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버지가 발을 다친 날부터 한여울이 버들나루 첫 배를 몬다. 해 뜨기 전, 매일 같은 손님이 줄과 납추를 메고 탄다. 뱃삯은 4푼인데 그는 6푼을 내고 거스름을 받지 않는다. 어느 날 나루에 방이 붙는다. 『다리가 놓이면 버들나루는 가을 그믐에 폐쇄한다.』 다리 놓을 자리를 재는 사람이 바로 그 손님이었다. 향 한 대가 타는 동안만 말하기로 한 나루 규칙. 여울은 그 짧은 시간에 그를 내보낼지 붙잡을지를 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다리 놓을 자리를 자꾸 나에게 묻는 걸까. (1~10화 무료, 전 80화 완결)
View More“6푼입니다.”
첫 손님이 동전을 내밀었다. 여울은 노를 무릎에 걸친 채 손바닥을 폈다. 동전 여섯 닢이 하나씩 굳은살 위에 떨어졌다. 동트기 전이라 강은 아직 검었고, 선착장 끝에 걸어 둔 등잔 하나만 물 위에 노란 줄을 그었다.
“4푼이에요. 2푼 돌려드릴게요.”
여울은 허리춤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냈다. 손님은 받지 않았다. 키가 컸다. 마른 어깨에 매듭이 촘촘하게 진 줄을 몇 겹 감았고, 줄 끝에는 주먹만 한 납추가 달려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는 먹줄 자국이 가늘게 남아 있었다.
“6푼이 맞습니다.”
“나루 삯은 수운청에서 4푼으로 정해 놨어요. 더 받으면 제가 혼나요.”
“제가 드린 값입니다. 사공님이 받은 값이 아닙니다.”
여울은 동전을 쥔 손을 내리지 못했다. 말이 이상하게 맞는 것 같아서 더 이상했다. 뒤에서 새남이 밧줄을 끌어안고 고개를 내밀었다.
“누나, 첫 종 울려요!”
강 건너 도성 쪽에서 종소리가 넘어왔다. 한 번, 길게. 버들나루의 첫 배는 첫 종에 뜬다. 아버지가 평생 지켜 온 규칙이었다. 여울은 동전 두 닢을 일단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실랑이는 건너가서 하면 됐다.
“타세요. 짐은 가운데 두시고요.”
손님이 배에 올랐다. 무게가 실리자 배가 한 번 기우뚱했다가 바로 섰다. 몸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울은 그걸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처음 배를 타는 손님은 꼭 일어서서 뱃전을 붙잡았다.
“새남아, 줄 풀어.”
“풀었어요!”
새남이 말뚝에서 밧줄을 걷어 배 안으로 던졌다. 여울은 삿대로 선착장 널판을 밀었다. 배가 물에 미끄러져 나갔다. 말뚝 12개가 등 뒤로 하나씩 멀어졌다.
열흘 전까지 이 자리에는 아버지가 섰다. 한덕만은 첫 종이 울리기 전에 말뚝 매듭을 하나씩 손으로 쓸어 보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큰 바람이 불었고, 새벽에 나가 본 아버지는 풀려 나간 밧줄에 발목이 감겨 선착장 아래로 끌려갔다. 새남이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아버지의 발목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그 밧줄은 전날 저녁 여울이 묶었다.
「내가 묶었어.」
여울은 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노가 물을 밀었다. 노 젓는 소리가 강 위에 길게 퍼졌다. 물비린내가 차게 올라왔다.
선착장 쪽에서 여울은 향 한 대에 불을 붙여 뱃머리 구멍에 꽂아 두었다. 버들나루에서는 건너는 동안 향 한 대가 탄다. 아버지는 향이 다 타기 전에 맞은편에 닿지 못하면 그날 물을 잘못 읽은 거라고 했다. 여울은 오늘 첫 배를 아버지 없이 처음 모는 날이었다. 향 끝이 붉게 살아 있었다.
