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터 사공이 되었더니 첫 배 손님이 다리 놓을 자리를 나에게 묻는다

나루터 사공이 되었더니 첫 배 손님이 다리 놓을 자리를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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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oUpdated jus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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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발을 다친 날부터 한여울이 버들나루 첫 배를 몬다. 해 뜨기 전, 매일 같은 손님이 줄과 납추를 메고 탄다. 뱃삯은 4푼인데 그는 6푼을 내고 거스름을 받지 않는다. 어느 날 나루에 방이 붙는다. 『다리가 놓이면 버들나루는 가을 그믐에 폐쇄한다.』 다리 놓을 자리를 재는 사람이 바로 그 손님이었다. 향 한 대가 타는 동안만 말하기로 한 나루 규칙. 여울은 그 짧은 시간에 그를 내보낼지 붙잡을지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다리 놓을 자리를 자꾸 나에게 묻는 걸까. (1~10화 무료, 전 80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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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첫 배 안내

“6푼입니다.”

첫 손님이 동전을 내밀었다. 여울은 노를 무릎에 걸친 채 손바닥을 폈다. 동전 여섯 닢이 하나씩 굳은살 위에 떨어졌다. 동트기 전이라 강은 아직 검었고, 선착장 끝에 걸어 둔 등잔 하나만 물 위에 노란 줄을 그었다.

“4푼이에요. 2푼 돌려드릴게요.”

여울은 허리춤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손님은 받지 않았다. 키가 컸다. 마른 어깨에 매듭이 촘촘하게 진 줄을 몇 겹 감았고, 줄 끝에는 주먹만 한 납추가 달려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는 먹줄 자국이 가늘게 남아 있었다.

“6푼이 맞습니다.”

“나루 삯은 수운청에서 4푼으로 정해 놨어요. 더 받으면 제가 혼나요.”

“제가 드린 값입니다. 사공님이 받은 값이 아닙니다.”

여울은 동전을 쥔 손을 내리지 못했다. 말이 이상하게 맞는 것 같아서 더 이상했다. 뒤에서 새남이 밧줄을 끌어안고 고개를 내밀었다.

“누나, 첫 종 울려요!”

강 건너 도성 쪽에서 종소리가 넘어왔다. 한 번, 길게. 버들나루의 첫 배는 첫 종에 뜬다. 아버지가 평생 지켜 온 규칙이었다. 여울은 동전 두 닢을 일단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실랑이는 건너가서 하면 됐다.

“타세요. 짐은 가운데 두시고요.”

손님이 배에 올랐다. 무게가 실리자 배가 한 번 기우뚱했다가 바로 섰다. 몸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울은 그걸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처음 배를 타는 손님은 꼭 일어서서 뱃전을 붙잡았다.

“새남아, 줄 풀어.”

“풀었어요!”

새남이 말뚝에서 밧줄을 걷어 배 안으로 던졌다. 여울은 삿대로 선착장 널판을 밀었다. 배가 물에 미끄러져 나갔다. 말뚝 12개가 등 뒤로 하나씩 멀어졌다.

열흘 전까지 이 자리에는 아버지가 섰다. 한덕만은 첫 종이 울리기 전에 말뚝 매듭을 하나씩 손으로 쓸어 보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큰 바람이 불었고, 새벽에 나가 본 아버지는 풀려 나간 밧줄에 발목이 감겨 선착장 아래로 끌려갔다. 새남이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아버지의 발목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그 밧줄은 전날 저녁 여울이 묶었다.

「내가 묶었어.」

여울은 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노가 물을 밀었다. 노 젓는 소리가 강 위에 길게 퍼졌다. 물비린내가 차게 올라왔다.

선착장 쪽에서 여울은 향 한 대에 불을 붙여 뱃머리 구멍에 꽂아 두었다. 버들나루에서는 건너는 동안 향 한 대가 탄다. 아버지는 향이 다 타기 전에 맞은편에 닿지 못하면 그날 물을 잘못 읽은 거라고 했다. 여울은 오늘 첫 배를 아버지 없이 처음 모는 날이었다. 향 끝이 붉게 살아 있었다.

손님은 뱃머리 쪽에 앉아 물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건너편을 봤다. 이 손님은 배 바로 옆, 노가 지나간 자리를 봤다.

강 한가운데쯤 왔을 때 손님이 어깨의 줄을 풀었다. 납추를 손에 쥐고 뱃전 너머로 팔을 뻗었다.

“잠깐요.”

여울이 노를 멈췄다. 배가 물살에 조금 밀렸다.

“배 안에서 물에 뭘 던지면 뱃삯 곱절이에요.”

손님이 납추를 든 채 여울을 보았다. 모자를 벗었다. 검은 머리가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던지는 게 아닙니다. 내렸다가 다시 올립니다.”

