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내리쬐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서 몇 번을 뒤척이다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 마신 술이 빚어낸 지독한 숙취는 아침부터 한쪽 머리가 쩍쩍 갈라지는 것 같은 두통을 만들어냈다. 단영은 고통으로 눈살을 찌푸리다가 눈앞의 풍경이 낯설어 몇 번이나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한결이 들어왔다. 단영은 별안간 심장이 내려앉고,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했다. “집이지. 우리 집.”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는 단정한 손길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이미 외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긴. 네가 나 불렀잖아.” 순간 자책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 죄송해요. 제가 어제 멘탈이 나가서…….” “일어나. 해장이나 하게.” 얼결에 식탁 앞에 앉았다. 갓 지은 더운 밥을 공기에 담고, 콩나물과 말린 북어, 파가 송송 썰린 콩나물 북엇국을 국 그릇에 담아내는 모습을 단영은 숟가락을 놓으며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거 교수님이 직접 끓이신 거예요?” “그럼. 누가 끓여?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살았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맛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깨작거리면서 겨우 몇 모금 넘기는 단영을 안쓰럽게 보던 한결이 국에 밥을 말며 말했다. “병가 냈으니까 오늘은 나오지 마.”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야, 너. 거울을 좀 봐라. 당장 내일 관 짜도 안 이상해.” 밥을 푹푹 말아 먹으며 일부러 가볍게 농을 던졌지만 마음 한켠은 단영의 축 쳐진 어깨와 공허한 눈빛에 쏠려 있었다. “이 대표 쪽 연락해 봤는데, 그쪽도 지금 정신이 없는가 봐. 후계 구도가 아직 정비도 안 된 상태에서 총수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더라.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구멍 가게도 아니고, 뭔가 그쪽도 대응이 있겠지.” 그
‘단독, 연우석 결별, 이혼 뒷이야기’ - 연예계 단신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영화 촬영 중인 연우석씨 관련 소식인데요, 지난해 인상적인 기자회견으로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기자회견 당시 밝혔던 배우자 오 모씨와 현재 이혼 상태인 것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당시에도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있어 더 당혹감을 주고 있는데요, 당시 배우 오수아와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무리해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는 얘기가 나와 현재 사실 확인중에 있습니다. 단독 기사 하나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연우석의 이름과 얼굴이 포털 메인을 장악하자, 단영의 일상은 하루 아침에 지옥으로 변했다. 서류 정리를 깨끗이 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처음 오수아와 엮여 데뷔 기사가 쏟아질 때처럼 연우석 스캔들이 온 매스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실상 고의 음주 사고로 연예계 퇴출 수순을 밟고 있던 오수아에 대한 동정 여론과 맞물려 언론은 연우석과 오수아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달려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이런 때에 연우석의 소속사조차 묵묵부답,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아 화살은 우석의 배우자로 밝혀진 단영에게 쏟아졌다. 병원 앞으로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단영과 관련된 추측성 보도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출퇴근 길마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와 질문들이 빗발쳤다. 마스크도 무용지물이었다. 기자들의 렌즈는 마치 숨통을 조이는 족쇄 같았다. 단영은 입술 안쪽을 질끈 깨물며 버텼다. 이제 겨우 레지던트 1년차. 제 삶을 채워 나가기에도 버거웠던 시간에 단영은 거칠게 달려드는 기자들을 홀로 상대해야 했다. 한결은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속이 뒤집혔다. “소속사는 대체 뭐하는 거야? 연우석 이 자식은 대체 뭐 하는 거냐고! 이 난리를 오단영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 미친 것들, 이 기레기 새끼들 썩 안 꺼져!” 