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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مؤلف: 에이르

01)낯선 번호

مؤلف: 에이르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10-03 02:53:41

오후 4시17분.

한서림은 휴대폰 화면에 뜬 번호를 한참 바라봤다.

010으로 시작하는 누가봐도 평범한 번호였다.

문제는 세 번째 전화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회의 중이었다.

두 번째는 고객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짧게 진동했다.

부우웅.

서림은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떠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퇴근까지 한 시간 사십삼 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잠깐의 정적.

곧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서림 씨 맞으십니까?”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서림의 손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그런데요.”

“서울중앙지검 금융범죄수사팀입니다.”

서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현재 한서림 씨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금융사기 사건에 이용된 정황이 확인돼서 연락드렸습니다.”

서림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아.

이거구나.

“제 계좌가요?”

“네.”

“어느 은행인데요?”

순간 남자의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

“확인 절차를 위해서 먼저 본인 인증을—”

“어느 은행이냐고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서림은 피식 웃었다.

창구 근무만 3년이다.

지금은 본사 금융소비자보호팀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객들이 어떤 수법으로 돈을 잃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서를 확인했다.

검찰.

금융감독원.

경찰.

택배.

카드사.

이제는 소재조차 뻔했다.

“요즘은 검찰에서 휴대폰 번호로 전화도 해요?”

“한서림 씨.”

“네.”

“장난으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보통 이쯤 되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상대를 압박하거나 겁을 줬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화내지도 않았다.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신기했다.

서림은 턱을 괴었다.

“그럼 사건번호 불러주세요.”

이번에는 바로 답이 나왔다.

“2026형제 84127호.”

“…준비 많이 했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이스피싱이요.”

정적.

서림은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떼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췄다.

이상했다.

보통 정체를 들키면 먼저 끊는다.

그런데 남자는 끊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숨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몇 초 뒤.

“눈치가 빠르시네요.”

서림의 눈썹이 올라갔다.

“…네?”

목소리가 달라졌다.

아까의 딱딱한 공무원 말투가 아니었다.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느렸다.

본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지금 인정한 거예요?”

“그렇게 들렸습니까?”

“네.”

“그럼 그렇게 생각하시죠.”

서림은 황당해서 웃음이 터졌다.

“미친 사람 아니야?”

“그 말 많이 듣습니다.”

“안 끊어요?”

“한서림 씨가 안 끊고 있잖습니까.”

그 말에 서림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통화시간 03:12.

맞았다.

왜 안 끊었지?

“저 신고할 건데요.”

“하세요.”

“번호 추적도 요청하고.”

“그것도 하시고.”

“진짜 겁이 없나 보네.”

이번에는 남자가 작게 웃었다.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아주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서림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웃겨요?”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나를 알아요?”

“자료에는 있습니다.”

서림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자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까지 장난스럽던 공기가 단숨에 사라졌다.

“내 개인정보 가지고 있어요?”

“이름 정도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요.”

서림은 몸을 일으켰다.

옆자리 직원 승아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서림은 목소리를 낮췄다.

“내 번호를 알고, 이름을 알고, 아까는 명의 계좌 이야기도 했죠.”

“그건 대본입니다.”

“그 대본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거잖아.”

침묵.

서림은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 알아요?”

“별로 모릅니다.”

“별로가 어디까지인데?”

“한서림. 서른둘.”

그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멈췄다.

서림은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말해봐요.”

“은행 근무.”

서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

“이 정도.”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쪽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그러세요.”

“계속 그 말만 하네.”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실 겁니까?”

서림은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는 이상할 만큼 침착했다.

그 침착함이 서림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사기꾼이라면 돈을 보내라고 해야 했다.

계좌를 물어야 했다.

앱을 설치하라고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서림이 물었다.

“그럼 왜 전화했어요?”

이번에는 남자의 대답이 늦었다.

“…일이니까.”

“사람 속이는 게 일이에요?”

“네.”

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서림은 말문이 막혔다.

“당당하네요.”

“당당한 건 아닙니다.”

“그럼?”

“익숙한 거죠.”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가라앉았다.

서림은 이유 없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전화기 너머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가 말했다.

—야, 다음 번호 넘겨.

서림의 눈빛이 변했다.

남자는 급하게 마이크를 막은 듯했다.

소리가 뭉개졌다.

잠시 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끊겠습니다.”

“잠깐.”

남자가 멈췄다.

서림은 왜 그를 붙잡았는지 스스로도 몰랐다.

그저 궁금했다.

“내가 처음부터 보이스피싱인 거 알아챘잖아요.”

“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통화했어요?”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서림은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그러게요.”

“…뭐?”

“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주 조금.

