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왜죠?”하음이 말했다.“차 대표가 처음 차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차씨 가문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차 대표를 반기지 않았어요.”“차 대표는 모두에게 밀려났죠. 차씨 가문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다른 사람들과 재산을 두고 다투게 된 사람인데 누가 환영하겠어요?”제나는 경후의 친부모가 경후에게 다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럼 경후의 친부모님은요? 경후는 그분들의 친아들이잖아요. 그런데도 반기지 않았다는 건가요?”하음이 비웃듯 웃었다.“그것도 전부
둘의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적당해 보였다.그날 하음이 일부러 제나의 발을 밟지 않았다면, 제나는 하음에게 악의가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식사 주문을 마친 뒤, 하음과 경후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지난 일을 꺼내지 않았다. 대화 주제 역시 전부 업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제나는 알게 되었다. 하음이 이번에 S시에 온 것은 HB그룹과 협업을 논의하기 위해서인 듯했다.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제나는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거두어들인 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말끔한 정장 차림의 경후가 서류 한 부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사무실에 앉아 있는 제나를 본 경후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여긴 어떻게 왔어?”제나는 웃어 보였다.“당신한테 점심 가져다주려고 왔어.”경후의 시선이 가볍게 움직여, 책상 위에 놓인 보온 도시락통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제나는 예민하게 무언가를 알아차렸다.“왜? 오늘 점심 약속 있어?”“응.”경후는 사무실 문을 닫았다.“오기 전에 전화하지 그랬어
제나는 원래 기억이 모두 돌아온 뒤에, 경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억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제나는 고용인의 입을 통해, 경후가 제나의 냉정함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여러 감정이 뒤섞인 끝에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 것이었다.하지만 제나는 잊고 있었다. 모든 관계의 시작에는 그 관계를 책임지는 마음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너무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됐다. 제나는 그렇게 자신을 달랬지만,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은 허전함은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제나의 눈빛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아주 오래전, 제나는 이런 눈으로 경후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동경하듯, 깊이 빠져든 듯한 눈빛이었다.하지만 그 뒤로는 그 같은 눈빛을 다시 볼 수 없었다.경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제나는 마치 들킨 도둑처럼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이유도 모르게 양쪽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경후는 제나를 다시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아직 열 안 내렸어. 알고 있어?”“그냥... 씻고 싶어서.”제나의 목소리에는 아직 병기운이 섞인 듯 희미한 쉰 기운이 남아 있었다.“며칠째 제대
경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제나의 침대 곁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제나는 의아한 눈으로 경후를 바라보았다. 밤보다 더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나를 응시하고 있었다.그 시선에는 살핌이 있었고, 의심이 있었으며,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겹겹이 얽혀 있었다.제나는 자기 얼굴에 뭐라도 묻은 줄 알고, 무심코 뺨을 문질렀다.“내 얼굴에 뭐 묻었어?”“아니.”“그럼... 당신 왜 그렇게 봐?”“생각 중이었어. 당신은 내 출생에 대해 알고도 왜 조금도 놀라지 않았을까?”남자의
몇 시간이 지나자 경후의 상태는 겨우 안정됐다.찰스 교수는 제나를 따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제나 씨도 평소에 일이 많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남자친구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요.”잠시 말을 멈춘 뒤, 시선에 못마땅함이 스쳤다.“당분간은 하시던 일을 내려놓고, 간호에 전념해 주길 바랍니다. 하루에 한 번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로는 부족해요.”찰스 교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환자는 아플 때 몸도, 마음도 굉장히 약해집니다. 외롭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 속도는 빨라질 수
병실 안은 소독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코끝을 찌를 만큼 강한 향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천천히 눈을 뜨자, 흐릿하고 가느다란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경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 바라보다가 그제야 눈앞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봤다.“제나 씨...?”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힘이 거의 실려 있지 않았다.“이제 깼어요?”제나는 손을 뻗어 경후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끝을 얹었다.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아직도 열이 조금 있어요.”제나는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고열이 39도까지 올라갔어요. 사흘 동안 의식이
‘제나야, 제나야. 차경후의 속셈을 아직도 못 알아보고, 이렇게 위험한 선을 넘나들다니...’경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그래서 또 우연히 교통사고라도 나고, 기억을 한 번 더 잃을 생각이야?”제나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내 그 사고가... 고의였다고 말하는 거야?”“그 사고만 없었어도, 우리는 이미 이혼했어.”제나는 손가락을 꽉 쥐었다. 반박하고 싶었다.하지만 머릿속을 스친 한 가지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사고 이전의 기억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그 기억 속의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
“알아.”경후의 표정은 담담했다.“걱정 마.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제나는 경후의 얼굴에서 단 한 점의 후회도 읽어낼 수 없었다.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이를 악물고, 제나는 경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알잖아. 내가 그런 조건을 내건 이유는 네가 알아서 물러나길 바랐기 때문이야. 차경후, 우리는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더 이상 나한테 집착하지 마.”그 말에 경후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는 제나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왜 갑자기 헤어지자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괜찮았잖아.”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