“물에 들어가면 던진 거예요.”

“곱절이면 12푼입니까?”

여울은 말이 막혔다. 곱절이라는 말은 아버지가 장난치는 장꾼들을 쫓을 때 쓰던 말이었다. 진짜로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셈이죠.”

손님은 품에서 동전을 더 꺼내려 했다. 여울은 노 끝으로 뱃전을 탁 쳤다.

“돈 꺼내지 마세요. 그냥 뭘 하려는 건지 말해요.”

“물 깊이를 잽니다. 이 시각, 이 자리.”

“그걸 왜 재요?”

손님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는 얼굴이 아니었다. 고르는 얼굴이었다.

“일입니다.”

여울은 납추를 보았다. 줄은 매듭과 매듭 사이가 손 한 뼘씩 똑같았다. 아무렇게나 감아 온 줄이 아니었다. 그 매듭을 하나하나 묶은 사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줄 하나는 잘 묶네.」

“배 오른쪽으로만 내려요. 왼쪽은 물살이 세서 줄이 감겨요. 감기면 놓으세요. 붙잡고 있으면 사람이 딸려 가요.”

손님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납추가 오른쪽 뱃전 너머로 조용히 내려갔다. 줄이 손가락 사이로 풀려 나갔다. 매듭 하나, 또 하나. 어느 매듭에서 줄이 느슨해졌다. 손님은 그 매듭을 엄지로 눌러 두고 줄을 다시 감아올렸다. 젖은 납추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여울은 다시 노를 저었다. 배가 물살을 비스듬히 탔다. 향은 반쯤 타 있었다.

“이 자리는 늘 이렇습니까?”

손님이 물었다. 납추를 무릎에 놓고, 눈은 여전히 물에 있었다.

“이렇다는 게 뭔데요?”

“가운데보다 이쪽이 얕습니다. 물살은 이쪽이 셉니다.”

“봄에는 그래요. 겨울 동안 모래가 이쪽으로 쌓였다가 큰물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쓸려 가요.”

“큰물은 언제 옵니까?”

“강이 알려 줘요.”

손님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울은 노를 당기며 일부러 건너편만 보았다. 사공 딸이 아는 척하는 걸로 들릴까 봐, 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향이 꺼지기 조금 전에 배가 건너편 돌계단에 닿았다. 여울은 삿대를 짚어 배를 붙이고 밧줄을 말뚝에 걸었다. 손님이 먼저 내렸다. 어깨에 줄을 다시 감고 모자를 썼다. 여울은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내 내밀었다.

“거스름이요.”

“안 받습니다.”

“그럼 제가 이걸 어디 둬요?”

손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계단을 올라갔다. 도성으로 가는 길은 아직 어두웠다. 줄과 납추를 멘 등이 버드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여울은 손바닥의 동전을 내려다보았다. 2푼이었다.

◎

첫 배가 버들나루로 돌아왔을 때는 하늘이 희끄무레해져 있었다. 장에 가는 사람들이 선착장에 줄을 섰다. 여울은 손님을 태우고, 내려 주고, 다시 태웠다. 노 젓는 소리가 아침 내내 이어졌다.

셋째로 건너는 배에서 새남이 소금 자루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묶은 끈이 풀리면서 하얀 소금이 널판에 쏟아졌다. 자루 임자인 장꾼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그거 장에 낼 거야!”

“죄송해요! 위아래가 똑같이 생겨서요!”

“자루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요!”

여울은 노를 놓지 않고 발끝으로 빈 바가지를 밀어 주었다. 새남이 무릎을 꿇고 소금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장꾼은 투덜거리면서도 같이 쓸어 담았다. 배가 닿을 무렵에는 둘이 나란히 앉아 소금 묻은 손을 털고 있었다.

옆 배를 몰던 달삼이 강 건너에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커서 물 위를 그대로 건너왔다.

“이보게! 덕만이 딸! 아버지는 좀 어떤가?”

“누워서 잔소리하세요!”

“그럼 살았네!”

달삼이 웃으면서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다른 사공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버들나루에는 사공이 여럿이었다. 다들 여울이 노 잡는 걸 어릴 때부터 봐 왔다. 그래도 첫 배는 달랐다. 첫 배는 나루 주인 배가 띄웠고, 오늘까지 그 주인은 한덕만이었다.

「오늘부터는 내 배야.」

여울은 노 손잡이에 감은 천을 한 번 고쳐 쥐었다.

해가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렸을 때 버들주막에서 탁순 할멈이 손짓을 했다. 주막은 선착장에서 20걸음 거리였다. 솥에서 김이 올라왔고 국물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왔다.

“얘야, 이리 와. 국물 줄게!”