서림이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뚝.

“…….”

서림은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그대로 있었다.

통화시간.

07:48.

고작 여덟 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훨씬 오래 통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서림은 곧바로 번호를 캡처했다.

통화기록도 저장했다.

그리고 신고 앱을 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개인정보까지 알고 있는 범죄자가 연락했다.

신고해야 했다.

그런데 신고 내용을 입력하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마지막에 들었던 목소리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미쳤나 봐.”

서림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입력했다.

그때였다.

휴대폰 상단에 메시지 알림 하나가 나타났다.

방금 통화했던 번호였다.

서림은 그대로 굳었다.

문자는 짧았다.

[다음부터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마세요.]

서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지가 전화해놓고.”

곧바로 답장을 입력했다.

[그쪽부터 전화하지 마세요.]

전송.

읽음 표시 같은 것은 없었다.

당연했다.

서림은 그대로 번호를 차단했다.

그러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끝이었다.

다시는 받을 일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

밤 11시42 분.

서림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한 통.

처음 보는 번호였다.

010-73XX-19XX.

서림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그 순간 메시지가 들어왔다.

[차단했네요.]

서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누구세요?]

답장은 바로 왔다.

[목소리 들으면 알 텐데.]

서림은 화면을 노려봤다.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부우웅.

같은 번호였다.

받지 말아야 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런데 서림의 손가락은 이미 통화 버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톡.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이에요?”

잠시 후.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빨리 받네요.”

서림의 심장이 아주 이상하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그때 알지 못했다.

자신이 방금 받은 이 전화가,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을 빼앗아 갈 전화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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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13) 당신 말고 누가 찾았어요

    “당신 말고 한 명 더 있습니다.”한서림의 손끝이 굳었다.“누가요?”강승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강승필.”“지금 집입니까?”“네.”“문 잠갔어요?”“질문에 대답부터 해요.”승필의 숨소리가 낮게 들렸다.“조직 쪽 사람입니다.”서림의 표정이 굳었다.“당신 이름을 왜 찾아요?”“내가 요즘 뭘 하는지 확인하려는 거겠죠.”“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잠깐의 정적.“당신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서림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내가 검색한 것도 알아요?”“정확히는 모릅니다.”“그럼 아까 왜 그렇게 말했어요?”“같은 시간대에 내 이름을 찾은 흔적이 두 군데서 잡혔습니다.”서림은 미간을 찌푸렸다.“잠깐만요.”목소리가 낮아졌다.“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승필이 조용해졌다.또 숨기고 있었다.“이것도 말 못 해요?”“…예전에 쓰던 계정이 있습니다.”“무슨 계정.”“검색 기록이나 접근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쪽.”“불법이에요?”대답이 없었다.서림은 헛웃음을 흘렸다.“역시 그렇구나.”“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나한테는 중요해요.”“서림 씨.”처음이었다.그가 성을 빼고 이름만 불렀다.서림의 말이 멈췄다.강승필도 자신이 방금 어떻게 불렀는지 깨달은 듯 조용해졌다.“…왜요?”서림이 작게 물었다.“오늘 밤은 정말 밖에 나가지 마세요.”“갑자기 이름 불러놓고 그 말이에요?”“지금 장난할 때 아닙니다.”“나도 알아요.”서림은 입술을 깨물었다.“근데 자꾸 당신이 나한테 뭘 숨기니까 내가 아무것도 판단을 못 하잖아요.”“판단할 필요 없습니다.”“왜요?”승필의 목소리가 굳었다.“내가 정리할 테니까.”순간 서림의 표정이 바뀌었다.“그 말 진짜 싫어요.”“….”“항상 당신 혼자 정리한다, 해결한다, 나는 가만히 있으라.”서림은 창가로 걸어갔다.“나는 이미 끌려들어왔어요.”“그래서 빼내려는 겁니다.”“그게 마음대로 돼요?”승필은 대답하지 못했다.서림은 잠시 창밖을 바라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12) 알고도 받는 전화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한서림은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조직의 자금 흐름을 관리한 핵심 관계자.기사 속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단순히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보다 훨씬 깊이 들어가 있던 사람.서림은 천천히 메시지를 입력했다.[기사 내용 사실이에요?]보내자마자 읽음 표시가 떴다.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일 분.이 분.결국 서림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한 번 만에 연결됐다.“여보세요.”승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서림은 인사도 하지 않았다.“사실이에요?”“…네.”너무 쉽게 인정했다.오히려 서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전부?”“기사에 나온 내용이 어떤 건지 모르니까 전부라고는 못 합니다.”“그럼 자금 관리했다는 건요?”잠깐의 정적.“했습니다.”서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왜 말 안 했어요?”“말하면 달라질 거라고 했잖아요.”“그게 이유예요?”“아니요.”승필이 낮게 말했다.“말할 자격이 없어서.”서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방 안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당신 나한테 처음에는 그냥 전화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했잖아요.”“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비슷하게 말했죠.”“내가 일부러 그렇게 보이게 한 건 맞습니다.”서림이 멈췄다.“그게 거짓말이잖아요.”승필은 대답하지 않았다.서림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진짜 어이없다.”“…미안합니다.”“미안하다고 끝나요?”“안 끝납니다.”“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잠시 침묵.“뭘 해도 안 없어집니다.”승필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그래서 처음부터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했던 겁니다.”서림의 가슴이 답답해졌다.“그 말을 지금 핑계로 쓰지 마요.”“핑계 아닙니다.”“당신이 계속 전화했잖아요.”서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내 번호 지웠고, 나 위험하다고 찾아왔고, 매일 확인했고.”“….”“그래놓고 이제 와서 가까워지면 안 됐다고 하면 다예요?”승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11) 검색하지 말라는 이름

