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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협상이 아니다

作者: Doong_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18 12:00:33

카시안의 시선이 목에 멎자 엘로이즈는 편지칼을 더 세게 쥐었다.

처형대 위에서도 그는 저렇게 바라보았다. 칼날이 떨어질 자리를 확인하듯.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카시안은 흔들리던 눈빛을 가라앉혔다. 떨리는 오른손을 등 뒤로 감추고 숨을 삼킨 뒤, 황태자의 가면을 썼다.

“그 편지는 보내도 된다. 하지만 편지 한 장으로 혼인 협상이 끝나지는 않아.”

그에게 그녀의 거절은 결정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착오였다.

“제 뜻을 밝히기에는 충분합니다.”

“약혼 발표는 연기하겠다.”

“철회가 아니라 연기입니까?”

“지금 철회하면 황실은 에버하르트가가 충성을 거두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전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이군요.”

카시안의 턱과 어깨선이 굳었다.

“그 책임을 그대의 가문에 돌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제 선택을 미루시는군요.”

“사흘만 시간을 줘. 조건을 다시 정하겠다.”

“조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송 인장과 곡물 창고는 넘기지 않겠다. 구호원 운영권도 남겨 두지. 재산과 인장도 그대가 관리하게 하겠다.”

전생의 자신이 끝내 얻지 못한 권리였다.

“누가 전하께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까?”

“혼인 협상에 포함된 사안이니 알고 있을 뿐이다.”

너무 매끄러운 대답이었다.

금으로 만든 감옥도 감옥이었다.

“제가 그런 조건을 요구했습니까?”

“원하는 조건을 말해.”

“모두 들어주시겠습니까?”

“가능한 것은 전부.”

“불가능한 것은 누가 정하지요?”

카시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굳게 다문 턱과 떨리는 어깨가 대답을 대신했다.

이미 그 침묵이 답이었다.

“오늘은 돌아가 주십시오.”

“내일 조건서를 보내겠다. 그전까지 철회서는 보내지 말아 줘.”

부탁처럼 들렸지만 그녀의 선택을 인정하는 말은 아니었다.

문이 닫힌 뒤에도 엘로이즈는 칼을 놓지 못했다.

그는 왜 자신이 되찾으려 한 것들을 알고 있을까.

답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그가 감옥을 만든다면, 자신은 먼저 미래를 바꿔야 했다.

루체가 창백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엘로이즈는 편지칼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에는 손잡이 문양이 붉게 찍혀 있었다.

“괜찮아. 아직은.”

정오의 종이 울렸다.

신전의 점검 마차가 성 베르나 구호원에 도착하기까지 여섯 시간.

엘로이즈는 철회서에 인장을 찍었다.

“아버지께 직접 전달해. 누구의 손도 거치지 말고.”

이어 구호품 명세서를 꺼냈다.

마리엘은 전생에서 아동 명단 요구를 거부하다 쫓겨났다. 지금의 그녀라면 믿을 수 있었다.

담요와 약초, 밀가루의 수량은 비상 부호로 읽으면 다른 문장이 되었다.

레아를 세탁물 마차에 태울 것.

해가 지기 전, 폐쇄된 제7 보급소로 옮길 것.

신전에는 알리지 말 것.

“후원 장부 사이에 넣어. 세탁물을 거두러 오는 하렌에게 직접 건네.”

“구호원의 늙은 마부요?”

“제7 보급소가 폐쇄되기 전 마지막 운송을 맡았던 사람이야. 그라면 길을 알아.”

“제가 내용을 알아야 하나요?”

“아니. 하렌에게만 전달해. 누구에게도 펼쳐 보이지 말고.”

루체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렌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건네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명세서를 두 번 접어 앞치마 안쪽 깊숙이 넣었다.

엘로이즈는 문서 아래에 긴급 신호인 작은 점을 찍었다.

루체가 방을 나섰다. 멀어지는 빠른 발소리가 구출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남은 시간은 여섯 시간.

신전보다 먼저 레아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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