여울은 배를 새남에게 맡기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탁순 할멈이 큰 사발에 국물을 가득 담아 밀어 주었다. 무 조각이 떠 있었다.

“첫 배 손님은 복이다. 아버지 대신 처음 몬 날 첫 손님이면 더 그렇고. 마셔.”

“복이면 좋겠는데요. 거스름을 안 받고 갔어요.”

“얼마나?”

“2푼이요.”

할멈이 국자를 든 채 웃었다.

“그럼 복 맞네. 사공한테 더 주고 가는 손님이 어디 있어.”

“더 받으면 아버지한테 혼나요.”

“네 아버지는 다리 다쳐서 누워 있어. 혼낼 힘 있으면 일어나라고 해.”

여울은 국물을 마셨다. 뜨거운 것이 목을 지나 배 속까지 내려갔다. 열흘 동안 여울은 국물을 앉아서 마셔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방 약탕기를 데우고, 배를 띄우고, 사공들한테 아버지 안부를 대답하고, 밤에는 말뚝 매듭을 다시 묶었다. 하나를 묶고 나면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 두 닢이 부딪혔다.

“그 손님, 어떤 사람이었는데?”

“줄을 메고 다녀요. 매듭 진 줄. 강 한가운데서 물 깊이를 쟀어요.”

“도성 사람이네. 요새 도성 사람들이 강에 와서 뭘 재고 다닌다더라.”

“뭘 재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재는 사람한테 물어봐.”

할멈은 솥으로 돌아갔다. 여울은 빈 사발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2푼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다가, 주머니가 아니라 저고리 안쪽에 넣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보면 또 한 소리 할 터였다.

점심 손님이 뜸해진 사이 여울은 선착장 맨 위 말뚝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날 밤 배를 묶어 두었던 말뚝이었다. 아버지 발목을 감았던 밧줄은 그날 물살에 쓸려 내려가 끝내 찾지 못했다. 말뚝에는 이제 새 밧줄이 감겨 있었다. 새 줄은 뻣뻣했고 아직 강 냄새가 배지 않았다.

여울은 새 밧줄 매듭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그날도 이렇게 묶었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두 번 감고 한 번 걸어서. 그런데 풀렸다. 바람에 말뚝 모서리에 쓸리면 매듭도 풀리는 건가. 아버지는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묻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매듭은 잘 묶었다고. 바람 탓이라고. 여울은 그 말이 자기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여울은 매듭을 한 번 더 당겨 보고 일어섰다. 주막 쪽에서 새남이 손님 왔다고 불렀다.

◎

해가 기울 무렵 마지막 배가 들어왔다. 여울은 배를 말뚝에 매고 매듭을 두 번 당겨 보았다. 한 번 더 당겼다. 줄이 손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때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사람이 보였다. 줄을 멘 사람이었다.

「또 와?」

여울은 매어 둔 배를 다시 풀었다. 새남이 집에 가려다 돌아왔다.

“누나, 마지막 배 끝났잖아요.”

“손님이 서 있잖아.”

향 한 대가 타는 동안 강을 건너가 손님을 태웠다. 손님은 아침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줄을 풀지 않았다. 대신 해 지는 쪽 물빛을 오래 보았다.

“아침에 잰 데는 다시 안 재요?”

“같은 물은 하루에 한 번만 잽니다. 두 번 재면 제 손이 먼저 답을 압니다.”

여울은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노를 당겼다.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물때 매듭은 하루 한 칸만 묶는다고. 두 칸 묶으면 강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묶게 된다고.

“손님, 이름이 뭐예요? 첫 배 손님은 장부에 적어야 해서요.”

장부에 그런 칸은 없었다. 여울도 알았다. 손님은 모자를 벗어 무릎에 올렸다.

“윤도원입니다.”

“도성 사람이에요?”

“도성에서 일합니다.”

묻는 말에는 다 대답했다. 묻지 않은 말은 하나도 보태지 않았다. 여울은 그 대답들을 노 젓는 박자에 맞춰 한 번씩 되짚었다. 윤도원. 도성. 일. 거스름을 안 받는 사람.

배가 버들나루 선착장에 닿자 손님이 먼저 동전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네 닢이었다.

“저녁 배는 4푼이에요?”

“저녁 배는 4푼입니다.”

“아침 배도 4푼이에요.”

“첫 배는 다릅니다.”

여울은 동전을 받은 손을 쥐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서 있었다. 손님이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깨의 줄을 다시 감으며 말했다.

