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삼월 열여드레 첫 종 전, 도원은 선착장에 먼저 와 있었다. 줄은 다시 반듯하게 감겨 있었다. 얼굴은 그저께보다 나았다. 눈 밑 그늘은 남았지만 서 있는 자세가 곧았다. 여울은 그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둘은 첫 배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도원은 향이 타는 동안에도 묻지 않았고, 납추만 내렸다. 여울도 묻지 않았다. 향이 꺼지면 도원은 6푼을 냈다.
오늘은 달랐다. 도원이 모자를 벗었다.
“재 보았습니다. 도성 큰길 아래 바닥입니다.”
여울은 밧줄을 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사흘 동안 같은 자리를 다섯 군데씩 쟀습니다. 바닥이 날마다 다릅니다. 하루에 반 뼘씩 움직인 날도 있습니다. 모래가 살아 있습니다. 사공님 말이 맞았습니다. 제 표가 틀렸습니다.”
“그래서요?”
“틀리면 사공님 배에서 하루 노를 젓겠다고 했습니다.”
여울은 그 말을 잊고 있었다. 모자가 날아간 날, 바람 센 저녁, 모자 대신 줄을 감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 뒤로 방이 붙었고, 강 한복판에서 배를 세웠고, 내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한 말을 다 기억했다.
「진짜 하네.」
여울은 노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쓰던 노였다. 손잡이에 천을 감은 자리가 손때로 까맸다. 여울은 그 노를 들어 도원 앞에 내밀었다.
“좋아요. 오늘 하루 사공 하세요. 대신 하나는 하셔야 돼요.”
“말씀하십시오.”
“오늘 하루 나루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보세요. 방법 찾는다면서요. 방법을 찾으려면 나루가 뭘 하는지부터 알아야죠.”
도원이 노를 받았다. 두 손으로 받았다. 노가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손이 한 번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러고는 품에서 6푼을 꺼내 여울에게 내밀었다.
“오늘 뱃삯입니다.”
“사공이 뱃삯 내는 거 처음 봐요.”
“아직 사공이 아닙니다. 배가 뜨기 전까지는 손님입니다.”
여울은 6푼을 받았다. 새남이 옆에서 입을 막고 웃었다. 웃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
첫 종이 울렸다. 손님들이 배에 올랐다. 도원이 노를 잡고 배 뒤쪽에 서는 걸 보자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동실 할머니가 엿 광주리를 내려놓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공 아가씨, 오늘은 측량관이 노 저어?”
“오늘 하루만요. 내기에 졌어요.”
“누가?”
“측량관님이요.”
할머니가 껄껄 웃었다. 여울은 향에 불을 붙이고 뱃머리에 앉았다. 늘 도원이 앉던 자리였다. 거기서 보니 배 뒤쪽에 선 사람이 다 보였다. 키가 커서 노가 짧아 보였다.
“줄 풀어.”
새남이 밧줄을 걷었다. 여울은 삿대로 널판을 밀어 주었다. 배가 물로 나갔다. 도원이 노를 물에 넣었다. 당겼다.
배가 제자리에서 돌았다.
뱃머리가 강 건너편이 아니라 하류 쪽으로 돌아갔다. 도원이 노를 다시 넣었다. 더 세게 당겼다. 배가 더 빨리 돌았다. 이번에는 상류 쪽이었다. 손님들이 뱃전을 붙잡았다. 동실이 할머니 무릎에서 꺅 소리를 질렀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재밌어서 지른 소리였다.
“아저씨, 배가 돌아요!”
“압니다.”
도원은 노를 쥔 채 물을 보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배가 한 바퀴를 다 돌고 다시 선착장을 보았다. 선착장에 서 있던 달삼이 무릎을 치며 웃었다.
“이보게! 측량관 양반! 거기서 그만 돌고 건너가야지!”
하돌도 웃었다.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웃었다. 그저께 침을 뱉던 하돌이었다. 여울은 그 웃음을 보고 조금 놀랐다. 사람을 미워하는 건 어려워도 비웃는 건 쉬웠다. 도원은 그걸 다 들으면서도 노를 놓지 않았다.
“노를 끝까지 당기지 마세요. 반만 당기고 손목을 돌려요.”
여울이 말했다. 도원이 그대로 했다. 배가 덜 돌았다.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아주 조금씩.
