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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last update 게시일: 2026-09-22 10:15:45

식사는 한식이었다. 갈비찜, 잡채, 전 몇 가지.

“와, 이걸 혼자 다 했어?”

“네. 괜찮나요?”

민재가 갈비 한 점을 입에 넣더니 감탄했다.

“형, 완전 훌륭. 내 인생 음식 이제 엄마 닭갈비에서 형 갈비찜으로 바꾸려고.”

“서운한데, 한민재.”

혜진도 갈비를 하나 집어 먹었다. 부드럽게 익은 살이 젓가락 끝에서 쉽게 떨어졌다.

“그런데 나도 인정할게.”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태오는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민재의 빈 접시에 갈비를 덜어주었다. 혜진은 물잔을 들었다. 태오는 이제 더이상 자신을 보지 않았다. 물을 삼키고도 입 안이 자꾸 말랐다. 태오는 밥을 먹고, 정우의 말에 대답하고, 민재와 웃었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웠다.

혜진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먼저 그 선을 그은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막상 태오가 한 발자국도 넘지 않으니, 이번에는 그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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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7화

    식사는 한식이었다. 갈비찜, 잡채, 전 몇 가지.“와, 이걸 혼자 다 했어?”“네. 괜찮나요?”민재가 갈비 한 점을 입에 넣더니 감탄했다.“형, 완전 훌륭. 내 인생 음식 이제 엄마 닭갈비에서 형 갈비찜으로 바꾸려고.”“서운한데, 한민재.”혜진도 갈비를 하나 집어 먹었다. 부드럽게 익은 살이 젓가락 끝에서 쉽게 떨어졌다.“그런데 나도 인정할게.”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태오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태오는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민재의 빈 접시에 갈비를 덜어주었다. 혜진은 물잔을 들었다. 태오는 이제 더이상 자신을 보지 않았다. 물을 삼키고도 입 안이 자꾸 말랐다. 태오는 밥을 먹고, 정우의 말에 대답하고, 민재와 웃었다. 놀라울 만큼 자연스러웠다.혜진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지키고 있었다.물론 먼저 그 선을 그은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막상 태오가 한 발자국도 넘지 않으니, 이번에는 그게 거슬렸다.—왜, 신경쓰지마부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뇌답게, 신경쓰지 말자고 할수록 더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괜히 거실을 둘러본다. 역시나 물건이 많지 않았다. 싱글 소파와 낮은 테이블. 벽에 걸린 시계. 구석에 세워둔 운동 가방. 사람 하나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자신이 들어올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 우스워졌다.—당연하지애초에 없어야 하는 자리였다.“핸드폰 충전 좀 하고 싶은데.”혜진이 거실 한구석을 눈으로 더듬으며 말했다.“방에 있는 충전기 가져올게요.”“아니, 내가 가서 충전할게. 그냥 있어.”혜진은 일어나려는 태오를 손으로 만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도 단출했다. 침대 하나. 가지런히 펴놓은 이불. 베개는 모서리까지 각이 잡혀 있었다. 혜진은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았다.“후우…….”그게 다인데 괜히 한숨이 나왔다. 간단한 일이었다. 가족처럼 대하고, 웃어주고, 으레 가족끼리 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6화

    그 뒤로는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태오는 다시 단답형 말투로 돌아왔다. 더이상 혜진과 눈이 길게 마주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고, 아무도 없는 시간에 산책을 할 뿐이었다. 사고와 입원 때문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능 결과도 좋았다. “태오 붙었대.” 정우가 시계를 풀러 서랍 안에 넣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어디?” “원하던 데.” “……그래?” 혜진은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괜히 로션을 탁 하고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축하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한 집에 있어도 태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한 것도 정우를 통해 알았다. 캐리어 하나에 짐을 싸고 있는 태오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노크를 했다. 태오는 슬쩍 뒤를 보더니 혜진인 걸 알고 다시 책을 정리했다. 혜진이 방문 앞에서 더 다가가지 못했다. “도와줄까?” “괜찮아요.” 태오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이럴거야?” “뭐가요.“ 여전히 캐리어 안의 짐을 조정하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알잖아.“ 그제서야 손이 멈춘다. ”원하던 거잖아요.“ —그래, 맞아. 필요 이상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서로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 잘된 건가 잘된 거지. 혜진은 마치 정답을 확인하듯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말했다. 생각보다 더 혜진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다. 더 이상 둘 사이에 기류 같은 것도 없고, 눈이 마주친다고 심장이 내려앉지도 않는데, 왜 기분이 안좋은지 모르겠다. “선을 지키자고 했지, 밀어내라고는 안했어.“ 태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혜진 쪽으로 다가왔다. “윤혜진씨는, 마음 속에 선이 많은 가봐요.” 혜진은 순간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건가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선은 밟으면 안되고 저 선은 되고.“ 태오는 혜진의 반걸음 앞에서 멈췄다. “그래서 더이상 안가려고요. 저 그렇게 복잡한 게임 못해요. 워낙 단순해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5화

