠칫했다.그러다 금영과 눈이 마주쳤다.차갑고 무심한 눈빛이었다.조금의 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901화

    배명월은 몸을 흠칫 떨었다.얼굴빛은 이미 잿빛으로 질려 있었다.용빈의 시신이 완전히 밖으로 옮겨지고 나서야 황제는 금영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금영아, 배명월을 어찌 처분하고 싶으냐?”조금 전 금영이 자리에 없을 때만 해도 황제는 역대 황실의 관례에 따라 이 일을 서 황후에게 맡기려 했다.서 황후는 중궁을 다스리는 권한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명월의 시어머니이기도 했다.그러니 이 일을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이제 금영이 돌아왔으니.황제는 금영에게 직접 결정하게 하고 싶었다.그 말을 들은 금영은 속으로 생각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황제는 아마 묻지도 않고 곧바로 목을 베었을 것이다.하지만 배명월은 금영의 동생이자 태자비였다.게다가 뱃속에는 태자의 아이까지 품고 있었다.황제가 배명월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해도 태자를 아끼는 이상, 태자의 혈육이 걸린 일을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배명월을 죽여 달라고 한다면.사람들의 눈에는 자신이 지나치게 독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그 생각을 마친 금영은 몸을 살짝 돌려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나직이 말했다.“이제 태자비가 된 사람이니, 처분은 황후마마께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황후마마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신첩은 이의가 없사옵니다.”금영은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원 귀비마마의 성정이 어찌 이리도 너그러울 수 있단 말인가.다른 궁비가 이런 모욕을 당했다면 배명월을 당장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금영은 이 일을 서 황후에게 넘겼다.누가 보아도 배명월에게 살길을 열어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정작 서 황후의 얼굴빛은 더없이 어두웠다.‘배금영 이 천한 계집이 또다시 이 일을 내 손에 떠넘기다니!’‘이제 본궁더러 어쩌란 말이냐?’‘배명월을 죽이라 하면 본궁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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