향은 다 탔는데 배는 강 3분의 2쯤에 있었다. 여울은 꺼진 향을 보고 도원을 보았다. 도원은 입을 다물었다. 노만 저었다. 향이 꺼졌으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땀은 흘렸다. 결국 향 두 대를 태우고서야 배가 돌계단에 닿았다.
동실 할머니가 광주리를 이고 내리면서 여울 귀에 대고 말했다.
“아가씨, 사공 자리는 내놓지 마우. 저 총각한테 맡기면 우리 다 장 못 봐.”
여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소리가 돌계단에 울렸다. 그저께 강 한복판에서 터진 웃음과는 다른 웃음이었다.
◎
오전 내내 도원은 노를 저었다. 여울은 뱃머리에 앉아 지켜보았다. 손님이 탈 때마다 여울이 누구인지 말해 주었다.
“저분은 강 건너 대장간 집 아저씨요. 매일 아침 쇠 사러 도성 가요. 쇠가 없으면 그 마을 호미가 안 나와요.”
“저 애는 도성 서당 다녀요. 엄마가 혼자 키우는데 서당에 보내려고 강 건너 산대요.”
“저 아주머니는 산에서 약초 캐서 도성 약방에 넘겨요. 봄에 한 철 버는 걸로 일 년을 살아요. 비 오는 날 못 건너면 약초가 다 떠요.”
“저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을 못 올라요. 그래서 늘 새남이가 업어 드려요.”
도원은 여울이 한 사람씩 말할 때마다 그 사람 얼굴을 보았다. 대장간 아저씨, 서당 아이, 약초 아낙. 물을 재듯이 사람을 재는 눈은 아니었다. 그냥 보는 눈이었다. 이름을 외우려는 것처럼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새남이 할아버지를 업고 돌계단을 올라갔다. 할아버지가 새남 등을 두드리며 고맙다고 했다. 새남은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했다. 도원은 노를 쥔 채 그 모습을 보았다. 아주 오래 보았다.
건너편 돌계단 아래에서는 장칠수의 뗏목이 오늘도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장칠수가 뗏목 끝에 서 있다가 도원이 노 젓는 배를 보았다. 은 담뱃대를 입에서 뗐다.
“아가씨! 수운청이 이제 사공 노릇까지 하나? 나루 닫기 전에 노 젓는 법이라도 배워 두려고?”
뗏목 위 장정들이 웃었다. 여울은 대꾸하지 않았다. 도원도 대꾸하지 않았다. 도원은 노를 쥔 채 뗏목 줄을 보았다. 세 겹이었다. 그러고는 뗏목 위 사람 수를 세는 눈이 되었다. 장칠수는 그 눈을 보더니 담뱃대를 도로 물고 돌아섰다.
“측량관님, 저 사람 무서워해요?”
“아닙니다. 저 뗏목은 오늘 사람을 너무 많이 태웠습니다.”
도원은 그렇게만 말하고 노를 당겼다. 배가 또 조금 돌았다.
점심때는 탁순 할멈이 국물 통을 들고 내려왔다. 강 건너 사공 하나가 몸살이 났다고 했다. 국물을 갖다줘야 한다고 했다. 도원은 국물 통을 배 가운데에 놓고 노를 저었다. 국물이 쏟아지지 않게 천천히 저었다. 배가 아까보다 덜 돌았다. 국물 통을 받아 든 사공이 도원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수운청 측량관이 국물 배달을 왔다.
오후에는 혼례 행렬이 건너야 했다. 강 건너 마을 신부가 도성 신랑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울은 그 배만은 직접 노를 잡았다. 신부가 탄 배를 돌게 할 수는 없었다. 도원은 배 앞에 앉아 신부 가마가 기울지 않게 붙잡았다. 신부 어머니가 건너편에 닿자마자 여울 손을 붙잡고 울었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 울음이었다. 여울은 그 손을 잡아 주었다. 사공이 하는 일이었다.
혼례 배가 돌아온 뒤 여울은 도원에게 잠깐 쉬라고 했다. 도원은 선착장 널판에 앉아 손바닥을 펴 보았다.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엄지 아래에 물집이 두 개 잡혀 있었다. 붓만 쥐던 손이었다.