손님은 뱃머리 쪽에 앉아 물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건너편을 봤다. 이 손님은 배 바로 옆, 노가 지나간 자리를 봤다.
강 한가운데쯤 왔을 때 손님이 어깨의 줄을 풀었다. 납추를 손에 쥐고 뱃전 너머로 팔을 뻗었다.
“잠깐요.”
여울이 노를 멈췄다. 배가 물살에 조금 밀렸다.
“배 안에서 물에 뭘 던지면 뱃삯 곱절이에요.”
손님이 납추를 든 채 여울을 보았다. 모자를 벗었다. 검은 머리가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던지는 게 아닙니다. 내렸다가 다시 올립니다.”
“물에 들어가면 던진 거예요.”
“곱절이면 12푼입니까?”
여울은 말이 막혔다. 곱절이라는 말은 아버지가 장난치는 장꾼들을 쫓을 때 쓰던 말이었다. 진짜로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셈이죠.”
손님은 품에서 동전을 더 꺼내려 했다. 여울은 노 끝으로 뱃전을 탁 쳤다.
“돈 꺼내지 마세요. 그냥 뭘 하려는 건지 말해요.”
“물 깊이를 잽니다. 이 시각, 이 자리.”
“그걸 왜 재요?”
손님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는 얼굴이 아니었다. 고르는 얼굴이었다.
“일입니다.”
여울은 납추를 보았다. 줄은 매듭과 매듭 사이가 손 한 뼘씩 똑같았다. 아무렇게나 감아 온 줄이 아니었다. 그 매듭을 하나하나 묶은 사람이 앞에 앉아 있었다.
「줄 하나는 잘 묶네.」
“배 오른쪽으로만 내려요. 왼쪽은 물살이 세서 줄이 감겨요. 감기면 놓으세요. 붙잡고 있으면 사람이 딸려 가요.”
손님은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납추가 오른쪽 뱃전 너머로 조용히 내려갔다. 줄이 손가락 사이로 풀려 나갔다. 매듭 하나, 또 하나. 어느 매듭에서 줄이 느슨해졌다. 손님은 그 매듭을 엄지로 눌러 두고 줄을 다시 감아올렸다. 젖은 납추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여울은 다시 노를 저었다. 배가 물살을 비스듬히 탔다. 향은 반쯤 타 있었다.
“이 자리는 늘 이렇습니까?”
손님이 물었다. 납추를 무릎에 놓고, 눈은 여전히 물에 있었다.
“이렇다는 게 뭔데요?”
“가운데보다 이쪽이 얕습니다. 물살은 이쪽이 셉니다.”
“봄에는 그래요. 겨울 동안 모래가 이쪽으로 쌓였다가 큰물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쓸려 가요.”
“큰물은 언제 옵니까?”
“강이 알려 줘요.”
손님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울은 노를 당기며 일부러 건너편만 보았다. 사공 딸이 아는 척하는 걸로 들릴까 봐, 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향이 꺼지기 조금 전에 배가 건너편 돌계단에 닿았다. 여울은 삿대를 짚어 배를 붙이고 밧줄을 말뚝에 걸었다. 손님이 먼저 내렸다. 어깨에 줄을 다시 감고 모자를 썼다. 여울은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내 내밀었다.
“거스름이요.”
“안 받습니다.”
“그럼 제가 이걸 어디 둬요?”
손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계단을 올라갔다. 도성으로 가는 길은 아직 어두웠다. 줄과 납추를 멘 등이 버드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여울은 손바닥의 동전을 내려다보았다. 2푼이었다.
◎
첫 배가 버들나루로 돌아왔을 때는 하늘이 희끄무레해져 있었다. 장에 가는 사람들이 선착장에 줄을 섰다. 여울은 손님을 태우고, 내려 주고, 다시 태웠다. 노 젓는 소리가 아침 내내 이어졌다.
