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가 되기로 했는데 남주가 따라왔다

악녀가 되기로 했는데 남주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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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h:  Jino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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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겨울, 성녀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으로 처형당한 «악녀» 비올레타. 눈을 뜨니 열일곱 성인식 날 아침이었다. 이번 생은 착한 척 안 한다. 싫으면 싫다고, 하고 싶은 건 한다. 그런데 전생에 나를 처형한 북부 대공이 자꾸 따라온다. “왜 계속 따라와요?” “네가 가는 곳이니까.” “저 악녀인데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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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악녀, 다시 눈을 뜨다

악녀 수칙: 착한 척하지 않는다.

12월 20일. 죽기에는 날씨가 너무 맑았다.

광장 바닥에 쌓인 눈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목도리에 코를 묻고, 장갑 낀 손을 비볐다. 누군가는 발이 시린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나는 맨손이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 보았다. 잘 움직이지 않았다. 추워서인지, 이제 움직일 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는 몰랐다.

“악녀!”

군중 속에서 외침이 터졌다.

“성녀님께 사죄해라!”

성녀를 독살하려 했다는 죄.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적은 판결문은 이미 낭독이 끝났다. 내 이름만큼은 정확했다.

비올레타 에버린. 스무 살.

다들 내 이름보다 악녀라는 말을 좋아했다.

고개를 들자 광장 한쪽의 재판관석이 보였다. 은회색 머리, 회색 눈. 북부 대공 레녹스 발트하임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내 말을 거짓이라고 판결한 사람.

성녀의 말은 참이라고 판결한 사람.

눈이 마주쳤다. 레녹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피하지 않았다. 이미 더 잃을 체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나.”

나는 입술을 벌렸다. 찬 공기가 목 안으로 들어왔다.

살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찾지도, 나를 외면한 약혼자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런 말은 충분히 해 봤다.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

크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가까운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레녹스의 손이 왼쪽 귀로 올라갔다.

은 귀걸이를 짚은 손가락이 멈췄다.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얼굴을 보았다.

늘 굳어 있던 입술이 벌어졌다. 눈썹이 일그러지고, 턱이 작게 떨렸다. 내 판결문을 읽을 때조차 변하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이제 와서 왜.

레녹스가 재판관석을 벗어나 한 걸음 내려왔다.

이름을 부르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무슨 말인지는 듣지 못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머리카락이 뺨을 덮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끝까지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본 얼굴은, 어째서 그런 얼굴이었을까.

◐

“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셔야 해요.”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나는 이불을 움켜쥐었다.

이불.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천이 구겨졌다. 광장에는 이불이 없었다. 내 침대도, 아침마다 들리던 저 목소리도.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침대 기둥에 달린 얇은 커튼이 바람에 흔들렸다. 창가에는 내가 싫어해서 치워 달라고 했던 분홍색 꽃병이 놓여 있었다.

그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침대 옆의 사람이었다.

작은 키. 빨간 볼. 앞치마 끈을 단단히 묶은 허리.

“한나?”

“네, 아가씨.”

한나는 드레스를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입술이 움직이고, 눈을 깜빡이고, 내가 일어나지 않자 곤란한 듯 발끝을 모았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한나는 내 방에서 쫓겨났었다.

도둑이라는 말을 들으며 저택 문을 나서던 뒷모습을 기억했다. 내가 부르자 돌아봤지만, 집사의 손에 떠밀려 끝내 고개를 숙였던 것도.

그 뒤에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 한나가 내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어디 갔었어?”

“드레스 가지러요. 어제 다림질해 두었는데 치맛단이 접혀서 다시 펴느라 조금 늦었어요.”

한나는 품에 든 옷을 보여 주었다.

연한 보라색 드레스였다. 소매 끝에 작은 진주가 달려 있었다. 가슴 아래로 내려오는 주름, 지나치게 가는 허리, 숨을 얼마나 참아야 들어갈지 모를 치수.

나는 그 옷을 알았다.

성인식 무도회에 입었던 드레스였다.