여울은 헛간에서 노 손잡이에 감는 천 한 토막을 가져왔다. 새 천이었다. 그걸 도원 쪽으로 던졌다. 천이 도원 무릎에 떨어졌다.
“손바닥에 감으세요. 물집 터지면 내일 붓 못 잡아요.”
도원은 천을 집어 들고 한참 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감았다. 서툴렀다. 감다가 풀리고, 다시 감다가 또 풀렸다. 여울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끝을 안쪽으로 접어 넣어요. 매듭 짓지 말고요. 매듭 지으면 노 잡을 때 배겨요.”
도원이 그대로 했다. 천이 풀리지 않았다. 도원은 천을 감은 손을 쥐었다 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 대신이었다. 땅이었으니까.
집 쪽에서 아버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새남이 점심 국물을 가져다드리면서 오늘 일을 다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수운청 측량관이 배를 돌리고 돌리다 향 두 대를 태웠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그렇게 크게 웃는 소리는 다친 뒤로 처음이었다.
도원은 그날 오후 한 번도 수첩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손님이 탈 때마다 그 사람 얼굴을 보았다. 내릴 때도 보았다.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까지 보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향이 반쯤 탄 배 위에서 도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노를 저으면서였다.
“오늘 건넌 사람을 다 세었습니다.”
“몇 명이요?”
“사공님이 날마다 건네는 만큼입니다.”
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를 대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숫자 대신 다른 말을 고른 건 처음이었다.
◎
해 질 무렵 여울은 선착장 끝에 서서 강 냄새를 맡았다. 바람이 바뀌어 있었다. 물비린내가 무거웠다. 축축한 흙냄새가 강 위로 낮게 깔렸다.
“모레 스무날 장에는 안개 와요. 짙게요.”
도원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짙습니까?”
“건너편이 안 보일 만큼요. 첫 배는 줄 없이는 못 가요.”
“측심 줄을 가져오겠습니다.”
“가져오세요. 그날은 제 매듭이랑 측량관님 줄이 둘 다 필요해요.”
도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건 대답이 아니라 약속하는 모습이었다. 땅 위였지만, 사공이 먼저 말을 건 것이니 규칙을 어긴 건 아니었다.
여울은 허리의 매듭 줄을 풀어 오늘 칸에 매듭을 묶었다. 물은 높지 않았고 물살은 느렸다. 크기는 작게, 꼬임은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처음으로 보릿짚 한 가닥을 끼워 넣었다. 매듭으로 다 못 적는 날이었다. 도원은 그걸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마지막 배였다. 손님은 셋이었다. 도원이 노를 잡았다. 아침보다 나았다. 배가 덜 돌았다. 하지만 강 가운데에서 물살이 세지자 배 머리가 다시 하류로 꺾였다. 도원이 노를 당겼다. 배가 더 꺾였다.
여울은 뱃머리에서 일어나 배 뒤쪽으로 갔다. 도원 옆에 섰다. 노 손잡이를 쥔 도원의 손 위로 자기 손을 올렸다. 손잡이 각도를 바로잡으려고. 여울의 손가락 끝이 도원의 손등에 닿았다. 손가락 끝이 겹쳤다. 아주 잠깐이었다.
도원의 손이 멈췄다. 여울의 손도 멈췄다. 노가 물속에서 멈췄다. 배가 물살에 조금 밀렸다. 노 젓는 소리가 끊겼다. 물이 뱃전에 닿는 소리만 났다.
「차갑네.」
여울은 손목을 돌려 노 각도를 바로잡았다. 배 머리가 다시 건너편을 향했다. 그러고는 손을 떼려 했다. 그 전에 도원이 먼저 손을 뗐다. 노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섰다. 노가 여울 손에 그대로 남았다.
도원이 손을 떼며 말했다.
“이 노는 제가 잡으면 방향이 틀립니다. 알겠습니다.”