셋째로 건너는 배에서 새남이 소금 자루를 거꾸로 들어 올렸다. 묶은 끈이 풀리면서 하얀 소금이 널판에 쏟아졌다. 자루 임자인 장꾼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그거 장에 낼 거야!”
“죄송해요! 위아래가 똑같이 생겨서요!”
“자루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요!”
여울은 노를 놓지 않고 발끝으로 빈 바가지를 밀어 주었다. 새남이 무릎을 꿇고 소금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장꾼은 투덜거리면서도 같이 쓸어 담았다. 배가 닿을 무렵에는 둘이 나란히 앉아 소금 묻은 손을 털고 있었다.
옆 배를 몰던 달삼이 강 건너에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커서 물 위를 그대로 건너왔다.
“이보게! 덕만이 딸! 아버지는 좀 어떤가?”
“누워서 잔소리하세요!”
“그럼 살았네!”
달삼이 웃으면서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다른 사공들도 고개를 내밀었다. 버들나루에는 사공이 여럿이었다. 다들 여울이 노 잡는 걸 어릴 때부터 봐 왔다. 그래도 첫 배는 달랐다. 첫 배는 나루 주인 배가 띄웠고, 오늘까지 그 주인은 한덕만이었다.
「오늘부터는 내 배야.」
여울은 노 손잡이에 감은 천을 한 번 고쳐 쥐었다.
해가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렸을 때 버들주막에서 탁순 할멈이 손짓을 했다. 주막은 선착장에서 20걸음 거리였다. 솥에서 김이 올라왔고 국물 냄새가 강바람을 타고 왔다.
“얘야, 이리 와. 국물 줄게!”
여울은 배를 새남에게 맡기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탁순 할멈이 큰 사발에 국물을 가득 담아 밀어 주었다. 무 조각이 떠 있었다.
“첫 배 손님은 복이다. 아버지 대신 처음 몬 날 첫 손님이면 더 그렇고. 마셔.”
“복이면 좋겠는데요. 거스름을 안 받고 갔어요.”
“얼마나?”
“2푼이요.”
할멈이 국자를 든 채 웃었다.
“그럼 복 맞네. 사공한테 더 주고 가는 손님이 어디 있어.”
“더 받으면 아버지한테 혼나요.”
“네 아버지는 다리 다쳐서 누워 있어. 혼낼 힘 있으면 일어나라고 해.”
여울은 국물을 마셨다. 뜨거운 것이 목을 지나 배 속까지 내려갔다. 열흘 동안 여울은 국물을 앉아서 마셔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방 약탕기를 데우고, 배를 띄우고, 사공들한테 아버지 안부를 대답하고, 밤에는 말뚝 매듭을 다시 묶었다. 하나를 묶고 나면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 두 닢이 부딪혔다.
“그 손님, 어떤 사람이었는데?”
“줄을 메고 다녀요. 매듭 진 줄. 강 한가운데서 물 깊이를 쟀어요.”
“도성 사람이네. 요새 도성 사람들이 강에 와서 뭘 재고 다닌다더라.”
“뭘 재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재는 사람한테 물어봐.”
할멈은 솥으로 돌아갔다. 여울은 빈 사발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2푼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다가, 주머니가 아니라 저고리 안쪽에 넣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보면 또 한 소리 할 터였다.
점심 손님이 뜸해진 사이 여울은 선착장 맨 위 말뚝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날 밤 배를 묶어 두었던 말뚝이었다. 아버지 발목을 감았던 밧줄은 그날 물살에 쓸려 내려가 끝내 찾지 못했다. 말뚝에는 이제 새 밧줄이 감겨 있었다. 새 줄은 뻣뻣했고 아직 강 냄새가 배지 않았다.
