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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Author: 서린화
태자가 한동안 말이 없자, 금영이 다시금 물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명월을 보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금영을 바라보며, 짧게 웃음을 흘렸다.

금영이 마음을 돌려 명월을 보러 가겠다고 한 것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방금 느꼈던 기시감은 그저 잠깐 스친 착각일 뿐이라며, 그저 자신을 이해시킬 수밖에 없었다.

태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래, 이래야지. 금영아, 언니로서 동생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금영은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답했다.

“전하의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녀는 태자의 말대로 배명월을 잘 보살펴줄 생각이긴 했지만, 그 기준이 태자와 같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태자는 비로소 진심이 통했다고 여겼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찌 되었든 금영은 미래의 태자비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와 뜻을 함께하지 못한 채 매번 부딪히기만 한다면, 그에게도 좋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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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2화

    한편 현청전 안에서는 금영이 밀려드는 고통을 애써 참아 내며 이따금 낮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복령은 깨끗한 천을 금영의 입에 물려 주며 나직이 말했다.“마마, 정 괴로우시면 이 천을 물고 계시옵소서. 절대로 큰 소리를 내셔서는 아니 되옵니다.”복령이 다시 당부했다.“해산할 때는 너무 일찍 기운을 빼셔서는 안 되옵니다.”곁을 지키던 해수는 애가 타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제자리에서 몇 번이나 빙빙 돌던 해수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럼 마마께서 이렇게 아파하시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해?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방법은 없는 거야?”복령이 막 대답하려던 그때였다.밖에서 내관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현비마마 납시오!”외전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현비의 행차가 워낙 요란했던 탓에 금영의 귀에도 그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원비마마께 갑작스레 산기가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본궁이 태의와 산파를 데려왔느니라. 어서 길을 비키거라!”현비의 목소리가 전각 밖에서 울려 퍼졌다.해수는 침상에 누운 금영을 돌아보며 망설였다.금영이 입을 열었다.“나가서 살펴보게.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말게.”해수는 곧바로 명을 받들어 밖으로 나갔다.그때 현비는 손탁을 매섭게 꾸짖고 있었다.“당장 비키지 못하겠느냐! 원비마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네놈이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그러나 손탁은 물러서지 않았다.“원비마마께서 친히 분부하셨사옵니다. 오늘은 누구도 현청전에 들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현비가 싸늘하게 말했다.“지금 폐하께서는 궁에 계시지 않고, 황후마마께서는 서봉전에서 불공을 드리느라 후궁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계신다. 본궁이 중궁의 권한을 대신 맡고 있으니, 원비와 그 뱃속의 황실 후사를 지키는 것 또한 본궁의 책임이다.”현비가 차갑게 명을 내렸다.“여봐라! 손탁을 당장 잡아라!”전각 안에서 현비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금영은 저도 모르게 의심을 품었다.‘현비가 정말 오늘 나를 해치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1화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돌아온 해수는 복령이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해수는 금영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마마, 저 아이를 정말 믿어도 되겠사옵니까?”금영이 해수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사람을 쓰기로 했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하고, 의심이 든다면 애초에 쓰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그때 복령은 과일정과 한 알을 입에 쏙 집어넣었다. 달콤한 맛을 음미하듯 오물거리던 복령이 이내 활짝 웃었다.“해수야, 아무 걱정 하지 마.”“복령아, 잘 부탁할게.”해수는 진심 어린 눈으로 복령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복령도 얼굴에 어려 있던 천진하고 느긋한 기색을 거두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어머니를 따라 한 달이면 열 명이 넘는 아이를 받아 왔어. 이미 마마의 상태도 살펴봤으니 걱정하지 마. 이번 해산에는 절대 문제가 없을 거야.”그랬다.복령은 영안후부에서 금영을 감시하라며 억지로 붙여 보낸 궁비가 아니었다.오히려 금영이 심연희에게 특별히 부탁해 찾아낸 아이였다.겉으로 드러나게 산파를 아무리 많이 궁에 들여놓는다 한들, 누군가 금영이 해산으로 쇠약해진 틈을 노려 해치려 든다면 완벽히 막아 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그래서 금영은 심연희에게 따로 당부했다.누가 보아도 산파로는 보이지 않을 사람을 찾아 궁으로 들여보내 달라고.그래야만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고작 열여섯이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이 어린 궁비가 아이를 받을 줄 알 뿐만 아니라, 그 솜씨마저 여느 산파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금영이 미리 대비해 둔 덕분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얼마나 모진 고생을 겪어야 했을지 알 수 없었다.금영은 침상에 누운 채 차분히 때를 기다렸다.금영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본 복령이 말했다.“예정보다 며칠 일찍 진통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미 달은 다 찼사옵니다. 지금 해산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옵소서.”복령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60화