“내일도 첫 배를 타겠습니다. 이 시각의 물이 필요합니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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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첫 배 안내
“6푼입니다.”첫 손님이 동전을 내밀었다. 여울은 노를 무릎에 걸친 채 손바닥을 폈다. 동전 여섯 닢이 하나씩 굳은살 위에 떨어졌다. 동트기 전이라 강은 아직 검었고, 선착장 끝에 걸어 둔 등잔 하나만 물 위에 노란 줄을 그었다.“4푼이에요. 2푼 돌려드릴게요.”여울은 허리춤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손님은 받지 않았다. 키가 컸다. 마른 어깨에 매듭이 촘촘하게 진 줄을 몇 겹 감았고, 줄 끝에는 주먹만 한 납추가 달려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는 먹줄 자국이 가늘게 남아 있었다.“6푼이 맞습니다.”“나루 삯은 수운청에서 4푼으로 정해 놨어요. 더 받으면 제가 혼나요.”“제가 드린 값입니다. 사공님이 받은 값이 아닙니다.”여울은 동전을 쥔 손을 내리지 못했다. 말이 이상하게 맞는 것 같아서 더 이상했다. 뒤에서 새남이 밧줄을 끌어안고 고개를 내밀었다.“누나, 첫 종 울려요!”강 건너 도성 쪽에서 종소리가 넘어왔다. 한 번, 길게. 버들나루의 첫 배는 첫 종에 뜬다. 아버지가 평생 지켜 온 규칙이었다. 여울은 동전 두 닢을 일단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실랑이는 건너가서 하면 됐다.“타세요. 짐은 가운데 두시고요.”손님이 배에 올랐다. 무게가 실리자 배가 한 번 기우뚱했다가 바로 섰다. 몸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울은 그걸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처음 배를 타는 손님은 꼭 일어서서 뱃전을 붙잡았다.“새남아, 줄 풀어.”“풀었어요!”새남이 말뚝에서 밧줄을 걷어 배 안으로 던졌다. 여울은 삿대로 선착장 널판을 밀었다. 배가 물에 미끄러져 나갔다. 말뚝 12개가 등 뒤로 하나씩 멀어졌다.열흘 전까지 이 자리에는 아버지가 섰다. 한덕만은 첫 종이 울리기 전에 말뚝 매듭을 하나씩 손으로 쓸어 보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큰 바람이 불었고, 새벽에 나가 본 아버지는 풀려 나간 밧줄에 발목이 감겨 선착장 아래로 끌려갔다. 새남이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아버지의 발목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그 밧줄은 전날 저녁 여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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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뱃삯표
도원이 버드나무 길로 올라가는 동안 여울은 동전 여섯 닢을 쥔 채 서 있었다. 등 뒤 초가에서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여울아! 이놈아, 들어와 봐라!”아버지 목소리였다. 다리를 다친 사람 목소리치고는 너무 멀쩡했다. 여울은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밧줄 매듭을 한 번 더 당긴 다음 집으로 올라갔다.한덕만은 방문을 열어 놓고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붕대를 감은 발목을 베개에 올려 두고, 손에는 곰방대 대신 부채를 쥐고 있었다. 의원이 담배를 끊으라고 해서 부채를 쥐고 있는 거였다. 방 벽에는 판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버들나루 뱃삯 — 성인 4푼, 아이 2푼. 수운청 정함.』 아버지가 직접 먹으로 쓴 판자였다.“마지막 배에 누구 태웠어.”“첫 배 손님이요. 다시 건너왔어요.”“얼마 받았어.”여울은 대답 대신 주머니를 꺼내 아버지 무릎 앞에 쏟았다. 동전이 이불 위로 굴렀다. 아버지가 하나씩 셌다. 셈이 4푼씩 떨어지지 않고 2푼이 남았다. 아버지는 그 두 닢을 정확히 골라냈다.“2푼은 뭐냐.”“첫 배 손님이 6푼 냈어요. 거스름 드렸는데 안 받았어요. 저녁 배에서는 4푼 내고요.”“그럼 따라가서 손에 쥐여 줬어야지.”“도성까지요?”“도성까지.”아버지가 부채로 벽의 판자를 가리켰다.“저기 뭐라고 쓰여 있어.”“4푼이요.”“우리 나루는 저거 하나로 먹고산다. 더 받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덕만이 다리 다치더니 딸이 삯을 올렸다고 한다. 덜 받으면 또 뭐라고 하겠냐. 덕만이 딸이 장사를 모른다고 한다. 딱 4푼. 그래야 아무 말이 없어.”“손님이 준 거예요. 제가 달라고 안 했어요.”“손님이 주는 걸 다 받으면 그게 사공이냐, 거지지.”여울은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 잔소리는 길었지만 끝에는 늘 같은 말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동전 두 닢을 따로 집어 여울 손바닥에 놓았다.“내일 첫 배에서 돌려줘. 받을 때까지.”여울은 그 두 닢을 작은 천 주머니에 넣었다. 하루 만에 남의 돈이 2푼 생겼다.아버지는 그제야 부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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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물때 읽기