여울은 새 밧줄 매듭을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그날도 이렇게 묶었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두 번 감고 한 번 걸어서. 그런데 풀렸다. 바람에 말뚝 모서리에 쓸리면 매듭도 풀리는 건가. 아버지는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묻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매듭은 잘 묶었다고. 바람 탓이라고. 여울은 그 말이 자기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여울은 매듭을 한 번 더 당겨 보고 일어섰다. 주막 쪽에서 새남이 손님 왔다고 불렀다.
◎
해가 기울 무렵 마지막 배가 들어왔다. 여울은 배를 말뚝에 매고 매듭을 두 번 당겨 보았다. 한 번 더 당겼다. 줄이 손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때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사람이 보였다. 줄을 멘 사람이었다.
「또 와?」
여울은 매어 둔 배를 다시 풀었다. 새남이 집에 가려다 돌아왔다.
“누나, 마지막 배 끝났잖아요.”
“손님이 서 있잖아.”
향 한 대가 타는 동안 강을 건너가 손님을 태웠다. 손님은 아침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줄을 풀지 않았다. 대신 해 지는 쪽 물빛을 오래 보았다.
“아침에 잰 데는 다시 안 재요?”
“같은 물은 하루에 한 번만 잽니다. 두 번 재면 제 손이 먼저 답을 압니다.”
여울은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노를 당겼다. 아버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물때 매듭은 하루 한 칸만 묶는다고. 두 칸 묶으면 강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묶게 된다고.
“손님, 이름이 뭐예요? 첫 배 손님은 장부에 적어야 해서요.”
장부에 그런 칸은 없었다. 여울도 알았다. 손님은 모자를 벗어 무릎에 올렸다.
“윤도원입니다.”
“도성 사람이에요?”
“도성에서 일합니다.”
묻는 말에는 다 대답했다. 묻지 않은 말은 하나도 보태지 않았다. 여울은 그 대답들을 노 젓는 박자에 맞춰 한 번씩 되짚었다. 윤도원. 도성. 일. 거스름을 안 받는 사람.
배가 버들나루 선착장에 닿자 손님이 먼저 동전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네 닢이었다.
“저녁 배는 4푼이에요?”
“저녁 배는 4푼입니다.”
“아침 배도 4푼이에요.”
“첫 배는 다릅니다.”
여울은 동전을 받은 손을 쥐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서 있었다. 손님이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깨의 줄을 다시 감으며 말했다.
“내일도 첫 배를 타겠습니다. 이 시각의 물이 필요합니다.”
(1화 끝)
첫 종이 울리자 여울은 말뚝에 묶인 배의 줄을 풀었다. 새 다리 위에 모인 사람들의 발소리가 널판 아래까지 들렸다. 버드나무 3그루 사이로 강바람이 들어왔다. 여울은 배 안을 살피고 노를 놓았다.“첫 배 탑니다. 타세요.”동실 할머니가 광주리를 안고 먼저 배에 올랐다. 동실은 종이배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뒤따랐다. 종이배의 뱃머리가 조금 눌려 있었다.“동실아, 배는 젖으면 다시 접어야 해.”새남이 말했다. 새남은 노를 배 안에 내려놓고 승객들이 앉을 자리를 비웠다.“안 젖게 할 거예요.”“그럼 왜 배를 가져왔니?”“오늘 배가 어디로 가는지 볼 거예요.”새남은 대답 대신 배의 바닥을 확인했다. 종이가 젖을 만한 물기는 없었다. 여울은 동실에게 배를 꼭 쥐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양손으로 조심히 들고 있었다.탁순 할멈이 주막 쪽에서 작은 향을 들고 왔다.“첫 배에 향도 태워야지. 오늘은 강 건너는 사람 말고 다리 건너는 사람도 많겠네.”“향은 배에 타는 동안만 피울게요.”여울은 향을 받아 배 앞쪽에 꽂았다. 탁순 할멈은 향에 불을 붙이고 1걸음 물러났다. 향 끝에 붉은 불이 붙었다.새남은 맞은편 강둑을 봤다. 