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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준혁

신유리가 다음 날 다시 회사에서 송지음을 보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송지음도 신유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었다. 피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

신유리는 발걸음이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

단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뿐이었다. 점심시간, 비서팀의 리사가 잘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리사가 바로 아침에 송지음을 곤란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었다.

오후가 되었을 때, 신유리는 대표 사무실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에 서 있었고, 풋풋함이 가득한 앳된 얼굴과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 언니, 성 대표님이 대표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

서준혁의 말이 맞다. 송지음은 확실히 착한 사람이었다.

신유리는 손으로 서류를 뒤적거렸고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비록 앉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압박감은 엄청났다.

그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준혁이 너 보고 뭐 하라고 했어?”

송지음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라고 하셨어요.”

신유리는 서류를 덮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 하나를 그녀에게 가리켰다. “저기로 가.”

대표 사무실 비서는 다른 비서들과 달랐다. 신유리까지 합쳐도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송지음이 많아졌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구석진 자리를 그녀에게 남겨줄수 밖에 없었다.

송지음의 얼굴은 대놓고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조절했다.

머뭇대는 송지음의 모습에 신유리가 물었다. “더 할 말 있어?”

송지음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

신유리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송지음을 관찰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준혁이랑 어디까지 갔어?”

송지음은 꼬리가 잡힌 듯 서서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송한 얼굴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신유리에게 해명했다.

“저와 서 대표님은 그냥 위아래 직원일 뿐이에요. 서 대표님은 아주 좋은 사장님이세요. 유리 언니, 오해하지 마세요.”

화인 그룹 전체가 알고 있었다. 신유리가 단순히 서준혁의 비서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사석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유리가 언제쯤 정식으로 신분 상승을 하고, 화인 그룹 대표의 사모님이 될지 예측하고 있었다.

신유리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녀는 송지음을 보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 그냥 충고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서준혁의 흥미는 한 달을 못 넘기거든.”

송지음은 입술을 깨물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놀란 토끼 같은 모습이었고 무척이나 불쌍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신유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막 입을 열려는 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해졌다. “송지음.”

신유리는 고개를 들었고, 걸어오는 서준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훤칠한 그의 기럭지와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귀티를 풍기고 있었다.

송지음은 코를 훌쩍이더니 고개를 숙인 채 먹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 대표님.”

그녀의 목소리에 서준혁은 멈칫했다. 곧이어 그는 눈을 내리깔며 자세히 송지음을 훑어보았다. 송지음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인내심이 별로 없었던 서준혁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무거워졌다. “고개 들어.”

신유리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싫은 척하며 고개를 드는 송지음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빨간, 딱 봐도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 모습에 서준혁은 눈을 흐리게 뜨더니 옆에 있는 신유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책상을 내리치며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해명 좀 하지?”

신유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고개를 들어 송지음을 쳐다보았다. “해명 좀 하지?”

송지음의 눈시울은 점점 더 붉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서준혁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니에요, 서 대표님. 렌즈가 좀 불편해서 그래요. 유리 언니랑 아무 상관 없어요.”

신유리의 시선은 송지음이 잡아당기고 있는 서준혁의 옷자락에 떨어졌다.

서준혁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터치하는 것을 싫어했다.

송지음도 알맞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손을 놓았고, 신유리도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신유리는 책상에 놓여있는 초대장을 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호연 그룹 이사장 아들 성인 기념 파티 초대장이야. 장소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준혁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너 혼자 가면 돼.”

그는 발걸음을 돌리더니 자신의 전문 사무공간으로 걸어갔다. 그는 송지음도 같이 안으로 데리고 갔다.

신유리는 고개를 숙여 초대장을 잘 챙겼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직도 서준혁의 무척이나 담백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신유리도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사의 일은 한번 물어봐야 했다.

리사는 비서팀의 부팀장이었다. 업무능력이 엄청 강했는데, 사직을 당하다니…

하지만.

그녀는 거대한 유리 너머로 송지음이 얼굴을 붉히며 서준혁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다른 타이밍을 찾기로 결정했다.

송지음은 서준혁의 사무실에서 1시간이나 넘게 있었다.

사무실을 나온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로 신유리와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인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에게는 대표 사무실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서준혁이 이렇게 데리고 왔으니, 신유리는 그녀에게 일을 배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신유리가 건넨 영어로 작성된 계약서에 송지음의 얼굴은 조금 어색해졌다. 그녀는 그 서류를 받지 않았다.

신유리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백했다. 사람에게 왠지 거리감을 주는 말투였다. “할 줄 몰라?”

그녀의 말에 송지음은 입술을 깨물었고, 예쁜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방금 지은 수줍음과는 달리 어색함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송지음은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해요.”

신유리는 바로 사실을 눈치챘고, 보고서 하나를 다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EXCEL은 할 줄 알지? 이거 토대로 보고서 완성해.”

송지음의 목소리는 더더욱 어색해졌다. “고맙습니다, 유리 언니.”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신유리가 초대장을 들고 서준혁을 찾아갔을 때, 그는 사람들과 영상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라는 뜻으로 손을 들었다.

신유리는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서준혁 컴퓨터 옆에 있는 토끼 인형에 멈추게 되었다.

조잡한 데다 마감도 엉망이고 낡아 보이는 게 딱 봐도 소녀의 물건이었다.

차가운 분위기의 주변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회의를 끝낸 서준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신유리는 정신을 차렸고, 손에 들려 있던 초대장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호연 그룹, 우리랑 협력하는 회사야. 체면은 차려줘야지.”

서준혁은 금박이 붙여져 있는 초대장을 흘겨보았다. 잘생긴 그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신유리는 그를 더 설득해 보려 했다. 하지만 서준혁은 갑자기 그녀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송지음 네 옆에 뒀다고 기분 나빠진 거야?”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기분 나쁠 이유 없는데.”

“그럼 됐어.” 말을 이어 나가던 그는 블랙카드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호연 그룹 쪽은 너 혼자 가. 선물은 네가 알아서 하고.”

“너는?”

“난 일이 있어.”

신유리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막 사무실을 나서려는 그때, 서준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송지음은 달라. 걘 건들지 마.”

신유리는 바로 그 말이 경고라는 것을 알아챘다.

서준혁이 말하는 다름이 얼마나 다른 건지는, 저녁에 바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호연 그룹의 파티에 참석하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도중에 핸드폰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핸드폰을 챙기러 회사에 돌아오게 되었다.

대표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까르륵대는 여자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대표 비서팀의 사무공간.

송지음과 서준혁은 딱 붙어 앉아있었다.

서준혁은 손을 키보드에 올려두고 있었고, 때때로 한 번씩 키보드를 클릭했다.

신유리는 그들과 꽤 멀리 서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환경 덕분에 조금 불평이 섞인 송지음의 애교를 듣게 되었다. “저 너무 멍청하죠? 유리 언니가 제일 쉬운 일을 시켰는데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대표님까지 저랑 같이 야근하게 만들었네요.”

그녀의 말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서준혁의 손이 멈칫했다. “그게 뭐가 걱정이야. 전에는 너보다 더 멍청했어.” 그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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