    해수가 다급히 외치자 손탁이 곧바로 대답했다.“강 상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사옵니다.”해수는 이미 금영을 부축해 현청전 내전의 침상에 눕힌 뒤였다.아랫배에서 시작된 통증이 사지와 온몸의 뼈마디로 번져 갔다.그런 와중에도 손탁의 말이 귀에 들어오자 금영은 참지 못하고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그럴 줄 알았다.역시 그럴 줄 알았어!이황자가 습격을 당하고, 황제가 그를 찾으러 궁을 나선 데 이어 소녕전 근처에서 불까지 났다.이 모든 일이 우연일 리 없었다.분명 누군가가 이 틈을 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이제는 영안후부에서 따로 보내온 산파마저 기이하게 자취를 감추었다.손탁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하오나 마마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강 상궁은 보이지 않지만 궁 안에는 다른 산파들도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일찍이 마마를 위해 마련해 두신 이들이옵니다.”해수는 금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금영이 궁에서 준비한 자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황제가 마련한 사람들이라 한들 무엇이 다르겠는가.황제가 직접 사람을 골랐을 리는 없었다.결국 아랫사람들에게 명하여 일을 처리하게 했을 터였다.금영은 황제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까지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황제보다 자신을 믿는 편이 나았다.금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산파는 필요 없다. 내의원의 이 원사를 불러오너라.”이 원사는 줄곧 금영의 맥을 짚고 태를 돌봐 온 사람이었다.금영은 그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그러나 이 원사조차 금영의 바람대로 순순히 불려 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아니나 다를까.손탁은 금세 돌아왔다.그는 내전 안에 서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마마, 이 원사께서는 일각 전에 궁을 나가셨사옵니다.”“이황자 전하를 찾았는데 상황이 위중하다 하여 급히 가셨다고 하옵니다.”“다만 내의원의 손 원판과 왕 원판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두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9화

    금영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황제를 바라보며 일부러 언짢은 듯 말했다.“폐하께서는 공주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 신첩은 공주를 낳는 것도 무척 좋다고 생각하옵니다.”황제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공주를 낳는 것도 물론 좋지.”그는 곧이어 말했다.“하지만 네가 이리도 응석이 많은데, 똑같이 응석 많은 아이까지 낳으면 훗날 짐이 늙었을 때 누가 너희 둘을 지켜 주겠느냐?”금영은 황제가 벌써 그토록 먼 훗날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황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황자를 낳으면 왕으로 봉하고 봉지를 내려 주마. 훗날 짐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 아이가 너를 데리고 봉지에서 살도록 할 것이다.”황제 역시 굳이 그토록 먼 훗날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하지만 그는 금영보다 열몇 살이나 많았다.언젠가는 자신이 금영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터였다.그러니 금영의 앞날을 미리 빈틈없이 마련해 두어야 했다.금영은 눈가를 촉촉이 적신 채 몹시 감동한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왕으로 봉하고 봉지를 내려 준다고?자신이 정말 황자를 낳는다면 원하는 것은 고작 그런 것이 아니었다.그녀가 탐욕스러운 까닭은 아니었다.지난 생에 서 황후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던 어린 금영조차 용납하지 않았다.그런 서 황후가 훗날 태후가 된다면 어찌 금영을 살려 두겠는가.금영은 잊지 않았다.지난 생에 새 황제가 즉위한 뒤, 서 황후가 태후가 되어 내린 첫 교지는 자식 없는 후궁의 비빈들을 모조리 순장시키라는 것이었다.현비를 제외하고 후궁의 비빈 가운데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날이 어두워진 뒤, 황제는 금영과 함께 침상에 들려 했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태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폐하! 큰일이옵니다!”손복안이 호통쳤다.“무슨 일로 이리 고함을 지르는 것이냐?”태감이 허둥지둥 아뢰었다.“폐하! 이황자 전하께서 오늘 성 밖으로 눈 구경을 나가셨다가 자객의 습격을 받으셨사옵니다. 얼어붙은 강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8화