새 다리의 계단 끝 선착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리의 기둥들이 물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아래로 강물이 지나갔다.“아저씨는 아직 안 왔네요.”새남이 말했다.“누구?”“측량관님이요. 오늘 다리를 처음 건너신다면서요.”“배가 먼저 가면 오겠지.”“다리로 가면 배보다 빠르잖아요.”“그래도 첫 배는 첫 배야. 줄 풀어.”새남은 줄을 선착장 말뚝에서 완전히 벗겼다. 여울은 배를 밀었다. 물이 배 옆을 쳤다. 승객들이 자리를 잡자 여울은 노를 물에 넣었다.배가 나루를 떠났다. 여울은 강물의 냄새를 맡고 노를 저었다. 물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배 아래에서 노가 한 번 긁혔다. 여울은 방향을 조금 틀었다.“여기서 건너면 돼요?”동실이 물었다.“응. 배는 선착장으로 갈 거야.”“다리도 저쪽으로 가요?”“
구월 스무날, 여울은 버들주막 평상 가운데 거스름 항아리를 놓았다. 항아리 밑바닥이 나무에 닿으며 둔한 소리를 냈다. 주막 안에 모인 사공 조합원들이 말을 멈췄다.탁순 할멈은 국솥에서 국자를 꺼내 솥 가장자리에 걸었다.“그렇게들 쳐다보면 항아리도 부끄럽겠다. 열려면 뚜껑부터 열어야지.”“뚜껑 열기 전에 할멈 장부부터 치워 주세요. 동전 놓을 자리가 있어야 해요.”여울이 말했다.탁순 할멈은 평상 한쪽에 펼쳐 둔 외상 장부를 집어 들었다. 장부를 목에 건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다시 평상 끝에 내려놓았다.“이 장부는 오늘 없어지는 거 아닌데.”“그건 이따 봐요.”“그럼 이따 보자.”탁순 할멈은 장부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놓고 자리를 비켰다. 조합원 12명이 평상과 벽 쪽에 둘러앉았다. 달삼은 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았고, 하돌은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 끝이 천에 걸려 삐죽 나왔다.여울은 항아리 뚜껑에 손을 얹었다.“여기 든 돈은 선착장 수리비로 씁니다. 어느 쪽부터 손볼지 조합에서 정하고, 쓴 돈은 장부에 적을 거예요.”“먼저 널판부터 봐야지.”하돌이 말했다.“말뚝도 확인해야 하네. 줄 묶는 데가 헐거우면 널판만 고쳐도 소용없어.”달삼이 손을 들었다.“그러니까 다 같이 보고 정하자는 거예요. 오늘은 먼저 얼마가 모였는지 확인해요.”“자네가 매일 적은 것과 맞춰 보면 되겠네.”하돌은 여울의 허리에 묶인 물때 매듭 줄을 보았다. 여울은 줄을 손으로 덮었다.“이건 물때 적는 줄이에요. 돈은 장부로 맞출 거예요.”달삼이 웃었다.“강은 줄로 알고 돈은 장부로 알고. 조합장 손이 모자라겠네.”“그래서 조합원이 12명이에요.”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돌도 더 말하지 않았다.도원은 평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소매를 걷은 손목에 먹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깨에 걸었던 측심 줄은 벽에 기대어 두었다. 도원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놓고, 여울이 항아리 뚜껑을 여는 손을 보고 있었
구월 열이틀, 수운청 심의장에는 뱃삯 상한을 고치는 문서가 놓여 있었다.윤 판관은 문서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눈으로 훑었다. 그 옆에는 붓과 먹이 놓였고, 맞은편에는 버들나루 사공 조합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울은 조합장 자리에서 문서를 바라봤다. 도원은 윤 판관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 모자는 쓰고 있었고, 어깨에는 측심 줄이 걸려 있었다.“뱃삯 상한을 6푼으로 고치는 안입니다.”수운청 서기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서기는 문서가 놓인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지금 상한은 4푼입니다. 이 문서가 통과되면 성인 한 명의 뱃삯은 6푼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6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요?”여울이 물었다.“그렇습니다. 상한을 고치는 겁니다. 4푼을 받는 나루는 그대로 4푼을 받을 수 있습니다.”