(10화 끝)
첫 종이 울리자 여울은 말뚝에 묶인 배의 줄을 풀었다. 새 다리 위에 모인 사람들의 발소리가 널판 아래까지 들렸다. 버드나무 3그루 사이로 강바람이 들어왔다. 여울은 배 안을 살피고 노를 놓았다.“첫 배 탑니다. 타세요.”동실 할머니가 광주리를 안고 먼저 배에 올랐다. 동실은 종이배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뒤따랐다. 종이배의 뱃머리가 조금 눌려 있었다.“동실아, 배는 젖으면 다시 접어야 해.”새남이 말했다. 새남은 노를 배 안에 내려놓고 승객들이 앉을 자리를 비웠다.“안 젖게 할 거예요.”“그럼 왜 배를 가져왔니?”“오늘 배가 어디로 가는지 볼 거예요.”새남은 대답 대신 배의 바닥을 확인했다. 종이가 젖을 만한 물기는 없었다. 여울은 동실에게 배를 꼭 쥐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양손으로 조심히 들고 있었다.탁순 할멈이 주막 쪽에서 작은 향을 들고 왔다.“첫 배에 향도 태워야지. 오늘은 강 건너는 사람 말고 다리 건너는 사람도 많겠네.”“향은 배에 타는 동안만 피울게요.”여울은 향을 받아 배 앞쪽에 꽂았다. 탁순 할멈은 향에 불을 붙이고 1걸음 물러났다. 향 끝에 붉은 불이 붙었다.새남은 맞은편 강둑을 봤다. 새 다리의 계단 끝 선착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리의 기둥들이 물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아래로 강물이 지나갔다.“아저씨는 아직 안 왔네요.”새남이 말했다.“누구?”“측량관님이요. 오늘 다리를 처음 건너신다면서요.”“배가 먼저 가면 오겠지.”“다리로 가면 배보다 빠르잖아요.”“그래도 첫 배는 첫 배야. 줄 풀어.”새남은 줄을 선착장 말뚝에서 완전히 벗겼다. 여울은 배를 밀었다. 물이 배 옆을 쳤다. 승객들이 자리를 잡자 여울은 노를 물에 넣었다.배가 나루를 떠났다. 여울은 강물의 냄새를 맡고 노를 저었다. 물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배 아래에서 노가 한 번 긁혔다. 여울은 방향을 조금 틀었다.“여기서 건너면 돼요?”동실이 물었다.“응. 배는 선착장으로 갈 거야.”“다리도 저쪽으로 가요?”“
구월 스무날, 여울은 버들주막 평상 가운데 거스름 항아리를 놓았다. 항아리 밑바닥이 나무에 닿으며 둔한 소리를 냈다. 주막 안에 모인 사공 조합원들이 말을 멈췄다.탁순 할멈은 국솥에서 국자를 꺼내 솥 가장자리에 걸었다.“그렇게들 쳐다보면 항아리도 부끄럽겠다. 열려면 뚜껑부터 열어야지.”“뚜껑 열기 전에 할멈 장부부터 치워 주세요. 동전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해요.”여울이 말했다.탁순 할멈은 평상 한쪽에 펼쳐 둔 외상 장부를 집어 들었다. 장부를 목에 건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다시 평상 끝에 내려놓았다.“이 장부는 오늘 없어지는 거 아닌데.”“그건 이따 봐요.”“그럼 이따 보자.”탁순 할멈은 장부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놓고 자리를 비켰다. 조합원 12명이 평상과 벽 쪽에 둘러앉았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았고, 하돌은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 끝이 천에 걸려 삐죽 나왔다.여울은 항아리 뚜껑에 손을 얹었다.“여기 든 돈은 선착장 수리비로 씁니다. 어느 쪽부터 손볼지 조합에서 정하고, 쓴 돈은 장부에 적을 거예요.”“먼저 널판부터 봐야지.”하돌이 말했다.“말뚝도 확인해야 하네. 줄 묶는 데가 헐거우면 널판만 고쳐도 소용없어.”달삼이 손을 들었다.“그러니까 다 같이 보고 정하자는 거예요. 오늘은 먼저 얼마가 모였는지 확인해요.”“자네가 매일 적은 것과 맞춰 보면 되겠네.”하돌은 여울의 허리에 묶인 물때 매듭 줄을 보았다. 여울은 줄을 손으로 덮었다.“이건 물때 적는 줄이에요. 돈은 장부로 맞출 거예요.”달삼이 웃었다.“강은 줄로 알고 돈은 장부로 알고. 조합장 손이 모자라겠네.”“그래서 조합원이 12명이에요.”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돌도 더 말하지 않았다.도원은 평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 먹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깨에 걸었던 측심 줄은 벽에 기대어 두었다. 도원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놓고, 여울이 항아리 뚜껑을 여는 손을 보고 있었