출퇴근 때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이튿날, 밖은 비가 왔다. 부슬부슬 세상을 적시는 겨울비였다. 공항으로 가는 차 속에서 단영은 가만히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밤을 하얗게 새웠지만, 조금도 피곤한 줄 몰랐다. 지난 밤의 기억을 반추하는 동안, 어느덧 그들이 탄 차는 공항에 도착했다. 잠시 후, 그들은 공항 출국장 앞에 서 있었다. 우석의 부탁으로 한결도 그 자리에 함께였다. “징글징글하다, 진짜.” “누가 할 소리. 어떻게 너는 공항까지 날 쫓아오냐? 말했지! 나 좀 그만 좋아해!” 한결의 비아냥을 지원이 똑같이 툴툴대며 응수했다. 일정상 초반의 몇 주는 우석과 함께 미국에 있어야 하는 그녀였다. “설마 널 보러 왔겠냐?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일은 없어.” 아웅다웅하며 우석과 함께 출국하는 지원과도 인사를 나눈 뒤, 한결은 든든한 경호원처럼 단영의 뒤에 버티고 서 있었다. “들어가, 그만. 사람 벌 세우지 말고 가서 쇼핑이나 해.” 이별의 순간이 길어져 봐야 좋을 것 없다. 한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에게 그만 가라고 손짓했다. “잘 다녀올게. 전화도 자주 할게. 매일 연락할게.” 우석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군대 가냐? 영화 찍고, 외화 벌러 가면서 뭐가 그렇게 애절해? 누가 보면 파병 군인인 줄. 솔직히 말해 봐. 너 군대 안 갔다 왔지?” 그 말을 지원이 대신 받았다. “넌 꼭 네 얘기를 남의 얘기처럼 하더라. 우리 연 배우, 해병대 나왔어. 기사도 몇 번 나왔는데 너야말로 군 면제자 주제에 어디서 군대 드립이야?” “씁, 면제라니! 나도 갔다 왔어! 요양원에! 어르신 말동무하러!” 한결과 지원의 아웅다웅하는 스몰 토크에 흘러나오려던 눈물이 쑥 들어가버린 단영이 빠르게 눈가를 훔치고는 우석과 지원에게 손짓했다. “가. 얼른. 잘 지내고.” 우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때고 괜찮으니까, 생각날 때마다 전화해!” 코끝이 찡해지는 걸 애써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우석은 두 팔을 휘저으
그날 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난 뒤 출출한 배를 뒤풀이로 달랜 그들은 반쯤 골아 떨어져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수아를 안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석은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딸아이의 이를 닦아 주고, 얼굴을 씻기고, 잠옷까지 갈아입혀 준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게 했다. 그리고는 단영에게 다가와 불쑥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단영이 주저하며 물었다. 놀란 기색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뭐야, 이게?” 그 순간 우석은 오랜 기다림 끝에 하는 말인 것처럼 머뭇거리며 말했다. “반지 하나 없이 너 데리고 왔던 거, 사실 그동안 내내 마음에 걸렸었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맺혀 있었다.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질 때, 단영은 마치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아로새겨지는 듯했다. “데려온 거 아닌데. 나 내 발로 왔는데.” 기습적으로 농담을 건네는 단영의 말에 우석도 눈물을 훔치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우리 단영이는 수아를 안고 씩씩하게 제 발로 왔지. 그래도…….” 우석은 가만히 단영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우리가 하나라는 거, 남겨두고 싶었어.” 그리고는 가만가만 단영의 등을 토닥였다. “오피스텔 정리하고 여기 있어주면 안 될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나 너무 이기적이지?” 단영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기적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혼자 남겨두고 가면서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나 잘할게. 진짜 잘할게, 단영아.” 단영은 그 말에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 깊은 곳이 뭉클하게 흔들렸다. 아주 오래, 아주 아주 오랜 후에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도 이 말은 오래도록 귓가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누웠을 때, 단영이 문득 말했다. “하루가…… 너무 짧다. 일 년도…… 금방 가겠지?” 우석은 순간 울컥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단영의