    “전혀 다른 사람이 나올 겁니다.”한서림은 강승필을 가만히 바라봤다.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무슨 뜻이에요?”승필은 대답하지 않았다.“강승필.”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승필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서림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며칠 동안 이름조차 모르던 사람.연락처에는 줄곧 [거짓말]이라고 저장되어 있던 남자.그런데 이름을 알게 되자 갑자기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왜요.”“내가 검색하면 뭐가 나오는데요?”“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러니까 더 궁금하죠.”서림은 휴대폰을 들었다.검색창을 켜는 척하자 승필의 손이 바로 움직였다.그가 휴대폰 위를 손으로 가렸다.“하지 마요.”서림은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이렇게까지?”“네.”“혹시 전과라도 있어요?”승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있다고 하면요?”서림의 표정이 굳었다.“진짜 있어요?”“예를 든 겁니다.”“방금 표정이 예시가 아닌데.”승필은 천천히 손을 거뒀다.서림은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았다.“말해줘요.”“뭘.”“검색하면 나오는 거.”“직접 보면 되잖아요.”“보지 말라면서요.”“그러니까요.”서림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당신 일부러 이래요?”승필이 작게 웃었다.“뭘요.”“사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말 안 하는 거.”“원래 사람은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나는 그런 거 싫어해요.”“알고 있습니다.”“뭘 안다고.”“모르는 채로 있는 거 못 견디잖아요.”서림은 입을 다물었다.맞는 말이었다.그녀는 답이 없는 걸 싫어했다.틀렸더라도 확인해야 했다.그래서 처음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을 때도 끊지 않았다.질문했고, 따졌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그럼 하나만.”서림이 말했다.“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람이 지금 당신이랑 같은 사람은 맞아요?”승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같은 사람입니다.”“근데 왜 다르게 보인다고 했어요?”“나를 보는 방식이 달라질 테니까.”이번에는 서림이 아무 말도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10) 진짜 이름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웃었다.아주 짧게.그런데 한서림은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왜 웃어요?”“아닙니다.”“또 거짓말.”“…그러네요.”서림은 침대에 기대앉았다.처음이었다.그가 자신의 거짓말을 순순히 인정한 것은.“그런데.”서림이 물었다.“오늘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웃음기가 사라졌다.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당분간 회사 근처에는 안 올 겁니다.”“어떻게 알아요?”“얘기했습니다.”“누구랑?”“그 사람들하고.”서림의 몸이 바로 일으켜졌다.“직접 만났어요?”“네.”“미쳤어요?”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남자가 잠시 조용해졌다.서림은 계속 말했다.“그래서 연락 늦었던 거예요?”“…네.”“다친 데는요?”“없습니다.”“진짜?”“네.”“당신 말 이제 못 믿겠는데.”전화기 너머에서 작은 한숨이 들렸다.“조금 긁힌 정도입니다.”서림의 얼굴이 굳었다.“어디를요?”“별거 아닙니다.”“어디냐고요.”“입술.”서림은 입을 다물었다.아까 편의점에서 봤던 얼굴이 떠올랐다.멀쩡했다.그 이후에 생긴 상처라는 뜻이었다.“왜 그렇게까지 했어요?”“뭘요?”“그 사람들한테 나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거잖아요.”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확실한 대답이었다.서림이 낮게 말했다.“내가 뭐라고.”한참 뒤,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러게요.”가슴이 순간 철렁했다.“뭐예요, 그 대답.”“저도 모르겠습니다.”첫날과 똑같았다.왜 통화를 오래 했냐고 물었을 때도 그랬다.저도 모르겠습니다.그때는 이상한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지금은 그 말의 뜻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서림은 괜히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그럼 이제 괜찮은 거죠?”“며칠은 지켜봐야 합니다.”“또 회사 앞으로 와요?”“제가 확인하겠습니다.”“어떻게요?”“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또 시작이네.”서림이 한숨을 쉬었다.“왜 항상 나한테는 아무것도 말 안 해줘요?”“알 필요 없는 일이라서.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09) 같이 뛰는 사람