상체를 일으켰다. 이불이 허리 아래로 흘렀다. 잠옷 소매 밖으로 나온 손목이 기억보다 가늘었다.

손바닥을 폈다.

오른손에 고삐를 잡으며 생긴 굳은살이 남아 있었다. 오래 말을 타지 않아 옅어졌지만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었다.

나는 두 손을 맞대 보았다. 얼어붙었던 손끝은 따뜻했다.

“오늘이 며칠이야?”

“4월 1일이요.”

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몸이 안 좋으세요?”

“내가 몇 살이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나가 드레스를 침대 끝에 내려놓고 가까이 왔다.

“열일곱이세요. 아가씨, 정말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의원을 부를까요?”

열일곱.

나는 잠옷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천 아래에서 심장이 뛰었다. 급하게 뛰어서 숨을 천천히 내쉬어야 했다.

광장의 추위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 레녹스가 일어날 때 난 의자 소리도 귀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열일곱이라니.

“아가씨?”

“잠깐만.”

한나가 입을 다물었다.

창밖에서 정원사가 가지를 자르는 소리가 났다. 복도에서는 누군가 쟁반을 들고 지나갔다.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 다음으로 익숙한 바닥 삐걱임이 따라왔다.

살아 있을 때 듣던 소리였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맨발로 밟은 융단이 부드러웠다. 한나가 급히 실내화를 가져왔지만, 그 전에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검은 머리가 어깨를 넘어 흘렀다. 보랏빛 도는 눈. 끝이 올라간 눈매.

뺨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재판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해 헐거워졌던 잠옷도 몸에 맞았다.

나는 거울에 손을 대었다.

거울 속 손도 따라 올라왔다.

“달력 보여 줘.”

한나가 책상 위의 달력을 가져왔다. 나는 종이를 넘기지 않고 앞장을 보았다.

4월 1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내 글씨가 있었다.

『성인식 무도회. 전하께 먼저 인사드릴 것.』

한동안 그 글씨를 보았다.

밑줄까지 그어 놓았네.

아주 열심이었군, 비올레타 에버린.

“어제 아가씨께서 세 번이나 확인하셨잖아요.”

한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필립 전하께 드릴 인사도 연습하셨고요.”

“그랬지.”

그랬다. 기억났다.

왕자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게 볼까 싶어서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다. 이빨이 많이 보이면 경박하고, 입꼬리만 올리면 비웃는 것 같다고 했다.

웃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었다.

나는 달력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정확히 돌아왔다. 죽기 전의 방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던 날의 방으로.

◐

한나는 아침 식사 쟁반을 가져왔다.

수프 한 그릇과 얇게 자른 빵이었다. 잼은 없었다.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날에는 단것을 먹지 않는다고, 내가 직접 부탁했던 식사였다.

나는 빵을 들었다가 한나를 보았다.

“너는 먹었어?”

“저는 나중에 먹으면 돼요.”

“먹었냐고 물었어.”

“아직 안 먹었어요.”

한나가 앞치마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빵을 반으로 갈랐다. 접시 한쪽에 놓고, 침대 옆 낮은 의자를 당겼다.

“앉아.”

“아가씨 식사인데요.”

“내가 먹으라고 했어.”

한나는 문을 돌아보았다. 복도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빵도 바로 집지 않았다.

나는 수프를 한 숟갈 먹었다.

따뜻했다.

입천장이 조금 데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한나는 그 짧은 사이에도 벌떡 일어나 물잔을 채웠다.

“가만히 앉아 있어. 물은 내가 따를 수 있어.”

“오늘 이상하세요.”

한나가 말하고는 입을 가렸다.

나는 빵을 씹다가 한나를 보았다.

“어떻게?”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아니, 원래 화를 내신다는 뜻은 아니고요.”

“알아. 계속 말해.”

“늘 바쁘셨잖아요. 오늘 같은 날은 더요. 전하께서 좋아하시는 머리 모양이랑, 후작님께서 고르신 장신구랑.”