삼월 초닷새, 장날 새벽에는 강 위에 옅은 안개가 깔렸다. 버드나무 세 그루가 허리까지 흐려졌고 말뚝은 윗부분만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울은 선착장 끝에 쪼그려 앉아 허리에 감은 노끈을 풀었다.물때 매듭 줄이었다. 손가락 굵기의 삼베 노끈에 매듭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하루에 한 칸. 아버지가 여울이 열 살 때 처음 쥐여 준 줄이었고, 해마다 새 노끈을 이어 붙였다. 매듭이 크면 물이 높은 날, 작으면 낮은 날이었다. 매듭 옆으로 꼰 가닥이 많으면 물살이 빠른 날이었다. 남이 보면 그냥 엉킨 끈이었다. 여울에게는 장부였다.집을 나서기 전에 아버지가 방 안에서 물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목소리만 나왔다.“거스름 돌려줬냐.”“아직요.”“오늘은 장날이다. 손님 많을 때 실랑이하지 말고, 배 대기 전에 돌려줘.”“배 대기 전에는 노 젓잖아요.”“노 젓는 손 말고 다른 손이 있잖아.”여울은 대답 없이 문 앞에 국물 사발을 놓았다. 문틈으로 아버지가 돌아눕는 소리가 났다. 천 주머니 속 동전은 4푼이었다. 이틀 치 첫 배 거스름이었다. 여울은 그 주머니를 매듭 줄 옆에 매달았다. 돌려줄 때까지는 남의 돈이었고, 남의 돈은 몸에 붙여 다녀야 잃어버리지 않았다.선착장에 나와 여울은 맨손을 물에 담갔다. 차가웠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밀려가는 힘을 세었다. 그다음 손을 들어 코에 댔다. 진흙 냄새가 어제보다 짙었고, 그 밑으로 풋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상류 어디선가 둑을 연 냄새였다.여울은 어제 매듭보다 조금 크게 매듭을 지었다. 옆으로 두 가닥을 꼬아 넣었다. 다 묶고 나서 매듭을 엄지로 눌러 보았다. 단단했다.“그건 무슨 매듭입니까?”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여울은 놀라서 하마터면 줄을 놓칠 뻔했다. 도원이 선착장 널판 위에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도원은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다.“놀라게 하지 마세요. 줄 떨어뜨리면 손님이 건지러 들어가야 돼요.”“헤엄을 못 칩니다.”“그럼 더 놀라게 하지 마세요.”도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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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모래가 사는 곳
삼월 초이레 새벽, 여울은 부엌 구석에서 빈 소금 항아리를 꺼냈다. 아가리가 이가 빠진 작은 항아리였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젓갈을 담던 것이라고 아버지가 말한 적이 있었다. 여울은 항아리를 행주로 닦고 천 주머니를 풀어 동전을 쏟아 넣었다.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맑은 소리가 났다.방 안에서 아버지가 기침을 했다.“뭐 하냐.”“거스름 모아요. 주머니가 무거워서요.”“돌려줘야 할 돈을 왜 모아.”“안 받으니까요. 받을 때까지 여기 둘 거예요.”아버지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방문 너머로 툭 던지듯 말했다.“뚜껑 덮어 둬라. 동전도 습기 먹으면 녹슨다.”여울은 항아리 위에 나무 뚜껑을 덮고 품에 안아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배 뒤쪽 사공 자리 밑에 항아리를 놓고 새끼줄로 묶었다. 손님 돈이 배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돌려줄 수 없는 돈이 생긴다는 건, 돌려줄 수 없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 같았다.선착장에 나가니 바람이 거셌다. 강 위로 잔물결이 비늘처럼 일어났다. 버드나무 가지가 한쪽으로 쏠렸다. 여울은 말뚝 매듭을 두 번씩 당겨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오지 않을 바람이었다. 그 대신 오후까지 그치지 않을 바람이었다.도원은 첫 종보다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줄과 납추 말고도 허리에 작은 먹통과 붓을 차고 있었다. 지난번에 붓이 없어 수첩을 도로 넣은 일이 생각났다. 여울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붓 챙기셨네요.”“외우는 것보다 적는 게 정확합니다.”“바람 세요. 모자 꽉 붙잡고 타세요.”도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6푼을 내밀었다. 여울은 받았다. 거스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배에 항아리가 생겼으니 실랑이할 일도 하나 줄었다.◎배가 강 가운데로 나가자 바람이 옆에서 밀어붙였다. 여울은 노를 깊이 넣고 배 머리를 바람 쪽으로 조금 틀었다. 새남은 뒤쪽에서 보조 노를 잡았다. 향은 바람 때문에 빨리 탔다. 여울은 손바닥으로 향 끝을 가려 주었다.도원이 납추를 내리려고 몸을 숙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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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향 한 대