    “그냥 같이 뛰어요.”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서림은 손목이 잡힌 채 편의점 밖으로 끌려 나왔다.문이 열리며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때렸다.“잠깐, 어디로 가는 건데요?”“뒤쪽 골목.”“왜요?”“차에 타면 안 됩니다.”서림은 숨을 헐떡이며 그를 따라갔다.뒤에서 자동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남자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뛰어요.”“지금 뛰고 있거든요!”“조금만 더.”“누가 쫓아오는 건데요?”대답은 없었다.서림은 뒤를 돌아보려 했다.그 순간 남자가 잡고 있던 손을 더 세게 당겼다.“뒤 보지 마요.”“왜요?”“얼굴 보여주지 말라고요.”그 말에 서림은 더 이상 뒤를 보지 않았다.골목으로 들어서자 가게 불빛이 급격히 줄었다.남자는 익숙한 듯 방향을 두 번 틀었다.서림은 숨이 차올라 결국 그의 손을 뿌리쳤다.“잠깐만.”남자가 바로 멈췄다.“나 더 못 뛰어요.”“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그 말 아까도 했어요.”서림은 벽에 손을 짚었다.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남자는 골목 입구를 계속 확인했다.서림은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봤다.“당신.”“네.”“지금 나 납치하는 건 아니죠?”남자가 서림을 돌아봤다.표정이 묘하게 굳었다.“이 상황에서 그 생각이 듭니까?”“당신 보이스피싱범이잖아요.”“…그건 맞는데.”“그러니까.”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었다.“납치할 생각이었으면 사람 많은 편의점까지 데리고 갔겠습니까?”“범죄자 말을 어떻게 믿어요.”“그러니까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서림은 입을 다물었다.틀린 말은 아니었다.남자는 다시 골목 끝을 확인했다.“곧 나가야 합니다.”“어디로요?”“택시 잡을 수 있는 큰길.”“당신도 같이 가요?”그가 잠시 서림을 바라봤다.“아니요.”“왜요?”“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 좋습니다.”서림의 표정이 굳었다.또 그 말이었다.안 좋다. 위험하다. 엮이면 안 된다.그런 말을 하면서 매번 가장 먼저 자신에게 오는 사람도 이 남자였다.

  • 그남자의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다   08)처음 보는 얼굴

    “처음 뵙겠습니다.”한서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그런데 낯설지가 않았다.낮게 내려앉은 목소리. 말을 끝낼 때 아주 조금 느려지는 습관. 사람을 바라볼 때 먼저 상대의 표정을 읽는 눈.며칠 동안 전화기 너머로만 들었던 사람이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당신이…”서림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그 사람이에요?”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목소리 들었잖아요.”“그래도…”서림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왠지 더 거칠고 위험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실제로 본 그는 지나치게 평범했다.짙은 회색 코트. 검은 셔츠. 단정한 머리.길에서 마주쳤다면 한 번쯤 눈길이 갈 정도로 잘생겼지만, 범죄자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얼굴이었다.그게 더 무서웠다.서림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남자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무섭습니까?”“안 무서울 것 같아요?”“그렇겠네요.”그는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서림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뒤쪽을 확인했다.“일단 이동하죠.”“어디로요?”“사람 많은 곳.”“당신 따라가라고요?”남자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건 제가 생각을 못 했네요.”“뭘요?”“지금 내 입으로 누굴 따라가지 말라고 해놓고.”서림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이제 알았어요?”“그럼 선택하세요.”남자는 직원 출입구 옆 큰길을 가리켰다.“저쪽 편의점까지 혼자 걸어가든가, 아니면 여기서 경찰 부르든가.”“당신은요?”“뒤에서 따라가겠습니다.”“그게 더 무서운데요?”이번에는 남자가 정말 웃었다.서림은 그 웃음을 듣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전화로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당연한데도 이상했다.목소리와 얼굴이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직 어색했다.“아까 그 검은 재킷 남자는요?”남자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여기 근처에 있습니다.”“그 사람 누구예요?”“어제 전화했던 사람 쪽.”“그럼 당신 아는 사람이잖아요.”“알죠.”“친해요?”“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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