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었다.“태자 전하, 부디 자중하십시오. 이제 본궁은 전하의 모비입니다.”말을 마친 금영은 입꼬리를 비틀어 차갑게 웃었다.“설마 태자 전하께서는 천륜마저 저버리는 짓을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금영아, 네가 내게 화가 난 것도 알고, 나를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알아. 하지만 천륜을 거스른 일을 따진다면, 그건 내가 아니야. 그건…….”태자가 이를 악물었다.금영은 그가 무심코 입 밖에 내뱉으려는 것을 보고 싸늘하게 물었다.“누구 말입니까?”이어 비웃듯 되물었다.“태자 전하께서 감히 그 이름을 입에 올리실 수나 있으십니까?”태자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금영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태자 전하께서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싶으시다면, 품어서는 안 될 마음부터 거두십시오.”물론 금영은 속으로 태자가 그 자리를 오래 지키게 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서 황후가 무너지는 순간, 태자의 자리 역시 끝을 향해 갈 터였다.금영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현비가 태자를 그대로 두고 볼 리 없었다.황제가 영안후부에 막 도착했을 때, 마침 손탁 일행과 마주쳤다.황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짐이 마마 곁을 한시도 떠나지 말고 지키라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찌 너희가 이곳에 있는 것이냐?”손탁이 불안한 기색으로 대답했다.“마마께서 이곳에서 기다리라 하셨사옵니다.”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성큼성큼 안으로 향했다.손탁이 망설이다 황제를 불렀다.“폐하.”황제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무슨 일이냐?”손탁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금영을 배신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하지만 그는 결국 황제의 사람이었다.잠시 망설이던 손탁은 이를 악물고 사실대로 고했다.“조금 전 태자 전하께서도 오셨사옵니다. 지금 영안후부 안에 계시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황제의 낯빛이 한층 더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황제가 빠른 걸음으로 안쪽까지 들어왔을 때, 마침 안성당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금영과 태자가
복령은 눈시울을 붉힌 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그녀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이 조금 섞여 있었다.“마마, 다 들으셨지요? 노비의 부친은, 부친은 여비마마를 해치려 한 것이 아니었사옵니다.”“오히려 여비마마를 살리려 했던 것이옵니다!”“노비는 알고 있었사옵니다. 부친께서는 절대로 남을 해칠 분이 아니셨사옵니다. 늘 노비에게 말씀하셨사옵니다. 의원이라면 병든 이를 살피고 사람을 구해야 하며, 재물을 탐해 사람을 해칠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옵니다.”복령이 붉어진 눈으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그렇게 좋은 분이셨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사옵니다.”해수도 안쓰러운 눈으로 복령을 바라보다가 이내 금영에게 물었다.“마마께서 이제 진상을 아셨으니, 언제 이 일을 밝히실 생각이시옵니까?”그 말을 꺼내는 해수의 목소리에는 벌써부터 조급함이 묻어났다.“이 일이 정말 밝혀지기만 하면, 황후도 더는 황후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옵니다!”금영이라고 어찌 하루라도 빨리 서 황후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지 않겠는가.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 가운데 확실한 것은 주회가 털어놓은 이야기뿐이었다.나머지 절반은 금영이 정황을 맞춰 가며 추측한 것이었다.물론 그 추측은 거의 틀림없어 보였다.하지만 아무리 사실에 가까운 추측이라 한들, 증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금영이 입을 열었다.“아직은 증좌가 더 필요하네.”이 일을 이용해 서 황후를 끌어내릴 생각이라면, 이번 한 번에 완전히 끝을 내야 했다.다시는 일어설 틈조차 주어서는 안 됐다.확실한 증좌가 부족한 채 섣불리 나섰다가는, 서 황후가 오히려 금영에게 누명을 씌워 자신을 모함했다고 몰아붙일 것이 뻔했다.모든 사실을 알게 된 금영의 마음은 묘했다.오랫동안 걸려 있던 무언가가 풀린 듯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짓눌렸다.결국 금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런데 안성당을 막 나선 순간, 뜻밖에도 태자와 마주쳤다.금영이 미간을
“그날 두약해가 떠난 뒤, 소인이 바닥에 떨어진 쑥잎 한 장을 주웠사옵니다. 그런데 그 잎이 영 심상치 않았사옵니다. 평소의 쑥잎과는 냄새가 달랐고, 오주초 특유의 향이 배어 있었사옵니다.”주회가 계속해서 말했다.“오주초라니, 그게 무엇인가?”금영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남강에서 자라는 약초이옵니다. 보통 사람이 먹으면 별다른 문제가 없사오나, 회임한 여인이 복용하면 뱃속의 태아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옵니다.”주회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그 말을 듣는 순간, 금영은 이제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듯했다.어쩐지 두약해에게 일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회가 그토록 어렵게 줄을 댄 서 황후마저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궁에서의 출세길까지 내던진 채 어떻게든 황궁을 빠져나가려 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궁 안의 엄청난 비밀을 알아 버린 것이었다.금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역시 여비의 뱃속 아이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은 것이었군.”서 황후는 정말이지 독하기 짝이 없었다.여비가 갓 입궁했을 무렵이었다면, 아이가 생기지 못하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터였다.그런데도 서 황후는 굳이 여비가 해산을 코앞에 둔 때를 골라 손을 썼다.처음부터 아이가 없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아이를 가졌다가 잃은 뒤, 여비의 정신은 예전 같지 않았다.그날 이후 여비는 그 아이의 기일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황제를 모신 적이 없었다.아마 기일에 황제를 모셨던 것조차 잠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주회는 긴 이야기를 끝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오랫동안 짓눌러 온 짐을 마침내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이 일은 오랫동안 소인의 마음속에 묻어 두었사옵니다. 두약해는 생전에 소인에게 잘해 주었기에, 훗날 그의 처자식이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방을 수소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쓰였사옵니다.”“그래서 한 번 찾아가 보았사옵니다.”“그때 복령 아씨는 아직 어린아이였사옵
