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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12 11:24:44

“네. 반가워요.”

하필이면 태오의 맞은편이었다. 직원이 들어와 준비된 와인을 따랐다.

“내가 전에 얘기했었나?”

“당신이 후원하는 곳 얘기는 들었어.”

“거기서 알게 됐어. 벌써 몇 년 됐지?”

정우가 태오에게 물었다.

“한 오 년 됐습니다.”

“그렇게 됐나.”

정우는 새삼스럽다는 듯 웃었다.

“시간 빠르네.”

혜진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태오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도. 남편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도.

“그럼 두 사람 꽤 오래 알았네.”

혜진이 말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렇죠.”

태오가 대답했다. 눈이 마주쳤다. 혜진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직원이 고기를 가져왔다.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가고 조용한 룸 안에 지글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당신은 안심이지?”

“응.”

“태오는?”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그게 제일 편해.”

정우가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다. 너무 평범한 저녁이었다.

“카페는 어때?”

정우가 혜진의 접시에 고기를 놓아주며 물었다.

“정신없지.”

“공사는 마음에 들고?”

“응. 생각보다 잘 나왔어.”

“내가 업체 잘 골랐지?”

정우가 웃었다. 혜진은 젓가락을 들다가 멈칫했다. 태오는 태연하게 고기를 집어 먹었다. 혜진은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그런데.”

정우가 물었다.

“둘이 현장에서 본 적은 없어?”

혜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짧은 침묵. 그때 태오가 말했다.

“몇 번 뵀습니다.”

혜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우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네. 공사 확인하러 자주 오셨으니까요.”

깔끔했다.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럼 아예 초면은 아니었네.”

정우가 웃었다.

“그러게.”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태오가 맞은편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제대로 인사드리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다시 평범한 식사가 시작됐다. 자신과 태오 사이에는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밤 하나가 있었고, 정우와 태오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몇 년이 있었다. 세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각자가 알고 있는 관계의 모양은 전부 달랐다.

혜진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와인 더 줄까?”

정우가 물었다.

“조금만.”

정우가 병을 들자 혜진이 자연스럽게 잔을 내밀었다. 붉은 와인이 잔의 절반쯤 찼을 때 정우가 병을 세웠다.

“많이 마시지 마.”

“왜?”

“당신 와인 마시면 금방 취하잖아.”

맞은편에서 태오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 혜진은 괜히 잔을 만지작거렸다. 이 어색한 공기를 어떻게든 끊고 싶었다.

정우는 보육원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고, 태오는 가끔 말을 고쳐주었다. 그러다 현장 이야기가 나오면 이번에는 태오가 길게 말했고 정우가 들었다. 혜진은 대부분 듣고만 있었다. 와인 한 병이 비었다. 어느새 두 번째 병이 열렸다. 정우가 혜진의 잔을 보고 물었다.

“천천히 마셔.”

“알았다니까.”

혜진은 대답하면서도 태오를 바라봤다. 기억 속 태오와는 이상하게 달라 보였다. 작업복이 아닌 단정한 옷 때문인지, 조금 내려온 머리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던 그의 시간을 보고 있어서인지.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또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혜진이 먼저 피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복도 끝 화장실은 조용했다. 혜진은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봤다. 술기운 때문에 뺨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찬물을 손끝에 묻혀 목덜미에 댔다.

“하…….”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하룻밤이었다. 살다 보면 한 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고, 인생 전체에서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하루. 오늘만 지나가면 된다.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는 태오를 만나지 않으면 된다. 그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혜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태오가 복도에 서 있었다. 벽에 기대지도 않고, 그저 서서 혜진을 보고 있었다.

“……뭐 해요?”

태오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응.”

혜진은 그를 지나치려 했다.

“난 안 괜찮은데.”

걸음을 멈추고 혜진이 돌아봤다. 태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뭐가.”

“전부.”

혜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고 같은 거잖아.”

목소리를 낮췄다.

“잊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요?”

혜진의 눈썹이 움직였다.

“뭐?”

“잊겠다고 한 적 없는데.”

“이태오.”

“그래서.”

태오가 물었다.

“내 생각 한 번도 안 했어요?”

혜진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응.”

대답은 짧았다. 태오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뭐가.”

“다 티 나는데.”

“뭐가 티 나.”

“나 볼 때마다 피하는 거.”

혜진의 표정이 굳었다.

“뭘 원하는데?”

이번에는 태오가 바로 대답했다.

“당신.”

태오는 다가오지 않았고 손을 뻗지도 않았다. 그저 혜진을 바라봤다.

“웃겨.”

한 걸음 다가가 태오의 셔츠 앞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입술이 맞닿자 와인 향이 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혜진이 먼저 떨어졌다. 손은 아직 태오의 셔츠를 붙잡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까지야.”

“우린.”

혜진이 손을 놓고 먼저 돌아섰다.

아슬아슬한 식사가 끝났다.

“잘 가고. 또 보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혜진도 짧게 인사를 건넸다.

“잘 가요.”

“네.”

혜진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그의 뒷모습을 의식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 불편했어?”

“당신은 미리 말 좀 해주지.”

“얘기했잖아. 오늘 누구 만난다고.”

“좀 더.”

“뭘?”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면 얘기할 수도 있었잖아. 난 오늘 처음 들었어.”

“그렇게 됐어.”

혜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지 붉은 신호등이 번져 보였다.

“당신이 보육원에 있을 때부터 알았다는 것도 처음 들었고.”

“그 얘기까지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왜?”

혜진이 입을 다물었다. 알았더라면 그날 밤은 없었을까 과연.

“그래서 말인데.”

“또 뭔데?”

뜸이 있었다.

“나 태오 입양하고 싶어.”

“뭐?”

혜진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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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지된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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