구월 열이틀, 수운청 심의장에는 뱃삯 상한을 고치는 문서가 놓여 있었다.윤 판관은 문서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눈으로 훑었다. 그 옆에는 붓과 먹이 놓였고, 맞은편에는 버들나루 사공 조합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울은 조합장 자리에서 문서를 바라봤다. 도원은 윤 판관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모자는 쓰고 있었고, 어깨에는 측심 줄이 걸려 있었다.“뱃삯 상한을 6푼으로 고치는 안입니다.”수운청 서기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서기는 문서가 놓인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지금 상한은 4푼입니다. 이 문서가 통과되면 성인 한 명의 뱃삯은 6푼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6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요?”여울이 물었다.“그렇습니다. 상한을 고치는 겁니다. 4푼을 받는 나루는 그대로 4푼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럼 사공마다 값을 달리 정해도 됩니까?”“상한 안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루마다 값을 알 수 있게 밝혀야 합니다.”서기는 말끝을 고르고 문서에 시선을 내렸다. 여울은 그가 설명을 빼먹지 않도록 잠시 기다렸다.“같은 나루에서 사람에 따라 값을 다르게 받으면 안 됩니다. 짐값이 따로 있으면 그것도 밝혀야 합니다.”“노를 같이 젓는 사람도 성인 한 명으로 셉니까?”하돌이 물었다. 담뱃대는 손에 들려 있었지만, 심의장 안에서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사공은 뱃삯을 받지 않습니다.”서기가 답했다.“그건 지금도 그렇지 않나?”달삼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예. 다만 문서에 기준을 적어 두려는 겁니다.”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돌은 담뱃대 끝을 손바닥에 두드렸다.“상한을 올리면 사람들은 6푼을 받으려 하겠지. 지금까지 4푼으로 건너던 사람이 더 내야 할 수도 있고.”“그럴 수 있습니다.”서기가 고개를 들었다.“그래서 조합에서 먼저 정할 값이 필요합니다. 나루마다 제각각 받으면 사람들은 어느 배를 타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버들나루는 4푼으로는 배를 고치고 줄을 갈기 어렵습니다.”여울이 말했다.“그렇
첫 종이 울리기 전, 윤 판관이 버들나루 널판 위에 섰다.여울은 배에 실을 바구니를 선착장 끝으로 밀어 두다가 손을 멈췄다. 단정한 도포의 소매가 새벽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윤 판관은 혼자였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도원도, 수운청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버드나무 잎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맺혀 있었고, 널판 아래에서는 물이 말뚝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여울은 바구니를 널판 안쪽으로 더 밀었다. 새벽 물기가 밴 나무가 발밑에서 조금 미끄러웠다. 배 옆에 놓인 노는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고, 밧줄은 말뚝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손님을 태우기 전에 확인하던 것들이었다. 여울은 밧줄을 손끝으로 당겨 보고 나서 윤 판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윤 판관님.”여울은 허리를 숙였다. 윤 판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널판에 발을 올렸다. 도포 자락이 나무에 스치지 않도록 손으로 걷어 들었다. 그는 널판 끝에 이르러 배를 한 번 살폈다. 배 안에는 노와 향 받침이 놓여 있었고, 아직 아무도 타지 않았다.“첫 배를 타겠네.”“건너실 곳은 맞으시죠?”“그렇네.”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 윤 판관이 나루로 온 까닭을 묻고 싶었지만, 첫 종이 울리기 전부터 대답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여울은 배 옆에 놓인 노를 새남에게 건넸다.“새남아, 손님부터 태워.”“네, 사공님.”새남은 노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배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다 윤 판관의 옷자락을 다시 보고 발을 멈췄다. 비단 소매가 새남의 눈에 걸린 듯했다. 새남은 노를 고쳐 쥐었지만, 손가락이 자루 끝에서 미끄러졌다.노가 널판에 부딪히기 직전 여울이 잡았다.“손에 힘 줘.”“네. 죄송합니다.”새남은 노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노 끝이 바닥을 긁었다. 널판 위에 낮은 소리가 나고, 새남은 노를 들고 선 채 윤 판관의 소매를 다시 흘끗 보았다.“옷이 눈에 들어왔구나.”여울이 말하자 새남은 귀를 붉혔다.“저렇게 고운 옷은 가까이서 처음 봤습니다.”“옷은 배에 안 태워. 사람을 태워.”새남은 얼른 윤 판
