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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무구
단미가 경매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시간은 저녁 8시였다.

입장 확인 데스크로 걸어가며 가방을 뒤져서 초대장을 찾았다.

초대장을 꺼내 고개를 든 단미는 입구의 레드카펫 앞에 검은 밴 한 대가 멈추는 것을 봤다.

주최 측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차량이 멈추자 맨 앞의 남자가 직접 뒷문을 열었다.

저 정도 의전이라면 차 안에 탄 사람이 평범한 손님은 아닐 것이다.

단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차 문이 열렸다.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바닥을 밟았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남자가 내려 주최 측 인사와 악수했다.

몸짓 하나하나에 높은 자리에 익숙한 사람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그 차분하고 반듯한 얼굴을 확인한 단미는 그대로 굳었다.

‘지호건?’

‘홍주시에 출장 간다더니?’

‘왜 강울시에 있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반대편 문이 열렸다. 붉은색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꾸민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상대를 알아본 단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가로등 아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채림은 환한 미소를 띠고 차를 돌아 호건 곁으로 갔다.

단미는 초대장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주채림이랑 경매에 오려고 출장이라고 거짓말한 거야?’

단미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두 사람은 주최 측 임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바람이 지나갔다.

단미는 입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가로등 아래 단미의 외로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래 머뭇거린 끝에 단미는 초대장을 옆 쓰레기통에 넣고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

집으로 돌아온 단미는 안방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답답함이 가시지 않자 핸드폰을 집어 아무 영상이나 넘겨 보기 시작했다.

생각을 딴 데로 돌려 환기하고 싶었다.

영상을 오래 보니 눈이 아파 습관처럼 SNS 앱으로 넘어갔다. 별생각 없이 피드를 내렸다.

그러다 한 게시물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보름 전 한 파티에서 채림이 먼저 연락처와 SNS 계정을 물었다. 엮이고 싶진 않았지만 사교 자리에서 거절하기도 애매해 받아 둔 상태였다.

단미의 시선은 주채림이 10분 전 올린 게시물에 고정됐다.

[생일에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까지 곁에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올해 생일 일정, 정말 마음에 들어.]

사진에는 푸른 사파이어가 눈부시게 빛나는 주얼리 세트가 담겨 있었다.

단미는 그 세트가 오늘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대에 올라온 주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작가는 35억 원이었다.

‘생일 선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이틀 동안 호건은 출장을 간 게 아니었다. 채림의 생일을 함께 보내고 있었고, 경매장에도 생일 선물을 사 주려고 데려온 모양이었다.

사진을 바라보던 단미의 눈이 따끔거렸다. 입가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걸렸다.

결혼한 2년 동안 맞은 두 번의 생일, 호건은 단 한 번도 단미와 함께 보내지 않았다.

반대로 호건의 스물일곱 번째, 스물여덟 번째 생일에는 단미가 함께 축하하고 싶어 했지만, 호건은 매번 일이 바쁘니 번거롭게 하지 말자며 거절했다.

단미는 그때 정말 일이 많아서 생일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이제야 알았다. 호건은 생일을 챙기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단미와 보내는 생일을 원하지 않았다.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자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일까지 내려놓고 하루 전부터 시간을 비워 함께 놀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건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단미는 씁쓸하게 웃다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침대 맞은편 벽을 가득 채운 대형 웨딩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 단미는 값비싼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옆에 선 호건은 검은 턱시도를 입었다. 잘생긴 얼굴과 흐트러짐 없는 분위기는 눈에 띄었지만, 웃음은 거의 없었다.

똑바로 선 자세와 무표정한 얼굴은 결혼사진이라기보다 회사 공식 프로필 촬영을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예전의 단미는 호건이 그저 원래 잘 웃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보니,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한 게 아니어서 저런 표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미는 사진 속 남자를 오래 바라봤다.

밝은 조명 아래 촉촉해진 눈동자에는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

깊은 밤.

조용한 안방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웨딩사진에 머물러 있던 단미의 시선이 움직여 문 쪽으로 향했다.

곧 깊고 검은 눈과 마주쳤다.

“왜 아직 안 자?”

적막한 방 안에서 호건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남자를 보며 단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오늘 밤은 생일 주인공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호건은 안으로 들어오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한 시간 전에 출장 일정이 앞당겨져서 오늘 돌아간다고 메시지 보냈는데, 못 봤어?”

‘끝까지 출장이라고 하네.’

그래도 호건이 돌아온 건 잘된 일이었다. 미룰 필요 없이 바로 끝내면 된다.

단미가 말했다.

“할 말 있어.”

호건은 넥타이를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았다. 장거리 이동을 마친 사람처럼 피로가 묻어 있었다.

“씻고 나서...”

“얘기부터 해.”

욕실로 향하려던 호건이 멈춰 섰다. 평소와 달리 단호한 단미의 말투에 의아한 눈으로 돌아봤다.

잠시 뒤, 호건은 단미 맞은편의 1인용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

“우리 이혼하자.”

등받이에 기대려던 호건의 몸이 굳었다. 깊은 눈이 단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혼?”

“응. 이혼.”

이번에는 단미가 먼저 꺼낸 말이었다.

단미는 그의 얼굴을 지켜봤다. 조금이라도 기뻐하거나 홀가분해하는 기색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호건의 얼굴에서는 늘 그렇듯 좀처럼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호건은 말없이 단미를 바라볼 뿐이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단미는 숨을 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꽤 긴 정적 뒤에야 호건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혼은 농담처럼 꺼낼 말이 아니야.”

단미가 답했다.

“농담 아니야.”

호건의 표정이 조금 더 굳었다.

“이유는?”

단미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출장을 핑계로 옛 연인의 생일을 챙기러 간 사람이었다.

가족 앞에서는 단미와 주채림 중 누구를 아내로 고르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주채림을 택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 이혼 이유를 묻고 있었다.

뻔뻔할 만큼 당연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단미는 적어도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어졌다.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살짝 든 채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너무 고지식하고 재미없어. 매일 일만 하고 집에는 얼굴도 잘 안 비치지. 겨우 집에 들어와도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하는 답답한 사람이고, 분위기 잡는 법도 몰라.”

“나 2년 동안 충분히 참았어. 더는 이런 결혼에 맞춰서 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이혼할 거야.”

호건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방 안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뒤 호건은 단미의 혹평을 반박하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대신 짧게 말했다.

“우리 결혼은 집안끼리 정한 혼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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