    똑.똑정우가 태오의 방문을 열었다. ”잠깐 시간돼?“”네.“태오가 거실로 간다. ”여기 앉아.“테이블 위에 서류 몇 장이 놓여 있다.”전에 얘기했지? 입양 말이야.“정우가 서류를 태오 쪽으로 밀었다. ”기왕 하는 거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거든.“태오의 시선이 종이 위를 훑었다.”사모님도…“말끝이 걸린다.”…동의하셨어요?“”응.“너무 빠른 대답이다. 태오가 고개를 든다.“동의하셨다구요?”“응, 그럼.”—왜? 정우가 뒷머리를 한번 쓸었다.“뭐, 사소한 조건이 하나 있긴 했지만—”“뭔지 여쭤봐도 되요?”정우가 잠깐 뜸을 들인다. “어차피 민재도 독립할 예정이었고, 너도 성인이니까.”테이블 아래에서 손이 천천히 말렸다.“독립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조금만 시간을 주시겠어요?”“그래, 그래. 천천히, 하지만 최대한 빨리 얘기해줘.”정우가 서류를 거뒀다. 태오는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한참을 서있었다.입양, 혜진의 동의, 그리고 독립— 나랑 다른 의미인가.운동복을 꺼내 걸쳤다.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그래. 무리하지 말고.”단지 정문을 향해 터덜터덜 걷는데 익숙한 차 한대가 들어온다. 태오의 걸음이 멈춘다. 차가 속도를 줄이다가 이내 차창이 내려간다.“태오, 어디가?”아무렇지 않은 얼굴의 혜진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할래요?”혜진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그래, 타.”차는 한참을 달려 산길 초입의 작은 공터에 멈췄다. 해가 거의 넘어가 있었다. 낮에는 초록이었을 숲이 검게 보였다. 혜진이 시동을 끄고 머리를 높이 묶었다.“뭔데?”태오가 옆얼굴을 바라봤다. “입양, 동의하셨다면서요.”잠시 손길을 멈춘다.“응, 맞아.”“왜요?”혜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끈을 한 번 더 조였다.“왜긴. 너도 앞으로 보호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고, 정우 씨도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이고—”“그런거 말고요, 진짜 이유.”태오가 혜진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4화

    지면이 가까워질수록 활주로의 불빛이 선명해졌다. 수진은 창밖을 내려다보다 작게 중얼거렸다.“맨날 따로 와야 하네.”불만 섞인 말과 달리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꽤 만족스러웠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입국장을 빠져나와 짐을 찾았다. 게이트를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수행비서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이쪽으로 오십시오.”수진은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려 인사 대신 고개를 까딱하고 다시 걸었다.또각, 또각.구두 소리가 공항 바닥을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러면서도 괜히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있을 리 없었다. 그 사람이 탄 비행기는 진작 도착했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집이겠지. 수진은 휴대폰을 꺼냈다.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지만 의미없는 사람들의 메세지들 뿐이다.“치.”“네?”앞서가던 비서가 돌아봤다.“아무것도 아니야.”수진은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여행지에서는 그렇게 다정하더니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귀신같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게 둘 사이의 규칙이었다. 같이 떠나도, 돌아올 때는 따로. 수진도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계약서처럼 조항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 법. 차에 올라탄 순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수진은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도착했어?]그제야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진은 한참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다 딱 한 줄만 보냈다.[누구는 이제 생각났나 봐]차창 밖으로 건물들이 빠르게 밀려났다. 수진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봤다.—엄밀히 말하면 내가 먼저였어.친구의 남편으로 만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자신은 보자마자 알아봤는데 정작 그는 한동안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꽤 자존심이 상했다.—어떻게 나를 잊어.물론 어두운 조명이었고 시간도 많이 지났엇다. —그래도 자신은 알아봤는데.수진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톱 끝이 살을 꾹 눌렀다.다정한 남편, 좋은 아버지, 성공한 사업가. 아내는 밝은 그의 모습만 알고 있다.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3화

