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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송지음

신유리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준혁이 말 한 그 일이, 송지음이랑 같이 야근하는 거였구나.

그녀는 감정을 가다듬더니 아무 일 없는 척하며 핸드폰을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다.

송지음은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유리 언니, 오늘 내로 꼭 보고서 완성할게요.”

“그래.” 신유리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고는 책상에서 핸드폰을 챙겼다. “서 대표님이 도와주시는데, 당연히 다 완성해야지.”

그녀의 말이 맞았다. 서준혁 같은 BOSS가 일을 도와주는데, 수월한 게 당연하지.

단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송지음의 얼굴이 창백해질 뿐이었다.

서준혁은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안 갔어?”

신유리는 핸드폰을 흔들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까먹어서. 지금 갈 거야.”

호연의 파티는 금주 호텔에서 진행됐다. 모두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혼자 파티에 찾아온 신유리의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와 서준혁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신유리는 가뿐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저녁에 도저히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어서요. 최대한 빨리 오실 거예요.”

다들 무슨 상황인지 대충 마음속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근데, 서준혁이 진짜로 왔다.

파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그가 송지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고결한 분위기는 사람을 압도했고, 옆에 서 있던 아가씨도 귀엽고 발랄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신유리와 얘기를 나누던 사모님이 고개를 까닥이며 뒤를 가리켰다. “서 대표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야?”

송지음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와인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준혁도 그녀를 보게 되었다. 오가는 시선 사이로, 그녀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신유리는 사모님에게 말 몇 마디를 건네고는 그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안 온다며?” 그녀는 와인잔을 든 채로 나른하게 물었다.

“얘한테 좀 보여주려고.” 서준혁의 시선은 옆에 있는 송지음에게 머물렀다.

순간 송지음은 조금 난처해졌다. 그녀는 무척이나 앳된 얼굴이었다. 요즘 인기를 끄는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한 스타일이었다.

고개를 들어 사람을 쳐다볼 때면 왠지 모를 무고한 느낌을 주곤 했다.

“유리 언니, 전 그냥 이런 파티에 와 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서 대표님 따라온 거예요.”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 서준혁을 발견한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다가왔다.

“아까도 신 비서랑 서 대표 얘기했는데. 난 서 대표가 안 올 줄 알았어.”

서준혁은 진중하게 행동하며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신유리는 가끔씩 옆에서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대화는 유쾌하게 흘러갔다.

단지 옆에 있는 송지음이 서준혁의 뒤에서 아무 말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며 신유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사교를 하고, 적절한 행동으로 인사를 하러 온 모든 사람에게 응대를 하는 신유리의 모습에서는 아무런 트집도 잡을 수가 없었다.

신유리는 그녀의 불편함을 발견하고는 술잔을 들어 의사를 표했다. “앞으로 이런 자리에 많이 따라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녀의 말에 송지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유리 언니.”

서준혁은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송지음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

송지음의 미소는 조금 억지스러웠다. “아니에요.”

“불편하면 말해. 내가 데려다줄게.” 서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에 송지음의 눈이 순식간에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머뭇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번거롭게 하는 거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신유리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서준혁이 송지음을 데리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준혁은 자리를 떠날 때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송지음만이 착하게 인사 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방금 말을 건 몇몇 대표들이 다가와 물었다. “신 비서, 저 아가씨는 누군데 서 대표가 보물 다루듯 하는 거야?”

조금 미묘한 질문이었다.

업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유리과 서준혁 사이의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준혁이 다른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상황을 보아하니 서준혁이 여자를 많이 아끼는 듯했다.

신유리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 이상한 감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신 탓에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대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거실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신유리는 하이힐을 발로 차더니 불도 키지 않고 바로 거실로 걸어갔다. “나 오늘 힘들어.”

차갑고 은은한 공기를 뿜던 서준혁의 몸에는 딸기의 달콤한 향이 섞여 있었다. 밤 중이라 그 향기가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송지음 냄새였다.

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옆으로 몸을 비켰다. “송 비서 데려다줬어?”

“응.” 서준혁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낮았고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어 보였다. “걘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긴 하지.” 신유리의 말투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갖고 놀려고? 한 달? 3개월?”

신유리는 18살 때부터 서준혁을 따라다녔다. 어느새 시간이 8년이나 지났고, 그녀는 서준혁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걔는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네가 옆에서 많이 알려줘. 걔가 자기 자신을 너무 형편없게 생각하지 않도록.” 서준혁은 신유리에게 천천히 속삭였고 그 말속에서 충분히 그가 고민스러워하고 머리 아파하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말에 신유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졌다.

“서준혁, 걔가 진짜로 마음에 든 거야?” 그녀가 물었다.

“말했잖아. 착하다고.” 서준혁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말투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진심으로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신유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야 냉정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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