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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이소문
강하율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문의를 남긴 고객들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었다.

4개 국어를 오가며 문의를 끝낸 뒤 강하율은 녹초가 되어 소파 위에 쓰러졌다.

현재 강하율은 세원시의 유명한 호텔인 윌른 호텔의 세일즈 팀장이라 매일 국내외 고객들과 소통해야 했고 여러 가지 행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강하율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배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정말 승진할 기회를 포기하고 관계를 밝히는 것조차 원치 않는 남자를 위해 평생 가정주부로 살려고?]

[강 팀장, 잊지 마. 강 팀장이 왜 내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는지를 말이야.]

[정말 너무 실망스럽다.]

호텔 지배인은 강하율의 상사이자 스승이었다.

그는 강하율이 윌른 호텔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어제는 그녀를 위해 5년에 한 번 뿐인 승진 기회를 따내 주었다.

그러나 강하율은 그 기회를 거절했다.

배윤제가 관계를 공개하게 되면 자신과 배씨 가문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호텔 지배인의 놀라움과 실망이 뒤섞인 눈빛을 강하율은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신청서를 클릭해서 작성한 뒤 호텔 지배인에게 보냈다.

[포기할 거면 안 보내도 돼.]

호텔 지배인이 답장을 보냈다.

[저 포기한다고 한 적 없는데요?]

잠시 뒤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확실해?”

“네.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절대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을게요.”

“그래.”

호텔 지배인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강하율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연인은 잃었지만 그녀에게는 커리어가 남아있었다.

강하율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스를 하나 찾아낸 뒤 배윤제가 남겨두고 간 물건들을 전부 그 박스 안에 넣었다.

그리고 정리를 마친 뒤 강하율은 그녀가 배윤제를 위해 준비해 뒀던 걸 제외하면 배윤제가 자발적으로 두고 간 것들은 매우 적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강하율은 배윤제가 자신의 집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배윤제는 강하율이 작은 집에서 궁색하게 살고 있는 게 안타깝다느니,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다느니 변명했지만 사실은 그저 강하율의 집이 너무 작아서 싫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당시 강하율은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었다.

강하율은 자조하듯 피식 웃으며 박스를 닫은 뒤 내일 그것을 내다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안혜슬이었다.

“하율아, 나 너랑 배윤제 열애 인정 기사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배윤제랑 정다인의 열애 인정 기사가 나오는 거야?”

안혜슬은 강하율이 신뢰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호텔에서 유일하게 배윤제와 그녀의 연애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우리 헤어졌어.”

강하율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뭐? 또 토라져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내일 근처 마트에 가서 신선한 야채 좀 사다 줄게. 배윤제는 네가 해준 야채죽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안혜슬이 덤덤히 말했다.

너무 자주 있었던 일이라 안혜슬은 심지어 배윤제가 무엇 때문에 토라졌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어차피 밥 한 끼 해주고 조금 달래주면 금방 풀릴 테니 말이다.

“혜슬아, 나 이번에는 진짜로 헤어졌어.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그때 완전히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정신을 차렸어. 배윤제는...”

강하율은 장난스럽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기억을 잃은 척했다고?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어떻게 너한테 그럴 수가 있어?”

전화 너머 안혜슬은 충격을 받고 호흡까지 가빠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강하율을 걱정했다.

“하율아, 너 많이 다쳤어? 내가 같이 있어 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하율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안혜슬은 늘 강하율을 걱정해 주었다.

“괜찮아. 내일 다시 한번 검사 받아보고 문제없으면 바로 출근할 수 있어.”

“그래. 그럼 일찍 쉬어. 그보다... 너 설마 배윤제에게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안혜슬은 여전히 마음이 조금 놓이지 않는 듯했다.

“그 정도는 아니야.”

...

별장.

배윤제가 깨어났을 때 정다인은 침대에 없었다.

배윤제는 대충 파자마를 걸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진희영이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도련님, 다인 씨가 이른 아침부터 도련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요.”

배윤제는 웃으며 주방을 바라보았다.