삼월 초아흐레 새벽, 도원은 새 모자를 쓰고 왔다. 먼저 쓰던 것보다 챙이 조금 넓었고, 턱 밑으로 끈이 달려 있었다. 끈을 단단히 묶은 매듭이 보였다. 여울은 그 매듭을 보고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끈 다셨네요.”“바람이 셉니다.”“먼저 모자는 뗏목방에서 건져 갔던데요. 장대에 꿰어서 흔들던데.”“압니다.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왜요? 새 모자 값보다 싸잖아요.”“장칠수 씨가 돌려주면서 할 말이 있을 겁니다. 그 말까지 들으면 새 모자보다 비쌉니다.”여울은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웃음소리가 선착장 널판 위로 튀었다. 도원은 웃는 여울을 잠깐 보더니 턱끈을 한 번 더 조였다.“오늘은 바람 안 불어요. 대신 비 와요.”도원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지만 아직 빗방울은 없었다. 등에는 삿갓 하나가 끈으로 매여 있었다. 비가 올 걸 이미 알고 온 모양이었다.도원이 6푼을 내밀었다. 여울이 받았다. 그런데 도원은 배에 오르지 않고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펼치자 작은 글씨가 몇 줄 적혀 있었다. 여울이 고개를 기울여 보았다. 『하나. 봄 큰물은 몇 번 오는가. 둘. 물때 매듭은 몇 가지인가. 셋. 안개 낀 날 배는 어디로 도는가.』 그 밑으로도 줄이 이어졌다.“그게 뭐예요?”“여쭐 것입니다. 사공님이 일하시는 동안 방해가 되지 않게 미리 적어 왔습니다.”“다 물으실 거예요?”“오늘 다 여쭙지는 않겠습니다.”“그럼 언제까지요?”“알 때까지입니다.”여울은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지난 사흘 동안 도원은 묻는 게 늘었다. 묻는 건 다 좋은 질문이었다. 문제는 여울이 노를 저으면서 대답하다가 물살 하나를 놓칠 뻔했다는 거였다. 엊그제는 대답하다가 말뚝에 배를 긁었다. 아버지가 봤으면 지팡이를 짚고라도 나왔을 일이었다.여울은 배 안으로 들어가 뱃머리 구멍에 향 한 대를 꽂았다. 부싯돌을 쳐 불을 붙였다. 연기가 가늘게 올라갔다. 향 냄새가 물비린내 위로 번졌다.“측량관님. 나루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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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종이배
사흘 동안 도원은 접은 종이를 한 줄씩 지워 나갔다. 첫 배에서 향을 켜면 묻고, 향이 꺼지면 입을 닫았다.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향이 반쯤 탔을 때 질문이 끝나면 남은 동안은 물만 보았다. 묻지 않을 때는 납추를 내렸다. 여울은 처음에 그게 답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향이 탈 때마다 강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노 젓는 소리와 줄 풀리는 소리만 남았다.둘째 날에는 안개 낀 날 배가 어디로 도는지 다시 물었다. 셋째 날에는 매듭 옆에 끼우는 지푸라기가 무슨 풀인지 물었다. 보릿짚이라고 했더니, 왜 볏짚이 아니냐고 물으려다 향이 꺼졌다. 도원은 입을 다물었고, 그다음 날 첫 배에서 그 질문부터 했다. 보릿짚이 더 질겨서 물에 오래 버틴다고 대답하자 도원은 장부에 그대로 적었다. 『보릿짚. 질김. 사공 말.』 여울은 그 사공 말이라는 글자를 볼 때마다 목덜미가 조금 간지러웠다.삼월 열이틀 첫 배에서 도원이 넷째 줄을 읽었다.“장마는 언제 옵니까?”“오월 스무날 넘어서요. 해마다 그쯤이에요.”“사흘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그때 그냥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계단에서.”“땅에서는 말을 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여울은 노를 당기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정한 규칙에 자기가 걸렸다. 도원은 장부에 붓으로 『오월 스무날』이라고 적었다. 붓끝이 흔들리지 않았다. 배가 흔들려도 붓을 쥔 손목은 그대로였다.그날 도원은 건너편 돌계단에서 내리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이 다 내린 뒤에도 배에 앉아 있었다.“안 내리세요?”“오늘은 버들나루 앞 물을 재야 합니다. 돌아가는 배에 타겠습니다.”“그럼 뱃삯 또 내셔야 돼요.”도원은 4푼을 내밀었다. 6푼이 아니었다. 여울은 그 4푼을 보고 잠깐 웃었다. 첫 배만 6푼. 그 규칙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버들나루로 돌아오자 도원은 선착장 끝에 자리를 잡았다. 말뚝 12개 가운데 맨 아래쪽 말뚝 옆이었다. 그 앞에는 물이 늘 빙글빙글 도는 자리가 있었다. 선착장 널판 끝이 강 쪽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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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주막 외상