    황제나 다른 누군가가 지금 이 모습을 보았다면, 서 황후가 진심으로 예불을 올리는 자비롭고 현숙한 여인이라 여겼을 것이다.환옥이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마마, 오늘 영안후부의 심연희가 입궁하여 소녕전의 그분께 사람 둘을 보냈사옵니다.”서 황후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산파를 보냈겠지?”“그러하옵니다. 원비의 환심을 사려고 심가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산파까지 데려왔다 하옵니다.”환옥이 말을 이었다.“다른 하나는 누구더냐?”서 황후가 물었다.“열다섯이나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궁비이옵니다. 원비마마께서도 그다지 중히 여기지 않으시는 듯하였고, 뜰을 쓸고 닦는 일을 맡겼다 하옵니다. 이름조차 내려 주지 않으셨다고 하옵니다.”서 황후가 말했다.“영안후부도 원비를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닌 모양이구나. 산파를 보낸 것도 모자라 궁비 하나를 더 들여보냈으니, 원비를 감시하려는 뜻도 있겠지?”지금도 영안후는 배정후였다.그러나 눈치 빠른 자들은 영안후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이미 배경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황제는 배정후의 후작 자리만은 그대로 두었으나, 그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도리어 배경원을 여러 방면으로 중용하고 있었다.서 황후는 뒤늦게 남매가 된 배경원과 금영 사이에 진정한 우애가 있을 리 없다고 여겼다.두 사람이 서로를 경계하고 있으리라 단정했다.서 황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배명월, 그 쓸모없는 것이 과연 배경원을 제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배명월이 정말 배경원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후궁에서 조정의 뒷배를 잃은 배금영 그 천한 계집은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울 터였다.황제가 조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소녕전에 낯선 강 상궁이 있는 것을 보았다.금영이 설명했다.“폐하, 신첩의 산월이 가까워 오니 마음이 좀처럼 놓이지 않사옵니다. 궁에 가장 솜씨 좋은 산파와 태의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심연희에게 부탁하여 산파를 한 사람 더 구해 달라 하였사옵니다.”금영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757화

    “마마, 현비마마께서 보내신 이 난옥지라는 것에 혹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사옵니까?”해수가 물었다.금영이 대답했다.“사람을 시켜 알아보거라.”금영은 현비가 보낸 물건을 쓸 생각은 없었으나, 현비가 무슨 속셈으로 이를 보냈는지는 알고 싶었다.마침 이 원사가 금영의 맥을 살피러 왔다.해수는 난옥지가 든 합을 이 원사에게 건넸다.“이 원사, 이 물건에 혹 이상한 점이 있사옵니까?”이 원사는 물건을 한번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난옥지라 하여 궁에서 흔히 쓰는 물건이오. 궁 안의 많은 이들이 얼굴에 바르기도 하지. 이 한 합도…”그는 난옥지의 냄새를 맡아 본 뒤 다시 웃었다.“별다른 이상은 없소.”“회임한 여인이 써도 괜찮사옵니까?”해수가 다시 물었다.이 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익모초를 개어 만든 것이니 회임한 여인도 써도 되오.”익모초는 태를 안정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효험이 있는 약재였다.이 원사가 돌아간 뒤, 해수가 말했다.“마마, 이 원사께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셨으니 현비마마께서 정말 호의를 베푸신 것일까요?”그러나 금영은 쉽게 단정하지 않았다.“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현비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먼저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굳이 소녕전까지 찾아와 난옥지를 건넨 까닭이 고작 금영의 배에 튼살이 남지 않게 하려는 것뿐일까.그 시각, 현비는 춘로를 데리고 수강궁으로 향하고 있었다.춘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노비가 보기에는 원비마마의 경계심이 무척 강한 듯하옵니다. 마마께서 보내신 물건을 쓰지 않으실 수도 있사옵니다.”현비는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쓰든 쓰지 않든 상관없다. 궁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본궁을 믿지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구해 써 볼 것이다.”현비는 계속해서 말했다.“원비는 아직 그리 빨리 총애를 잃어서는 아니 된다. 원비가 총애를 잃으면 누가 본궁을 대신해 그 여인을 상대하겠느냐?”그 말을 마친 현비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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