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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Author: 서린화
태자가 한동안 말이 없자, 금영이 다시금 물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명월을 보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금영을 바라보며, 짧게 웃음을 흘렸다.

금영이 마음을 돌려 명월을 보러 가겠다고 한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방금 느꼈던 기시감은 그저 잠깐 스친 착각일 뿐이라며, 그저 자신을 이해시킬 수밖에 없었다.

태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래, 이래야지. 금영아, 언니로서 동생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금영은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답했다.

“전하의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녀는 태자의 말대로 배명월을 잘 보살펴줄 생각이긴 했지만, 그 기준이 태자와 같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태자는 비로소 진심이 통했다고 여겼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찌 되었든 금영은 미래의 태자비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 뜻을 함께하지 못한 채 매번 부딪히기만 한다면, 그에게도 좋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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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8화

    황제나 다른 누군가가 지금 이 모습을 보았다면, 서 황후가 진심으로 예불을 올리는 자비롭고 현숙한 여인이라 여겼을 것이다.환옥이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마마, 오늘 영안후부의 심연희가 입궁하여 소녕전의 그분께 사람 둘을 보냈사옵니다.”서 황후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산파를 보냈겠지?”“그러하옵니다. 원비의 환심을 사려고 심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산파까지 데려왔다 하옵니다.”환옥이 말을 이었다.“다른 하나는 누구더냐?”서 황후가 물었다.“열다섯이나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궁비이옵니다. 원비마마께서도 그다지 중히 여기지 않으시는 듯하였고, 뜰을 쓸고 닦는 일을 맡겼다 하옵니다. 이름조차 내려 주지 않으셨다고 하옵니다.”서 황후가 말했다.“영안후부도 원비를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닌 모양이구나. 산파를 보낸 것도 모자라 궁비 하나를 더 들여보냈으니, 원비를 감시하려는 뜻도 있겠지?”지금도 영안후는 배정후였다.그러나 눈치 빠른 자들은 영안후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이미 배경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황제는 배정후의 후작 자리만은 그대로 두었으나,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도리어 배경원을 여러 방면으로 중용하고 있었다.서 황후는 뒤늦게 남매가 된 배경원과 금영 사이에 진정한 우애가 있을 리 없다고 여겼다.두 사람이 서로를 경계하고 있으리라 단정했다.서 황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배명월, 그 쓸모없는 것이 과연 배경원을 제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배명월이 정말 배경원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후궁에서 조정의 뒷배를 잃은 배금영 그 천한 계집은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울 터였다.황제가 조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소녕전에 낯선 강 상궁이 있는 것을 보았다.금영이 설명했다.“폐하, 신첩의 산월이 가까워 오니 마음이 좀처럼 놓이지 않사옵니다. 궁에 가장 솜씨 좋은 산파와 태의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심연희에게 부탁하여 산파를 한 사람 더 구해 달라 하였사옵니다.”금영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7화

    “마마, 현비마마께서 보내신 이 난옥지라는 것에 혹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사옵니까?”해수가 물었다.금영이 대답했다.“사람을 시켜 알아보거라.”금영은 현비가 보낸 물건을 쓸 생각은 없었으나, 현비가 무슨 속셈으로 이를 보냈는지는 알고 싶었다.마침 이 원사가 금영의 맥을 살피러 왔다.해수는 난옥지가 든 합을 이 원사에게 건넸다.“이 원사, 이 물건에 혹 이상한 점이 있사옵니까?”이 원사는 물건을 한번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난옥지라 하여 궁에서 흔히 쓰는 물건이오. 궁 안의 많은 이들이 얼굴에 바르기도 하지. 이 한 합도…”그는 난옥지의 냄새를 맡아 본 뒤 다시 웃었다.“별다른 이상은 없소.”“회임한 여인이 써도 괜찮사옵니까?”해수가 다시 물었다.이 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익모초를 개어 만든 것이니 회임한 여인도 써도 되오.”익모초는 태를 안정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효험이 있는 약재였다.이 원사가 돌아간 뒤, 해수가 말했다.“마마, 이 원사께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셨으니 현비마마께서 정말 호의를 베푸신 것일까요?”그러나 금영은 쉽게 단정하지 않았다.“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현비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먼저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굳이 소녕전까지 찾아와 난옥지를 건넨 까닭이 고작 금영의 배에 튼살이 남지 않게 하려는 것뿐일까.그 시각, 현비는 춘로를 데리고 수강궁으로 향하고 있었다.춘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노비가 보기에는 원비마마의 경계심이 무척 강한 듯하옵니다. 마마께서 보내신 물건을 쓰지 않으실 수도 있사옵니다.”현비는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쓰든 쓰지 않든 상관없다. 궁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본궁을 믿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구해 써 볼 것이다.”현비는 계속해서 말했다.“원비는 아직 그리 빨리 총애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원비가 총애를 잃으면 누가 본궁을 대신해 그 여인을 상대하겠느냐?”그 말을 마친 현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6화