    침실 앞에서 둘은 어설프게 봉인해두었던 욕망을 조금씩 풀어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집어삼킬 듯 타올랐던 손길이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왜 하필 여기였을까.다른 방도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숨어들던 작은 방. 태오가 머물던 그 곳도 있었는데. 태오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아직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를 어루만진다. 혜진의 손길이 거기서 멈췄다.“이제 안 아파?”“네.”태오가 잠시 혜진을 바라봤다.“근데 다른 데가 아파.”혜진의 눈썹이 올라갔다.“어디?”“마음.”“장난치지…….”말을 끝내기도 전에 태오가 입을 막는다. 혜진은 눈을 감았다. 거친 손이 부드럽게 혜진의 허리부터 굴곡을 따라 아래로 점점 깊이 파고든다. “하아…”드디어. 기다렸어. 며칠 동안 애써 밀어냈던 감각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그 사실이 괜히 싫어서 더 깊이 태오를 끌어안았다.침대 가장자리에 다리가 닿았다. 그제야 혜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익숙한 침대였다. 베개도, 침대 옆 테이블 위의 남편의 책, 스위스 인터라켄의 호수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도 모두 그대로였다.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곳. 혜진은 그걸 알면서도 태오의 입술을 놓지 않았다. 태오가 먼저 멈췄다.“여기서 괜찮아요?”혜진은 대답대신 태오의 티셔츠를 벗겼다. 아직은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 태오는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었다. 사방을 감싸는 축축함과 따뜻함. 자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 목덜미에 은은한 로션 냄새, 귀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숨결, 허리를 감싸는 매끄러운 다리. 언제나 급했어서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었다.혜진이 태오의 어깻죽지를 그러잡는다. 울퉁불퉁한 상처 자국을 손으로 어루만진다. 이렇게 계속 만지면 지워질수 있다는 듯이. 곧이어 혜진의 손이 침대 포스트를 움켜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솟았다. 태오가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혜진의 손등을 덮고 손가락 사이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12화

    없었던 일처럼 지내려고 했다. 태오는 곧 붕대를 풀었고, 간병인도 더는 오지 않았다. 혼자 씻고 밥을 챙겨 먹는 데 문제가 없었고, 날이 좋으면 집 근처를 짧게 걷고 돌아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네 사람이 한 식탁에 앉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다 시간이 맞는 저녁이면 정우는 태오에게 컨디션을 물었고, 민재는 한두 마디씩 끼어들었다.“태오는 이번에 수능 볼 수 있겠어?”“네. 그러려고요.”“너무 무리하지 마. 내년에도 기회 있으니까.”“알겠습니다.”“말만 알겠습니다 하지 말고.”태오가 웃었다. 혜진은 아무렇지 않게 생선의 가시를 발랐다.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적어도 식탁 위에서는.침대 위에서 혜진은 어느 순간부터 정우의 손을 피하고 있었다.정우가 잠결에 허리를 감으면 슬쩍 돌아누웠다. 입을 맞추려 다가오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먼저 불을 껐다. 정우는 두어 번쯤 의아한 얼굴을 했다.“요즘 많이 피곤해?”“응. 좀.”“카페 며칠 쉬어.”“됐어. 쉬면 더 피곤해.”정우는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혜진을 불편하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혼자 들킨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정우가 먼저 잠든 뒤에도 한참 눈을 뜨고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 - - 정우가 커다란 캐리어의 지퍼를 닫았다. 침대 끝에 앉아 있던 혜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요즘 출장 잦은 것 같아.”“그러게.”정우가 캐리어를 세워놓고 혜진에게 다가왔다. 익숙하게 어깨를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혜진은 가만히 있었다.“민재도 없는데.”괜히 툴툴거렸다.“참, 민재는 잘 있대? 어떻게 전화 한 번이 없어.”“톡은 자주 보내. 할 일이 많은가 봐. 학회가 그렇지.”정우가 다시 옷장으로 향했다.“이모님, 저녁까지 계셔 달라고 할까?”“아니야, 그냥 지금처럼 5시에 가시는 게 좋아, 저녁엔 조용히 있고 싶어.” “그래도 태오가 있어서 든든하네.”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혜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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