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경후의 눈빛에 걱정이 어려 있었다.“아직 어디 불편해?”제나는 아픈 게 아니었다.그저 마음이 뒤죽박죽이었고, 용기를 내어 말할 힘조차 사라져 있었다.“아니, 괜찮아.”“위로 올라가 있어. 약 좀 가져올게.”“응.”잠시 뒤, 경후가 소독약과 연고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제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경후가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발라줄게.”말을 마친 그는 의료용 면봉을 들어 그녀의 상처 난 입술을 조심스레 소독한 뒤, 연고를 발라주기 시작했다.경후가 진지하게 집중할 때
“당신...”제나의 입술에서 낮은 숨결이 흘러나왔다.“언제 돌아온 거야?”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운 샘물처럼 맑고 낮게 울렸다.“오늘 아침.”“출장이 열흘 넘게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즘 당신이 자꾸 악몽을 꾸고, 제대로 못 자잖아.”경후의 시선이 제나를 곧게 꿰뚫었다.“일을 앞당겨 끝내고 돌아왔어.”평소라면 제나는 반가움에 마음이 벅찼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건 깊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공포뿐이었다.아직 가면남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는데, 경후가 불시에 돌아와 버린 것
제나의 시선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향했다.가면남이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경제 뉴스였다.그는 곧 리모컨을 들어 TV를 꺼버렸다.순식간에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제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이리 와.”낮게 흘러나온 목소리.제나는 굳은 몸으로 그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가면남은 의아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오늘은 왜 이렇게 얌전해?”그건 체념이 아니었다.제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이 남자는 강하게 맞서면 더 잔혹해졌다.‘맞서지 않는 게, 그나마 숨 쉴 구멍을 찾는 방법
민정의 눈빛이 반짝였다.“좋아요!”그 뒤로 세 사람은 온통 일 얘기뿐이었다.연애니, 남자니, 잡다한 고민은 잠시 잊고, 각자 꿈꾸는 디자인과 앞으로의 계획에 열을 올렸다.식사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제나가 무심코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여덟 시가 다 되어 있었다.이 시간에 호텔로 가더라도 이미 늦을 터였다.제나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기더니, 결국 가면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친구가 퇴원해서 같이 식사 중이에요. 조금 늦을 것 같아요.]몇 분 뒤, 답장이 왔다.[알았어.]제나는 마음이 약간
[제나 언니, 감기 걸리셨어요?]연주의 놀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연주?”제나는 곧바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잠시 멈칫하던 제나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오늘은 민정이 퇴원하는 날이었다.아침에 민정에게 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제나는 눈을 크게 뜨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벌써 오후 1시에 가까워져 있었다.민정과 약속한 시각은 오전 열 시였다.급히 핸드폰을 집어 들자,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잔뜩 쌓여 있었다.제나는 속으로 깊은 후회를 삼켰다.‘큰일이네... 내가 왜 이렇게 늦잠을.
가면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가 뿜어내는 위협은 뚜렷하게 느껴졌다.제나는 설명하기 힘든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였다.‘정말...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제나의 어깨가 살짝 떨리자, 가면남이 손을 더 세게 움켜쥐며 끌어안았다.“왜 그래? 춥기라도 해?”“괜찮아요.”“차경후의 기밀, 가져왔나?”제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가면남은 곧 상황을 눈치챘다.“안 가져왔군. 그렇다면... 결국 선택을 한 거네?”제나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가면남은 제나를 뚫어지게 보며 담담히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