한나는 말을 고르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밥을 먹었는지 먼저 물으셔서요.”

나는 수프 그릇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이 작은 것 하나를 하지 않았구나.

내 하녀가 아침을 굶었는지 묻는 일.

한나가 빵을 집었다. 끝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고 있자 서둘러 삼키려 했다.

“천천히 먹어. 무도회는 저녁이잖아.”

“머리를 올리고 장신구까지 맞추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럼 머리를 덜 올리면 되지.”

한나의 손이 멈췄다.

그 정도 말에도 놀랐다. 내가 얼마나 고분고분하게 살았는지 하녀의 얼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참 애썼다.

좋아하지도 않는 머리를 하고, 숨도 못 쉬는 옷을 입고, 듣기 싫은 말에 웃고.

그러고도 마지막에는 악녀였다.

나는 빵 부스러기를 접시 안으로 모았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꿀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 마음에 들 일을 찾기 전에, 내가 싫은 것부터 골라낼 생각.

일단 이 아침 식사부터였다.

“다음부터 잼도 가져와.”

“드레스가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잼 한 숟갈에 안 맞는 드레스면 옷이 잘못됐네.”

한나가 작게 웃었다. 곧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나는 봤다.

쫓겨나던 날에는 저런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물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문밖으로 혼자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

성인식 드레스는 예상대로 불편했다.

한나가 허리 뒤의 끈을 당기자 나는 곧바로 말했다.

“거기까지.”

“조금만 더 조여야 단추가 맞아요.”

“숨이 안 쉬어져.”

“후작님께서 단정하게 입으라고 하셔서…….”

“아버지가 입으실 건 아니잖아.”

한나가 끈을 잡은 채 멈췄다.

나는 거울로 한나를 보았다. 이 말이 복도 밖으로 나가면 먼저 혼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나였다.

“내가 느슨하게 하라고 했다고 해. 물으면 그대로 말하고.”

“정말 그래도 될까요?”

“응. 네가 한 말 아니잖아.”

한나가 조심스럽게 끈을 풀었다.

갈비뼈를 누르던 천이 느슨해졌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옷을 입고 숨을 쉬는 일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하지만 등 위쪽의 작은 단추는 여전히 맞지 않았다.

한나가 손톱으로 단춧구멍을 벌렸다. 손끝이 떨렸다. 한 번 놓치자 더 서둘렀고, 진주 단추가 손가락 사이에서 자꾸 빠져나갔다.

“죄송해요. 금방 할게요.”

나는 거울에서 눈을 떼었다.

“한나.”

“네. 금방요.”

“내 말 들어.”

돌아서는 바람에 드레스 뒤가 조금 벌어졌다. 한나는 황급히 천을 붙잡았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광장에서 내 손도 이랬다. 아무도 잡아 주지 않았다는 차이만 있었다.

“오늘은 내가 할게.”

한나가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뒤에 있는 단추라 아가씨께서는 못 보시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다시 살아났다고 팔이 더 길어지진 않았군.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드레스 앞의 단추를 가리켰다.

“이건 내가 하고. 뒤에 있는 건 남겨 둬. 허리가 안 맞으면 다른 옷을 입으면 돼.”

“성인식 드레스인데요.”

“성인식이 옷 치수에 맞춰 열리진 않잖아.”

나는 한나의 손을 놓았다. 대신 단춧구멍이 달린 천을 받아 직접 만져 보았다. 너무 작았다. 단추가 아니라 천을 조금 늘리면 되는 일이었다.

“네가 못한 게 아니야. 구멍이 작아.”

한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젯밤에 제가 확인했어야 했어요.”

“지금 봤으니까 됐어.”

나는 앞쪽 단추 하나를 채웠다. 한나가 뒤에서 천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거울 속에 둘이 나란히 비쳤다.

한나는 아직 볼이 빨갰다. 나는 여전히 눈매가 사나웠다.

