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와 하정숙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준혁이 처음으로 신유리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부터 하정숙은 신유리를 성에 차지 않아 했다.서준혁은 줄곧 신유리가 서씨 집안과 가까이 지내는 걸 꺼려했다. 정말 필요 한 일이 아니라면 그는 그녀는 서씨 저택으로 보내지 않았다.신유리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이번 전화는 서준혁이 받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기분 좋아?”“나쁘지 않아.” 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오래 대화를 나누기 싫은지 웃음기를 거두며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어?”신유리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아주머니가 지금 서씨 저택으로 오래.”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유리는 옆에서 전해지는 송지음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실수로 어딘가에 부딪힌 것 같았다.곧이어, 서준혁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기 전, 그는 이런 말을 그녀에게 던졌다. “이런 일은 나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 신유리는 회의실에서 10분 정도 더 있은 후에야 차를 몰아 서씨 저택으로 갔다.서준혁이 물어볼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아마 잊었을 것이다. 신유리가 처음으로 그를 따라 서씨 저택에 갔을 때, 그녀는 하정숙에게 난처한 일을 당했었다. 하정숙은 뜨거운 물을 그녀의 손에 부었었다.그때 서준혁은 귀를 만져주며 그녀를 위로해 줬었다. 앞으로 하정숙을 만날 때는 각별히 조심하라면서 말이다.신유리는 내내 입술을 오므린 채로 서씨 집안에 도착했고 마침 하정숙이 누군가를 마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그 사모님과 친분이 있었고, 웃으면서 사모님에게 인사를 했다.그녀는 예쁘고 행동도 올발랐다. 서씨 집안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서씨 집안의 미래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을 보낸 후, 하정숙은 그녀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준혁이는? 왜 같이 안 왔어?”“준혁 씨는 일이 있어서요.” 신유리가 대답했
파티 시간은 주말이었다. 서준혁이 송지음을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신유리가 간섭할 일은 없었다.그녀는 서류들을 파일 하나로 정리해 그것을 송지음의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단지 신입 인턴인 송지음이 일 처리도 하고 파티 일도 연구해야 하는 게 조금 바쁠 뿐이었다.신유리는 그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 서준혁의 충고가 생각났던 그녀는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도움 필요해?”송지음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신유리는 송지음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고, 얼굴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임씨 별장에 가는 사람 엄청 많을 거야. 명단은 메일로 보냈으니까, 이름이랑 취향만 외워서 그때 가서 서준혁한테 알려주면 돼.”송지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착실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유리 언니.”“그래, 긴장할 필요 없어.” 신유리는 한마디 더 보태었다. “서준혁이가 잘 챙겨줄 거야.”서준혁, 그 세글자에 송지음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서류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정리한 파일을 서준혁의 회사 번호로 보내주었다.파일을 보낸 후,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그녀는 그제야 서준혁의 개인번호 캐톡 프로필 사진이 토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제 며칠이나 됐다고.신유리의 머릿속에 옛날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본 프로필 사진을 바꾸라는 그녀의 말에 얻은 대답은 귀찮다였다.오후, 프런트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서준혁이 전에 약속했던 클라이언트가 왔다는 소식이었다. 신유리는 그 사람을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서준혁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러 갔다.서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회의실로 갔다.송지음의 자리를 지나던 그는, 그녀의 책상을 두드렸다. “회의실로 와.”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서준혁은 대놓고 송지음을 키워보려고 하고 있었다. 화인에서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사석에서 신유리가 대표의 총애를 잃을 거라고 말하고 있
주말, 서준혁은 송지음을 데리고 파티에 참석했다. 신유리도 딱히 그 일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단지 오후에 외출할 때, 똑같이 외출을 준비하는 서준혁을 만나게 됐을 뿐이었다.그는 셔츠만 입고 있었고, 카라는 살짝 벌려져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쇄골이 은근히 사람을 홀리고 있었다.우연하게도 신유리가 입은 원피스도 검은색이었고, 서준혁이 입은 셔츠도 검은색이었다. 디자인이 간단해서 대충 흘겨보면 일부러 커플티를 입은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신유리는 조금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서준혁에게 인사를 했다. “파티 참석하러 가는 거야?”서준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멈춰 섰고, 신유리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리사와 밥 약속이 있었다.리사가 회사에서 잘릴 때, 신유리는 서준혁에게 물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다.두 사람은 일식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리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너무 원통한 누명을 썼다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분명 송지음이 자신의 일을 끝내지 못해서 몇 마디 한 것뿐인데, 그녀는 결국 인턴을 괴롭혔다는 죄명을 쓰게 되었다.신유리가 입을 열었다. “쟤는 지금 서준혁이 보물처럼 아끼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건드렸으니 처지가 곤란한 게 당연하지.”리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 대표는 그 여자 어디가 마음에 들었데?” 그녀는 신유리 대신 불평을 늘어놓는 것 같았다. “들리는 말로는 서 대표가 제대로 키워볼 생각도 있다고 하던데?”신유리가 서준혁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화인 직원은 전부 다 알고 있었다.그녀는 필사적이었고, 일에도 거침없었다. 서준혁이 끌어들이고 싶은 클라이언트라면 위출혈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가져다주었다.신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컵 안에 있는 차를 들이켰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화인의 직원들은 모두 송지음을 제2의 신유리라고