    더구나 오늘 돌려보낸다 해도 현비는 내일 또 찾아올 터였다.후궁에서 지내는 이상 다른 비빈들을 아예 만나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해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현비마마를 뵙사옵니다. 원비마마께서 안으로 드시라 하셨사옵니다.”현비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금영은 다탁 곁에 앉아 있었다.금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으러 나가는 시늉을 했다.“현비마마, 오셨습니까.”현비는 금영이 온화한 얼굴로 맑은 목소리를 내어 마마라 부르는 모습을 보자 눈썹을 살짝 내리깔았다.입가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웃음이 번졌다.이윽고 현비가 웃으며 말했다.“원비, 어서 앉게. 이리 예를 차릴 것 없네. 회임 중이지 않은가. 원비가 몸소 맞으러 나오기라도 하면 도리어 본궁이 몸 둘 바를 모르겠네.”금영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눈앞의 현비를 가만히 살펴보았다.현비의 몸에는 글을 가까이한 이에게서만 느껴지는 단아한 기품이 배어 있었다.맑고 온화한 분위기를 지닌 여인이었다.서 황후처럼 귀기가 사람을 압도하거나 지나칠 만큼 현숙한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용모와 기품만 보아도 예법과 학문에 밝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서 황후가 갇힌 뒤 황제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을 잠시 현비에게 맡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게다가 요즘 현비의 안색은 무척 좋아 보였다.서 황후가 궁지에 몰린 일로 금영이 묵은 울분을 풀었다면, 실제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이는 현비였다.“요즘 원비는 별고 없었는가?”현비가 웃으며 물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현비마마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모두 평안합니다.”현비가 웃으며 말했다.“원비는 몸은 여전히 가녀린데 배는 날로 불러오는구먼. 많이 고단하지는 않은가?”현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다른 것은 몰라도 튼살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게.”금영은 현비가 먼저 이런 일을 일러 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현비가 가볍게 웃었다.“조심만 한다고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5화

    황제는 금영을 품 안으로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금영아, 짐을 떠나지 말거라. 짐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도 말거라.”예전 황제가 금영을 억지로 궁에 들였을 때부터, 그는 금영이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만 해도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금영이 지난 정을 잊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줄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함께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황제는 그제야 자신이 생각만큼 너그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품어 주는 신과도 같은 황제가 아니었다.평범한 사내가 품는 욕심이 그에게도 스며들었다.그는 금영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원했다.금영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싶었다.천하 위에 군림하던 지존은 결국 금영에게 이끌려 속세의 진창으로 내려오고 말았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폐하, 염려 마시옵소서. 신첩은 폐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옵니다.”*진국공부의 혼례 잔치가 끝나고 나니 어느덧 구월 하순이었다.금영이 이 아이를 회임한 것은 정월 대보름이었다.날짜를 헤아려 보면 해산할 때는 시월 말쯤이었다.진눈깨비가 섞인 겨울비가 온 후궁을 뒤덮었다. 구월의 국화가 가지 끝에서 얼어 죽고 나니 어느새 시월이었다.그전까지만 해도 금영은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고 여겼다.하지만 시월에 접어들자 하루하루가 갈수록 버겁게만 느껴졌다.날마다 먹는 양을 줄여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구월 하순부터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왔다.뱃속의 아이도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은 듯 갈수록 얌전히 있지 않았다.시도 때도 없이 배 속에서 요동치는 통에 금영은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이른 아침,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금영은 몹시 지쳐 보였다.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눈을 뜨고는 있었으나 정신은 여전히 몽롱했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황제는 그런 금영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금영아, 아직 졸리거든 조금 더 자거라. 서둘러 일어날 것 없다.”금영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4화

