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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이소문
강하율은 배윤제가 아닌 부서진 휴대폰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다행히 가방 안에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강하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다소 평온한 눈빛으로 배윤제를 바라봤다.

“미행 안 했어.”

배윤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배윤제의 친구들이 분위기를 풀려고 했는데 그 방법은 강하율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강하율, 이런 짓 좀 하지 마. 윤제는 퇴원한 지 얼마 안 됐고 의사 선생님이 아직 뇌 안에 혈종이 사라지지 않아서 감정이 격해지는 건 좋지 않댔어.”

“그러니까 말이야. 다인 씨도 환자를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윤제가 죽기를 바라는 거야? 네가 자꾸 이러니까 윤제가 네가 아니라 다인 씨를 선택하지. 눈치가 있으면 좀 알아서 빠져...”

“그래.”

강하율은 곧바로 대답했고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배윤제는 당황해하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하율을 바라봤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배윤제의 친구들은 경악했다.

“뭐라고?”

강하율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알아서 빠지겠다고.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다들 나를 차단해도 좋아.”

배윤제가 바람을 피우게 도와준 친구들의 체면을 챙겨줄 이유는 없었다.

배윤제의 친구들은 머쓱한 얼굴로 배윤제를 바라봤고 배윤제는 코웃음을 쳤다.

“강하율, 적당히 해. 그런 방식으로 내 관심을 얻으려고 하지 마. 내가 말했듯이 내가 기억을 잊었다는 건 그 기억들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해.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말이야.”

배윤제는 정다인의 손을 잡고 또박또박 말했다.

“다인이야말로 진짜 모두가 인정하는 내 여자 친구야.”

정다인은 사랑스럽게 웃더니 티 나지 않게 강하율 쪽을 바라보면서 그녀를 향해 자신의 승리를 알렸다.

‘모두가 인정하는 여자 친구라니.’

그건 강하율이 4년 동안 바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강하율은 더 이상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배윤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이 강하율을 얕봤다고, 강하율이 예전보다 더 참을성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먼저 양보하는 척하면 내가 관심을 줄 줄 알았나 보지? 내가 굳이 모진 말을 해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배윤제는 정다인을 끌어안고 자리에 앉은 뒤 긴 팔을 소파에 올리면서 나른한 자태를 한 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축하한다면 같이 한잔해. 설마 그냥 해본 말은 아니겠지?”

강하율은 배윤제가 일부러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뇌에 혈종이 있다면서 술을 마신다고?”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두렵지 않은 걸까?

배윤제는 차갑게 웃었다.

강하율은 개의치 않는 척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정다인은 배윤제에게 기대며 속상한 듯이 말했다.

“윤제 씨, 하율 씨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가 봐요. 하율 씨가 술을 마시기 싫어하니까 저도 괜히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배윤제의 친구들도 강하율이 배윤제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강하율을 질타했다.

“강하율, 연인은 아니어도 친구로 남을 수 있잖아. 이렇게 질척대는 거 너한테 좋을 것 없어.”

“윤제랑 다인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커플이야. 그러니까 그만 포기해.”

“강하율, 솔직히 우리가 네 친구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이렇게 너를 설득하지는 않았을 거야.”

‘친구? 하.’

강하율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배윤제의 친구들은 흠칫하며 자기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그들은 왠지 모르게 강하율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이었다면 강하율은 그들이 노골적으로 말하면 바로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세상에서 배윤제가 화내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강하율이었기 때문이다.

강하율은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잔을 들었다.

“나는 안 마신다고 한 적 없어. 설득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두 사람 연인이 된 거 축하해. 앞으로 흰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길 바랄게.”

강하율은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강하율은 원래도 예쁘게 생겼는데 특히 웃을 때면 더 화사하게 예뻤다.

그녀의 완벽한 이목구비는 매우 조화로웠고 또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빠지는 게 하나 없는 정다인조차 강하율만큼 아름답지는 못했다.

그러나 강하율은 워낙 보수적이라 결혼 전까지 배윤제와 성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고, 배윤제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윤제는 강하율의 미소에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강하율의 연기는 지나쳤다.