열일곱 때도, 스무 살 때도 저 눈 때문에 말을 많이 들었다. 조금만 눈을 내리깔면 오만하다 했고, 바로 보면 노려본다 했다.

눈을 어디에 두라는 건지.

“아가씨, 눈에 힘을 조금 빼시면…….”

한나가 익숙한 말을 하다가 멈췄다.

나는 거울 속 한나를 보았다.

“내가 전에 그렇게 말해 달라고 했지?”

“네. 무서워 보이면 알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것까지 부탁했구나.

나는 눈썹을 일부러 내리지 않았다. 입가도 억지로 끌어 올리지 않았다.

“이제 안 알려 줘도 돼.”

“네?”

“내 얼굴이야. 계속 보고 살 건 나고.”

한나는 대답 대신 남은 단추를 채웠다.

이번에는 손이 덜 떨렸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문밖에서 아버지가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물으셨다는 말이 들렸다.

한나가 내게 허락을 구하듯 돌아봤다.

“드레스 손보는 중이라고 해.”

한나가 문을 조금 열고 그대로 전했다. 문밖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뒤에 남은 단추를 만져 보았다.

아버지는 무도회장에서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하실 터였다. 필립 전하가 무슨 말씀을 하든 웃고, 먼저 손을 내미시면 감사히 받아들이라고도.

나는 그 손을 기다리느라 저녁 내내 문 쪽만 봤었다.

인사를 빼먹을까 봐 접시도 들지 않았다. 전하가 다른 영애와 춤추는 동안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부채를 폈다.

오늘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한나, 장신구 가져와 줄래?”

한나가 상자를 열었다. 아버지가 고른 묵직한 목걸이가 맨 위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지 않았다. 작은 진주 귀걸이만 골라 화장대에 올렸다.

“목걸이는 안 하세요?”

“무거워.”

“후작님께서 물으시면요?”

“무거워서 안 했다고 해.”

거짓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 하나는 끝까지 지켰다. 죽는 날까지 지켰는데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지만, 남이 믿지 않는다고 내가 버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화장대 위의 달력을 다시 보았다.

전하께 먼저 인사드릴 것.

종이를 찢지는 않았다. 저 문장을 쓰느라 펜을 몇 번이나 고쳐 잡았던 손이 아직 내 손이었다.

대신 달력을 엎어 놓았다.

“필립 전하께서 첫 춤을 청하시면 장갑부터 끼셔야 해요.”

한나가 장갑을 챙기며 말했다.

나는 장갑을 받아 손가락에 끼웠다. 끝이 조금 남았다. 벗어서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첫 춤을 안 출 수도 있어.”

“전하께서 안 청하시면요?”

“내가 안 추고 싶으면.”

한나가 나를 보았다.

나는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보라색 드레스는 예뻤다. 진주 귀걸이도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됐다.

웃는 연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 저녁 필립에게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전하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사람들이 돌아봐도 끝까지 할 말이었다.

거울 속 내가 턱을 들었다.