“그럼 사공마다 값을 달리 정해도 됩니까?”“상한 안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루마다 값을 알 수 있게 밝혀야 합니다.”서기는 말끝을 고르고 문서에 시선을 내렸다. 여울은 그가 설명을 빼먹지 않도록 잠시 기다렸다.“같은 나루에서 사람에 따라 값을 다르게 받으면 안 됩니다. 짐값이 따로 있으면 그것도 밝혀야 합니다.”“노를 같이 젓는 사람도 성인 한 명으로 셉니까?”하돌이 물었다. 담뱃대는 손에 들려 있었지만, 심의장 안에서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사공은 뱃삯을 받지 않습니다.”서기가 답했다.“그건 지금도 그렇지 않나?”달삼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예. 다만 문서에 기준을 적어 두려는 겁니다.”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돌은 담뱃대 끝을 손바닥에 두드렸다.“상한을 올리면 사람들은 6푼을 받으려 하겠지. 지금까지 4푼으로 건너던 사람이 더 내야 할 수도 있고.”“그럴 수 있습니다.”서기가 고개를 들었다.“그래서 조합에서 먼저 정할 값이 필요합니다. 나루마다 제각각 받으면 사람들은 어느 배를 타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버들나루는 4푼으로는 배를 고치고 줄을 갈기 어렵습니다.”여울이 말했다.“그렇
첫 종이 울리기 전, 윤 판관이 버들나루 널판 위에 섰다.여울은 배에 실을 바구니를 선착장 끝으로 밀어 두다가 손을 멈췄다. 단정한 도포의 소매가 새벽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윤 판관은 혼자였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도원도, 수운청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버드나무 잎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맺혀 있었고, 널판 아래에서는 물이 말뚝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여울은 바구니를 널판 안쪽으로 더 밀었다. 새벽 물기가 밴 나무가 발밑에서 조금 미끄러웠다. 배 옆에 놓인 노는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고, 밧줄은 말뚝에 단단히 감겨 있었다. 손님을 태우기 전에 확인하던 것들이었다. 여울은 밧줄을 손끝으로 당겨 보고 나서 윤 판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윤 판관님.”여울은 허리를 숙였다. 윤 판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널판에 발을 올렸다. 도포 자락이 나무에 스치지 않도록 손으로 걷어 들었다. 그는 널판 끝에 이르러 배를 한 번 살폈다. 배 안에는 노와 향 받침이 놓여 있었고, 아직 아무도 타지 않았다.“첫 배를 타겠네.”“건너실 곳은 맞으시죠?”“그렇네.”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 윤 판관이 나루로 온 까닭을 묻고 싶었지만, 첫 종이 울리기 전부터 대답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여울은 배 옆에 놓인 노를 새남에게 건넸다.“새남아, 손님부터 태워.”“네, 사공님.”새남은 노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배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다 윤 판관의 옷자락을 다시 보고 발을 멈췄다. 비단 소매가 새남의 눈에 걸린 듯했다. 새남은 노를 고쳐 쥐었지만, 손가락이 자루 끝에서 미끄러졌다.노가 널판에 부딪히기 직전 여울이 잡았다.“손에 힘 줘.”“네. 죄송합니다.”새남은 노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노 끝이 바닥을 긁었다. 널판 위에 낮은 소리가 나고, 새남은 노를 들고 선 채 윤 판관의 소매를 다시 흘끗 보았다.“옷이 눈에 들어왔구나.”여울이 말하자 새남은 귀를 붉혔다.“저렇게 고운 옷은 가까이서 처음 봤습니다.”“옷은 배에 안 태워. 사람을 태워.”새남은 얼른 윤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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