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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

Author: 달코
“그렇다면요? 대표님께서 저를 직접 수술대로 끌고가서 아이를 지워버리게 하려고요?”

치켜든 고개에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한 눈동자가 자리했다.

살이 홀쭉하게 빠진 조수아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문주가 물었다.

“그렇게 중요한 걸 왜 나한테 안 알려줬어?”

“알려주면? 그럼 하루라도 더 빨리 애를 지우려고?”

“맘대로 내말 해석하지 말고 제대로 들어.”

육문주는 미운 말만 뱉는 얄미운 입을 그러쥐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고 애 낳을 거, 굳이 내가 임신했다고 그래서 문주 씨가 관심이나 가질까?”

그녀의 고집스런 얼굴에 육문주는 지그시 이를 깨물었다.

조수아가 뒤에서 몸을 버둥거리든 말든, 육문주는 아랑곳 않고 그녀의 손목을 휘어잡은 채 산부인과 수술실로 향했다. 점점 더 거세게 반항하자 단호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걱정 마. 제일 좋은 산부의과 의사로 붙여줄 테니까.”

원래도 산산조각 났던 심장이 더 격렬하게 조여들었다.

한쪽으로는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임신 준비를 위한 검사를, 한쪽으로는 자신의 아이를 이미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아이를 지울 준비를 하는 남자의 양면성에 조수아는 진절머리가 났다.

만약 유산됐던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면 자신의 아버지 손에 직접 이끌려 지워지게 됐을 때 더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수아는 더는 버틸 수가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수아는 잡힌 손을 확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나 임신한 거 아니니까.”

뒤로 주춤 물러선 그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마주보다 그대로 뒤돌아서 떠났다.

그러나 얼마 걷지 못하고 뒤에서 뻗어나온 팔에 몸이 붕하고 떠올랐다. 육문주의 낮은 음성이 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검사하러 갈 용기가 없는 거야, 아니면 몰래 아이를 낳아서 그걸 빌미로 나한테 시집 오려고 그러는 거야?”

조수아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이거 내려 놔! 당신은 아이를 가질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야!”

육문주는 듣는 체도 안 하며 그녀를 안고 VIP 병실로 들어갔다. 고개를 내려보니 원래도 작았던 얼굴이 잠깐 사이에 더 조막만해졌다.

“너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떵떵 쳤잖아.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봐봐. 그 얼굴을 대체 누가 봐주겠어.”

차가운 손끝이 조수아의 뺨을 타고 훑어 내려갔다.

“내 곁으로 돌아와. 그럼 모든 힘든 것들이 다 지나갈 테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서려는데 어깨가 눌리며 다시 눕혀졌다.

그렇게 서로 실랑이질을 하던 가운데 조수아의 휴대폰이 울렸다. 재빨리 통화버튼을 누른 그녀는 1초만에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꿔서 입을 열었다.

“선배.”

“수아야, 나 아저씨 보러 오는 김에 네가 좋아하는 디저트 사갖고 왔는데 네가 안 보여서. 지금 어딨어?”

“고마워요, 선배. 저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든 조수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나 이제 가봐야 되니까 빨리 놔줘.”

육문주는 자신의 커다란 몸으로 그녀를 침대에 세게 내리누르며 살벌한 눈빛으로 경고했다.

“내가 헤어지는 걸 동의하지 않는 한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마!”

뼈를 에일 듯한 음성과 함께 뜨거운 호흡이 쏟아졌다. 그리고 곧 축축한 입속으로 입술이 빨려 들어갔다. 치아가 서로 부딪치며 익숙한 느낌이 가슴으로 퍼져나갔다.

발버둥치는 조수아를 간단히 한손으로 제압한 육문주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미친 듯이 키스를 계속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빠르게 한데 섞였다.

예전에 몸을 섞었던 화면들이 영화처럼 육문주의 뇌리속에서 반복재생이 되었다.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모습, 흐느끼며 그만해달라고 애원하던 모습, 새하얀 피부 위로 온몸에 키스마크를 달고 있던 모습. 수많은 기억들이 육문주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지금 그의 머리를 지배하는 건 눈앞의 여자가 내것이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문밖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던 송미진은 주먹이 꼭 쥐어졌다.

그녀는 차라리 남자가 저렇듯 정신없이 탐하고 있는 게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술을 깨물자 곧 피비린내가 입안에 풍겼다.

그때 허연후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미진아, 여기서 뭐 해?”

정신 차린 송미진이 웃으며 답했다.

“저 문주 오빠 기다리고 있었어요.”

허연후의 뒤에 의사가 한 명 서 있음을 발견한 송미진이 물었다.

“뒤에 의사분은 왜…”

허연후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그러는데 육문주 그놈이 아빠가 된다잖냐. 그래서 전문의 모시고 검사 한번 받아보게 하려고 그랬지. 문주 안에서 지금 뭐 해?”

비스듬이 열린 문틈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자 마침 육문주가 조수아에게 입술이 깨물려 피를 비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허연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쯧쯧쯧, 저렇게 심하게 물렸는데도 저런 웃음이 나온다냐? 대체 얼마나 변태인 거냐, 육문주. 안 되겠다. 저렇게 재밌는 장면은 현장에서 봐야 제일 재밌지.”

송미진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굳어져갔다. 허연후의 뒤에 선 선부인과 전문의를 보며 송미진은 몰래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녀는 조수아의 임신사실을 육문주에게 알리면 육문주가 화를 낼줄 알았었다. 그리고 당장 그녀의 손을 잡고 가서 애를 지우라고 윽박지를줄 알았다. 육문주가 아이를 남기고 싶어할 거라는 건 그녀의 예상밖이었다.

아이가 이미 지워졌으니 망정이지.

차갑게 입꼬리를 비튼 송미진은 허연후의 뒤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입술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모습을 보며 허연후가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으이그, 이미지 좀 챙기자. 그게 그렇게 급했어? 여긴 두 사람 집이 아니라 병원이라고. 만일 조수아 씨가 임신한 상태였는데 너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갔으면 어떡해.”

“꺼져!”

육문주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허연후의 뒤에 선 전문의를 향해 말했다.

“제 옆에 있는 분 임신했는지 검진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전문의가 다정하게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피를 뽑아서 한 번 성분분석을 맡겨보죠. 20분 정도면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전문의가 간호사를 불러서 채혈을 안배하려는데 송미진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육문주의 곁으로 다가가 잔뜩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요, 문주 오빠. 검사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애는 이미 지워졌거든요. 이게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조 비서님 생일에 문주 오빠를 불러가지만 않았더라도, 조 비서님이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홧김에 애를 지우지 않았을 거예요.”

주머니에서 수술기록지를 꺼낸 송미진이 그걸 육문주에게 건넸다.

육문주는 손에 든 종이를 내려다보며 점점 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기록지를 손에 들고 조수아의 얼굴 앞에 갖다대며 육문주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했다.

“누가 너한테 내 아이를 지워도 된다고 그랬어!”

조수아는 수술기록지를 보며 송미진의 능력에 감탄했다. 해킹하기 어려울 병원 시스템에 들어가서 그녀의 유산 및 과다출혈 병세를 환자의 요구로 인한 낙태로 바꿔치기 하다니. 차가운 시선이 육문주를 향했다.

“내 아이기도 해. 당신이 날 버려두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아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그녀의 머리에는 온통 육문주가 자신의 애원에 요지부동이던 장면이 재생되었다.

조수아의 턱을 붙잡은 육문주의 눈동자에 전에 없는 음험함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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