    게다가 저 망할 태자는 아까 어째서 그 뜰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하필 그때 태자도 황제의 시선을 알아챈 듯했다.태자가 입을 열었다.“소자는 방금 뜰의 서문으로 들어와 가로질러 왔사옵니다. 이곳에서 아바마마를 뵙게 될 줄은 몰랐사옵니다.”금영은 태자가 차라리 해명하지 않았으면 나았겠다고 생각했다.괜히 입을 열어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꼴이 되어 버렸다.그러나 황제의 표정은 뜻밖에도 지극히 평온했다. 태자의 말을 믿은 듯했다.황제는 태자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담담히 말했다.“원비마마께 문안드리지 않고 무엇 하느냐.”금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 부자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가?금영은 슬며시 황제를 바라보았다.이황자는 번번이 원비마마라는 호칭을 입에 올려 태자의 속을 뒤집어 놓았지만, 황제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늘 태자의 체면을 조금은 세워 주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황제가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이런 방식으로 태자에게 경고하는 것이리라.태자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원비마마.”황제가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금영도 얼른 얌전히 그 뒤를 따라 밖으로 향했다.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황제는 줄곧 금영만 바라보았다.금영은 그 시선이 영 불편해져 먼저 입을 열었다.“폐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그대로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런 눈으로 계속 신첩을 바라보지 마시옵소서.”황제는 금영을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너는 아직도 태자를 마음에 두고 있느냐?”금영은 황제가 이런 말을 물을 줄은 전혀 몰랐다.그녀는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폐하께서는 대체 어디를 보시고 제가 아직 태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셨사옵니까?”황제는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너는 본디 그에게 시집갈 몸이었다. 너는 목숨을 걸고 그를 구했고, 그 또한 목숨을 걸고 너를 구했다. 그 사이에 어찌 조금의 정마저 없겠느냐?”금영은 난감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황제의 질투가 또 발동한 모양이었다.예전에 자신을 가르치던 상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3화

    태자는 겉으로는 흥겹게 술을 마시는 듯했으나, 그 속이 어떠한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았다.술잔을 거듭 비우다 보니, 태자 자신도 대체 얼마나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금영은 저도 모르게 태자를 몇 번 더 살폈다.다른 까닭은 없었다.지금 태자의 상태가 몹시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의 고요함 같았다.조금 더 경계해 둘 필요가 있었다.태자가 서 황후처럼 음험하고 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번 눈이 돌아가면 그 또한 성한 인간은 아니었다.그러나 금영은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황제가 버티고 있는 이상, 태자가 큰 풍랑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터였다.연회가 절반쯤 지났을 무렵, 황제는 진국공을 따로 만나러 갔다.금영도 그 틈을 타 심연희를 만났다.“마마, 전에 사람을 보내 전하신 일은 모두 처리해 두었사옵니다.”심연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일 처리만큼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수고가 많으셨습니다.”“제 지아비도 저희는 한 식구이니, 마마께서 이리 예를 차리실 필요가 없다고 하였사옵니다.”심연희가 말을 이었다.금영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요즘 영안후부에는 별다른 일이 없습니까?”“태자비마마께서 또 몇 차례 부로 돌아오시어 물건을 적잖이 보내셨사옵니다. 제 지아비는 물론 모두 물리쳤사오나, 태자비마마께서는 무슨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자꾸만 두 분의 우애가 각별한 듯 보이게 하려 하시옵니다.”심연희는 금영이 배경원과 배명월 사이를 오해하는 일만은 원치 않았다.“그분의 성정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사옵니까? 예전에는 둘째 오라버니와 그리도 살갑게 지내더니, 이제 둘째 오라버니가 쓸모없어지자 찾아보지도 않으시고, 우연히 마주쳐도 둘째 오라버니라 부르지조차 않으시옵니다.”“이제 누가 그 진심을 믿겠사옵니까? 모두 제 이익을 꾀하는 것뿐이옵니다.”심연희가 말을 이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배명월이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오늘까지도 포기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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