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원피스 입지 마. 난 싫어.”“괜찮아. 내가 좋으면 되잖아.”“안 돼.”제나는 깊은 못처럼 가라앉은 경후의 눈을 바라보았다.“내가 꼭 입겠다면?”경후는 눈도 떼지 않고 제나를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오늘은 늦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갈 수도 있겠네.”제나는 멈칫했다.“무슨 뜻이야?”경후의 검은 눈이 가늘어졌다. 희미하게 위험한 기색이 어렸다.그리고 닿을 듯 말 듯 제나의 뺨에 입술을 스치며 낮게 속삭였다.“여보, 아직도 날 유혹하고 싶어?”이번에는 제나도 알아
“안 돼... 읍!”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나의 목소리는 경후의 키스에 완전히 묻혔다.오늘 밤 가족 모임에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참석하려고, 제나는 메이크업에만 꼬박 두 시간을 들였다.그런데 지금 경후는 제나의 화장을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찌익-옷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제나는 잠시 멍해졌다.곧이어 제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내 원피스!”하지만 경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키스가 빗발치듯 쏟아졌다.함께 지낸 시간이 이토록 긴데, 제나가 경후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안 돼...
“아니.”하성의 눈매가 살짝 굳었다.“왜 말 안 했어?”“전에 네가 알아냈잖아. 내 기억상실, 차경후가 손댄 거라고. 아직은 차경후가 왜 내 기억을 잃게 했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당분간은 말하지 않으려고.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때 말할게.”제나가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경후의 태도가 달라진 건, 제나가 기억을 잃은 뒤부터였다.경후는 제나가 기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나와 경후의 지난 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경후의 마음속 응어리는 아직 완전히 풀리
은주는 제나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사실 나는... 줄곧 네 대역이었어.”은주는 늘 자존심이 강했다. 뻔히 알고 있는 일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그런 은주가 이제 와서 이 일을 인정한다는 건, 마음이 완전히 꺾였다는 뜻이었다.“사실 이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어. 경후가 막 Z국으로 돌아와서 나한테 다가오던 때였지. 같이 밥 먹으러 나갈 때마다 경후는 늘 내 옆자리에 앉고 싶어 했고, 내 옆모습을 가만히 보곤 했어.”“경후가 나를 볼 때면 가끔 눈이 멀리 가 있었어. 마치 나를 지나... 다른 여자를 보는 것
흑암처럼 어두운 경후의 눈은 달빛 아래 깊은 우물처럼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그는 제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얇은 입술을 열었다.“계속 당신을 도와주던 그 남자... 대체 누구야?”경후가 묻는 건 그 일이었다.제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맹세할 수 있어. 나도 정말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심지어... 이름도 몰라.”“만난 적은 있어?”제나의 눈 밑으로 망설임이 스쳤다.지금은 모든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 정체 모를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 단서도 없었다.제나는 지난번에 나타났던 남자가 정말 그 정체 모를
“네.”제나의 숨이 가볍게 멎었다.이어 고개를 들어 경후를 바라보았다.“진심이야?”경후의 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설마 당신은 그냥 해 본 말이었어?”“아니.”제나는 경후를 올려다보며 망설이다가 물었다.“정말 이제 신경 쓰이지 않아?”“뭐가?”제나는 입술을 열었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경후는 제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제나를 품에 끌어안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냥 묻어두자.”경후의 목소리는 물처럼 맑고 서늘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아무리 한밤중에 급히 불려 나갔다 해도, 아무리 늦게까지 바쁘다 해도, 경후는 반드시 돌아왔다.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제나는 경후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밖의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고, 시야는 금세 흐려졌다.이런 날씨에 운전하는 건, 누가 봐도 위험한 일이었다.제나는 경후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비 오는 밤에 운전하다가 혹시라도 방심해서... 사고가 나면 어쩌지.’그 불안 때문에 손가락은 끝내 발신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잠은 애초에 불가능했다.제나는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하지만 활자들은 눈으로 들
그 차는 곧바로 제나의 차 앞에 멈춰 섰다.잠시 후, 키 크고 날렵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제나는 차 안에서 몇 초간 숨을 고른 뒤 따라 내렸다.태진의 시선이 제나에게 꽂혔다.“다친 데는 없죠?”“없어요.”제나의 얼굴빛은 조금 창백했지만, 의외로 상태는 괜찮았다. 옷차림도 흐트러짐이 없었다.태진은 짙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입꼬리에 비릿한 미소를 걸었다.“제나 씨, 제가 전에도 말했잖아요. 젊은 여자가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 근데 꼭 제 말을 안 들었잖아요.”제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어떻게 저를 찾은
“제나 씨, 이리 와요.”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첼로 현이 울리듯 깊고 매혹적인 음색이 귀를 사로잡았다.제나는 단번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미스터 강’임을 알아차렸다.의심이 섞인 시선을 품은 채, 제나는 ‘미스터 강’이 앉아 있는 구석으로 걸어갔다.어두운 조명 아래, 태진은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무심한 듯한 여유로움 속에서도 기품이 스며 있었다.제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강...”그러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불쑥 뻗어와 제나를 곁으로 끌어당겼다.제나는 깜짝 놀
한 사람의 인간관계는 그 사람 자체를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다.적어도 지금까지 본 바로는, 이 ‘강태진’이라는 남자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제나는 태진을 도와야 할지 망설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 사이 태진과 연주는 이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연주는 원래 성격이 밝고 외향적인 편이라 낯가림이 없었다.태진 역시 눈치가 빠르고 대화 센스가 좋아, 두 사람은 금세 분위기를 맞춰갔다.태진은 제나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낮게 속삭였다.“제나 씨, 결정은 내렸나요?”제나는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