배윤제가 기억을 되찾았다고 밝힐 때가 되면 강하율은 그에게 애원하게 될 것이다.

배윤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강하율, 지금 네가 한 말 똑똑히 기억해 두고 꺼져.”

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정다인의 미소를 보게 되었다.

정다인은 빨간 입술을 달싹거리며 소리 없이 말했다.

‘정말 쓸모없네요.’

강하율은 곧바로 걸음을 멈췄고, 배윤제의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강하율은 아마 자신의 연기가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배윤제마저 이마를 짚으면서 짜증 어린 표정을 해 보였다.

“강하율,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너는...”

강하율이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배윤제, 내 휴대폰 배상해야지. 저거 아까 산 거야. 영수증에 시간이랑 액수 적혀 있어.”

“참나.”

배윤제의 친구들은 강하율의 저급한 수단을 비웃었다.

배윤제 또한 차갑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으며 난감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러나 강하율은 신경 쓰지 않고 곁눈질로 정다인을 살핀 뒤 몸을 돌려 자신과 똑같은 기종을 쓰는 친구에게 물었다.

“배상하고 싶지 않으면 말아. 나 아까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망가져서 지금 답장을 보낼 수가 없어. 그러니까 휴대폰 좀 빌려줄래? 카톡 로그인해서 대화 내용 불러오기 하면 메시지를 복원할 수 있거든.”

그렇게 말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하율을 비웃던 정다인이 안절부절못했다.

만약 대화 내용이 복원된다면 정다인이 강하율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녀를 도발한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정다인은 강하율이 헛소리를 하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절대 배윤제가 그 메시지를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정다인은 초조한 얼굴로 다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하율 씨, 왜 자꾸 사람들을 난처하게 하는 거예요? 휴대폰은 제가 두 배로 배상해 드릴게요.”

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계좌 번호를 불렀다.

“입금할 때 휴대폰 배상액이라고 적는 거 잊지 말아요. 추후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서로 골치 아파질 테니까요.”

정다인은 이를 악물고 강하율에게 300만 원을 입금했다.

돈은 아깝지 않았으나 강하율에게 된통 당한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하율은 정다인이 입금한 걸 확인하고는 예의를 차려 감사 인사를 한 뒤 그대로 떠났다.

강하율이 웃음거리가 되는 걸 지켜보려던 배윤제의 친구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1분 동안 기다렸지만 강하율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간 거야?”

“갔을 리가. 세 시간 안에 다시 핑계 대고 돌아올걸?”

“나는 두 시간 안에 돌아올 거라고 본다.”

그들은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배윤제는 술을 마시며 비아냥댔다.

“나는 30분.”

정다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언짢아했다.

“하율 씨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거예요?”

배윤제는 정다인을 끌어안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술만 마시면 재미없잖아. 그냥 심심풀이지.”

정다인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시간은 1분 1초 흘렀고 어느샌가 30분이 지났고 1시간도 지났다.

그러나 강하율은 나타나지 않았다.

배윤제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배윤제의 친구들이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하율이 걔 휴대폰이 없잖아. 휴대폰 사러 가서 오래 걸리나 보다.”

다른 한 친구가 말했다.

“여기 바로 아래 백화점 있잖아. 그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지.”

“전화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걸지도 모르잖아.”

“그럼 당장 전화해 봐야겠네.”

그들은 강하율이 배윤제 때문에 자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서둘러 전화했으나 강하율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 차단당한 건가?”

“그럴 리가. 우리는 친구잖아. 카톡 보내 봐.”

다른 사람이 휴대폰을 꺼내 강하율에게 카톡을 보냈으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보이스톡을 걸어보니 바로 끊겼다.

“우리 다 차단당한 것 같은데?”

쿵.

배윤제는 술병을 힘껏 내려놓더니 정다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삐졌나 보지. 뭘 그렇게 진지하게 굴어? 밥은 내가 살게. 우리는 이만 간다.”

배윤제의 친구들은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배윤제가 멀어지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하율 이런 적 없잖아. 설마 진짜 마음을 접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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