“이번엔 착한 척 안 해.”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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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악녀, 하녀를 지키다
악녀 수칙: 내 편이 혼자 혼나게 두지 않는다.“안에서는 음악이 나오는데요.”나는 발코니 문 안쪽을 가리켰다.레녹스는 내 손끝을 보고도 말을 고치지 않았다.“그렇군.”그걸 모르고 조용하다고 했을 리는 없었다.더 물어보기 전에 오웬이 문을 크게 열었다. 접힌 종이를 쥔 손이 문틀에 눌렸다.“전하. 이번에는 정말 가셔야 합니다.”“간다.”레녹스가 문턱을 넘었다. 나는 난간에 놓아둔 장갑을 집어 들었다.조용하다고 하기에는 안에서도, 내 머릿속에서도 할 말이 너무 많았다.특히 아버지는 할 말이 더 많을 터였다.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4월 2일 아침, 한나가 내 머리끈을 묶기도 전에 서재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나는 거울 속에서 기울어진 리본을 보았다.“이쪽이 조금 길어.”“죄송해요, 아가씨.”“다시 묶으면 돼.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니고.”한나가 리본을 풀었다. 손끝이 어제 단추를 채울 때만큼 조심스러웠다.전갈을 가져온 하인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는 그쪽을 한 번 보고 내 머리카락을 모았다.“후작님께서 많이 기다리셨을까요?”“기다리셨겠지.”“그럼 빨리…….”“한나. 머리카락도 같이 묶였어.”한나가 손을 멈췄다.나는 리본 아래 낀 머리카락을 빼냈다. 서두르다 엉킨 머리를 풀며 서재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혼날 거라면 적어도 머리는 멀쩡해야 했다.리본을 다시 묶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나가 의자에 걸쳐 둔 숄을 집었다.“가지고 내려갈까요?”“서재에 갈 건데 숄까지는 필요 없어.”한나가 숄을 내려놓았다.문으로 가던 나는 다시 돌아섰다. 화장대 옆 작은 접시에는 아침에 나온 빵이 그대로 있었다.“너도 아직 못 먹었지?”“아가씨 머리부터 해 드리려고요.”나는 접시를 한나 쪽으로 밀었다.“먹고 있어. 내 머리는 이제 안 풀려.”한나가 리본을 한 번 더 확인했다.꼭 먹으라고 하면 또 송구하다는 말을 할 얼굴이라, 나는 그 전에 문을 열었다.◐아버지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앉아서 기다릴 여유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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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악녀, 마차에서 내리다
악녀 수칙: 내 편을 구하려면 내가 먼저 움직인다.한나가 무릎 위의 손을 폈다.“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내일은 여기 있어.”“하지만 아가씨 혼자…….”“마부도 가고, 마차도 가. 혼자는 아니야.”한나는 외출용 장갑을 보았다. 손끝이 아직 떨렸지만, 이번에는 앞치마를 쥐지 않았다.나는 바느질 상자를 서랍 안에 넣었다.“내가 없을 때 누가 또 부르면 아가씨가 기다리라고 했다고 해.”“후작님께서 부르셔도요?”“응. 그 말은 내가 했으니까 나한테 물으시면 돼.”한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문을 열자 복도에 서 있던 하인이 몸을 바로 세웠다. 나는 내일 아침에 마차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어디에 가느냐는 질문은 없었다.다행이었다. 아직 목적지를 집 안에 널리 알릴 생각은 없었다.◐4월 3일, 한나는 평소보다 일찍 내 외출복을 꺼냈다.옅은 회색 치마에 장식이 적은 옷이었다. 소매 끝에는 어제 잘라 낸 실이 더는 걸리지 않았다.나는 거울 앞에서 장갑을 끼었다. 한나는 단추를 채운 뒤에도 내 등을 한 번 더 살폈다.“뒤에 뭐 묻었어?”“아니에요. 잘못 잠근 데가 없나 봤어요.”“없어. 이번엔 나도 확인했어.”한나가 손을 내렸다.화장대 위에는 작은 빵이 놓여 있었다. 어제 내가 밀어 주었던 접시였다.“아침 드시고 가세요.”“마차 준비됐지?”“네. 그래도 조금 드실 시간은 있어요.”내가 굶으면 한나가 또 자기 잘못으로 여길 얼굴이었다.나는 빵을 집었다. 한나도 그제야 다른 빵을 하나 들었다.말없이 씹는 동안 밖에서 마차 바퀴가 돌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서두를 필요는 있었다. 그렇다고 빵 하나를 먹을 시간까지 빼앗길 일은 아니었다.◐현관에는 집사가 서 있었다.내가 계단을 내려가자 집사는 문을 열려던 하인을 물리고 직접 손잡이를 잡았다.“어디로 가십니까, 아가씨?”“브로치 찾으러요.”집사의 손이 멈췄다.“밖에서 찾으신다는 말씀이십니까?”“집 안은 어제 다 찾아보셨잖아요.”“예. 다만 유품을 들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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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악녀, 범인을 데려오다