주회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다.그는 눈앞의 금영을 바라보며, 그녀가 오늘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이상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주회가 잘못 짚었다.사실 금영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다만 몇 가지 정황을 이어 붙여 짐작했을 뿐이었다.당시 주회가 한 일이라고는 복령을 찾아가 금엽자 두 장을 건넨 것뿐이었다.겉으로만 보면 그저 어린아이를 가엾게 여겨 베푼 작은 선의에 불과했다.하지만 금영은 공 상궁을 시켜 이미 따로 알아본 뒤였다.두약해와 주회는 생전에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그런데 그런 주회가 굳이 복령을 찾아가 금엽자를 건넸다.아무리 선의를 베푼 것이라 해도 지나치게 마음을 쓴 것이 아닌가.선의를 베푼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었다.다만 주회의 행동은 마치 두약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다.어딘가 죄책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더구나 두약해에게 일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회는 황제의 심기를 거슬러 궁에서 쫓겨났다.금영은 그 일에 대해서도 사람을 시켜 알아본 적이 있었다.주회는 본래 처세에 능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느닷없이 황제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부터 이상했다.금영이 아는 황제는 사람을 대하는 데 제법 너그러운 편이었다.주회가 먼저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굳이 그를 궁에서 내쫓을 이유가 없었다.오히려 모든 정황을 놓고 보면, 주회가 두약해의 결말을 알고 서둘러 궁에서 빠져나오려 했던 것처럼 느껴졌다.주회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한참 뒤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마마께서 이미 소인을 찾아내셨으니, 소인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시겠지요.”금영은 그저 미소를 띤 채 주회를 바라보았다.사실 주회가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뗀다 해도 금영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설마 사람을 몰래 가둬 놓고 사사로이 형벌을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적어도 지금의 금영은 그런
금영은 가볍게 웃었다.“본궁이 조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죄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궁의 궁비가 예전 은혜를 갚고 싶어 했기 때문이네.”금영은 복령을 한번 바라본 뒤 다시 물었다.“정녕 이 아이를 기억하지 못하는가?”주회는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그러자 금영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본궁이 하나 더 묻지. 내의원에 있던 두약해는 기억하는가?”두약해는 바로 복령의 부친이었다.주회는 잠시 침묵했다.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물론 기억하옵니다. 소인이 예전에 궁에서 일할 때 두약해와 함께 내의원에서 근무했사옵니다.”말을 마친 주회가 곁에 서 있는 복령을 바라보았다.그러더니 뒤늦게 기억이 난 듯 말했다.“마마께서 말씀하시니 이제야 생각나는 듯하옵니다. 이 아씨가 두약해의 따님이 아니옵니까?”금영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예전에 이 아이에게 금엽자를 준 사람도 자네가 맞겠군.”주회는 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사옵니다. 두약해가 사라진 뒤 우연히 이 아씨를 보게 되었는데, 어린 것이 딱해 보여 금엽자 두 장을 준 적이 있사옵니다.”금영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걸렸다.우연히 만났다고?복령은 원래 변경에 살던 아이였다.정말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라면, 주회가 어떻게 복령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겠는가.아무래도 일부러 행방을 알아보고 찾아간 것이 분명했다.주회가 다시 덧붙였다.“그때는 그저 작은 호의였을 뿐이옵니다. 아씨께서는 더는 마음에 두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금영이 웃으며 말했다.“본궁은 복령을 친자매처럼 여기고 있네. 복령의 부친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본궁도 그 행방을 한번 알아봐 주고 싶었지.”금영의 시선이 주회에게 머물렀다.“자네는 혹시 두약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가?”주회는 곧바로 대답했다.“마마, 그 일은 소인도 알지 못하옵니다.”금영은 주회가 무언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순순히 털어놓을 리
주 태의는 이미 중년을 넘긴 나이였다.인상은 온화했고, 말과 행동에서도 차분한 기색이 묻어났다.그런데 복령이 내민 금엽자 두 장을 받아 들려는 순간,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표정 역시 눈에 띄게 굳었다.“부인께서 내려 주신 상에 감사드리오.”목소리만큼은 여전히 침착했다.하지만 금영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 태의는 서둘러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저토록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궁에서 나온 물건 하나에 저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겠는가.하지만 주 태의가 문밖으로 완전히 나서기도 전이었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해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주 태의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부인, 이게 무슨……”그때 휘장 안쪽에서 금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 태의께서는 어찌 그리 서둘러 가시려 하시오?”주 태의라는 호칭이 들리는 순간.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어느새 침상 앞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걷혀 있었다.그 안에는 꽃처럼 곱고 화사한 젊은 여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몸에 걸친 비단옷부터 예사롭지 않았다.평범한 집안에서는 감히 구경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귀한 옷감이었다.영안후부처럼 부귀한 집안이라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주 태의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눈앞의 여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오늘날 자신을 태의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궁과 연이 있는 자였다.영안후부에는 아씨가 둘 있었다.한 사람은 입궁했고, 다른 한 사람은 태자부로 들어갔다.하지만 주 태의는 두 사람 모두 직접 본 적이 없었다.눈앞의 여인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마음속 불안은 더욱 커졌다.그가 잠시 말을 고른 뒤 말했다.“부인께서는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으시니, 소인은 다음 환자를 보러 가야 할 듯하오.”금영이 가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