역시 정다인이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녀는 일뿐만 아니라 요리도 잘했고 침대 위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와 잘 어울리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하율과는 달랐다.

강하율을 떠올린 배윤제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참을성이 좀 생겼네.’

강하율은 어젯밤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배윤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정다인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윤제 씨, 깨어났어요? 어서 아침 먹어요.”

“응.”

배윤제는 자리에 앉은 뒤 정다인이 음식을 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아침으로 나온 것은 햄토스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배윤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정다인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그래요?”

배윤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자신의 컵에 따뜻한 물을 따랐다.

“내가 전에 얘기했잖아. 나는 토스트는 별로라고.”

정다인은 배윤제의 목에 팔을 두르며 애교를 부렸다.

“저는 한식을 할 줄 몰라요.”

배윤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할 줄 모르면 배우면 되잖아. 강...”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 없던 강하율은 그를 위해 요리를 배웠다.

배윤제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있으면 그녀는 그날 바로 레시피를 검색했고 다음 날 그 음식을 직접 해주었다.

배윤제는 정다인의 앞에서 강하율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대신 다른 핑계를 댔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만 음식을 맡겨.”

“알겠어요. 천천히 배울게요. 오늘은 그냥 먹어요.”

정다인은 강하율의 이름을 듣지 못한 척하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다.

배윤제는 대꾸하지 않고 진희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채죽 좀 해줘요.”

“그... 도련님.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야채죽을 저는 할 줄 몰라요. 강하율 씨만 할 줄 알아요.”

진희영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저 야채만 들어가서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뭘 먼저 익혀야 하는지, 몇 분 뒤 어떤 야채를 넣어야 하는지 모두 정해져 있었고 1분이라도 늦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었고 색도 예쁘게 나올 수 없었다.

만들기가 그렇게 성가신데 강하율을 제외하면 누가 그걸 기꺼이 배우려고 하겠는가?

“자기 물건을 가지러 왔을 때 레시피를 남기지 않고 간 거예요?”

배윤제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강하율은 그의 입맛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에게 화가 나도 떠나기 전 그가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해 두었고, 심지어 식자재도 멀리 있는 마트까지 가서 직접 사 왔었다.

그리고 배윤제가 음식을 다 먹으면 강하율은 다시 돌아와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사과를 하며 그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예전부터 강하율은 늘 그랬었다.

진희영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네.”

배윤제가 컵을 힘껏 내려놨다.

‘강하율, 수완이 점점 좋아지네.’

그는 차갑게 웃더니 정다인에게 먼저 먹으라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가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는 강하율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귀찮게 할지 궁금했다.

[아주머니가 네가 예전에 해줬던 야채죽 레시피 좀 알려달라네.]

메시지를 보내고 한참이 지났으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필을 눌러 봤더니 송금 아이콘이 보이지 않았다.

강하율이 배윤제를 차단한 것이다.

배윤제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소파 위에 휴대폰을 던졌다.

‘연기 하나는 잘하네. 어디 계속 해 봐.’

배윤제는 강하율이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애원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다인은 표정이 험악해지는 걸 막기 위해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경호원에게 연락했다.

“일을 좀 해줘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

정신을 차린 강하율은 본능적으로 침대맡에 놓인 시계를 보았다.

‘벌써 여덟 시라고?’

강하율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침대에서 내려온 뒤에야 그녀는 배윤제와 헤어졌다는 걸 자각했다. 그러니 아침 일찍 일어나 배윤제를 위해 아침을 할 필요가 없었다.

습관이라는 건 참 무서웠다.

침대로 돌아간 강하율은 기지개를 켠 뒤 발가락으로 이불을 잡아당겨서 다시 이불을 덮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 28일이면 충분했다.

모처럼의 주말이니 강하율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싶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병원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면서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강하율은 목을 움츠리면서 우산을 낮게 눌러쓰고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잠시 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강하율의 코와 입을 막은 뒤 우산으로 그 모습을 가리고 그녀를 어두운 골목 안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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