악녀 수칙: 사과받을 사람은 내가 정한다.레녹스가 장부의 서명을 내려다보았다.“저택에 드나드는 자인가.”“네. 집사가 직접 들여보내 준 적도 있어요.”나는 장부를 돌려놓았다. 이름을 안다고 당장 범인을 데려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택에서 잘못 봤다고 우기면, 내 기억과 집사의 말이 맞부딪칠 터였다.주인이 내민 종이에 거래 내용을 옮겼다.날짜와 물건의 모양. 뒤에 새겨진 문장. 값을 치렀다는 기록과 서명까지.“아래에 확인했다고 적어 주세요. 주인께서 직접 보신 것만요.”주인은 종이를 당겨 글씨를 썼다.나는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브로치를 보았다.“내일 저희 저택에 와 주실 수 있나요? 이 물건도 함께 가져오시고요.”주인의 손이 멈췄다.“제가 가게를 비우려면…….”“언제 오실 수 있어요?”“아침 거래를 마치고는 갈 수 있습니다.”“그럼 그때 오세요. 물건값도 저택에서 정리할게요.”주인은 브로치를 다시 싸서 계산대 안쪽에 넣었다. 내가 가져가면 한나를 보호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 사람의 손에서 아버지께 건네는 편이 나았다.누가 가져왔는지 직접 들은 뒤에는 아버지도 집사의 말만 들을 수 없을 테니까.레녹스가 종이 끝을 가리켰다.“아직 젖었다.”접으려던 손을 멈췄다. 서명 아래의 잉크가 조금 번들거렸다.“급하게 접어서 이름을 지울 뻔했네요.”레녹스는 대답 없이 계산대 위의 문진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종이 모서리를 눌러 놓았다.오웬이 문가에서 서류를 고쳐 들었다.“전하, 저희도 이제 가셔야 합니다.”“알아.”알고는 계셨군요. 나는 그 말까지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4월 4일 아침, 집사는 서재 문 앞에 서 있었다.나는 한나와 함께 복도를 걸어갔다. 한나의 소매는 평소처럼 가지런했지만, 손톱 끝이 소매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손 아프겠다.”한나가 손가락을 폈다.“괜찮아요.”“아프면 펴. 오늘은 손을 숨길 일 없어.”집사가 우리 앞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한나를 보자 입술이 얇아졌다.“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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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악녀, 말을 사다
악녀 수칙: 내가 고른 것은 내가 산다.커튼을 닫자 한나가 빗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다.“아가씨, 아직 머리끈을 안 묶었어요.”“그럼 앉을게.”나는 다시 화장대 앞에 앉았다. 한나는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었다. 창밖에서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지만, 커튼을 걷지는 않았다.대공이 저 길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는 몰랐다.내가 창가에 얼마나 자주 서야 하는지는 알았다. 이제 덜 서야 했다.화장대 위에 놓인 장갑을 집었다. 오른손을 넣다가 손바닥에 남은 굳은살을 문질렀다.고삐를 놓은 지는 한참 됐다.그런데 이건 아직 남아 있었다.◐4월 8일 아침, 한나는 침대 위에 드레스를 펼쳐 놓았다.나는 그 옆의 짙은 색 옷을 골랐다. 치맛자락이 덜 넓고, 소매에 장식이 없는 옷이었다.“오늘은 이걸 입을래.”“어디 가세요?”“말 경매장.”한나는 드레스를 접던 손을 멈췄다.“말을 보러요?”“사러.”“아가씨가 타실 말이요?”“응.”한나가 옷을 내 쪽으로 가져왔다. 단추를 채우는 손이 빨라졌다.“그럼 신발도 바꿔 드릴게요. 저건 흙이 묻으면 잘 안 지워져요.”말리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준비가 참 빨랐다.