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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고개를 젓던 강유리가 다시 한번 자세히 육시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직업이 뭐야?”

“비즈니스, 사업가야.”

“사업가? 하, 아무리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부업으로 이런 짓까지 하나?”

강유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에 육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 몰라?”

‘하, 무슨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강유리가 추궁을 이어가려던 그때, 강유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는 확 어두워진 얼굴로 안방을 나섰다.

어제 계약서를 체결하고 나서 강유리는 바로 전부터 함께 일하던 비서에게 엔터회사 운영 상황을 알아보라고 분부했다.

컴퓨터 메일에 도착한 데이터를 확인하던 그때, 문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유강그룹은 현재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다 썩어문드러진 거대한 나무나 다름없습니다. 대외적으론 흑자를 내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 부패, 횡령 문제가 심각합니다. 흑자 역시 장부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이고요.”

문자를 확인한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올해 안에 엔터회사 매출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성홍주의 조건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2배는커녕 1년 안에 구멍난 곳을 메꾸는 것도 벅찰 것만 같았다.

“지금 엔터업계는 레드오션인 거 몰라. 게다가 한국 엔터시장은 로열 엔터가 꽉 잡고 있어. 유강엔터가 설 자리가 있을까? 애물단지만 떠안은 것 같은데.”

이때 그녀의 정수리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강유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컴퓨터 모니터 불빛에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육시준의 얼굴을 휙 훑은 강유리가 물었다.

“그럼 스타인은?”

“뭐 나름 그럴 듯한 모양은 내고 있달까?”

육시준이 눈썹을 씰룩였다.

“유강 엔터를 맡으면 스타인을 앞설 수 있을 것 같아?”

비록 사람들은 신생 엔터회사인 스타인 엔터가 곧 로열 엔터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엔터회사로 성장할 거라 확신했지만 육시준이 볼 땐 대학생에게 덤비는 유치원생을 바라보는 듯할 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스타인 엔터가 이룬 모든 것들, 내 거여야 했던 거니까. 이제 되찾아야지.”

‘내가 인맥도 다 구해 주고 원하는 건 다 해줬는데...’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육시준은 어젯밤 술에 잔뜩 취한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와서 아침 먹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육시준이 조용히 서재를 나섰다.

어딘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벌떡 일어섰다.

“왜? 엔터 사업에도 관심있어? 사업가라더니 이쪽 사업하는 거야? 회사 이름이 뭔데? 그냥 나랑 같이 일해 볼 생각은 없어?”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질문 폭탄에도 꿈쩍 않고 걸음을 옮기던 육시준이었지만 다음 순간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제 정말 잔 거 맞아?”

갑자기 멈춰 선 육시준의 등에 그대로 부딪힐 뻔한 강유리가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깜박였다.

“왜 그래? 설마 쫄았어? 에이,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진짜 한 건지 아닌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

잠깐의 침묵 끝에 육시준이 허리를 휙 숙이더니 그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모르면 몰라도 한번 맛을 본 이상 끊긴 힘들 것 같은데... 뭐, 괜찮아. 앞으로 우린 수많은 밤을 함께 할 테니까. 물론 오늘 밤도 말이야.”

육시준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풍기는 유혹의 말들에 강유리는 결국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하, 내가 졌다.’

...

잠시 후, 출근길의 육시준은 유강그룹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태블릿 PC를 넘기고 있다.

3년 전, 강유리는 호스트바에서 성매매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었고 성홍주는 딸을 지키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보냈다는 사실은 서울에서 이름 좀 아는 재벌들은 다들 아는 이야기.

하지만 3년 동안 성홍주가 유강그룹의 원로들을 전부 몰아내고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해낸 걸 보면 정말로 딸을 생각해서 해외로 내보낸 게 아닌 데릴사위로 들어왔던 유강그룹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수작임이 분명해 보였다.

반면 강유리는 출국한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유일하게 밝혀진 건 3년간 임천강과 사귀었다는 것.

얼마 전 귀국한 것 역시 임천강과 결혼하여 그녀 몫이었던 유강그룹 지분을 이어받기 위함, 그런데 귀국한 당일 임천강이 이복 여동생인 성신영과 바람이 났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유강그룹, 겉보기엔 그럴 듯한 회사인데 내부는 권력 다툼으로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 같아. 임천강 그 남자도 보통이 아니네. 어떻게 자기 여자친구 이복 여동생과 붙어먹을 수 있어? 진짜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육시준이 오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육경서를 힐끗 바라보았다.

“유강그룹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지 강유리 뒷조사를 하라곤 안 했어.”

형의 차가운 목소리에 육경서는 살짝 고개를 숙였지만 그럼에도 변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 여자 너무 수상하잖아. 형이 진짜 호구잡힌 거면 어떡해. 그 일이 있은 뒤로... 연애랑은 아예 담 쌓고 살았잖아. 이번에도 또 속으면...”

“그 여자라고 하지 마. 이제 네 형수님이니까.”

“아, 예예.”

육경서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얼음장 같은 육시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너도 이 정도 놀았으면 충분하지 않나? 슬슬 그룹으로 출발해야지?”

이에 육경서가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

“형! 난 연예인으로 살게 해주겠다며! 왜 갑자기 말을 바꾸고 난리야!”

하지만 육경서의 불평에도 육시준의 눈은 여전히 태블릿 PC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놀았다니. 내가 로열 엔터에 그 동안 벌어준 돈이 얼만데! 여름에 사극 촬영에 겨울에 비 맞는 촬영까지, 온갖 개고생은 다 하면서 번 돈이라고! 그런데 나도 이제 내 이름으로 된 엔터회사 만들고 싶어. 진짜 이렇게 매정하게...”

“김 비서님, 저기 사거리에 경서 내려주세요.”

육시준의 최후통첩에 육경서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조용히 있을게. 하여간 성질머리 하곤.”

‘그딴 여자 뒷조사 좀 했다고 혈육한테 이렇게 화를 내? 강유리... 어떤 여자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육시준의 경고에 육경서가 침묵을 유지한 건 단 2분 정도, 결국 정적을 이기지 못한 육경서가 고개를 홱 돌렸다.

“강유리... 아니, 형수님이 유강엔터 새 대표로 취임했다면서? 여긴 딱히 인맥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해내려나.”

이때 뭔가 생각난 듯한 육경서가 눈을 반짝였다.

“아, 형. 내가 형수 엔터회사로 이적하는 건 어떨까? 나 같은 톱스타 한 명 있으면 뭘 하든 잘 풀리지 않겠어?”

“오늘부터 로열 엔터는 너와의 계약을 해지한다.”

‘엥? 이건 또 뭔 소리래?’

어리둥절한 육경서를 향해 육시준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우리 둘 관계에 대해선 절대 얘기하지 마.”

“아니, 정말 형이 누구인지 모르는 거야? 그런데 왜 결혼한 거래? 정말 단순히 결혼 상대가 필요해서?”

다시 확 어두워진 육시준의 얼굴을 확인한 육경서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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