신유리가 전해주기도 전에 서준혁이 잠에서 깨버렸다.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해결했어?”“응. 100프로 저쪽 과실이야. 저쪽에서 이미 보험회사에 연락했어.” 신유리는 곧장 서준혁 앞으로 걸어가더니 손에 들린 물을 뚜껑까지 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얕았고, 평소 일 할 때보자 다정함이 조금 섞여 있었다. “파티 책임자한테도 연락했어. 조금 이따 내가 데려다줄게.”그녀는 빈틈없이 모든 일을 살폈고, 다정하고 세심했다.서준혁은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목젖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두 사람의 분위기는 주위 사람들이 벽을 느낄 정도로 무척이나 화목했다.송지음은 한쪽에 서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았고, 서준혁이 물을 다 마신 후에야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서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아니었다면, 대표님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책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그 말에 서준혁은 물병을 아무렇게나 내려놓더니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송지음은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서준혁은 다친 손을 그녀 앞에 내려놓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서웠어?”송지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더 아래로 숙일 뿐이었다.그녀의 모습에 서준혁은 낮게 웃더니, 이내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다시 세워주었다. “나도 안 무서운데, 네가 뭘 무서워해.” 여자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송지음은 볼에 공기를 넣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녀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전 대표님이 아플까 봐…”목소리가 엄청 작았지만, 신유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서준혁이 바닥으로 내려놓은, 지금은 거의 쏟아질 듯 위태로운 물병을 쳐다보았다.“서준혁 보호자 분?” 응급실 간호사가 엑스레이를 들고 오더니 그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내 시선을 신유리에게 멈추며 엑스레이를
서준혁과 송지음이 만난다는 사실은 빠르게 화인 그룹에 퍼지게 되었다.신유리는 이제 더 이상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5분 일찍 출발하며 평범한 직원들처럼 공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송지음이 지금 출퇴근을 서준혁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오늘 아침에 그녀는 교통사고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신유리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게 됐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그녀는 마침 송지음과 서준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송지음은 서준혁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발랄하고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유리를 마주친 그 순간,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더 아름답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신유리에 인사를 했다. “유리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신유리는 송지음이 서준혁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좋은 아침.”송지음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서준혁의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혀를 내밀더니 바로 손을 놓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유리 언니가 봐버렸어요. 이제 어떡해요?”서준혁은 눈썹을 들썩이며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보고 싶으면 보라 그래.”신유리는 꽁냥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고, 하이힐이 매끈한 바닥과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멀리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애교 가득한 송지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혁 씨.”하지만 점심때가 되었을 때, 송지음은 좋지 않은 얼굴로 서준혁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신유리의 앞에 멈춰서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유리 언니, 서 대표님이 찾으세요.”신유리는 서준혁이 자기를 무슨 일로 찾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준혁이 대부분의 일들을 전부 송지음에게 넘겨버렸으니까.꼼짝도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송지음은 참지 못하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서 대표님이 기다리고 있어요.”신유리는 클라이언트의 메일에 답장하고