대청 안쪽에서 붓대가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정 부인은 문턱을 넘기 전 손에 든 보자기를 고쳐 쥐었다. 여울은 한 걸음 뒤에서 그 손을 보았다. 보자기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정 부인이 말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매듭을 누르는 힘으로 보아 가볍지는 않았다.윤 판관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펼쳐 둔 문서에는 붓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먹그릇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눈썹이 조금 모였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정 부인은 보자기를 탁자 위에 놓았다.“잠깐 보여 드릴 것이 있어요.”윤 판관은 보자기 매듭을 보았다가 정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무엇입니까?”“먼저 앉아도 되겠어요?”정 부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탁자에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여울도 곁에 앉으려다 멈췄다. 정 부인이 손바닥으로 자리를 가리켰다.“여울도 앉아요.”“네.”여울은 정 부인 옆에 앉았다. 대청 바닥은 잘 닦여 있었고, 마른 나무 냄새가 났다. 문밖에 선 도원은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시선은 탁자 위의 보자기에 머물렀다.윤 판관은 붓을 내려놓았다.“도원은 밖에 세워 두고, 사공까지 데려왔군.”“여울은 함께 있어 주기로 했어요.”“내가 그 아이를 부른 적은 없습니다.”“제가 부탁했어요.”정 부인의 목소리는 낮았다. 여울은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정 부인이 원하지 않으면 바로 나가겠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 부인은 이미 여울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했고, 여울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대신 정 부인의 말을 대신 꺼내지는 않기로 했다.윤 판관은 잠시 정 부인을 바라봤다.“무엇을 보여 주려는지 말씀해 주세요.”“보면 아실 거예요.”정 부인은 보자기 매듭을 풀었다. 천이 탁자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모서리는 닳았고, 한쪽 귀퉁이는 반듯하지 않게 찢겨 있었다. 종이 가운데에는 희미한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정 부인은 종이를 손바닥으로 펴지 않았다.
버들나루 널판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여울은 종이의 모서리를 돌멩이로 눌렀다. 강바람이 불 때마다 빈 종이가 들썩였다.조합원들은 선착장 옆에 둘러서 있었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놓았고, 하돌은 담뱃대를 손에 쥔 채 널판에 기대 있었다. 탁순 할멈은 주막에서 가져온 국솥을 가까운 곳에 내려놓았다. 새남은 종이와 먹그릇을 번갈아 보며 발끝을 모았다.“이름을 새길 자리를 정하는 모임은 아니지?”하돌이 물었다.“그건 동의한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정하기로 했어요.”여울이 답했다.“그럼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른 거야?”여울은 손에 든 줄을 내려다봤다. 허리에 걸린 물때 매듭 줄을 풀어 매듭이 서로 엉키지 않게 손바닥에 얹었다. 줄을 풀면 말이 나올 것 같았는데, 손끝만 움직였다.“먼저 모여 주셔서 고맙습니다.”달삼이 모자를 무릎에서 들어 올렸다.“고맙다는 말은 듣고 나서 하게. 할 말이 있으면 해.”“네.”여울은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모서리가 다시 들리지 않게 돌멩이를 가운데로 옮겼다.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도원은 여울의 옆에 서 있었다. 어깨에 측심 줄을 걸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 여울은 조합원들을 보다가 도원에게 시선을 옮겼다. 도원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탁순 할멈이 국솥 뚜껑을 들어 김을 빼냈다.“말할 게 길면 국부터 먹이고 들을게. 빈속으로 꺼내는 말은 자꾸 꼬이더라.”“길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그럼 더더욱 먹어. 짧게 하려다 말이 목에 걸릴 수 있잖니.”여울은 솥 옆에 놓인 국그릇을 보았다. 탁순 할멈이 국자를 들고 있었지만 여울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을 엄지로 문질렀다.“저는 부탁할 일이 있어요.”달삼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다리 일인가?”“아니요.”“나루 일?”여울은 잠시 말이 막혔다. 나루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다리와 선착장, 사공들의 이름을 두고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고, 이제는 그곳을 지키는 일에 여울 혼자 서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