동실의 물음에 도원은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다. 모자를 가슴께에 든 채 한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아직 모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동실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할머니 치마 뒤로 숨었다. 여울은 그날 하루 종일 그 대답을 생각했다. 모른다는 말은, 다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이기도 했다.삼월 열사흘 첫 배에서 여울은 향을 켜자마자 먼저 입을 열었다. 손님이 묻기 전에 사공이 묻는 건 처음이었다.“어제 동실 할머니한테 측량관이라고 하셨잖아요.”“그렇습니다.”“그 할머니 입은 장터에서 제일 빨라요. 오늘 저녁이면 나루 사람 다 알아요.”“알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까?”여울은 노를 당기다 말고 도원을 보았다. 도원은 정말로 묻고 있었다. 수운청 사람이라는 게 나루에서 어떤 말인지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그걸 숨겨야 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얼굴이었다.“문제는 아닌데요. 시끄러워요. 오늘 저녁 배는 타지 마세요. 수운청 배 타고 건너가세요. 주막 앞으로 지나가지 말고요.”“저녁 배를 타야 합니다. 저녁 물도 재야 합니다.”“그럼 재고 바로 가세요.”“그러겠습니다.”향이 꺼졌다. 도원은 입을 다물었다. 여울은 그 대답을 믿지 않았다. 그러겠다고 한 건 바로 가겠다는 말이었지, 주막 앞을 피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로 들어야 했다.그날 저녁, 소문은 이미 나루를 한 바퀴 돈 뒤였다.동실 할머니가 친척 집에서 엿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장터 아낙들에게 말했고, 아낙들이 사공들에게 말했고, 사공들은 주막에서 서로에게 말했다. 버들나루 첫 배 손님. 매일 6푼 내는 그 키 큰 사람. 동실이 종이배 건져 준 사람. 측량관이래. 측량관이 뭐냐면, 수운청 사람이래.여울이 마지막 배를 매고 올라왔을 때 버들주막 평상 둘은 사공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달삼, 하돌, 그 밖에 배를 가진 사공들이 거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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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폐쇄 통지
삼월 열닷새, 장날 새벽이었다. 여울은 첫 종이 울리기 전에 향을 뱃머리 구멍에 꽂아 두었다. 불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손님들이 선착장에 줄을 섰다. 장날이라 줄이 길었다. 자루를 진 장꾼, 바구니를 인 아낙, 닭 두 마리를 묶어 든 노인. 여울은 손님들 얼굴을 하나씩 보며 뱃삯을 받았다. 4푼, 4푼, 4푼.줄 맨 끝까지 보았다. 줄과 납추를 멘 사람이 없었다.여울은 버드나무 길 쪽을 보았다. 아직 어두웠다. 길 위에 아무도 없었다. 열흘이 넘도록 첫 종보다 늦게 온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제 첫 배에서도 아무 일 없었다. 질문 두 개를 하고, 향이 꺼지자 입을 닫았고, 6푼을 냈다. 어제 저녁 배에서도 4푼을 내고 건너왔다. 주막 앞을 지나면서 탁순 할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게 다였다.“누나, 아저씨 안 와요?”새남이 밧줄을 쥔 채 물었다.“안 오나 보지.”“기다려요?”“첫 배는 첫 종에 떠.”아버지가 평생 지킨 규칙이었다. 손님이 늦으면 다음 배를 타면 됐다. 첫 배는 기다리지 않았다. 첫 배를 기다리면 그다음 배가 다 밀렸고, 장날에는 그게 장꾼들 하루를 다 밀었다.강 건너에서 첫 종이 울렸다. 여울은 부싯돌을 쳐 향에 불을 붙였다.“새남아, 줄 풀어.”배가 선착장을 떠났다. 노 젓는 소리가 났다. 손님들이 장 이야기를 했다. 소금값이 올랐다느니, 오늘 장에 도성 비단 장수가 온다느니. 닭을 든 노인이 뱃머리 쪽 빈자리를 보았다.“그 키 큰 손님은 오늘 안 탔네. 줄 메고 다니는 사람.”“오늘은 안 왔어요.”“날마다 저기 앉아서 물에 추 내리던데. 저 사람 없으니까 배가 넓네.”노인은 그 빈자리에 닭 두 마리를 내려놓았다. 닭이 푸드덕거렸다. 여울은 노를 저었다. 여울은 노를 저었다. 향이 탔다. 강 가운데쯤 와서 여울은 오른쪽 뱃전을 보았다. 거기 납추가 내려가는 자리였다. 물만 지나갔다.향이 다 탈 때까지 여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묻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향이 꺼지고 배가 돌계단에 닿았을 때에야 여울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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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못 올 사람이 온 날