신유리가 서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 저녁 식사는 막 시작되고 있었다.그녀는 들고 온 선물을 하인에게 건네주며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서준혁을 쳐다보기 시작했다.서준혁은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인기척에도 그는 단지 눈만 까딱할 뿐이었다.서창범은 무척이나 엄숙했다. 그는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말했다. “왜 이제 왔어. 준혁이는 너 안 온다고 하더라.”“차가 좀 막혀서요. 아저씨, 생신 축하드려요.” 신유리의 얼굴에는 아무런 빈틈도 없었다. 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서준혁의 옆에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앉자마자 그녀는 서준혁과 송지음이 연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모습에 순간 그녀의 눈빛이 얼어버렸다.서준혁은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핸드폰을 다시 책상 위로 엎어놓았다.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안 올 줄 알았어.”“네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녀가 대답했다.그 말에 서준혁은 잠시 멈칫했다. “까먹었어.”그의 말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비 올 것 같아서, 먼저 지음이 집에 데려다줬어. 어차피 너도 차 있으니까.”“내 문자에 답장 안 했잖아.” 신유리는 시선을 내리깔며 눈 속에 담긴 생각을 숨겨버렸다.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갈 뿐이었다. “전화도 안 받아서 난 너한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송지음을 집에 데려다줬구나.서창범의 생일, 저택에는 많은 친척들이 찾아왔다. 하정숙은 손님 응대하는 게 바빠서 신유리의 트집을 잡을 시간이 없었고, 신유리도 당연히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누군가 서준혁의 혼사에 관심을 가지는 말에, 하정숙은 그제야 딱히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쟤? 아직 멀었어.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친척은 이 상황이 조금 의아했다. “두 사람, 만난 지 꽤 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신유리가 팔찌를 질려한다는 건지, 서준혁이 신유리를 질려한다는 건지 말하기 어려웠다.떠날 때, 서창범은 하정숙과 함께 대문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서준혁은 단번에 신유리의 차를 보게 되었다. “안 데려다줘도 되지? 마침 저녁에 일이 있어서.”애초에 서준혁의 차를 타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었다. 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송지음 만나러?”“응.” 서준혁은 고개를 숙이더니 핸드폰을 확인했다. “생리가 앞당겨져서 케이크가 먹고 싶데.”그의 말에 신유리가 대답했다. “정말 관심이 엄청나네.”서준혁은 눈썹을 들썩였다. “너한테도 부족하지는 않았어.”맞는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신유리가 서준혁을 따라다닌 몇 년 동안, 그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통이 컸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서창범이랑 인사를 하고는 혼자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다음날 회사에서 송지음을 만나게 됐을 때, 그녀의 목에는 다이아 목걸이가 걸려있었다.신유리는 눈썰미가 좋았다. 그녀는 그 목걸이가 서준혁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점심시간, 신유리는 물을 받기 위해 탕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안에서 전해지는 말소리를 듣게 되었다.송지음의 말랑하고 귀여운 목소리가 특히 더 잘 들렸다. “다들 장난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떡해요.”“게다가.” 조금 고민이 섞인 말투였다. “유리 언니가 알면 엄청 화내겠죠?”신유리의 이름에 주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놀리지 않았다. 신유리는 화인에서 꽤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신유리는 문 앞에서 잠깐 서 있더니, 이내 커피를 사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후, 그녀는 평소처럼 출근했고 프로젝트팀은 신유리에게 자료 하나를 올려다 주었다.자료를 확인하던 신유리의 이마는 점점 더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서류를 다시 덮으며 말했다. “도표가 너무 난잡하네요. 다시 하세요.”
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었다.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 똑같았다. “송지음 대신 말 전해주러 왔어?”그것 말고는 서준혁이 이곳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서준혁은 고개를 들더니 대답도 없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이제 와?”신유리는 송지음의 도표를 고치는 것 때문에 평소보다 반 시간이나 늦게 퇴근했다.그녀는 몸에 있는 차가운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따뜻한 물을 한 잔 받았다.서준혁은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편하게 늘어놓으며 마치 이 집의 주인이라도 된 듯 나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신유리가 입을 열었다. “야근 좀 했어. 밖에 비도 오고 그래서 좀 늦어졌지 뭐.”“너 송지음 마음에 안들지.” 서준혁은 눈썹을 들썩였다. 확신이 가득한 말투였다.신유리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순간 몸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녀는 송지음 얘기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네 마음에 들면 되는 거 아니야? 내 태도가 중요한가?”그녀의 말투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신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다른 볼일 더 있어?”그때, 탁자에 올려놓은 서준혁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서준혁은 평온한 눈동자로 신유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바로 자신의 눈빛을 거두었다.그는 탁자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한 줌이 안 되는 신유리의 가녀린 허리에 멈추었다. 그는 풉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인 것 같은데?”성인 사이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게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단지 신유리가 오늘 밤 집중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그 모습에 서준혁은 그녀의 허리를 꼬집으며 입가에 입을 맞추었다. 낮은 목소리가 마치 그녀를 달래주고 있는 것 같았다. “유리야, 협조 좀 해줘.”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