예전에는 말을 타러 가겠다고 하면 옷부터 바뀌었다. 마구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혀 놓고, 그런 차림으로 어디를 가느냐고 했다.나는 결국 옷을 아꼈다.말보다 옷을 더 좋아해서는 아니었다.“숙녀가 말에서 떨어지면 얼마나 볼썽사나운지 아느냐고 하셨거든.”한나가 고개를 들었다.내가 생각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낸 모양이었다.“누가요?”“여러 사람.”“넘어지면 아픈 게 먼저 아닌가요?”“그러게.”나는 신발에 발을 넣었다.전생에는 그 말을 못 했다. 아픈 것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먼저인 줄 알았으니까.그렇게 고삐를 놓고 살았는데, 마지막에 듣던 말은 악녀였다.굳이 잘 차려입고 악녀가 될 필요는 없었다.서랍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선물로 받거나 쓰지 않고 모아 둔 돈이었다. 입구를 열어 안을 확인한 뒤 끈을 단단히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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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악녀, 마구간에 가다
악녀 수칙: 하고 싶은 일에는 내 손을 쓴다.“말 앞에서 제 값을 깎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내가 말하자 오웬이 입술을 다물었다. 웃음을 참느라 어깨까지 움직였다.레녹스는 먹구름이 드러낸 이를 보고도 더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망토 자락을 뒤로 걷었다.먹구름의 귀가 조금 올라왔다.“망토가 싫은가.”“아직은 모르죠.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요.”나는 장갑을 다시 꼈다. 오른손 손가락이 조금 축축해서 끝까지 잘 들어가지 않았다.한나가 장갑 끝을 잡아 주려다 말 쪽을 보았다.“닦고 끼실걸 그랬어요.”“벌써 끼웠어.”“그럼 돌아가서 말려 드릴게요.”울타리 곁으로 말을 맡은 사람이 왔다. 나는 먹구름의 오른쪽 앞발을 가리켰다.“오늘 계속 걷게 하지는 말아 주세요.”“쉬게 했다가 데려가겠습니다. 저택에는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겁니다.”“마구간지기는 베른이에요. 그분에게 인도해 주세요.”먹구름이 고개를 돌렸다. 고삐가 움직이자 나도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내가 샀다고 당장 내 말을 듣는 건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서 돌보던 사람 손에 맡기는 편이 나았다.“내일 보자.”먹구름은 울타리 위에 코를 대고 문질렀다.작별 인사는 썩 성의가 없었다. 나도 다시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돌아서는 내 옆으로 레녹스가 걸었다. 오웬이 서류를 들어 보이자 대공은 그제야 멈췄다.“먼저 가.”“네. 대공 전하도 하실 일 하세요.”오웬이 나를 보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인사가 지나치게 정중했다. 대공의 하실 일을 찾아 준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4월 9일 아침, 한나는 장갑을 창가에서 가져왔다.“다 말랐어요.”나는 오른손부터 넣었다. 손가락 끝이 걸리지 않고 들어갔다.한나가 침대 위에 놓인 옷을 펼쳤다. 어제 입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장식이 적은 옷이었다. 치맛단 안쪽에 붙은 마른 흙은 모두 털어져 있었다.“오늘도 밖에 나가세요?”“마구간.”“그럼 머리는 단단하게 묶을게요.”한나는 빗을 들고 내 뒤에 섰다. 평소처럼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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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악녀, 오빠에게 대들다