하루는 놀이공원을 누비고, 하루는 시구 이벤트를 하게 된 우석을 따라 야구장도 찾고, 하루는 우석이 공연하던 소극장을 찾아 후배들이 준비한 공연 관람도 하고, 하루는 태성의 가게에도 들렸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은 훌쩍이었다. 버킷리스트처럼 아빠와 꼭 하고 싶은 일들, 에 집중해서 알차게 보낸 시간들이 지나가고 출국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을 때, 팬미팅을 겸한 우석의 공연이 있었다. 매일 매일 바쁜 일정 속에 밤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하고 런쓰루 리허설까지 마친 우석을 대기실에서 만났다. 물 먹은 솜처럼 지쳐서 축 늘어져 있던 그가 단영을 보더니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왔어?” 우석은 반가움에 단영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수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아, 기자회견 때 말한?” “네, 제 딸이요.” 수아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스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시켜주며 조금이라도 어색한 기운이 남지 않게 부러 더 다정하게 굴었다. “여기 재밌는 거 많은데,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수아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우석이 물었다. 수아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주저하는 것도, 고민하는 기색도 없었다. 천하무적 아빠가 있기에 또 옆에는 예쁘고 똑똑한 엄마가 있기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아빠, 나 저거!” 수아는 팬미팅 이벤트로 타로점을 보고 있는 점술사를 가리키더니 느닷없이 점을 보겠다고 졸라댔다. 마침 자리도 비어 있고, 수아를 의자에 앉힌 우석은 궁금한 걸 물어보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타로점을 보는 점술사는 수아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카드를 한 장 골라보라고 말했다. 수아는 주저 없이 카드 한 장을 선택했고, ‘THE LOVERS’ 연인 카드를 집어들었다. 점술사는 잠시 입가에 웃음을 짓더니 수아를 보며 말했다. “우리 꼬마 아가씨가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한 모양이구만. 깊은 감정을 느끼며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싶어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 대상이 이성일 것 같진 않고
“너는 왜 맨날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불러내고 난리야?” 말로는 툴툴거렸지만 만나자는 제안에 그 자리에서 곧장 달려나온 한결이었다. 며칠 전, 병원 앞에서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목도하곤 이를 갈며 다신 상종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석은 짧게 숨을 고르곤 곧장 말을 꺼냈다. “일주일 후 출국이에요.” “그런데?” 무심한 듯 되물었지만 한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단영이가 남고 싶어해요.” “그래. NRMP 매칭 그게 바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해. 여기에서 의대 나왔다고 미국에서 바로 받아주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우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수아도 그래요. 엄마가 안 가면 안 가겠다고.” “뭐야, 그럼 결국 혼자 가겠다는 거야?” 한결의 목소리에 당혹이 묻었다.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그 순간, 한결은 속으로 대강 짐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싫어. 나 싫어. 몰라. 안 들은 걸로 할 거야!” 부정하듯 내뱉었지만 이미 그의 가슴 속은 요동쳤다. “저 없는 동안 단영이, 잘 부탁드려요.” 우석이 조심스레 그 말을 꺼냈을 때 한결은 즉시 반박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혔다. “날 뭘 믿고? 넌 인마 내가 그렇게 만만해?” 억지로 쏘아붙였지만 목소리 끝이 흔들렸다. “단영이가 그랬어요. 형, 좋은 사람이라고.” “참나. 이 자식이 아직 뒤통수를 덜 맞아봤네! 세상 무서운 줄 몰라! 그러다 내가 다른 마음 먹으면? 나 오 선생 좋아해! 엄청 좋아했어, 인마! 내가 한 번 제대로 들이대줘? 아주 이판 엉망진창 와장창 아사리판 만들어 봐?” 말은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쓸쓸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좋은 사람이잖아요, 형.” “말끝마다 형은.” 한결은 괜히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좋은 사람 되어주실 거잖아요, 형은.” “야, 그렇게 웃지마. 떨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