여울은 그 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배 뒷자리 밑의 거스름 항아리가 자꾸 눈에 밟혔다. 한밤에 선착장으로 내려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동전이 몇 닢인지 세지 않아도 알았다. 날마다 2푼씩. 열흘 남짓. 나루를 닫을 다리를 재는 사람이 날마다 나루에 두고 간 돈이었다. 여울은 항아리를 통째로 강에 던지는 걸 생각했다. 손님이 물에 뭘 던지면 곱절이지만 사공은 괜찮았다. 그런데 손이 가지 않았다. 남의 돈이었다. 남의 돈은 던지는 게 아니라 돌려주는 거였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다.삼월 열엿새 첫 배는 여울이 말한 대로 손님 없이 떴다. 손님이 없다는 건 줄을 멘 손님이 없다는 뜻이었다. 장꾼 셋과 아이 하나가 탔고, 뱃머리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여울은 향을 켜고 노를 저었다. 어제처럼 입을 다물지는 않았다. 일부러 새남에게 말을 걸었다. 노를 너무 깊이 넣는다고, 어깨에 힘을 빼라고, 오늘 저녁에는 노걸이를 다시 보자고. 새남은 대답하다가 지쳐서 나중에는 고개만 끄덕였다.첫 배가 돌아왔을 때 선착장에는 다음 배를 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따리를 멘 상인 하나가 맨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 안에 하류 장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여울은 손님을 태우며 뱃삯을 받았다. 4푼, 4푼.그때 버드나무 길에서 누가 뛰어 내려왔다.도원이었다.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줄은 어깨에 엉성하게 걸쳐져 있었다. 늘 몇 겹으로 반듯하게 감던 줄이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 밑이 거뭇했다. 소매 끝에 먹물이 번져 있었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다. 여울은 그 얼굴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눈이 자꾸 갔다.선착장 옆에 배를 매던 하돌이 도원을 보았다. 달삼도 보았다. 하돌은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침을 한 번 뱉었다. 달삼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 큰 달삼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선착장이 이상하게 조용했다.도원은 선착장으로 바로 내려오지 않았다. 나루 입구 버드나무 앞에서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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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하루 사공
삼월 열여드레 첫 종 전, 도원은 선착장에 먼저 와 있었다. 줄은 다시 반듯하게 감겨 있었다. 얼굴은 그저께보다 나았다. 눈 밑 그늘은 남았지만 서 있는 자세가 곧았다. 여울은 그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둘은 첫 배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도원은 향이 타는 동안에도 묻지 않았고, 납추만 내렸다. 여울도 묻지 않았다. 향이 꺼지면 도원은 6푼을 냈다.오늘은 달랐다. 도원이 모자를 벗었다.“재 보았습니다. 도성 큰길 아래 바닥입니다.”여울은 밧줄을 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사흘 동안 같은 자리를 다섯 군데씩 쟀습니다. 바닥이 날마다 다릅니다. 하루에 반 뼘씩 움직인 날도 있습니다. 모래가 살아 있습니다. 사공님 말이 맞았습니다. 제 표가 틀렸습니다.”“그래서요?”“틀리면 사공님 배에서 하루 노를 젓겠다고 했습니다.”여울은 그 말을 잊고 있었다. 모자가 날아간 날, 바람 센 저녁, 모자 대신 줄을 감으면서 한 말이었다. 그 뒤로 방이 붙었고, 강 한복판에서 배를 세웠고, 내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한 말을 다 기억했다.「진짜 하네.」여울은 노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쓰던 노였다. 손잡이에 천을 감은 자리가 손때로 까맸다. 여울은 그 노를 들어 도원 앞에 내밀었다.“좋아요. 오늘 하루 사공 하세요. 대신 하나는 하셔야 돼요.”“말씀하십시오.”“오늘 하루 나루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 보세요. 방법 찾는다면서요. 방법을 찾으려면 나루가 뭘 하는지부터 알아야죠.”도원이 노를 받았다. 두 손으로 받았다. 노가 생각보다 무거웠는지 손이 한 번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러고는 품에서 6푼을 꺼내 여울에게 내밀었다.“오늘 뱃삯입니다.”“사공이 뱃삯 내는 거 처음 봐요.”“아직 사공이 아닙니다. 배가 뜨기 전까지는 손님입니다.”여울은 6푼을 받았다. 새남이 옆에서 입을 막고 웃었다. 웃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첫 종이 울렸다. 손님들이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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