악녀 수칙: 나중에 할 사과를 위해 지금 참지 않는다.나는 손수건을 쥔 채 레녹스를 보았다.내가 있는 곳이라 왔다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구간을 새로 안내할 수도 없었다. 문 앞에서 안쪽까지 다 보였으니까.“오늘은 먹구름 쉬게 할 거예요.”“알아.”“저도 곧 들어갈 거고요.”“그럼 여기 있겠다.”레녹스가 문틀에서 어깨를 뗐다. 안으로 오는 대신 문 옆으로 비켰다.베른이 빈 물통을 들고 지나갔다. 대공은 물통에 닿지 않게 겉옷 끝을 걷었다. 베른이 허리를 숙이려 하자 먼저 길을 내주었다.저 큰 사람이 문을 막지 않으려고 옆으로 서 있는 게 이상했다.전생에는 재판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몸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나는 손수건의 접힌 귀퉁이를 폈다.“오늘은 그만 가세요.”“그래.”너무 쉽게 돌아섰다.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돌아가는 등을 잠깐 보고 있었다.한나가 내 손에서 손수건을 받았다.“아가씨도 들어가세요?”“응.”먹구름이 짚을 헤쳤다. 나는 칸의 빗장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마구간을 나왔다.대공은 앞길로, 나는 본관으로 갔다.◐4월 12일 아침, 식탁에 놓인 빵을 반으로 갈랐을 때 데릭이 입을 열었다.“어제도 마구간에 갔다지.”나는 빵 안쪽에 버터를 발랐다.“응.”“그제도.”“응.”“아버지 말씀을 듣기는 한 거냐?”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데릭은 그쪽을 보고 등을 폈다.나는 버터 칼을 접시 옆에 두었다.“저녁 식사에 늦지 말라고 하셨어. 옷도 갈아입고 오라고 하셨고.”“그 뜻이 매일 마구간에 가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그럼 오빠가 아버지 대신 말씀을 더 붙이는 거야?”데릭의 손에서 빵이 내려갔다.아버지는 콧수염 밑을 냅킨으로 눌렀다.“매일 갈 필요가 있느냐.”“제가 산 말이에요. 잘 지내는지 보고 싶어요.”“베른이 돌보고 있지 않느냐.”“그러니까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제가 물을 갈아 주는 날이 생겨도 베른한테 다시 해 달라고 하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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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악녀, 이름을 허락하다
악녀 수칙: 내 이름을 부를 사람은 내가 정한다.한나는 꺼내던 편지지를 다시 넣었다.“그럼 답장은 안 보내실까요?”“응. 가겠다고 한 적 없으니까.”나는 화장대 위의 쪽지를 뒤집었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장소만 적고 시간은 오후라고 뭉뚱그린 초대였다.북부에서는 해가 기울면 모두 같은 곳에 모이나.한나가 빗을 들었다.“내일은 먹구름 보러 가세요?”“베른한테 먼저 물어보려고. 넓은 데서 조금 걷게 해도 되는지.”“왕립 승마장이 넓다고 하셨잖아요.”“넓은 곳이 거기만 있는 건 아니야.”한나는 내 머리를 빗었다. 더 묻지 않는 게 오히려 수상했다.나는 뒤집어 놓은 쪽지를 서랍에 넣었다.간다고 하지도 않았고, 안 간다고 하지도 않았다.내 말 운동시키는 데 대공의 허락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다.◐4월 13일 아침, 베른은 먹구름의 앞다리를 살핀 뒤 몸을 일으켰다.“딱딱한 길보다는 고른 흙바닥이 좋겠습니다. 오래 걷지는 말고요.”“왕립 승마장은 어때?”“거기라면 괜찮지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나는 먹구름의 이마에 붙은 짚을 떼었다.“나도 갈게.”먹구름이 손바닥을 코로 밀었다. 먹이가 없다는 걸 알고는 곧 고개를 돌렸다.마음에 든 사람과 쓸모 있는 사람을 잘 구분하는 말이었다.방으로 돌아가자 한나가 외출복을 꺼냈다. 나는 긴 소매가 달린 단정한 옷을 고르고, 굽이 낮은 장화를 신었다.“타시는 건 아니죠?”“응. 걷는 것만 볼 거야.”한나는 치맛단이 장화 아래로 내려오지 않게 매무새를 봐 주었다. 그러더니 화장대 서랍을 힐끗 봤다.“쪽지도 가져가실까요?”“승마장 입장권이 아니야.”“네, 아가씨.”대답이 너무 얌전했다.나는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아버지는 현관에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먹구름을 걷게 하러 간다고 하자, 잠시 내 장화를 보았다.“무리하지 마라.”“안 탈 거예요.”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굳이 만나지도 않은 대공 이야기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다.나는 한나와 마차에 올랐다. 베른이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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